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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 트라이앵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랄리공동체가 지난 사반세기(약 25년)간에 이루어온 기적같은 성정하상 바오로 성당의 역사는 無에서 有를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그대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태동기 이전이라 볼 수 있는 1980년대 초반과 중반에는 UNC-CH 한인 가톨릭 학생회와 NCSU 한인 가톨릭 학생회등을 중심으로 가끔 개인 집에서 공소예절등을 가지는 정도로 지내오고 있었습니다. 그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이 작은 공동체는, 1980년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 학생사목을 맡고 계셨던, 죠 맥나마라 (Fr. Joe McNamara) 신부님의 지도와 매리린치(Sr. Mary Lynch) 수녀님의 도움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도겥센터(Dogget Center)로 이전된 아퀴나스 하우스(Aquinas House)에서 다른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여러 명의 한국유학생들과 연구원, 그리고 방문객들의 꾸준한 주일미사봉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은 공동체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1988년 12월 아주 추운 겨울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 한인 교우들은 랄리 중심가에 있는 주교자 성당 Sacred Heart Cathedral의 지하실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시는 한 바오로(Fr. Paul Han) 신부님께서 공동체를 방문하시면서, 신부님은 트라이앵글 지역의 한인공동체와 페잇빌(Fayetteville) 공동체의 한인공동체를 함께 사목해 보시려는 제의를 하셨습니다. 비록 한 신부님은 도중에 다른 곳으로 전출되어 가셨지만,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한인 가톨릭 학생 모임보다 훨씬 큰 공동체를 만들려는 꿈은 지속되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케빈 페이(Fr. Kevin Fahey) 신부님이 당시 사목하셨던 캐리(Cary)의 옛 성 마이클(Sr. Michael) 성당에서 마침내 한국어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로 존 월(Fr. John Wall) 신부님께서 성 마이클 성당을 사목하시면서 정규적인 한국어 미사로 정착되어 갔습니다.
특히, 1990년대로 접어들며 점점 더 한인 공동체가 모이는 횟수가 많아져 갔고 정규적인 한국어 미사가 정착되어 갔습니다. 1991년에는 샬롯(Charlotte) 본당에서 사목하시는 원 신부님께서 랄리 공동체를 방문해 주셨고, 1992년에는 현재 대구 대교구의 대주교님이 되신 조환길 신부님께서 샬롯본당을 사목하시면서 랄리 공동체를 한 햇 동안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993년에는 인천 교구의 박봉남 신부님께서 약 십개월간 랄리에 머무시며 공동체를 지도해 주셨습니다.
1994년부터는 안식년 중이시던 안동교구의 김상진 신부님께서 1년반정도 랄리와 페잇빌의 한인공동체를 함께 지도해 주셨습니다. 특히 1995년에 들어와서는 서울교구의 이성만 신부님께서 듀크대에 2개월간 연수하시면서 돌봐 주셨고, 대구교구의 박형진 신부님께서 그후 3개월간 두 공동체에 머무시면서 지도해 주셨는데, 공동체에 뜻하지 않은 불행한 사고도 몇 번 있었습니다.
1996년 부터 랄리 교구청은 랄리와 페잇빌 지역의 한인공동체를 위하여 좀 더 오랫동안 체류하시면서 정식으로 사목해 주실 수 있도록 한국인 신부님을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첫 사목 신부님으로 부산교구의 김성남 야고보 신부님께서 부임하셔서 4년간 두 공동체를 함께 사목하셨습니다. 특히 1999년 4월, 김성남 야고보 신부님께서 계신 동안 현재 뉴 힐(New Hill)에 자리잡은 사제관을 영유하게 되었고, 그 당시 총 대리 (Vicar General)셨던 제리 루이스(Mnsgr. jerry Lewis) 신부님께서 사제관을 축성해 주셨습니다. 김성남 신부님의 후임으로 부산교구의 장세명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부임해 오셔서, 주로 페잇빌에 있는 사제관에 머무시며, 랄리 공동체 미사를 집전하실때, 뉴 힐(New Hill) 사제관을 사용하셨습니다. 두 한인 공동체는 2003년에 이르러 각 공동체에 한 분씩 신부님이 필요할 만큼 발전하였습니다.
당시 추진해 오고 있던 랄리 독립 사목 신부님 영입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어, 서울 대교구에서 윤정한 바오로 신부님께서 랄리 공동체 사목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작던 랄리 공동체는 트라이 앵글 한인 천주 공동체(Triangle Korean Catholic Community 혹은 TKCC)로 불리게 되었고, 매주 토요일 저녁 성 마이클 성당에서 150여 가구가 모여 한국어로 주일미사를 봉헌할 뿐 아니라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에는 평일 미사를 사제관에서 봉헌하게 되었고, 성 마이클 성당에서 개최하는 15년 전통의 인터네셔널 페스티벌 (International Festival)에도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로 성장하였습니다.
랄리와 페잇빌에서 분리된 이후, 윤정한 신부님께서는 뉴 힐(New Hill) 사제관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목활동을 펼치셨습니다. 어린이 미사 및 젊은 교우 그룹을 위한 주일학교, 그리고 여름캠프 등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랄리 교구청에 자주 방문하여 주일미사와 주일학교들을 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을 시도하셨습니다. 뉴 힐 사제관의 차고와 그 앞의 땅을 이용한 건물 설계도도 완성하여 교구청의 인준을 받았으나 막상 공사를 하기 위한 카운티(County)로 부터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의 전격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여 아깝게도 무효화되는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후 윤정한 바오로 신부님께서 사목생활을 마치시고 귀국하셨던 2007년 즈음, 고스만(Gossman) 주교님께서 은퇴하시고 후임으로 마이클 버비지(Michael Burbidge) 주교님께서 랄리 교구에 착좌하셨습니다. 윤정한 바오로 신부님의 후임으로 김충섭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오셨습니다.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레지오 마리아를 강화하여 은총의 샘, 자비의 모후, 하늘의 문, 그리고 상지의 좌등 4개의 쁘레시디움을 만드시고, 페잇빌 공동체의 레지오 마리아 쁘레시디움 등과 꾸리아 모임들을 자주 갖게 하셨습니다.
그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한 트라이앵글 가톨릭 공동체는 2009년 5월 6일에 마침내 본당,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그리고 교구청에서 뉴 힐 사제관 근처에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매입 허가를 받아 공동체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모금 운동 및 성당 건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여년 전에 무(無)에서 자라나서 이제는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성전을 소망하는 어였한 랄리교구의 본당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말씀대로, 앞으로는 단지 지역 주민만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 미국을 방문 중인 한인들이 한인본당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미국의 문화도 배우고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두 나라 사이의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는 더 큰 공동체로 발전되어 나아가리라 기대됩니다.
2011년 5월에 서울교구 이철호 암브로시오 신부께서 주임신부로 부임하셨고, 2012년 7월에 새로이 건축된 성전으로 입주하여 교우들의 숙원이던 한인성당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교육관을 신축하여 부족한 교육공간을 늘렸습니다. 2016년 김재화 시몬 신부님께서 부임 하셨고 랄리 교구청과 또한 주일학교에 많은 애정을 보이셔서 젊은 세대와 아이들 신자 숫자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2021년 현재 현재 이동욱 도마 신부님께서 새로이 본당에 부임하셔서 열심히 사목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이 모든것은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청룡 바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