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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무게

김명화 스텔라 2018.03.29 19:31 조회 수 : 205


날씨만 우중충했다하면 눈이 내렸던 이곳에도 명주실같은 가는 봄비가 내린다.
멀리보이는 안개가 산 허리를 휘감으며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고 있다.
눈을 감고도 알 수있는 삼월의 바람.....그렇게 그렇게 봄은 또 오고있다.
 
일 주일 전만해도 눈에 갇혀 꼼짝도 못했건만 자연의 순리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나무잎에 무겁게 매 달렸던 눈은 이미 다 녹았고, 켜켜히 쌓였던 눈도 시나브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70이 훨...넘은 나이건만  이곳에서의 눈은 내 평생 보고도 남을 양이 였다면 <뭔 그런 구라를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실화임엔 틀림없다.

눈이 그렇게 사정없이 내리는 것도 처음 보았고 눈이 주는 낭만도 적당할때의 얘기지...
하마트면 그 고운  눈한테 욕 나올뻔 했지만 그냥 내 교양을 위해 참았다.
한국살때 강원도 지방에 눈사태로 고립된 마을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뉴스는 봤지만 그 고립된 상황이긴 처음이였다.
 
 
여기서 성당이 있는 Sacramento 까지는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데 여기와는 기온 차이가 거의 20도가 넘는다 

3월 첫 날 부터 이틀을 걸처 내린 눈은 60썬치가 넘었고 눈 속에 파 묻힌 차가 제 모습을 내 보이기 까진 일주일이 걸렸다. 그래서 성당 한 번 못 갔고....
그렇게 눈이 녹을 만하면 또 내려 세째주는 아예 1메타가 넘게 내렸다.
사순 시기에 뭔 날 벼락인지......
그리그리하여 두 번씩이나 성당을 빠지고 말았다. 성당쪽은 완연한 봄이데 눈때문에 못 간다면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카톡으로 눈 쌓인 집앞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구라가 아니고 실화라고 밖에.....
 
재 작년 성탄과 새해 첫 미사에 못가서 죄스러운 마음에 신부님이 주신 보속이 너무 약소해 내 스스로에게 보속을 준 것이 365일 구일 기도를 약속했었다.
혼자만의 약속이였다면 흐지부지 하다 말다 그렇게 유야무야 끝내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내 흐리멍텅한 성격을 아는지라 겁도 없이 하느님의 이름에 까지 약속을 걸었으니 ....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아침 눈만 뜨면 고양이 세수를 하고 성모님 앞에 촛불 키고 아침기도 후 그날 그날의 묵주기도를 앵무새 처럼 올렸다.
혹여 딴 생각에 정신팔려 하루라도 못 하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걸 잘 아는터라 진짜
사생결단의 마음이곤 했다.
그날 그날의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분심은 80%는 더 넘었고 간혹 이렇게 영혼 없는 기도가 무슨 소용일까....자괴감과 회의도 있었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했었다.
일년치 달력엔 청원기도, 감사기도로 도배를 해놓았고 (헷갈리지 않으려고) 그날그날의 기도가 끝나면 엑스자로 줄을 그어나갔다.
기도는 참 기도 안 차게 해놓고도 내 맘엔 < 참 잘했어요> 라는 스티커를 주고 싶었으니 이런 내 심사를 하느님께서는  뭐라 하실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10월 첫 주 타주에서 하는 조카의 결혼식관계로 딱 이틀 미룬것이 두고두고 걸리긴 했다.

무사히 365일 약속된 기도는 끝났는데,  감사기도 시작한지 3일째 되는날이  12월 31일마지막 날이였다.
참 애매했던 게 365일 끝났다고 하던 기도 단 칼에 자를 수도 없고 뭔가 받기만 하고 고맙다는 인사도 없는 그런 상식없는 사람은 될 수 없지 싶어 365일 했는데 감사기도 24일은 더 못하랴 싶으니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금년1월 24일까지 여덜 (8)번의 9일 기도는 끝낸셈이다.
그러나 양적으로 채웠는지는 몰라도 질적으론 영 낙제점일 것만 같았다.
   
엊그제 내린 비로 봄 눈 녹 듯한다던 말대로 눈은 다 녹았고 성당가는 길은 별 이상이 없을 것이다.
여기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보면 무슨 보속을 주시던 그대로 해야 할 것같다.
시건방지게 내 멋대로 하느님과 약속하고 그 무게 때문에 오히려 묵주기도의 질을 떨어뜨린 건 아닐까 반성도 해본다.

사람들과의 약속에도 책임감의 무게가 있겠지만 하느님과의 약속의 무게가 얼마나 다른 가를
이번일로 절실히 느꼈다면 그래도 하나는 건진 셈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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