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XpressEngine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 동욱 (도마)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414-9256     

WWW.SPJCC.ORG

제1독서 집회  3,17-18.20.28-29

 

화답송  

◎ 하느님, 당신은 가련한 이를 위하여 은혜로이 집을 마련하셨나이다.
○ 의인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리라. 하느님 앞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너희는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주님이시다. ◎
○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외로운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사로잡힌 이들을 행복으로 이끄시네. ◎
○ 하느님, 당신은 넉넉한 비를 뿌리시어, 메말랐던 상속의 땅을 일구셨나이다. 당신 백성이 그곳에 살고 있나이다. 하느님, 당신은 가련한 이를 위하여, 은혜로이 마련하셨나이다.◎ 

 

제2독서  히브  12,18-19.22-24ㄱ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복음  루카 14,1.7-14

 

영성체송    

주님,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 얼마나 크시옵니까!

 

 

 

생명의 말씀 

         낮추기만 하면, 그건 교만입니다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보도주간

 

오늘 복음의 주제는 진정한 겸손입니다.

우리가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처음부터 스스로를 뽐내며 윗자리에 덜컥 앉았다가

더 높은 이가 참석하여 자리를 비켜달라 하면 우리는 몹시 어색하고 무안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낮은 자리에 앉으면 알아서 남들이 나를 높은 자리로 안내해 준다 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란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며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작은 운동화나 티셔츠 하나를 사도 남이 나를 알아봐 주기를 기대하고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은근히 칭찬과 인정을 받길 바라기에, 나 자신을 낮추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겸손을 떠올리면, 단순히 자신을 낮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문하시는 낮은 자리를 택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나를

감추고 부정하라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5개 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이 “저는 언어에 소질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섯 나라 말밖에는 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을 가장했을 뿐 오히려 교만에 가깝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겸손, 나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무턱대고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습을 하느님 앞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애써 비교하며 내 자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서 나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지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이렇게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나에게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좋은 것들을 주셨는지를 깊이 느끼는 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이 내 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다 이룬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즉시 교만이 됩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 좋은 것을 주신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고 하느님 영광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낮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좋은 것은 하느님께 받은 것이기에 언제든지 하느님과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마음으로 열려 있게 됩니다. 

‘저는 똑똑합니다.’가 아니라 ‘하느님은 저에게 똑똑함을 주셨습니다.’라고 생각하고, 

‘저는 부자입니다.’라고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부유함을

주셨습니다.’라고 말하며 하느님 앞에서 낮은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짜 겸손한 사람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지 정말로 꽉 찬 수레는 방정을 떨거나 오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란, 바로 하느님 앞에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나에게 주신 좋은 것을 이 세상에 기쁘게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묵상] 

       주님은 겸손한 마음에 성령과 능력을 채워 주십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ct_372359_100665_1.JPG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창세기 11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온 세상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 외국에 있을 때 그 말씀을

읽으면서 ‘지금도 말이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하지만 외국말이 늘지 않아서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외국 성당 아이들이 또박또박 자기네 말을 하는 걸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그럼 왜 갈라지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바벨탑 이야기를 읽어 보면 사람의 교만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말이 같았으면 몰랐을 텐데, 말이 다르고 배워야 하니까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셨던 분들이 대부분 느끼셨던 거라고 하는데요. 바로 겸손함입니다. 

외국 생활의 대부분은 배우는 거였습니다. 학생의 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질문에 대답을 합니다.

때로는 선생님이 자기 손으로 이마를 치며 또 못 알아들었고 답답해 하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학생 때 하던 버릇대로 웃으며 머리를 긁죠. 그냥 학생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어딜 가나 도움이 필요하고 배움이 필요한 그런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예전의 모습이 그리워서 본당 행사 사진들을 볼 때가 있었는데요.

그때의 모습은 대부분 가르치고 일을 주관하던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때도 있었다고 추억에 잠길 때가 있었는데요. 만약에 제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많이 부딪혔을 겁니다.

교만함이 고개를 들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 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말이 다르다는 것은 ‘교만함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살아가라’는 초대인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 교만한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니, 주님께서는 겸손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자리를 만들어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겸손해지고 비워진 마음에 주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채워 주시고 또

새로운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루카 14,10)

렉시오라는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3~4명이 하는 게임인데요. 방식이 간단합니다.

9개에서 15개의 패를 받고, 먼저 다 내려놓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아무렇게나 내려놓는 것은 아니고요. 먼저 내려놓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선에 의해서

자기 차례에 내려놓을 수 있는 개수가 제한됩니다.

예를 들어 선이 1개를 내려놓으면 다음 사람도 그보다 큰 수를 한 개만 내려놓을 수 있고,

선이 5개 조합을 만들어서 내려놓으면 다음 사람도 그보다 큰 5개의 조합을

만들어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계속 선을 잡는 것인데요.

선을 계속 잡기 위해 내 패를 잘 읽어야 합니다.

한 개씩 내려놓아야 계속 선을 잡을 수 있는지, 아니면 두 개 이상 큰 수를

내려놓는 것이 유리한지 잘 계산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는 많이 내려놓고 싶은 마음에 나에게 선의 기회가

주어지면 무턱대고 다섯 개 조합만을 내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쉽고 빠르죠.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승리의 디딤돌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가진 패가 나보다 많아서 나의 승리가 당연해 보이지만, 내가 다섯 개 패를

내려놓는 순간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이 더 큰 다섯 개의 조합을 연속으로 내려놓고,

선을 잡아 자신의 페이스대로 게임을 마무리하곤 합니다. 

‘나’는 다섯 개를 내려놓고 승리에 다가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이

기다리고 있었던 계획에 도움만 주고, 패하게 되는 참담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비슷한 일을 악한 영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기려고 일을 벌여 보지만, 결국엔 그 일이 상대방의 승리를 도와줍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일이 그렇습니다.

악한 영은 형제들의 마음속에 시기심과 미움의 감정을 만들어 요셉을 없애

버리고자 하지만, 그 일이 오히려 더 큰 하느님의 계획과 승리를 드러내게 합니다.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그곳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재상이 되고, 이스라엘을 먹여 살리는 큰 일을 하게 됩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이집트의 젊은 왕자인 모세는 동포들을 구해 내기는커녕, 그들 때문에 이집트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아마도 악한 영은 잘 됐다고 좋아했겠지만, 하느님은 그 일로 모세에게 광야 생활과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견하시어, 그들을 이끌고 광야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은 광야로 달아난 모세를 데리고 더 큰 일을 이루신 겁니다. 

바오로도 감옥에 갇힐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악한 영은 바오로를 감옥에 가두면 조용해 질 줄 알았을 겁니다.

실제로 그의 입은 조용해졌죠. 하지만 그는 펜을 들고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 편지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전해지고, 지금 우리에게도 중요한 진리들을 가르쳐 줍니다.

악한 영은 자기가 승리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큰 선교를 이루는 데에 발판이 됩니다.

하느님은 걸려 넘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워 주실 수 있는 분일 뿐만 아니라,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더 앞자리에 앉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겸손함으로 주님을 믿고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앞자리로 초대되는 것이 무엇인지,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해인 - 「꽃잎 한 장처럼」 중에서 

살아갈수록 나에겐 사람들이 어여쁘게 사랑으로 걸어오네.   

아픈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걸어오는  

그들의 얼굴을 때로는 선뜻 마주할 수 없어 모르는 체 숨고 싶은 순간들이 있네 

늦은 봄날 무심히 지는 꽃잎 한 장의 무게로 꽃잎 한 장의 기도로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오랫동안 알고 지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그들의 이름을 꽃잎으로 포개어 나는 들고 가리라 천국에까지 

 

                         

 

 {교황님의 8월 기도 지향}  

일반: 중소기업들

중소기업들이 경제와 사회 위기 가운데에도 사업을 이어나가며 그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봉사하는 길을 찾도록 기도합시다. 

 

 

~~~~~~~~~~~~~~~~~~~~~~~~~~~~~~~~~~~~~~~~~~~~~~~~~~~~~~~~~~~~~~~~~~

▣ 미사와 모임안내 

주일미사 

일요일 오전10시30분 

평일미사   

수요일 오전 10시  

토요미사           

토요일 오후 5시 

주일학교, 한국학교 

여름방학 

고백성사 

매 미사시작 30분전 

꾸리아 월례모임

매월 넷째주일 미사 후     

▣ 레지오 모임 

 은총의 샘 

수요일 오전10시45분 

상지의 좌 

zoom 금요일 오후 8:30 

 순교자의 모후 

수요일 오전11시  

자비의 모후           

zoom 주일 오후 7시        

 하늘의 문 

zoom 목요일 오후 9시 

 

 

▣ 전례봉사 

 

  8/28

  연중 제22주일          

9/4

        연중 제23주일           

    제 1 독서       

    한계근 세실리아             

 김연수 안젤로

 제 2독서 

      이은주 루시아     

고문숙 마리아막달레나

   미사해설      

      김예나 레나

오세훈 라파엘

 

                   공동체 소식  

▣ 8월의 미사 시작 전 기도로  '성소를 위한 기도'를 바치겠습니다.

▣ 9월은 ‘순교자 성월’ 입니다. 미사 직전 기도로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기도" 를 드리겠습니다.   

▣ 9월10일은(토) 민족의 명절 한가위(추석)입니다.

토요일 오후 5시에는 위령미사로, 

주일 오전 10시30분 미사는 연중 주일미사로 봉헌됩니다.

연도는 두 미사 중에 다 함께 봉헌되며, 선종하신 조상, 부모, 형제, 지인을 위한 미사 지향을 받습니다.

▣ 한국(주일)학교 교사 모집

 현재 교사부족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았습니다.

본당 아이들의 신앙과 한글교육을 위해 봉사를 원하시는 분은

나부덕 율리안나 - 919-607-2581

김유미 마더데레사 - 608-233-1995 로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 유아세례 원하시거나 관련하여 궁금하신 분들은 전례부 김연수 안젤로형제님께 

문의 바랍니다. 919-801-0804

▣ 지난 7월에 판매한 버섯 수익금 $1,000 이 본당 기금으로 봉헌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9월 미사책이 나왔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께서는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각권 구입 가능하며 책값은 $7 입니다. 

▣ 새로운 코로나 변이로 다시금  세계적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미사 참례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신자분들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하시고, 성체를 영하실때는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

성당 입구에서 접수하며, 인터넷이용 봉헌은 https://spjcc.weshareonline.org

단, 미사예물은 계속 미사 전에 예물봉투를 꼭 봉하셔서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우리의 도우심은 주님 이름에 있으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네. 시편(124장 8절)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433 2022년 9월 11일 (다해) 연중 제 24주일 방정모 요한 2022.09.08 59
432 (녹) 연중 제 23 주일 2022년 9월 4일 방정모 요한 2022.08.31 64
» (녹) 연중 제22주일 2022년 8월 28일 AdelaKim Adela 2022.08.24 69
430 (녹) 연중 제21주일 2022년 8월 21일 AdelaKim Adela 2022.08.17 61
429 (백) 성모 승천 대축일 2022년 8월 14일 AdelaKim Adela 2022.08.11 83
428 (녹) 연중 제19주일 2022년 8월 7일 AdelaKim Adela 2022.08.03 68
427 (녹) 연중 제18주일 2022년 7월 31일 AdelaKim Adela 2022.07.27 57
426 (녹)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2022년 7월 24일 AdelaKim Adela 2022.07.20 48
425 (녹) 연중 제16주일 2022년 7월 17일 AdelaKim Adela 2022.07.13 61
424 (녹) 연중 제15주일 2022년 7월 10일 AdelaKim Adela 2022.07.07 70
423 (녹) 연중 제14주일 2022년 7월 3일 AdelaKim Adela 2022.06.29 57
422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2022년 6월 26일 AdelaKim Adela 2022.06.20 79
421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2년 6월 19일 AdelaKim Adela 2022.06.16 65
420 (백)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2022년 6월 12일 AdelaKim Adela 2022.06.09 79
419 (홍) 성령 강림 대축일 2022년 6월 5일 AdelaKim Adela 2022.06.01 76
418 (백) 주님 승천 대축일 2022년 5월 29일 AdelaKim Adela 2022.05.25 77
417 (백) 부활 제6주일 2022년 5월 22일 AdelaKim Adela 2022.05.18 107
416 (백) 부활 제5주일 2022년 5월 15일 AdelaKim Adela 2022.05.11 76
415 (백)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2022년 5월 8일 AdelaKim Adela 2022.05.04 76
414 (백)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2022년 5월 1일 AdelaKim Adela 2022.04.27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