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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1 Holland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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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 (919)414-9256
    이메일: hellospjcc@gmail.com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363-0408

제1독서  사도  14,21ㄴ-27

화답송

◎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제2독서  묵시 21,1-5ㄴ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복음  요한  13,31-33ㄱ.34-35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알렐루야.

 

 

생명의 말씀  

       내가 사랑한 것처럼 너도….                  

                               김한수 토마스 신부 | 종로성당 주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회의를 마치고 시설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시물을 둘러보던 와중에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안중근 토마스가 뤼순 감옥에서 썼다는 글, ‘경천(敬天)’을 만났습니다.

짧은 약지의 손도장이 찍혀 있는 그의 글, 사진으로만 보던 그 글씨를 마주 대합니다.

선물 같은 순간입니다.

그의 글씨 앞에 멈춰 한참 동안 마음의 흔들림을 겪습니다.

 

하느님 법을 따르는 가톨릭 교인의 신앙과 민족의 해방을 위한 헌신 사이에 겪었을

고뇌를 상상해 봅니다.

자기 삶을 이끌었던 ‘경천애인(敬天愛人)’의 계명이 자기 목숨을 내어 주는 헌신에까지

이르게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감내하며 택한 방식일

것이라 감히 짐작하며 감탄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7-39)

 ‘경천애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습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원천인 십계명만 보더라도 제3계명까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으로,

4계명부터는 이웃을 사랑하는 법으로 귀결됩니다.

 

그렇게 구약의 백성, 신약의 백성 모두가 하느님 법으로 간직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경천애인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전혀 새롭지 않은 계명을 새로운 계명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이 시기를 떠올리면 그 새로움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새로운 계명입니다.

당신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분명 새롭습니다.

동시에 두렵기도 합니다.

내 나름대로, 내 상황에 맞게, 내 능력껏 사랑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당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래서 새롭고도 두렵습니다.

 

수난과 죽음을 지켜보았고,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힘을 당신을 통해 실감합니다.

당신이 하느님과 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어떻게 하셨는지를 알고 있는데, 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정말 새롭지만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인물들만이 실현 가능한 계명입니다.

그래서 다시 그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그 말씀의 가능한 지점을 살펴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당신처럼 사랑할 수는 없지만, 나도 나름대로 사랑하렵니다.

나만 사랑받으려 하기보다, 나도 사랑하며 살아가렵니다.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나도 나누렵니다.

그렇게 새로운 계명을 나름 실현해 나가렵니다.

 

 

msn036.gif [말씀묵상]  

        새로운 현실, 새로운 계명

                            박용욱 미카엘 신부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틴토레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리스도’.

 

경험을 통해 귀납적으로 얻는 지식이나 법칙을 경험칙(經驗則)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순수한 논리와 당위의 세계에 살지 않기 때문에, 경험칙을 통해서 이론과

논리의 허점들을 채워 갑니다.

 

예를 들어 어느 식당에 유명한 요리학교 출신 주방장이 일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 주방장이 있는 식당이라면 ‘맛집’일 거라고 짐작하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겠지요.

하지만 막상 식당을 다녀온 사람들마다 음식 간이 안 맞고 상한 냄새가 나더라고

불평한다면, 그 또한 쉽게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대개 논리뿐만 아니라 경험칙을 고려해서 판단하지요.

주방장의 경력을 믿고 식당을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접 음식을 먹어본 이들의 경험을

믿고 다른 식당으로 가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경험한 바가 다른 까닭에, 경험칙도 모두에게 다 같지는 않습니다.

여러 번 상처받고 배신당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마땅히 믿고 의지해야 할 사람마저도

의심하고 곱게 보지 못합니다.

이해와 신뢰의 경험이 컸던 사람은 그 반대겠지요.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형성한 경험칙은 이렇게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놓고 뭇 사람들이 보인 반응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들이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사건이었습니다.

죽음을 이긴다는 것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죽음 그 자체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것이니까요.

 

경험을 고려해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제자들이 시신을 빼돌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일어나는 것보다, 그 추종자들이 음모를 꾸며 조작했을

거라는 추측이 그들의 경험칙에 더 부합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체험하고 배운 제자들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부활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먼저 제자들이 체험한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 계신 분이셨습니다.

복음서에는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예수님에 대한

기록들이 가득합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태 3,17)이었습니다.

과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분답게, 그분이 행하시는 기적으로 포도주가 넘쳐나고 병자가

치유되며, 죽은 아이가 되살아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권위가 있었고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태 8,27)라고

탄복할 만큼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5000명을 먹이시고, 타볼산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모습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분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고 묻히십니다.

제자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십자가형을 당한다는 것은 지독하게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처형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종교적 저주 아래 죽는다는 것을 뜻하고(갈라 3,13), 하느님 계약의 백성의

‘장막 밖에서’ 죽게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십자가형은 하느님을 모르는 범죄자의 죽음, 하느님의 현존으로부터

추방되어 죽는 죽음을 뜻했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걸림돌이요 어리석음일 뿐이었지요.(1코린 1,23)

스승 예수가 하느님께 지극한 사랑을 받는 분인 줄 알았는데, 철저히 버림받은

모습으로 생을 마치다니….

제자들은 좌절 속에 쓸쓸히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거나, 겁에 질려 다락방에 칩거합니다.

이런 제자들의 마음을 열고 눈을 밝혀 하느님 사랑의 참뜻을 깨닫게 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는 체험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모습으로 만나면서 제자들은 이전에 체험했던 사랑의

진면목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파스카 이전에도 제자들은 병고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다가가시는 예수님,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가시는 예수님,

아들을 죽음에 넘겨주고 울부짖는 과부에게 응답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이

고통과 슬픔의 순간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어렴풋이 알았지요.

하지만 그 사랑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이해하게 한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명하신’ 예수님의 사랑, 가장 처참한 죽음을 통해 성자를

부활하게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면서 제자들은 고통스런 환난의 시간에도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극적으로 표현되고,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생명을 부활에 부르시는 아버지의 사랑도 드러납니다.

 

부활은 고통이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순간이기는커녕,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순간이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습니다. 사랑은 대가를 얻기 위해

행하는 의무가 아니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는 장밋빛 약속도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가장 고통스런 순간에도 함께하는 것이고, 어떤 환난도 함께 이겨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고통받는 이와 함께 하면서 “눈물을 닦아 주실”(묵시 21,4)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하고 말합니다.(사도 14,22)

환난의 시간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고, 그 고통이 오히려 하느님 사랑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계기라는 점을 확신하기 때문에 제자들은 환난의 순간마저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제자들 또한 서로 고통의 시간에 함께함으로써 사랑을 증언합니다.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구약에도, 또 다른 종교에도 흔히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로 알려주시는 그 참사랑을 서로에게 보여주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통은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을 깨닫는 탁월한 자리인 것입니다.
 

 

 

 

msn022.gif  [생활속의 복음]                   

    

        주님의 사랑 방식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신앙생활이란 굳은 각오와 결심으로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 주님과 참된 일치를 이루고 구원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의 실천을 등한시합니다.

당장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무슨 큰일이 벌어지지 않으니, 귀찮고 힘든

사랑의 실천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벌을 피하려고 죄를 짓지 않는 데에만 신경을 씁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여유는

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머무르는 아주 잠시의 시간뿐이며 그 시간의 끝은 오직 주님만 아십니다.

그러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라는

간절함으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받으려고만 하는 것은 ‘이기심’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은 나의 마음과 감정을 소진하는 ‘노동’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기에 상대방을 배려해야 합니다.

 

내가 받아서 고마운 만큼 그에게도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내가 주어서 보람과

행복을 느꼈던 만큼 그도 그것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며, 내가 그를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는지 그 진심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게 사랑입니다.

내 방식이나 기준을 내세우거나 고집하지 않고 내 마음이 오롯이 그를 향하게 만드는 게 사랑입니다.

주님은 그런 이상적인 모습을 ‘서로 사랑하라’는 말로 표현하시는 것이지요.

이처럼 사랑하는 마음은 ‘상대방’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 참된 사랑이 지녀야 할

올바른 ‘방향성’이라면,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참된 사랑이 지녀야 할 올바른 ‘기준’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고….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삶 전체를

돌아보며 그분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되새기게 합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하느님이기를 포기한 사랑, 조건과 한계를 두지 않으며

차별하지 않는 완전한 사랑, 한 번 사랑하신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그 어떤

후회나 미련도 남기지 않는 온전한 사랑,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는 헌신적 사랑….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내 방식만 고집하고 강요했던 사랑, 참 많이도 따져가며 내가 하고 싶을 때만 잠깐씩

드러냈던 사랑, 손과 발을 통해 전해지지 못 하고 마음과 입속에만 맴돌며 공허하게

흩어진 사랑…. 주님처럼 사랑할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올바른 방향과 기준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면, 부족한 부분은 주님께서 채워주실 겁니다.

그 놀라운 ‘사랑의 신비’ 속에서 주님이 참으로 좋으신 분임이, 우리가 그런 분을 따르는

제자라는 것이 온 세상에 분명히 드러날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기도, 미사, 봉헌과 나눔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돼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내 안에, 이웃 형제자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사랑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또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그 사랑을 따라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봉헌과 나눔을 통해 주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가 내 안에만 고인 채 썩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 모든 이를 살리고 또 살맛 나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 사랑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는 것이 고마우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msn036.gif 교황님 말씀

 

- 일상의 시급한 일을 핑계로 이웃사랑을 소홀히 하지 맙시다

우리는 종종 주님을 잊고, 우리가 내린 위대한 선택을 등한시하고,

주님 아닌 다른 무엇으로 만족합니다.

피곤, 실망, 어쩌면 게으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함께 대화

하는 데 시간을 내지 않고, 개인적인 여가 시간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기도를 잊어 버린다든지, 일상의

시급한 일을 핑계로 이웃사랑을 소홀히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면 우리는 실망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빈 그물만 들고 있던 베드로가 느꼈던 실망감과 같습니다.

이는 여러분을 퇴보시키고 여러분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길입니다.

 

2022년 5월 1일

부활 제3주일 삼종기도 훈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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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 주중.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서 보실 수 있으십니다.

 

▣  5월은 ‘성모 성월’입니다. 

성모성월을 맞아 전 신자대상 성모님께 드리는 묵주기도가 성모상 앞에서 5월 한달간 주일 미사전 9시45분에 시작합니다. 

▣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 폐막에 따른 기도 요청

교구장님께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 반포 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2021년 3 월 19일~2022년 6월 26일) 폐막을 준비하며 가정의 달이

시작되는 5월 1일부터 폐막일(6월 26일)까지 가정 공동체의 성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다음의 ‘가정을 위한 기도’나 가톨릭 기도서의 ‘가정을 위한 기도’를 가급적 가족과 함께

혹은 개인적으로라도 바쳐주길 요청하셨습니다.

* 가정을 위한 기도

하느님 아버지 저희 가정을 사랑으로 보살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가정이 당신께서 주신 참된 기쁨과 평화를 간직하고 인내와 친절로써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게 하소서. 또한 살아계신 주님을 모신 작은 교회로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올해에도 박종효 가브리엘(강 엘리사벳자매님)댁에서 손수 재배하신 열무를 도네이션 해 주시어

성모회에서 열무김치로 담가 판매하고, 수익금 중 $2,000을 본당에 도네이션 해 주셨습니다.

박종효 가브리엘(강 엘리사벳자매님)과 수고하신 성모회 형제 자매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 2022년  5월 매일미사책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매월 각권은 $7 이며, 정기 구독료는  신청 개웙 x $7 하시면 됩니다.

신청하시는 방법은 아래 봉헌금내시듯 여러방법으로 신청하시면 되겠습니다.    

▣ 2022년도 BAA(Bishop's Annual Appeal)   

성당접수는 마쳤으므로 온라인으로 직접봉헌하시기 바랍니다.

GivetoBAA.org (저희 본당 고유번호는 614 입니다)

 * BAA Tax 공제는 저희 본당과는 무관하고 교구청에서 직접 발송됩니다.

▣  Zarama 주교님께서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해주시고, 노인이나 기저질환 환자등 케어를 필요로 하는 분들은 

가급적 마스크 착용을 권장 하십니다.

▣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

성당 입구에서 수합 재개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계속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1. 미사 참여시 직접 봉헌

    2.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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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의 5월 기도 지향}  

일반: 젊은이들의 신앙

충만한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젊은이들이 성모님의 생애에서 경청하는 법,

깊은 식별, 신앙이 싹틔운 용기, 헌신적인 봉사를 배우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당신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으니 제 가련함을 보시어 저를 구원하소서. 시편(119장 153절)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 (백) 부활 제5주일 2022년 5월 15일 AdelaKim Adela 2022.05.11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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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백)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2022년 5월 1일 AdelaKim Adela 2022.04.27 40
413 (백)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22년 4월 24일 AdelaKim Adela 2022.04.20 67
412 (백)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2022년 4월 17일 AdelaKim Adela 2022.04.13 126
411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22년 4월 10일 AdelaKim Adela 2022.04.06 129
410 (자) 사순 제5주일 2022년 4월 3일 AdelaKim Adela 2022.03.30 125
409 (자) 사순 제4주일 2022년 3월 27일 AdelaKim Adela 2022.03.23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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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자) 사순 제1주일 2022년 3월 6일 AdelaKim Adela 2022.03.01 88
405 (녹) 연중 제8주일 2022년 2월 27일 AdelaKim Adela 2022.02.22 77
404 (녹) 연중 제7주일 2022년 2월 20일 AdelaKim Adela 2022.02.16 67
403 (녹) 연중 제6주일 2022년 2월 13일 AdelaKim Adela 2022.02.09 66
402 (녹) 연중 제5주일 2022년 2월 6일 AdelaKim Adela 2022.02.02 92
401 (녹)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2022년 1월 30일 AdelaKim Adela 2022.01.25 66
400 (녹)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2022년 1월 23일 file AdelaKim Adela 2022.01.19 97
399 (녹) 연중 제2주일 2022년 1월 16일 AdelaKim Adela 2022.01.12 157
398 (백) 주님 세례 축일 2022년 1월 9일 AdelaKim Adela 2022.01.05 57
397 (백) 주님 공현 대축일 2022년 1월 2일 file AdelaKim Adela 2021.12.29 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