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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363-0408   

제1독서  사도  13,14.43-52

화답송

◎ 우리는 주님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

제2독서  묵시 7,9.14ㄴ-17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복음  요한  10,27-30

영성체송    

착한 목자, 당신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네. 당신 양 떼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생명의 말씀  

       우리 모두의 착한 목자이신 주님                    

                               양우준 레오 신부 | 성소국 차장

 

일반적으로 ‘목자’와 ‘양 떼’라고 하면, 양들이 싱싱하게 자라난 푸른 풀들을 한가로이 뜯고

있으며 이를 가만히 지켜만 보는 목자가 있는 구도, 즉 목가적 풍경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활동하셨던 이스라엘에는 비가 적게 내리는 광야에서 양 떼를 치는 목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성소 주일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긴장감 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데 마실 물도, 푸른 풀도 별로 없고 이따금 강도마저 등장하는

열악한 상황을 연상하는 것 말입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착한 목자’를 떠난다는 것은 양 떼들에게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착한 목자를 떠난다면 얼마나 큰 슬픔을 마주하게 되는가.

이 비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성소 주일을 맞이하며, 예수님처럼 양 떼를 사랑하여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착한 목자들을

교회에 많이 보내주십시오.’라는 지향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관심이 그치면 안 됩니다.

하느님의 기쁜 소식은 언제나 교회의 목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의 청중 전체, 더 나아가 ‘그리스도 신앙인’ 전체를 염두에 두고 있지요.

따라서 초점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똑같이 인간적 한계를 공유하는 성직자 등의 ‘착한 목자’가 아니라 영원한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로 언제나 우리의 눈길이 가 있어야 하겠지요.

성소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더 마음을 써야 할 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착한 목자이시다.’라는 명확한 진리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이야말로 목숨까지 내어주시며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분이라는 것,

그분께서는 우리가 약해서 비틀거릴 때 우리를 찾아와 일으켜 세워 주시며,

우리가 방황할 때 우리를 찾아 나서시며, 그 무엇도 당신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가지

않도록(요한 10,28 참조) 구원하러 오시는 분임을 굳게 믿고 살아가도록, 우리는

오늘도 그 거룩한 초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신앙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당연히 요청되는 사실이지요.

어떤 직분에 있든지 간에, 먼저 자신이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착한 양’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주님을 우리의 ‘스승’이요 ‘착한 목자’로 모시고 늘 그분으로부터

겸손하게 배우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따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소 주일인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부르심’을 깊이

성찰하고 이를 의식하며 살도록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초대는 결코 한정되어본 적 없으며, 오늘을 걷고 있는 ‘당신의

사람들 모두’에게 향하고 있음을 간직하는 하루가 되어봅시다.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요한 10,28) 아멘.

 

 

msn036.gif [말씀묵상]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피테르 브뢰헬 ‘착한 목자의 비유’ (1565년).

 

■ 하느님께서 나를 아신다

나를 아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지 모릅니다.

저는 존재감이 별로 없습니다.

제가 모임에 있어도 모르는 사람이 많고, 몇 년이 지나서도 제가 그 모임에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나를 아신다’는 말은 저에게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보통 눈에 띄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마련인데, 하느님은 드러나지 않는 저를 안다고 하십니다.

그냥 아시는 것도 아니고 값지고 소중하게 보아 주시고, 머리카락까지 세어 두실

정도로 잘 아시고, 들풀까지 입히시는 마음으로 아십니다.

그 하느님의 마음이 저에게 기쁨과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다른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는데 그 마음이 조금 더 깊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독서는 다니엘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 부서지고 깨진 마음을 받아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다니엘은 ‘주님 제가 이렇습니다’ 하며 하느님께 시선을 둡니다.

하느님은 복음에 나오는 임금과 비슷합니다. 만 탈렌트를 탕감해 주시는 모습,

그 모습과 더불어 저를 바라보시는 시선들, 곧 ‘보시니 좋았다.

네가 나의 눈에는 값지고 소중하며, 머리카락까지 세어 두시고, 들풀까지 입히시거든’

하는 말씀들이 마음 깊은 곳에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하는 기도가 충만해졌습니다.

■ 그들은 나를 따른다

하느님의 사랑은 봉헌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이들이 헌신으로 나아가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삶을 봉헌한 것처럼 말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자캐오는 주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자신의 재산을 절반이나 내놓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겠다고 약속합니다.

또 죄의 용서를 체험한 막달라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주님께 부어 드립니다.

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 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한 베드로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선포합니다.

저에게 그 봉헌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큰 사랑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끝까지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모습을 생각했을 때 마음에서 처음 올라온 반응은 ‘나는 할 수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끝까지 순종하는 것도 힘들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베드로와 「나를 이끄시는 분」을 쓰신 월터 취제크 신부님이 떠오르면서,

또 내 힘으로 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그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청하고 기도했습니다.

■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신학과 3학년으로 복학하기 전에 고민이 있었습니다.

‘말도 잘 못하고 능력도 없고, 사람들과 잘 지내지도 못하는데, 사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리더십 있는 신부님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의기소침하고 무력감을 느끼며, 신학교에 복학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새 신부님 첫 미사에 갔는데, 앞뒤 말씀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신부님의 강론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못 나고 능력이 없고 재주가 없어도 모두 신학교로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그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신부님의 그 말씀을 듣고 개인적으로 힘을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바란 것은 자신들의 능력을

계산하고 재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라고 대답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모습일 겁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변화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신약에 보면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남자가 있었던 사마리아 여인을

선교사로 삼으셨고, 자신의 몸에 값비싼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또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지만,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마귀가 들었던 마리아 막달레나에게는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는 명예를 주십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모습은 이것입니다.

‘네가 어떠한 모습이든지 간에 너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괜찮다. 다시 한번 힘을 내 일어서 보거라.’

 

 

msn022.gif  [생활속의 복음]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간절함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양은 참 약한 동물입니다.

크고 단단한 뿔도, 날카로운 이빨도, 억센 발톱도 없기에 자신을 방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나쁘기에 멀리 있는 적을 미리 알아보고 피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다리가 가늘고 힘도 약해서 맹수를 만나도 잽싸게 도망치는 게 불가능합니다.

뒤뚱거리며 뛰다가 넘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요. 심지어 둔하기까지 해서 한 번

넘어지면 자기 힘으로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약하고 부족한 녀석들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싶지만, 양들에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귀가 밝아서 소리를 잘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그 능력으로 자신을 돌봐주는 목자의 목소리를 잘 알아듣고 따라갑니다.

자신이 약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목자와 함께 있으면 배부르게 풀을 뜯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음을 알기에, 죽기 살기로 목자의 음성을 따라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사이를 ‘목자와 양’의 관계에 빗대어 설명하시는 것은 우리도 주님의

은총과 보살핌이 없으면 제대로 살 수 없는 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욕심에 눈이 멀어 엉뚱한 곳을 헤매다

멸망에 이르지 않기를, 하느님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듣고 그분의 뜻을 잘 헤아리며

따름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음’들로 가득합니다.

돈이, 명예가, 권력이 제일이라고 외치는 소리,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게으르게 만드는

소리,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닦달하는 소리, 나를 인정해달라 외치는

욕망의 소리,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외치는 분노의 소리….

온갖 소음들로 뒤범벅되어 하느님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아듣기가 너무나 어려운 겁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분명히 알아듣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를 온전히 알게 하며 신뢰하고 따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아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은 ‘거리’를 두고 서서 미루어 짐작하여 아는 간접적인 ‘앎’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아는 것’은 그와 내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심동체의 관계를 맺고서 ‘이심전심’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놀라운 사랑으로 나를 아시고, 부드럽고 따스한 음성으로 나를 부르십니다.

나도 머리가 아닌 사랑으로 당신을 알아가도록, 당신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며 제 발로

당신을 따르도록, 그렇게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나를 초대하시는 겁니다.

그 거룩한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찾는 간절함과 절박함을 지녀야 합니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식으로 그분의 사랑을 가벼이 여기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각오로 그분께 매달리고, ‘하느님의 사랑이 없으면

나는 죽는다’는 결단으로 그분의 사랑을 갈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양이 목자를 따르듯 죽기 살기로 하느님을 따르다 보면, 내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차오르고, 내 영혼이 그분 사랑 안에서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뉘어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라…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그 지팡이에 시름은 가시어서 든든하외다.”



 

 

 

 

msn036.gif 교황님 말씀

 

- 하느님 자비는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열게 합니다

삶이 신앙을 속이는 것처럼 보이는 힘겨운 순간이 있습니다.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하지만 토마스처럼 우리가 주님의 마음, 그분의 자비를 다시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때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압도적인 증거를 앞세우시거나 의기양양하게

다가오시지 않습니다.

거창한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대신 따뜻한 자비의 표징을 제시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상처를 내보이십니다.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2022년 4월 24일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 강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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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 주중.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서 보실 수 있으십니다.

 

▣  5월은 ‘성모 성월’입니다. 

성모성월을 맞아 전 신자대상 성모님께 드리는 묵주기도가 성모상 앞에서 5월 한달간 주일 미사전 9시45분에 시작합니다. 

▣ 오늘(5월 8일)은 ‘성소 주일’입니다

▣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 폐막에 따른 기도 요청

교구장님께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 반포 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2021년 3 월 19일~2022년 6월 26일) 폐막을 준비하며 가정의 달이

시작되는 5월 1일부터 폐막일(6월 26일)까지 가정 공동체의 성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다음의 ‘가정을 위한 기도’나 가톨릭 기도서의 ‘가정을 위한 기도’를 가급적 가족과 함께

혹은 개인적으로라도 바쳐주길 요청하셨습니다.

* 가정을 위한 기도

하느님 아버지 저희 가정을 사랑으로 보살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가정이 당신께서 주신 참된 기쁨과 평화를 간직하고 인내와 친절로써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게 하소서. 또한 살아계신 주님을 모신 작은 교회로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2022년  5월 매일미사책이 도착했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매월 각권은 $7 이며, 정기 구독료는  신청 개웙 x $7 하시면 됩니다.

신청하시는 방법은 아래 봉헌금내시듯 여러방법으로 신청하시면 되겠습니다.    

▣ 2022년도 BAA(Bishop's Annual Appeal)   

1. 교구청에서 우편으로 BAA를 받으신 분은 용지에 기재하셔서 직접 우편발송 하셔고 되고

2. 성당에 나오시는 분은 BAA 봉투를 봉헌함에 봉헌 (빈 봉투 성당에 비치)

3. 체크로 보내시고자 하시는 분은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우편발송

4. 또는 온라인으로 직접봉헌 - GivetoBAA.org (저희 본당 고유번호는 614 입니다)

 * BAA Tax 공제는 저희 본당과는 무관하고 교구청에서 직접 발송됩니다.

▣  Zarama 주교님께서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해주시고, 노인이나 기저질환 환자등 케어를 필요로 하는 분들은 

가급적 마스크 착용을 권장 하십니다.

▣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

성당 입구에서 수합 재개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계속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1. 미사 참여시 직접 봉헌

    2.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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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의 5월 기도 지향}  

일반: 젊은이들의 신앙

충만한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젊은이들이 성모님의 생애에서 경청하는 법,

깊은 식별, 신앙이 싹틔운 용기, 헌신적인 봉사를 배우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tu5LhVUwIvU - 2022년 5월 8일 부활 제4주일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PKBWG_QQPKQ - National Shrine May 8, 2022​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4w4nmgLD3B4 - May 8, 2022​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5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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