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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1 Holland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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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 (919)414-9256
    이메일: hellospjcc@gmail.com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363-0408      Fax: (919) 363-0409

입당송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아이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 외치는 소리, * “높은 데서 호산나! 당신의 크신 자비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높은 데서 호산나! 당신의 크신 자비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제1독서  이사  50,4-7

화답송

◎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 보는 사람마다 저를 비웃어 대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내젓나이다. “주님께 의탁했으니 구하시겠지. 그분 마음에 드니 구해 내시겠지.” ◎
○ 개들이 저를 에워싸고 악당의 무리가 둘러싸, 제 손발을 묶었나이다. 제 뼈는 마디마디 셀 수 있게 되었나이다. ◎
○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눠 가지고, 제 속옷 놓고는 제비를 뽑나이다. 주님, 멀리 떠나 계시지 마소서. 저의 힘이신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
○ 저는 당신 이름을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야곱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께 영광 드려라.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을 두려워하여라. ◎

제2독서  필리  2,6-11

복음 환호송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네. 하느님은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네.◎ 

복음  루카 22,14―23,56

영성체송    

아버지, 이 잔을 비켜 갈 수 없어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생명의 말씀  

      ‘바보’ 같은 당신 모습                  

                     김상우 바오로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동유럽 국가 간 전쟁, 정치인들의 ‘내로남불’, 이성을 향한 혐오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듣게 됩니다.

이 사회현상은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긴장과 갈등, 역지사지의 부재, 권리 주장과

의무 준수 사이의 불균형에 젖어있음을 말해줍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나의 아픔만 바라보는 것은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충분히 생각하거나 배려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지도 성찰해 봅니다.

그러면 이 주제와 관련하여 오늘의 성경 말씀은 어떤 길을 안내합니까?
 

제1독서(이사 50,4-7)는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이사 50,6)라며 ‘고통받는 주님의 종’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의 모습은 무기력하고 답답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바보’ 같은 모습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에 관한 예언입니다.
 

제2독서(필리 2,6-11)에 따르면,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7-8)라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무한 경쟁 시대에 다른 이를 밟고 올라서도록 강요하는 암묵적인 분위기 속에서

주님의 이런 모습은 그저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성경 구절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신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에 관한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신앙 고백입니다.
 

한편 그리스도의 수난기(루카 22,14-23,56) 장면은 오늘 미사 초반에 들었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루카 19,28-40)과 대조적입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찬미하며 당장이라도 왕으로 모실 기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을 비난하며 모른 체할 것입니다.

급기야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바보’처럼 외롭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예루살렘 입성 때 주님을 향해 환호했던 군중과 닮아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자신의 이득과 직결될 때는 웃는 얼굴을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상대방을

모른 체하거나 비난하며 ‘마녀사냥’까지 서슴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예루살렘 군중과 닮아있지는 않습니까?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 고통과 수난을 겸손과 순종으로

받아들이신 예수님께서, 2022년에도 우리의 죄–즉, 이기심, 공감 능력 부족, 무관심의

죄-를 대신하여 ‘바보’ 같은 모습으로 온몸을 짓누르는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십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고통과 수난을 기꺼이 받아들이시는 ‘바보’ 같은 모습의 주님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고 있습니까?

 

 

 

 

msn035.gif  [생활속의 복음] 

           십자가를 바라보는 상반된 두 모습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말입니다.

‘신’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들던 절대적 가치들이 그 본질적인 의미를

잃어버린 현실을 냉철하게 비판하는 말이지요.

이 말이, 사실은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끊임없이 외치고 있으며, 매해 사순 시기가

되면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신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인간 예수님의 죽음은 곧 하느님의 죽음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기념하고, 그 죽음이 우리 삶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묵상하며,

그 의미를 헛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음가짐을 되새기는 겁니다.

오늘 루카복음의 수난기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께서 잔혹한 고문을 받으시는

모습이나 치욕을 당하시는 순간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간략하게 압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이 슬프고 불행한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이뤄지는 과정이자 필수조건임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의도를 바오로 사도의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도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며,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무력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들에게나 행해지던 십자가형으로. 유다인들은 이

사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고대하던 메시아를 자기 손으로 죽인 그들의 모습을, 그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무력하게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마는 예수님의 모습을 ‘어리석다’며 비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죄와 죽음마저 이기는 놀라운

사랑의 힘을 알아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부족하고 약한 인간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분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머리로 이해하긴 쉬워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긴 어렵습니다.

사랑에도 증거를 요구하는 우리의 완고함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의 상반된 모습에서 그분의 사랑을 대하는 우리의 이중성이 드러납니다.

한 죄수는 당신이 메시아라면 나를 구원해보라고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이 고통과 시련에서 벗어나게 해보라고 주님의 사랑을

시험하는 우리 모습입니다. 다른 죄수는 자기 잘못을 고백하며 예수님께 자신을 의탁합니다.

 

스스로 죄 많은 사람임을 깨닫고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갈구하는 우리 모습입니다.

전자의 모습을 지양하고 후자의 모습을 지향하려면 마음속에 올바른 구원관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내가 원하는 무엇을 이루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에 증거를 요구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주님께 나를 의탁하고 그분 사랑을 온전히 누릴 때,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를 마주하면 우리의 신앙이 흔들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의로우신 분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모습이 불의와 폭력이 득세하는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에서 우러난 온전한 자유로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입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기꺼이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그분께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들어 높여 주실 것입니다.

 

         

msn036.gif [말씀묵상]  

   주님의 은총에 온전히 기대어 살고 있습니까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예수님과 함께 걷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탄 적이 없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그 모습은 왕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뤄짐을 보게 합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깔고 환호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환호하는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거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제자들의 생각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배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왕이 되고자 하셨고, 세상의 임금이

아니라 모든 것의 왕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걷고자 하십니다.

그 모습이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이사 55,8)

이 말씀대로 내 생각과 다른 그분의 생각,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는 다른 그분의 길을 저는 살면서 자주 만납니다.

예전에 섬으로 발령 받았을 때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걱정을 했었습니다.

도시에서 할 일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섬에 살아 보니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았습니다.

신자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신자 한 분 한 분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도 배웠고,

환대하고 경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웠습니다.

또 농사도 지어 보고, 바다에도 나가서 여러 가지 일들을 체험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참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3년쯤 됐을 때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마냥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지만,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주님이 보여 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필립보 네리 성인의 영화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필립보 네리 성인은 로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가 로마에 갔던 이유는 예수회에 지원해서 인도로 선교를 가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원 제한이 있어서 대기하고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로마 근교의 버려지고 방치된 아이들을 봅니다.

그들을 내버려 둘 수 없어 돌보기 시작했고, 그 일이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성인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지만,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 지내며,

다른 길을 받아들이고 그 길 안에서 보람을 찾습니다.

내 생각과는 다른 하느님의 생각 앞에서, 내 고집과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분과 함께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토 디 본도네 ‘예수살렘 입성’ (1304~1306년).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걷기 위해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 전에 “주님과 함께라면

죽을 준비도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잡히시고 끌려가시게 됐을 때, 베드로와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끝까지 함께 걷지 못했던 걸까요?

아마도 다음의 두 가지가 부족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먼저 ‘사랑’이 부족해서입니다.

부족하다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죠.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과 함께 전도 여행을 다녔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더 크고 충만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길은 가장 큰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기도’가 부족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괴로워하시며 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에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는 피곤하여

잠이 들어 버리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일어나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였던 예수님은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씀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지만, 기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립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부족함이 우리의 부족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성령님의 도움을 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랑과 기도가 부족했지만 주님을 부르고, 또 그분의 은총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풍랑을 보고 두려워 물에 빠졌을 때에 주님께 구해 달라고 소리칩니다. 또

예수님을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세 번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은총에 기대어 으뜸 제자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거듭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 의지로 이룰 수 있다는 교만함에서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겸손함으로

정화됐으리라 생각합니다.

러시아에 붙잡혔던 예수회의 월터 J. 취제크 신부님도 취조 과정에서 자기 의지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다가 큰 좌절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내 의지로 할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내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기대고

의지하게 됐을 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죽음을 대하고 취조관들을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취조관과 대결하는 나가 아니라, 하느님과 대면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자 했는지, 그분의 은총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내 의지가 그동안 많은 일을 이루게 해 주었지만, 그분의 길을 끝까지 걷기 위해서는

내 힘과 의지가 아니라 주님께 온전히 맡기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따라 나서는 그 길에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그분께 맡기는 마음으로’

정화하고자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마음이어야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을 겁니다.

 

 

 

msn008.gif  [음악]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비통함

                      ~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임주빈 모니카 | KBS프로듀서

 

인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한 주일 안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급기야 죽임 당하고, 찬란히 부활하십니다.
가톨릭 신앙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만큼 큰 의미를 가지는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는 순간, 예수님 못지않은 고통과 슬픔을 겪은 또 한 사람의 존재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아들의 예견된 죽음,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묵묵히 바라봐야만 했던 인간

어머니로서 성모님입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어머니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그 고통과 슬픔을 노래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dolorosa – 슬픔에 잠긴 어머니, 서 계시네)>라는 곡입니다. 

이 음악은 주로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에 연주되지만, 내용이

이렇다 보니 당연하게 성주간, 성금요일에도 연주됩니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13세기 시인이자 프란치스코회 수사 야코포네 다 토디

(Jacopone da Todi, 1230~1306, 이탈리아)가 쓴 찬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아드님이 매달리신 십자가 아래에서 비통하게 울고 계신 성모님, 수난 칼에 깊이

찔린 성모 성심, 우리 죄를 위하여 모욕과 채찍을 감수하고 희생하는 아드님을 보며

가슴을 에는 슬픔과 고통을 감내하고 계신 성모님. 이를 보고 누가 통곡하지 않으리오.

그 고통과 슬픔을 저희에게도 나눠 주소서. 주님의 상처를 제 마음속 깊이 새겨주소서.

함께 울게 해주소서.

성모님의 전구로 심판 날에 지옥 형벌에서 지켜주시고, 예수님 십자가의 은총으로 보호해 주소서.

육신은 죽을지라도 영혼은 천국의 영광을 얻게 하소서.


이 라틴어 찬미가에 조스캥 데프레, 비발디, 하이든, 슈베르트, 로시니, 베르디,

드보르자크, 풀랑크 등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망라한 수많은

작곡가가 곡을 붙였습니다.

그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은 단연 18세기 작곡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 이탈리아)의 <스타바트 마테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스물여섯 살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나폴리의 전도유망했던 오페라

작곡가 페르골레시가 생의 마지막 해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소프라노와 콘트랄토(여성의 가장 낮은 음역)가 번갈아 독창 또는 이중창으로 노래하는 이

곡은 모두 열두 개 악장(곡)으로, 약 40분~45분가량 연주되며, 연주자 구성에 따라 이중창

일부를 소규모의 여성 합창이 담당하기도 합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명확하면서도 감동적인 선율로 표현한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들으면서 묵상하노라면, 성모님에 이어 우리 시대 비통에 빠진 어머니들도 함께 떠오릅니다.

세상의 갖가지 불의에 맞서다 죽어간 자녀, 누군가의 나태와 탐욕, 전쟁으로 희생된 자녀를 둔 어머니들입니다.

그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성모님의 전구로 그 영혼이 위로받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0224423521.jpg 

 

https://youtu.be/mbvhJ1FhYe0

Pergolesi: Stabat Mater by Julia Hamari, Magda Kalmár

 

 

msn036.gif 교황님 말씀 - 부모들은 ‘기쁘게’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부모들은 하느님께서 느끼시는 바를 매우 가깝게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소설에서 한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아버지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하느님을 이해했다네”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밀라노 2004년, 112쪽).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마음을 열고 두 가지를 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 두 가지는 명령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잔치를 벌이고) 기뻐해야 한다”(32절 참조).

 

우리 마음에도 아버지의 두 가지 요구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곧, ‘즐기는 것(잔치를 벌이는 것)’과 ‘기뻐하는 것’입니다.

 

2022년 3월 27일

사순 제4주일 삼종기도 훈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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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 주중.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서 보실 수 있으십니다.

 

성삼일과 부활 미사 안내 

주님 만찬 성목요일 4월 14일

오후 8시 미사

현양제대(구: 무덤제대) - 미사후 하상홀

             신부님 진행으로 미사 참석자분들과 함께

주님 수난 성금요일 

   (금육과 단식)

4월 15일

오후 3시와 오후 7시 15분  '십자가의 길'

오후 8시 주님 수난예식

파스카 성야 4월 16일 오후 8시 미사, 미사중 어린이 첫영성체 
주님 부활 대축일  4월 17일

오전 9시 15분 어린이 미사 (미사후 에그헌트)

오전 10시 30분 대미사

하느님의 자비 주일 4월 24일   오전 10시 30분

 

▣ 부활 판공성사가 수요일과 토요일은 미사 전, 주일은 미사 후에 있습니다.

▣ '십자가의 길'

4월10일 - 타데오 구역 (미사 전 오전 9시 45분)

4월15일 ( 성 금요일) - 오후 3시와 성 금요일 예식시작 전 오후 7시15분 두 차례있겠습니다.

어린이 첫 영성체 - 파스카 성야미사에 있겠습니다.

      김가율 스텔라, 

      김시영 율리아, 

      류예린 안젤라, 

      방서현 빅토리아​, 

      이유진 유지니아

첫 영성체반을 지도 해 주시는 김인정 마들렌 선생님과 첫영성체를 준비하고있는 어린이들과 부모님을 위해 기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제대 부활꽃 봉헌 받습니다.

▣  파스카 성야미사와 주님 부활 대축일미사에 부활 달걀을 판매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주일학교지원 기금모금으로  2차헌금이 있겠습니다.

 * 파스카 성야 미사때

 * 주님 부활 대축일미사 오전 9시15분과 10시30분 매 미사때

▣ 교구청에서 2차헌금 요청이 아래와 같이 있습니다. 

  • 4월15일 (성 금요일) - 성지(Holyland)를 위하여
  • 4월24일 (하느님의 자비주일) - 가톨릭 가정선교 관심을 위해

한국학교와 주일학교 알림

4월 9일(토) - 봄 방학

4월16일(토) - 주님 부활 대축일 성야 : 수업 없습니다

5월 7일(토) - 종강 수업일

▣ 성모회에서 빈 김치병을 수집합니다. 큰병, 작은병 뚜껑이 없어도 괞찮으시다고 합니다.  

▣ 2022년  4월 매일미사책이 도착했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매월 각권은 $7 이며, 각 권 구입시 4월미사책은 $10 입니다.

정기 구독료는  신청 개웙 x $7 하시면 됩니다.

신청하시는 방법은 아래 봉헌금내시듯 여러방법으로 신청하시면 되겠습니다.    

▣ 2022년도 BAA(Bishop's Annual Appeal)   

1. 교구청에서 우편으로 BAA를 받으신 분은 용지에 기재하셔서 직접 우편발송 하셔고 되고

2. 성당에 나오시는 분은 BAA 봉투를 봉헌함에 봉헌 (빈 봉투 성당에 비치)

3. 체크로 보내시고자 하시는 분은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우편발송

4. 또는 온라인으로 직접봉헌 - GivetoBAA.org (저희 본당 고유번호는 614 입니다)

 * BAA Tax 공제는 저희 본당과는 무관하고 교구청에서 직접 발송됩니다.

▣  Zarama 주교님께서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해주시고, 노인이나 기저질환 환자등 케어를 필요로 하는 분들은 

가급적 마스크 착용을 권장 하십니다.

▣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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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의 4월 기도 지향}  

일반: 보건 의료 종사자들

특히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아픈 이들과 노인들에게 봉사하는 보건 의료 

종사자들이 정부와 지역 공동체의 적절한 지원을 받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I8W1mg1fUJQ - 4.10. 2022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u6F8o-1SynM​ - 4.10. 2022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viw02Od5T_s​ - 4.10. 2022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 다니(3장 42절)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423 (녹) 연중 제14주일 2022년 7월 3일 AdelaKim Adela 2022.06.29 34
422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2022년 6월 26일 AdelaKim Adela 2022.06.20 57
421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2년 6월 19일 AdelaKim Adela 2022.06.16 43
420 (백)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2022년 6월 12일 AdelaKim Adela 2022.06.09 59
419 (홍) 성령 강림 대축일 2022년 6월 5일 AdelaKim Adela 2022.06.01 60
418 (백) 주님 승천 대축일 2022년 5월 29일 AdelaKim Adela 2022.05.25 68
417 (백) 부활 제6주일 2022년 5월 22일 AdelaKim Adela 2022.05.18 59
416 (백) 부활 제5주일 2022년 5월 15일 AdelaKim Adela 2022.05.11 62
415 (백)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2022년 5월 8일 AdelaKim Adela 2022.05.04 58
414 (백)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2022년 5월 1일 AdelaKim Adela 2022.04.27 42
413 (백)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22년 4월 24일 AdelaKim Adela 2022.04.20 70
412 (백)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2022년 4월 17일 AdelaKim Adela 2022.04.13 129
»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22년 4월 10일 AdelaKim Adela 2022.04.06 131
410 (자) 사순 제5주일 2022년 4월 3일 AdelaKim Adela 2022.03.30 127
409 (자) 사순 제4주일 2022년 3월 27일 AdelaKim Adela 2022.03.23 83
408 (자) 사순 제3주일 2022년 3월 20일 AdelaKim Adela 2022.03.15 80
407 (자) 사순 제2주일 2022년 3월 13일 AdelaKim Adela 2022.03.09 82
406 (자) 사순 제1주일 2022년 3월 6일 AdelaKim Adela 2022.03.01 89
405 (녹) 연중 제8주일 2022년 2월 27일 AdelaKim Adela 2022.02.22 82
404 (녹) 연중 제7주일 2022년 2월 20일 AdelaKim Adela 2022.02.16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