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성당소식

   주일미사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토요일 오후 5시

   평일미사

    수요일 오전 10시

    목요일 저녁 미사는
    코로나로인해 당분간 없습니다.

온라인 봉헌

온라인 봉헌[클릭]

   성당문의

성당문의 안내[클릭]

   신자등록 및 성사안내

신자등록 및 성사안내[클릭]

   성당주소

    3031 Holland Road,
    Apex, NC 27502
    전화: (919)414-9256
    이메일: hellospjcc@gmail.com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363-0408      Fax: (919) 363-0409

입당송

제 발을 그물에서 빼내 주시리니, 제 눈은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나이다.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외롭고 가련한 몸이옵니다.

제1독서  탈출 3,1-8ㄱㄷ.13-15

화답송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 주님은 정의를 펼치시고, 억눌린 이 모두에게 공정을 베푸시네. 당신의 길을 모세에게, 당신의 업적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네. ◎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

제2독서  1코린 10,1-6.10-12

복음 환호송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복음  루카 13,1-9

영성체송    

주님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짓고, 제비도 둥지를 틀어 거기에 새끼를 치나이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생명의 말씀  

         호의호식합니다, 덕분에                            

                            김한수 토마스 신부 | 종로성당 주임

 

한국 영화 <기생충>이 각종 영화제에서 호명됩니다. 우와….

유엔 회의장이 BTS의 공연 무대가 됩니다. 우와…. 

어느 순간 영화, 음악, 음식 등 K-컬처가 지구인들의 호평을 받습니다. 우와….

문화적 생산과 성장에는 한눈을 팔지 않고 평생을 반듯하게 문화 소비자로

살아온 입장이지만 괜한 자부심이 피어오릅니다.

그들의 남다른 예술적 감각이 자신의 민족적 성향과 언어적 동질성에도 녹아

있는 것처럼 우쭐합니다.

덕분에 어깨에 힘들어 갑니다.
 

2146. 이천백사십육 명. 작년 한 해 동안 일터에서 산업 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 수의 추정치라 합니다.

생계를 위해 일하다 죽는 이들이 그렇게나 많습니다.

지인을 통해 부음을 전해 듣기도 하지만, 주변에 일하다 다치고 죽는 이들을 직접

마주 대할 일이 흔치 않기에 그러한 죽음은 비현실적인 숫자로만 다가옵니다.

새벽 시간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에(덕분에) 심란해집니다.
 

기생충을 다시 호출합니다.

영화 기생충이 아니라 1년에 한 번 회충약으로 상대해야 하는 그 존재의 삶을 불러냅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봅니다.

자기반성의 이성적 능력을 갖춘 기생충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숙주를 향한 무한 감사와 애정이 솟아납니다. 

나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기생, 寄生).

숙주의 노고 덕분에 불로소득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만수무강하세요.

당신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나도 자기반성을 해 봅니다.

맑은 정신으로 이 쾌적한 생활을 떠올려 봅니다.

당연히 무한 감사와 애정이 솟아납니다.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寄生).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 시대에도 방역과 의료에 애쓰는 이들 덕분에 건강히 지냅니다.

물건이든 음식이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속 배달해 주시는 분들의 수고 덕분에 여전히

모자람 없이 살아갑니다.

다른 이들의 수고와 온갖 좋은 것이 가득한 세상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의 숙명을

그렇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아갑니다.

여러분 덕분에 살아가지요.

여러분도 여러분 덕분에 살아가지요? 

누군가의 노고와 희생에 기대어 우리는 살아갑니다(寄生). 

우리들 서로는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갑니다(공생, 共生).

우리 모두 덕분에 살아갑니다.

혼자 잘난 척 살아갈 수 있습니다만 혼자서는 못 삽니다.

잘난 척 혼자 살아가기보다는 덕분이라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덕분이라는 마음이 서로에게 확장되는 인식의 변화를 살고자 합니다.

그러한 변화를 모색하는 때가 사순 시기입니다. 생각의 변화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권고하시는 회개입니다.

생각의 틀, 일상의 태도,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루카 13,3)이라는 예수님 권고에 멈칫하게

되는 사순 제3주일입니다.

다시 새롭게 기도, 자선, 단식을 통한 회개의 여정, 변화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msn035.gif  [성경 속 특별한 인물] 

             거짓말도 당당한 사기꾼, 야곱

             

                              허영엽 마티아 신부 |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신부님, 우리나라에서 어떤 범죄 사건이 가장 많은지 아세요?”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한 변호사가 저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혹시 폭행? 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범죄는 사기예요.”
사기가 나쁜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믿음을 기만하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망 때문에 소중한 사람과 맺은 인연을 잃기 십상입니다.


야곱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나 세속적인 삶 모든 것에서 열정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쌍둥이 형제 에사오는 야곱과 태어날 때부터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신체적 특징은 물론 내면적으로도 에사오가 외적인 열정이 있는 외향적인 인물

이었던 반면, 야곱은 조용하고 신중하게 지내는 내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성격도 너무 달랐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 이사악은 사냥을 잘하는 에사오를, 어머니 레베카는 조용하고

신중한 야곱을 더 마음에 두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모의 편애는 형제가 성장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의식을 과열시키고,

자녀들이 예상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전혀 인지하지 못해도 형제자매들을 서로 비교하거나 편애하는 말과 행동을

함으로써 자녀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부정적인 상처를 안겨주고 평생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한편, 에사오가 사냥에서 돌아와 허기가 졌을 때 야곱이 끓이고 있는 붉은 죽을

보고 조금만 달라고 사정합니다.

야곱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야곱은 죽을 주는 대가로 장자권을 자신에게 팔라고 합니다.

상대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이용하는 야곱의 기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도 야곱은 자신이 에사오인 것처럼 위장하고 하느님의 이름을 파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은 끝에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을 탈취합니다.(창세 27,19-20)


야곱은 자신을 해치려는 에사오를 피해 외삼촌 라반이 있는 곳으로 도망칩니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에 비해 한수위였습니다.

라반은 야곱의 마음을 간파해서 자신의 두 딸, 라헬과 레아와 맺을 결혼을 미끼로

아주 오랫동안 그를 자신의 곁에 붙잡아 놓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라반에게 당하는 입장으로 바뀌자 억압된 분노가 마음에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식솔과 재산을 챙겨 고향으로 몰래 돌아갈 때 라반은 뒤쫓아가 야곱을 붙잡습니다.

그때 야곱은 억눌려있던 감정들을 쏟아냅니다.


목표를 이루려는 욕심이 지나치면 인간은 거짓과 기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빼앗을 때 두려움은 가졌지만, 죄책감은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이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외삼촌 라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야곱은 그간 자신의 행동도 모두

합리화하고 자신이 정당하다는 논리로 무장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기에 거짓말을 할 때도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거짓말이 나쁜 것은 어느새 나쁜 습관이 되어 버리고 다른 사람의 피해를 정당화시켜

공감도 못한다는 것입니다.(창세 25,19-33,20 참조)

 

msn036.gif [말씀묵상]  

    있을 수 없는 일 안에 계시는 하느님

            박용욱 미카엘 신부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제정 러시아 시절, 가난한 구둣방집 아들 이오시프 주가시빌리는 독실한 정교회

신자였던 어머니의 바람대로 신학교에 들어가서 엘리트 교육을 받습니다.

남달리 영특했던 주가시빌리는 공산주의 이론을 접하면서 신앙으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혈기 넘치는 신학생 눈에는 불의한 세상을 단번에 갈아엎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영 못 미더웠나 봅니다.

결국 신학교를 그만두고 혁명의 길에 들어선 그는 폭력적인 독재를 통해 자기

이념에 어긋나는 이들을 사정없이 숙청합니다.

정치깡패들을 모아 전투적 무신론자연맹을 만들고 종교 말살을 시도했던 이 독재자는

자기 이름도 스탈린(강철인간)으로 바꿉니다.

무엇이 촉망받던 신학생을 무신론자요 피의 학살자로 변하게 했는지 추측이 분분합니다만,

스탈린이 자기 생각과 다른 하느님의 모습에 실망한 나머지 신앙의 길을 떠나고

말았다는 점에는 대개가 동의합니다.

신앙의 길에는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듯 느껴지는 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불확실하고 불의한 세상에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실 하느님을 바랐건만, 정작

그분은 답을 안 주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입니다.

세상이 내 이상과 달리 흘러가고,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 없다 싶을 정도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드는 때입니다.

그렇게 내 상식을 배반하는 사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일을 겪으면서

“하느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며

절규하지만, 그 절규는 종종 차가운 침묵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자기가 가졌던 하느님에 대한 생각들과 배치되는 현실 앞에서

신앙을 등집니다.

아니, 신앙을 등진다기보다 자기가 신앙이라고 생각했던 그 관념을 버립니다.

하지만 신앙은 기존에 가졌던 생각이나 세계관을 확인하고 강화시켜주는 심리적 기제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내 좁은 세계를 벗어나 그분께 자기를 의탁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신앙의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성녀 카타리나 수도원 소장, 비잔틴 모자이크).

 

첫째 독서는 모세가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모세는 기구한 인생역정을 겪고 여든 살이 되어서야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레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집트 왕가에서 성장한 다음, 유목민 신세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것이었습니다.

왕실의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학대받는 동족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자가 된 모세였습니다.

세상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자신의 정당함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 세상은 이때까지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떠돌이 신세가 된 모세를 불타는 떨기나무 한가운데서 부르십니다.(탈출 3,4)

연약한 관목에 불이 붙었는데 타서 없어져 버리지 않는, 상식과 경험을 거스르는 광경이지요.

하느님은 그 한가운데서 모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구처럼, 모세도 의미 없는 삶에서 “고유한 빛깔과 향기”에 걸맞은 삶으로 옮겨 가게

됨을 암시합니다.

이제 모세는 이리저리 떠돌던 이름 없는 양치기에서 이스라엘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받은 이로 바뀝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여쭈었을 때, 하느님은 “나는 있는 나다”라고

대답하시고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며

그 이름이 영원히 불리고 기려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까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겪은 이 놀라운 체험을 통해서 참 신앙인으로 변모합니다.

이전까지 모세에게 세상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가득 찬 불합리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있는 자’ 하느님,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이제 세상은

하느님의 신비가 깃든 곳, 하느님의 신비에 의해 지탱되고 방향 지워진 현실이 됩니다.

모세는 이 신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지요.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라고 낙담하지 말고, 이 말도 안 되는 사건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현실을 체험할 때 신앙에 눈 뜨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도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합니다.(루카 13,1)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려던 의로운 이들을 불의한 이방인이 살해한 것입니다.

뭇 사람들 입에서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푸념이 나올 만한 사건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불의한 세상과 정의로운 하느님이라는 두 대립되는 관념을 두고

혼란을 겪는 사람들에게 실로암에서 죽은 이들의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하느님의 정의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십니다.

사람들은 정의가 이래야 하고 하느님은 저러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 불합리하고 불의한 현실 안에서도 하느님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계십니다.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고”,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시는”(탈출 3,7)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인내로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불합리하고 불의한 현실 속에 고통받는 인간에 대해서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고, 새로운

삶으로 방향을 돌리도록 기회를 주시는 정의로운 하느님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실망스런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보십시오.

그분은 우리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일하도록 인내롭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msn008.gif  [건축]

         성막, 함께 움직이는 하느님의 집

                      김광현 안드레아 |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지어 바칠 수 있는 집이 어디 있느냐?’”(이사 66,1) 

이런 하느님께서 광야를 지나는 당신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과

함께하시려고 당신이 머무시는 성막(聖幕)을 지으라 하십니다.

이렇게 성막은 하느님께서 계획하고 지으신 집이지,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도록

사람이 지어 바친 집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아주 구체적으로 지시하시며 당신이 머물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탈출 25-31장) 

지시하신 순서는 오늘날 건축물을 설계하는 순서와도 대략 일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현존을 나타내는 계약 궤, 제사상, 등잔대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천막을 짓는 재료와 크기, 색깔, 연결하는 방법을 일러주십니다.

 

내부 공간에 쓸 목제품과 휘장, 제단, 외부 공간인 성막 뜰, 조명 설비인 등불 등도 말씀하십니다.

또한 시공자인 성막 제조 기술자도 정해주셨습니다.
특히 탈출기 26장은 성막을 어떻게 지을지를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수치가 계속 나와 평면도를 머릿속에 그리지 않고는 어디를 말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부분이 말하는 요점은 성막에 쓰일 천과 나무의 폭과 너비를 반복해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이동할 때 해체하여 일정하게 포개서 운반할 뿐만 아니라,

장소를 옮겨 다른 곳에도 같은 방법으로 세울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기물들도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게 고리와 채를 두게 하셨습니다.

 

202231422485.jpg

 
하느님의 성막은 이동용 성전이었습니다.

백성이 움직이면 하느님의 집인 성막도 움직이고, 백성이 멈추면 성막도 멈추었습니다.

멈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성막을 한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살았습니다.

성막 앞에는 이스라엘 백성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뜰이 있습니다.

성막 안은 사제가 들어가는 성소, 대사제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로 나뉩니다.

 

오늘날의 성당은 이와 같은 성막의 공간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성막은 영어로 ‘태버내클(tabernacle)’입니다. 성체를 모시는 감실과 영어 표현이 같습니다.

이는 히브리 말로 미쉬칸(mishkan, משכן)이라 하는데, ‘거주하는 곳(dwelling place)’이라는 뜻입니다.

거주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집 짓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곳에나 계셔서 어떤 장소에도 얽매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려고 사람이 사는 것과 같은 집을 지으셨습니다.

그만큼 집이란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는 성당도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당은 하느님께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지나는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려고 지으시는 집, “내가 그들 가운데에 머물겠다.”(탈출 25,8)라며

인간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오시려고 지으시는 집입니다.

 

 

 

 

msn036.gif 교황님 말씀 -  절대 악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는 악마보다 훨씬 강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악마에게 맞서시어 유혹을 이겨 내십니다.

 

사순 시기가 우리에게도 ‘광야의 때’가 되길 바랍니다.

침묵과 기도의 시간을 마련합시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이러한 침묵과 기도의 공간에 머물며 무엇이 우리 마음을 휘젓고 있는지,

정당화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내면의 진실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우리를 노예로 삼는 악에 대항하는 은혜로운 싸움, 자유를 위한 싸움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도록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말씀 앞에 머물며 내적 명료성을 구하도록 합시다.

 

2022년 3월 6일

사순 제1주일 삼종기도 훈화 중

 

 

 

~~~~~~~~~~~~~~~~~~~~~~~~~~~~~~~~~~~~~~~~~~~~~~~~~~~~~~~~~~~~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 주중.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서 보실 수 있으십니다.

 

 사순 시기 

사순은 본래 ‘40일’이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중대한 사건 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야 예언자도 호렙산에 갈 때 40일을 걸었습니다. 

이 시기동안 신자들은 참회와 희생, 극기, 회개와 기도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합니다. 

또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부활 대축일을 준비합니다.

▣ 3월은 성 요셉성월로 미사 시작전 기도로 성 요셉께 드리는 기도를 바치겠습니다.

▣ 부활 판공성사가 재의 수요일(3월2일) 이후 부터 있겠습니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미사 전, 주일은 미사 후에 있습니다.

▣ 3월27일(주일) 본당 레지오 아치에스 행사가 미사 후에 있겠습니다.

대상: 레지오 정단원, 예비단원, 협조단원 전체

준비물: 묵주와 레지오 수첩

* 당일 아치에스 행사 참가자는 주일미사 의무 참여 바랍니다.

▣ 4월3일(주일) 미사에 훼잇빌 최학성 세례자 요한신부님께서 방문하셔서

미사와 판공성사를 집전 해 주시겠습니다.

판공성사는 십자가의 길 예식 중과 미사 후에도 있겠습니다.

▣ '십자가의 길'이 사순 첫주 3월6일(주일)부터 시작됩니다. 

올해는 신자분들의 많은 참여하기를 바라며 '십자가의 길'을 주일미사 전에 진행합니다.

각 구역 '십자가의 길' 스케줄 - 매 주일미사 시작 전 오전 9시45분

  • 3월 20일 - 안드레아,토마 구역
  • 3월 27일 - 야고보 ,필립보 구역
  • 4월3일 - 시몬구역
  • 4월 10일 - 타데오 구역
  • 성 금요일 미사 시작 전 오후 7시15분 -  전신자

▣ 교구청에서 2차헌금 요청이 아래와 같이 있습니다. 

  • 3월 26일, 27일 (사순 넷째 주) - 가톨릭 구호단체를 위하여
  • 4월15일 (성 금요일) - 성지(Holyland)를 위하여
  • 4월24일 (하느님의 자비주일) - 가톨릭 가정선교 관심을 위해

▣  2022년  매일미사책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매월 각권은 $7 이며, 각 권 구입시 4월미사책은 $10 입니다.

정기 구독료는  신청 개웙 x $7 하시면 됩니다.

신청하시는 방법은 아래 봉헌금내시듯 여러방법으로 신청하시면 되겠습니다.    

▣ 2022년도 BAA(Bishop's Annual Appeal)   

1. 교구청에서 우편으로 BAA를 받으신 분은 용지에 기재하셔서 직접 우편발송 하셔고 되고

2. 성당에 나오시는 분은 BAA 봉투를 봉헌함에 봉헌 (빈 봉투 성당에 비치)

3. 체크로 보내시고자 하시는 분은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우편발송

4. 또는 온라인으로 직접봉헌 - GivetoBAA.org (저희 본당 고유번호는 614 입니다)

 * BAA Tax 공제는 저희 본당과는 무관하고 교구청에서 직접 발송됩니다.

▣ 2021년 텍스보고 안내

2021년 Tax Form은 예년처럼 e-mail로 (전자우편) 보내드릴 예정이오니

필요하신분들께서는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이나 각 구역장님께 

세대주 이름과 영문이름을 함께 신청 해 주시기 바라며, 신청하시는분들께만 발송 할 예정입니다.

이메일 신청은giving.spjcc@gmail.com  

▣  Zarama 주교님께서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해주시고, 노인이나 기저질환 환자등 케어를 필요로 하는 분들은 

가급적 마스크 착용을 권장 하십니다.

▣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교황님의 3월 기도 지향}  

일반: 생명 윤리의 도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

생명 윤리의 새로운 도전에 맞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실천으로 언제나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을 수호하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uTo-nFEYDvI - 3.20. 2022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2rlfGyIf4Gc​ - 3.20. 2011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uz3Pd2qmpq4 - 3.20. 2022

        

 

4. VATICAN MEDIA LIVE 

     https://youtu.be/JuRrQgW5J4Y​​​ - Live

     https://youtu.be/kuNVM5UCBaU 2022년 3월16일 FRANCESCO 교황님 수요알현 가르침 말씀 “노년, 경솔한 젊음을 살지 않게 하는 자원”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이십니다. 시편(18장 3절)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423 (녹) 연중 제14주일 2022년 7월 3일 AdelaKim Adela 2022.06.29 34
422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2022년 6월 26일 AdelaKim Adela 2022.06.20 57
421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2년 6월 19일 AdelaKim Adela 2022.06.16 43
420 (백)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2022년 6월 12일 AdelaKim Adela 2022.06.09 59
419 (홍) 성령 강림 대축일 2022년 6월 5일 AdelaKim Adela 2022.06.01 60
418 (백) 주님 승천 대축일 2022년 5월 29일 AdelaKim Adela 2022.05.25 68
417 (백) 부활 제6주일 2022년 5월 22일 AdelaKim Adela 2022.05.18 59
416 (백) 부활 제5주일 2022년 5월 15일 AdelaKim Adela 2022.05.11 62
415 (백)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2022년 5월 8일 AdelaKim Adela 2022.05.04 58
414 (백)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2022년 5월 1일 AdelaKim Adela 2022.04.27 42
413 (백)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22년 4월 24일 AdelaKim Adela 2022.04.20 70
412 (백)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2022년 4월 17일 AdelaKim Adela 2022.04.13 129
411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22년 4월 10일 AdelaKim Adela 2022.04.06 131
410 (자) 사순 제5주일 2022년 4월 3일 AdelaKim Adela 2022.03.30 127
409 (자) 사순 제4주일 2022년 3월 27일 AdelaKim Adela 2022.03.23 83
» (자) 사순 제3주일 2022년 3월 20일 AdelaKim Adela 2022.03.15 80
407 (자) 사순 제2주일 2022년 3월 13일 AdelaKim Adela 2022.03.09 82
406 (자) 사순 제1주일 2022년 3월 6일 AdelaKim Adela 2022.03.01 89
405 (녹) 연중 제8주일 2022년 2월 27일 AdelaKim Adela 2022.02.22 82
404 (녹) 연중 제7주일 2022년 2월 20일 AdelaKim Adela 2022.02.16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