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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363-0408      Fax: (919) 363-0409

입당송

주 하느님, 저희를 구하소서. 민족들에게서 저희를 모아들이소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고, 당신을 찬양하여 영광으로 삼으오리다.

제1독서  예레  1,4-5.17-19

화답송

◎ 주님, 제 입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이야기하리이다.
○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 의로움으로 저를 건져 구하소서. 제게 귀를 기울이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 저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 ◎
○ 당신 의로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저의 입은 온종일 이야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을 전하여 왔나이다. ◎

제2독서  1코린  12,31─13,13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복음  루카  1,1-4; 4,14-21

영성체송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생명의 말씀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창원 다니엘 신부 | 한마음한몸운동본부 국제협력센터장

                               

탄자니아에서 선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인천공항에 내려서 서울로

들어오며 한강을 바라보니 콧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졌습니다.

탄자니아에서는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기에 빗물을 받아 마셨고, 그 물로 몸을 씻었습니다.

빗물 또한 귀하고 부족했기에 빗물은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그런 곳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 넘실대는 한강을 바라보니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 것이었지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모든 것에 다 감사했습니다.

일상의 것들에 잘 웃고 행복했습니다. 깨끗한 물 한잔에, 따듯한 물로 하는 샤워에,

맛있는 한국 음식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에 눈물 나게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기쁘게 지내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물과 식량 문제, 의료와 교육 문제, 코로나와 각종 재난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나라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지원하는 국제협력 일은 분명 가치 있고 소중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복음적이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기쁘게 지내지

못했던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문제는 제 안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저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시며 함께 하고 계심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로 앞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딱 맞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억압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전해주는 일에 수많은 분들이 함께해주고 계시고

나눔을 실천해 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복음 선포는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복음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속 사랑 없이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 일은 주님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되어버립니다.

나의 힘으로 일을 하려고 하니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하는 모든 일은 주님의 일이기에 주님께서 보호하시고

이끌어 가시며 모든 것을 직접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먹고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 교육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가난과 폭력의 일상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아이들, 코로나와 자연재해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나눔으로 주님의 일에

동참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우리들을 통해 주님께서는 오늘 이 자리에서 복음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아멘.

 

 

msn035.gif  [생활속의 복음]         

 말씀을 마음과 행동으로 들어야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우리는 ‘말을 잘 듣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다’,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다’, ‘음악을 잘 듣다’.

똑같이 ‘듣다’이지만, 각각의 ‘듣다’마다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어떤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일도 ‘듣다’이고, ‘남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는 태도도 ‘듣다’이며, 남이 하는 말을 실행에 옮기는 일도 ‘듣다’입니다.

 

약 따위가 특정한 효험을 나타내는 모양도 ‘듣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들 중 어떤 모습으로 ‘들어야’ 할까요?

어떻게 들어야 내가 듣는 그 말이 나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게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의 독서와 복음이 우리에게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인 느헤미야기에서는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백성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말씀을 어떤 심정으로 듣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무렵’이라는 말로 축약된 부분이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그때에 온 백성이 일제히 ‘물 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 학자 에즈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오도록 청하였다”(느헤 8,1)

백성들 스스로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은 참으로 열악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삶의 근본 터전인 밭과 포도밭, 집까지 저당 잡혀야 했고,

아들딸들이 종살이를 하며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오랜 유배생활을 마치고 겨우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맨손으로 삶의 모진 풍랑에

맞서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힘든 상황에도 누구의 권유가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간청하는

고운 마음을 보시고, 하느님은 에즈라 사제와 레위인들의 입을 통해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십니다.

에즈라 사제가 율법서를 읽어주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들이 흘린 건 참회의 눈물이었습니다. 욕망에 눈멀어 하느님을 멀리했던

과거의 잘못들을 깊이 뉘우쳤고, 자신들의 죄가 초래한 슬픈 결과에 괴로워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절망에 빠져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에즈라와 레위인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주십니다.

당신께서는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기준으로 그들을 단죄하여 기를 꺾기를

바라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큰 절망을 경험한 그들이 힘과 용기를 얻어 당신 뜻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삶을 살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 말씀이 희망을 주는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라신 것이지요.

복음에서 당신의 고향 마을 나자렛의 회당을 방문하신 예수님이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 중 ‘기쁨의 해’를 선포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읽어주신 것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도, 그분의 뜻이 당신의 놀라운 능력으로

알아서 실현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을 그리스어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그것을 듣는 너희 안에서 가득 채워져 완성되었다.

” 여기서 ‘듣다’라는 말은 “남이 하는 말을 받아들여 그것을 실행에 옮기다”는 뜻입니다.

 

내가 들은 주님의 말씀이 한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허무하게 흘러나가지

않게 하려면, 그것이 내 안에 남아 나의 마음과 영혼을 참된 기쁨으로 가득

채워 완성에 이르게 하려면, 반드시 그 말씀이 뜻하는 바를 실행에 옮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말씀을 귀로만 듣지 말고 마음과 행동으로 듣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msn036.gif [말씀묵상]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오늘 복음과 독서 말씀은 모두 주님과 처음 만난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의 고백이 이사야 예언자의 고백과 맞닿아 있고

바오로 사도의 기억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담깁니다.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라는

겁에 질린 이사야의 모습과 예수님의 크신 능력에 놀란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청했던 모습이 다르지 않으니까요.

바오로 사도 역시 스스로를 칠삭둥이라고 낮추어 표현하며 오직 크신

주님을 부각시키고 있으니까요.

교우님들의 그날은 어떠셨나요?

저는 우직함 혹은 당당함 또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기 싫어하는 6학년

남자아이의 기질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게도 성당에 간 첫날에 성체를 영했으니까요.

선생님께 지적을 받았지만, 꽤 오래도록 그 무지를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 특별한 은혜가 저의 오늘을 있게 했다는 걸 느꼈고

그날 제 영혼에 간직된 것,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이 제 삶을 이끌어 주셨음에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날 어부 베드로는 밤새도록 애썼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맥이 빠졌을 겁니다.

배를 해변에 묶고 그물을 정리하고선 늘어지게 한숨 잘 생각이 간절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도리어 일을 ‘만들어’ 시키십니다. 기껏 힘들여서 정박을 시켜 둔

배를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귀찮고’ ‘안 들어줘도 상관없는’ 부탁을 했을 때, 선뜻 들어준 것을

보면서 베드로는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쩌면 밤을 꼬박 새우고도 빈손으로 귀가를 하려니 마음이 무거워서,

만선을 기대하고 있을 가족들의 실망하는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그물을 씻고 또

씻으며 시간을 끌던 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암튼 별 사심 없이 그분께 자신의 배를 사용하게 했을 뿐인 그에게 ‘대박’이 터졌습니다.

오매불망 집을 나설 적이면 “그물이 찢어질 만큼”의 고기가 잡히기를 소원했을

그 만선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꿈을 이룬 오늘, 베드로는 기가 팍 죽었습니다.

기뻐서 펄쩍 뛰기는커녕, 주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떠나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꿈같은 ‘대박’ 사건을 숱하게 전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적을 본 많은 사람은 계속 예수님을 찾아다녔으며 늘 곁에서

계셔주시기를 청하고, 떠나시는 예수님을 만류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에 대비하니 베드로의 태도는 더더욱 뜻밖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이 겸손한 모습이 주님께 무척 미더웠으리라 짐작을 해봅니다.

흠도 많고 탈도 많았던 베드로를 수제자로 뽑아 올리신 주님의 마음을 엿보는 느낌입니다.

오늘의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내일을 꿈꾸며 지금 가진 것으로 선뜻

베풀 줄 아는 너그러움을 가졌던 베드로의 면면이 주님의 수제자, 교회의 반석이

되는 직무를 얻게 된 이유라 살펴집니다.

그분께서 주신 것을 깨닫고 그분께 얻은 모든 것을 헤아리고 그 전부가 그분의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면 어느 누구나 꿇어 부복하여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행복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락가락 이랬다저랬다 하고 변덕스럽기까지 하며 영 시원찮은 믿음으로 쫓아다닌 것

같은, 그래서 우리보다 잘난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 베드로 사도의 특별함입니다.

오늘 이 만남의 감격을 잊지 않았기에 또 돌아서고 다시 돌아와서 그분을

향하는 믿음의 사도가 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우리와 그분과의 첫 만남이 어떠했던지, 무슨 이유였던지 상관없습니다.

와락 가슴에 담겨 오던 그 감격을 잃지 않고 새로운 다짐으로 살아가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신

감격을 내내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만선을 꿈꾸고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허락하기도 하시고 좌절하게도 하십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믿기에 실망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에 감격하여 주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오직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할 수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세상의 성공코스와 믿음의 성공코스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뚜렷이 알려줍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귀한 일이 있으며 그것을 선택할 자유를 지녔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지난밤은 허탕이었을지라도, 내일을 준비하는 어부의 마음을 배우라 이릅니다.

지금 손에 쥔 수확에 연연치 말고 내일을 준비하고 그물을 손질하는 희망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는 믿음으로 흔들림 없이 “스승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는 지혜인이 되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베드로 사도의 권유에 따라 온 세상이 그분을 향하도록 이끄는

특은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도합니다.

 

msn008.gif  [말씀이 있는 그림] “예, 따르겠습니다”

           '제베대오의 아들들의 부르심' - 마르코 바사이티

       1510년, 나무에 유채, 386x268cm,아카데미아 갤러리, 베네치아

    

마르코 바사이티 ‘제베대오의 아들들을 부르심’.

 

마르코 바사이티(Marco Basaiti, 1470년경~1530년,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는 예수님께서 복음선포를 시작하신 후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에 푸른색 망토를 두른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다가 제베대오의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부르신다.

이미 이들보다 먼저 제자가 된 시몬과 안드레아가 예수님의 양옆에 서서

자신들과 같은 어부인 요한과 야고보를 맞이한다. 형 야고보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고, 장차 복음사가가 될 그의 동생 요한은 그 뒤를 잇고 있다.

 

당시 유대교 문화권에서 라삐들은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였지만, 예수님은

직접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찾아가 “나를 따라오너라.”(마르 4,19) 하고

당신의 제자를 부르고 계신다.

예수님은 그들이 어부라는 직업을 고려하여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마르 4,19)라고 약속하신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일상의 터전 - 그림의 왼쪽 중간에 작은 언덕에 낮은

울타리 안에 양을 보호하는 목동(착한 목자), 배를 타거나 낚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공간 -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멀리 황금빛 서광은 이들 가운데 선택된 제자들이 앞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붉은색 옷을 입은 인물은 요한과 야고보의 아버지 제베대오이다.

아들들과 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제베대오는 일을 그만두고 가버린 아들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두 아들은 예수님을 따르려고 배와 그물, 그리고 아버지마저 버린다.

요한과 야고보는 자신들보다 먼저 예수님의 부르심에 아무런 조건 없이 곧바로

“예”하고 순종한 시몬과 안드레아처럼 그들도 뒤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을 향한다.

 

그들의 동작을 살펴보면, 야고보는 예수님 앞에 한 손을 가슴에 얹고 정중히

무릎을 꿇고 있고, 바로 뒤의 요한도 한 손을 가슴에 올린 채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화가는 이들의 동작을 통해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곧바로 순종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 가장 아랫부분에는 이미 정박한 배 위에 버려진 그물이 보인다. 

 

화가는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마르 4,22) 예수님을 따른 요한과

야고보의 응답을 배 위에 걸쳐진 그물로 표현하여 성경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있다.

아들들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면서 배 위에 홀로 남겨진 제베대오의 모습 역시

요한과 야고보의 “그분을 따랐다”라는 행동을 강조한 표현이다.

 

‘배와 그물’은 개인의 소유를 상징하고 ‘아버지’는 가정을 의미한다.

그림에서처럼 요한과 야고보가 자신들의 소유(배와 그물)와 가정(아버지)을 포기한

것은 부르심의 응답에 대한 ‘완전한 버림’을 의미한다.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배의 상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태 19,29)

예수님은 사랑의 눈빛으로 오른손을 들어 제자들의 응답을 축복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무릎을 굽히고 충실한 제자로서 행동을 보이고 있는 야고보의

모습처럼 우리도 곧바로 “예, 따르겠습니다.” 하고 응답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msn008.gif  [음악]  한겨울에 꾸는 꿈, 슈베르트(Schubert)

                          <겨울 나그네(Winterreise)> 중

                                              ‘봄 꿈(Frühlingstraum)’

 

 

                        임주빈 모니카 | KBS프로듀서, 심의위원

 

  이제 끝자락에 이르렀지만 1월은 겨울의 한가운데, 가장 추울 때입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공기와 매서운 칼바람이 우리 마음조차 얼어붙게 만들죠.

클래식 음악 방송에서 겨울이면 빠지지 않고 선곡되는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Winterreise D.911)>입니다.

 

총 24곡으로 이루어진 연가곡집인 <겨울 나그네>는 매해 겨울 여러 프로그램에서

자주 듣게 되지만 진행자마다 다양한 해설로 개성이 다른 여러 성악가의 노래를 고루

들려주어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질 않습니다. 

바로 이 곡이 가진 매력이자 힘이겠지요.

겨울이면 이 음악을 듣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느껴집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문이 닫히면서 낭만주의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음악가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오스트리아)는 서른한 해 짧은 생을

살면서 상당수의 명곡을 남겼는데,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가곡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 어떤 시라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매혹적인 선율의 날개를 달고 나와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죠.
 

  그중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 1794~1827, 독일)의 연작시에 붙인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입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부르던 ‘보리수’도 바로 <겨울 나그네> 중의 한 곡이죠.

이 작품을 작곡하던 1827년, 극도의 가난과 병고로 죽음을 옆에 끼고 살던 슈베르트는

뮐러의 시에서 자신이 느끼고 있는 삶에 대한 절망과 고통을 공감했고, 이 감정은

음울하고도 황량한 겨울 풍경, 그리고 세상과 사랑으로부터 소외된 한 나그네의 응어리진

마음과 방랑, 쓸쓸함이 되어 이 작품에 그대로 담겼습니다.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의 곡들 가운데,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로 가뿐하고

친근한 멜로디로 귀를 기울이게 하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열한 번째 곡 ‘봄 꿈(Frühlingstraum)’입니다. 방랑하는 젊은이는 까마귀가 우짖는

황량한 겨울에 봄 꿈을 꿉니다.

 

화사한 꽃과 푸른 초원을 꿈꾸고, 아름다운 처녀와의 사랑을 꿈꿉니다.

하지만 눈을 뜨면 이것이 다 꿈이었음을 알고 한없이 낙담하게 되죠.

그럼에도 이 꿈을 접을 수 없습니다. ‘창가의 잎이 푸르게 변하면 내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음악은 달콤하고 희망에 찬 꿈을 꾸듯 가볍고 다정하게 시작하다가 곧 황량한

겨울 모습으로 바뀌고, 이어 현실을 깨닫고 낙심하는 젊은이를 그립니다.

다시 또 꿈을 꾸면서 분위기가 전환되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죠.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한겨울에 꾸는 봄 꿈은 비록 찰나일지라도 ‘희망’ 그 자체입니다.

코로나 암울한 시기에 우리는 꿈을 꿉니다. 모두 마스크를 벗고 한데 어울려 손을

맞잡거나 얼싸안는 꿈입니다.

세상이 다시 거리두기 없이 친밀하고 활기차게 돌아갑니다.

마치 뮐러와 슈베르트가 한겨울에 꾼 ‘봄 꿈’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울 나그네’처럼 낙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꿈이 곧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주님, 저희의 꿈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게 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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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4eimf3KaT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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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SIJREpibbO0

 

 

msn036.gif 교황님 말씀 - 겸손한 인내의 덕

그동안 우리는 흔히 기적이라고 말하는 은총을 수없이 청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정리되곤 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방식에 따른 것입니다.

하느님의 시간과 때는 우리의 시간과 때가 아닙니다.

주님의 은총과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겸손한 인내를 익히도록 합시다.

많은 경우 마지막 전날, 마감 전날이 더 힘든 법입니다.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란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종국에 가서는 그분께서 모든 것을 해결하십니다.

 

- 2021년 5월 26일 일발 알현 교리교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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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 주중.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서 보실 수 있으십니다.

 

▣  2월 1일(화)은 우리나라 고유 명절인 ‘설날’입니다

우리 성당은 오늘 1월30일(주일)에 합동 위령미사를 봉헌합니다.

조상님을 위한 연도는 미사가 끝나기 직전에 있겠습니다.

▣ 초 축성식 안내

2월2일 수요일은 "주님 봉헌 축일"로 수요미사에 '초 축성식'이 있습니다.

수요미사 참례가 어려운 분들은 초를 1월30일(주일)까지 전례분과장 김 진훈베드로

형제님께 전달해 주십시요. 

울뜨레아  모임 - 1월30일(주일) 오후 8시에 zoom 으로 정기모임이 있습니다.

▣  창세기 성서모임 모집안내

창세기 성서모임 형제님반  모집합니다 

신청:  2022년 2월 6일까지

모임: 소모임으로 줌미팅 진행

자세한 문의는 최 아네스 자매님께 (919 741 0902)

 2022년도 BAA(Bishop's Annual Appeal)   

1. 교구청에서 우편으로 BAA를 받으신 분은 용지에 기재하셔서 직접 우편발송 하셔고 되고

2. 성당에 나오시는 분은 BAA 봉투를 봉헌함에 봉헌 (빈 봉투 성당에 비치)

3. 체크로 보내시고자 하시는 분은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우편발송

4. 또는 온라인으로 직접봉헌 - GivetoBAA.org (저희 본당 고유번호는 614 입니다)

 * BAA Tax 공제는 저희 본당과는 무관하고 교구청에서 직접 발송됩니다.

 2021년 BAA 본당 배당액 $22,983.61 중 총 19가정 $5,240을 기부 했습니다.

▣ 2021년 텍스보고 안내

2021년 Tax Form은 예년처럼 e-mail로 (전자우편) 보내드릴 예정이오니

필요하신분들께서는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이나 각 구역장님께 

세대주 이름과 영문이름을 함께 신청 해 주시기 바라며, 신청하시는분들께만 발송 할 예정입니다.

이메일 신청은giving.spjcc@gmail.com  

▣  "공현스티커" 배포

성당 입구에 "공현스티커" 를 배치 해 두었으니 미사 때 오셔서 필요하신 만큼 

가져가십시요. 

※ 사용법: 주로 드나드는 현관 위 문틀이나 문 자체에 스티커를 붙입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려 붙이기, 나중에 페인트 벗겨짐에 주의)

▣  전세계적으로 오미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CDC에서는 오미크론에 천 마스크나 덴탈용 마스크는 면역력이 떨어지므로, KF 94

등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성체를 영하실때에도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사 참례 하고자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  점차 심해지는 변형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금지 합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2022년 2월 매일미사책이 도착했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당입구에 있으며 각 권구입은 $7 입니다.    

▣  매일미사책 공지 사항 - 2022년도 구독신청 받습니다.

매일미사책 값이 두배로 올랐습니다.

2월 미사책부터 11개월 $70, 6개월 $35,  매월 각권은 $7 입니다.

신청하시는 방법은 아래 봉헌금내시듯 여러방법으로 신청하시면 되겠습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Zarama 주교님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받았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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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의 1월 기도 지향}  

일반: 참된 형제애

종교 차별과 박해로 고통받는 모든 이가, 인류 가족 안의 형제자매로서 지니는 

고유한 권리와 존엄을 인정받도록 기도합시다.

 

⛪ {교황님의 2월 기도 지향}  

일반: 여자 수도자들과 축성 생활자들

여자 수도자들과 축성 생활자들의 사명과 용기에 감사하며, 우리 시대의 도전들에 대한 새로운 응답들을 끊임없이 찾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5Qwl3pQZcdk - 1.30. 2022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QQPUNTSUM10​ - 1.30. 2022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Y7JMFNeJZOc​ - 1.30. 2022

 

       

4. VATICAN MEDIA LIVE 

     https://youtu.be/HdO_5QRyYdw​​ - Live

     https:// youtu.be/U73znp5H0AQ 2022년 1월2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 수요 가르침 말씀 "꿈 꾸는 사람 성 요셉"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시편 8장5절)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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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백) 주님 성탄 대축일 - 밤 미사 2021년 12월 24일 / 낮 미사 12월 25일 AdelaKim Adela 2021.12.23 158
394 (자) 대림 제4주일 2021년 12월 19일 AdelaKim Adela 2021.12.14 146
393 (자)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2021년 12월 12일 AdelaKim Adela 2021.12.09 126
392 (자)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2021년 12월 5일 AdelaKim Adela 2021.11.30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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