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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1 Holland Road,
    Apex, NC 27502
    전화: (919)414-9256
    이메일: hellospjcc@gmail.com

      본당주보입니다.

입당송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렸네.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머무르시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제1독서  이사  42,1-4.6-7

화답송

◎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 하느님의 아들들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 주님께 드려라.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
○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 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 주님의 소리는 힘차고, 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 ◎
○ 영광의 하느님 천둥 치시네. 그분의 성전에서 모두 외치네. “영광이여!” 주님이 큰 물 위에 앉아 계시네. 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

제2독서  사도  10,34-38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복음  루카 3,15-16.21-22

영성체송   

보라,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보았다. 그래서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였다.

 

   생명의 말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김상우 바오로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신원과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끝날 것처럼 끝나지 않는 팬데믹 상황,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미래에 대한

막막함 앞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신앙의 위기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데믹으로 촉발된 위기의 상황 속에서 예전 같은 방식의 신앙생활은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신앙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위기의 순간에 신앙에 관한 근원적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바른 곳을 향해 있었는지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번 주일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이 축일을 기점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연중 시기가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했던 시간이 마무리되고 이제 다시

신앙 안에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 세례 축일’은 신앙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합니까?


제1독서(이사 42,1-4.6-7)에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시는 예언이 소개됩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이사 42,1) 

구약성경 예언은 신약성경 복음(루카 3,15-16.21-22)을 통해 완전한 의미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다음, 하늘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이사야서의 예언은 루카 복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약속하셨던 그 구원자가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왜 굳이 다른 유다인들처럼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무언가 부족해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던 것일까요?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당신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겸손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가 세례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되도록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신앙인들이 언제나 세례의 순간을 기억하며

주님과 함께 용기 내어 신앙 여정을 걸어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세례 축일’을 보내는 우리는 신앙 여정의 첫걸음인 세례의 순간을

떠올려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결핍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불러주셨던 그

세례의 순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례 때처럼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우리를 향해 사랑의 손길을 내미시는 주님의

초대에 각자 자발적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던져보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신앙인인가?’라는 질문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때

우리를 불러주셨던 삼위일체 하느님께로 다시금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msn008.gif  [생활속의 복음]         

      하느님이 맡기신 소명의 잔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물은 상반된 두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생명’입니다.

인간은 단 사흘만 물을 마시지 못해도 죽음에 이릅니다.

물은 삶을 유지해주기에 ‘생명’이라는 이미지를 지닙니다.

다른 하나는 ‘죽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는 생명체는 물속에 빠지면 단 몇 분 만에 죽음에 이릅니다.

물은 삶을 중단시키는 ‘죽음’이라는 이미지 또한 지닙니다.

물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세례성사’는 ‘새로 태어남’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물속에 빠짐으로써 하느님을 모른 채 죄를 짓고 살던 ‘과거의 나’가 죽고,

물 밖으로 나옴으로써 다시 생명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겁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 세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요한이 베푼 세례란 죄를 용서하여 영혼을 깨끗이 씻는 회개의 세례이기에,

죄를 짓지 않으신 예수님은 굳이 그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될 일을 행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나중에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실 때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 아들을 인간이 되게 하신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 아들을 물속에 담그시어 물을 거룩하게 축복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축복하신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나의 뜻’을 물속에서

깨끗이 씻어내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채워 물 밖으로 나옵니다.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 욕심과 고집, 시기와 질투를 물속에 남겨두고

물 밖으로 나와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예식인 것이지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제1독서가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거센 바람에 부러진 갈대가 다시 일어서는 것은 갈대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부러진 갈대를 다시 세우고 부목을 대준다면, 누군가가 심지에

다시 불이 붙을 수 있게 옆에서 적당한 바람을 계속 불어준다면, 부러진 갈대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꺼져가던 초에도 다시 불이 붙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추구하시는 ‘공정’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고 잘못을 용서하여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를 바라십니다.

삶의 매 순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성실하게 실천함으로써 그분께 사랑받는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또 안다 해도 받아야 할 고통의 세례가 힘겨운 나머지 하느님께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달라’고 청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바치는 기도는 예수님처럼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는 기도여야 합니다.

우리가 물로 받은 세례는 성령의 불로 타오르고 정화됨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소명의 잔이 무엇인지 묵상하며,

그 잔을 기꺼이 받아 마실 힘과 용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고통과 시련마저 기꺼이 받아들일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말씀묵상]  

독특한 하느님의 사랑법에 놀라지 맙시다!  

                       장재봉(스테파노)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교회는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실을 전하며 성탄 시기를 마감합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복음은 주님의 공생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들려줄 텐데요.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인간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비로소

아버지의 일을 착수하셨다는 사실에, 새삼 사제의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누군가에게 세례를 베푸는 사명의 막중함에 마음을 여미게 됩니다.

원죄에 물든 영혼을 ‘태초’의 순수로 다시 빚으시는 하늘의 작업에 동참하게 해주신 은혜를 깊이 새겨봅니다.

종종 여행길에서 사람의 손이 채 닿지 않은 듯한 자연을 만나면 우리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히게 되는데요.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후미진 곳을 섬세히

매만지고 계신 하느님의 손길이 보이는 듯하여,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들려주는 말씀이 그러하다 싶은데요.

어느 날, 어느 순간, 하늘이 열리면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온다면 과연 우리의 반응이 어떨지 상상해봅니다.

아마도 저는 거의 까무러칠 만큼 놀라서 허둥댈 것만 같은데요.

매일 매 순간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분 사랑에 잠겨 지낸다면서도,

“오소서, 성령이여!” 매일매일 기도드리면서도 그런 못난 모습을 보일 것만 같으니, 낯이 화끈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베드로 사도가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라고 뒤늦은 고백을

드리는 모습에서 위로를 느낍니다.

삼 년여, 주님의 공생활에 함께했던 베드로가, 주님의 수제자로 인정을 받았던

사도 베드로가 이제서야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을 보면서

뜨거운 동료애를 느낍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자란 베드로의 고백마저 기특해하고 계신 것이 분명해 보여서 그렇습니다.

제발 이제부터는 헤아리기 힘든 주님의 자비 앞에, 진정 크신 하느님의 사랑에 놀라서

혼비백산하지 않고 베드로 사도처럼 담담히 감사기도를 올릴 수 있는 배포를 청해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엄청나고 대단한지를 이미 깨달은 존재이니까요.

그럼에도 그분의 사랑에 놀라기만 하는 것은 아버지 하느님께 예의가 아니라 싶으니까요.

이야말로 아직도 그분의 용서가 내 죄보다 작을 것이란 ‘징벌의 공식’에 사로잡힌

상태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직도 그분의 크심과 사랑이 많으심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결과로 비친다면

진정 두렵고 죄송할 테니 말입니다.

때문에 저는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토록 엄청난 은혜의 날을 무심히 넘기지

않으시길 기도드립니다.

으레 미사참례를 하고 성체를 영했으니 믿음인의 할 바를 다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파올로 베로네제 ‘그리스도의 세례’(1580~1588년).

 

우리는 늘 그분과의 만남을 희망합니다.

이 희망은 믿음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닌 희망은 믿음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생성되는 신비의 지혜입니다.

지혜는 우리를 놀랍고 크신 하느님, 좋고도 좋은 주님의 방법에 오로지 긍정하여

의탁하는 믿음의 원동력입니다.

때문에 이 기쁘고 놀라운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교리 지식이 필요치 않습니다.

모든 이를 솔깃하게 하는 달변이 요구되는 것도 아닙니다.

깊고 심오한 진리를 깨달아야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고 주님 사랑을 전하기가

쑥스러워서 주저하고 망설이는 분들께 마리아 사제 운동을 시작했던 곱비 신부님의

증언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신부님은 이 큰 사업을 모자란 자신에게 맡겨주신 이유가 도대체 이해되지 않아서

오래, 성모님께 기도하셨답니다.

드디어 1973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답을 해주셨다는데요.

“아들아, 가장 부족한 도구라는 이유로 너를 택했다. 그래야 이 일을 네 일이라고 말할

사람이 없지 않겠느냐? 마리아 사제 운동은 오로지 나의 사업이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허약한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 당신의 강함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만큼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이나 재주가 뛰어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의 처지를 분명히

인식하는 믿음의 기본 지혜를 소중해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날이 키워나가는 열정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믿음의 핵심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주님께서는 참이신 주님의 사랑에 대한

화답을 듣고 싶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직 설익은 믿음일지라도 계속 도전하고 도약하여 더 단단해지고 있는 우리

사랑의 삶을 기쁘게 응원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모자란 게 많아서 더 마음이 쓰이는 우리, 허약해서 더 손길이

가는 못난 우리를 위해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 사랑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 종일, 세례받으신 예수님을 축하해드리는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주님 덕분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서 진짜로 행복하다고 자꾸만 고백해드리면 좋겠습니다.

더해서 그분께 인정받는 ‘된 사람’으로 우뚝할 것을 다짐하면 참 좋겠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의 힘을 거슬러 용약하는 역동적 삶을 살아가게 되는

놀라우신 은혜가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msn035.gif  세례로부터 시작된 신앙생활,

             새로운 다짐과 함께 '알렐루야!' 

모차르트, 모테트 [기뻐하라, 환호하라, 복된 영혼이여]중 '알렐루야'

여러분 신앙생활의 출발은 언제부터인지요?
어떤 분은 모태신앙이어서 태어날 때부터였을 것이고, 또 어떤 분은 친구 따라

주일학교에 가던 때부터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성인이 되어 신앙을 갖는 분도 많죠. 제 경우엔 가톨릭 신자이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면서부터였습니다.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하면서 ‘이제 나는 가톨릭에 발을 들여놓는구나.’ 싶었고,

세례를 받으면서는 ‘이제 본격적인 내 신앙생활이 시작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세례성사로부터 시작된 제 신앙생활의 출발점을 되새겨 봅니다.

교회 연중시기의 시작이 새해의 시작과 비슷한 시점이니만큼, 바로 지금쯤

우리 신앙의 다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 한 해 일상의 계획과 더불어 신앙생활의 계획도 세워봅니다.

저는 신앙생활도 되도록 기쁘고 힘차게 출발하고 싶습니다.

큰 소리로 주님 찬양을 외쳐보고도 싶습니다.

이런 마음에 딱 어울릴만한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모차르트의 모테트 <기뻐하라, 환호하라, 복된 영혼이여(Exsultate, Jubilate)>

작품번호 165(K.165) 중 ‘알렐루야(Alleluia)’입니다.

2022143242.jpg

      https://youtu.be/8RLCJ7U2fdU - Mozart: “Alleluia” from “Exsultate, jubilate”

 

  독창자인 소프라노가 한껏 고양되어 기쁨에 차서 노래하는 이 곡은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오스트리아)가 1773년 1월 자신의 오페라

<루치오 실라(Lucio Silla)>를 공연하기 위해 머물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당시

오페라의 주인공을 맡은 카스트라토 가수 베난치오 라우치니(Venanzio Rauzzini)를 위해

작곡한 음악입니다.

 

네 곡으로 이루어진 모테트 <기뻐하라, 환호하라, 복된 영혼이여(Exsultate, Jubilate)>

작품번호 165(K.165)의 마지막 수록곡이죠. ‘모테트(Motet)’는 13세기에 만들어진

종교 성악곡으로, 18세기 바로크 후기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다성 음악으로 구성된

짧은 종교 합창곡을 말합니다.

모차르트의 이 모테트는 첫 곡 ‘기뻐하라, 환호하라, 복된 영혼이여’,

둘째 곡 ‘친숙한 날이 밝아오며’,

셋째 곡 ‘처녀들의 왕관인 당신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네’,

그리고 마지막 곡 ‘알렐루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세례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올해 주님의 사랑을 받고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이 이 모차르트의 곡처럼 기쁨과 환희로 가득차서 주님을 찬미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2143611.jpg

  

     https://youtu.be/IhRKFkM72u0 - Mozart: Exsultate, jubilate. Kirkby, AAM, Hogwood.​

 

 

msn036.gif 교황님 말씀 - 겸손의 길에서 우리는 주님을 발견합니다

오직 겸손만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동시에 겸손이 구체적으로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때문에 삶의 본질,

삶의 가장 참된 의미,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는 가장 확실한 이유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겸손이 없으면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동방 박사들도 세상의 이치에 따라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작아지고 겸손하게 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찾을 수 있었고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 출처 : 바티칸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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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 주중.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서 보실 수 있으십니다.

 

▣  오늘(1월 9일)은 ‘주님 세례 축일’ 입니다.

▣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1월18일(화)~25일(화)은 그리스도인 일치를

간구하는 일치 주간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될 수 있게 마음모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 미사 후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쳐주시기 바랍니다.

▣  "공현스티커" 배포

성당 입구에 "공현스티커" 를 배치 해 두었으니 미사 때 오셔서 필요하신 만큼

가져가십시요. 

2022_final_1.png

유럽중부(특히 독일) 및 미국 중서부 풍습인 "공현스티커"를 미사 중에 축복하여 각 신자 가정에 배포합니다.

※ 사용법: 주로 드나드는 현관 위 문틀이나 문 자체에 스티커를 붙입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려 붙이기, 나중에 페인트 벗겨짐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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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Chalking the door" Wiki 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Chalking_the_door

▣  점차 심해지는 변형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금지 합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2022년 1월 매일미사책이 도착했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당입구에 있으며 각 권구입은 $7 입니다.    

▣  매일미사책 공지 사항 - 2022년도 구독신청 받습니다.

매일미사책 값이 두배로 올랐습니다.

미리 공지를 못 하였기에 현재 1월미사책 부터 1년 정기구독 신청자는 1년 $60, 

2월 미사책부터 신청하시면 11개월 $70, 6개월 $35,  매월 각권은 $7 입니다.

신청하시는 방법은 아래 봉헌금내시듯 여러방법으로 신청하시면 되겠습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Zarama 주교님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받았습니다.  

미사 참례 하고자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미사에 신자분들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하시기 바랍니다.

성체를 영하실때는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아버지께 기도하신 대로
    주님과 아버지께서 하나이시듯
    주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 되기를 바라셨나이다.
 저희는 같은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같은 주님을 모시면서도
    서로 갈라져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나이다.
 이제 저희는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가 되고자 하오니
 저희를 도와주시어
    미움과 불신을 버리고
    진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 아멘.

~~~~~~~~~~~~~~~~~~~~~~~~~~~~~~~~~~~~~~~~~~~~~~~~~~~~~~~~~~

⛪ {교황님의 1월 기도 지향}  

일반: 참된 형제애

종교 차별과 박해로 고통받는 모든 이가, 인류 가족 안의 형제자매로서 지니는 

고유한 권리와 존엄을 인정받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GhwWxxp00 - 1.9.  2022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6KnehNk-ufw​ - 1.9.  2022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gd97-lGUdcU​ - 1.9.  2022

    

 

4. VATICAN MEDIA LIVE 

     https://youtu.be/HdO_5QRyYdw​​ - Live

     https://youtu.be/fkZouuzrjaE- 1.5. 2022 프란치스코 교황님 수요 가르침 말씀 "예수님의아버지로서의 성 요셉"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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