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성당소식

   주일미사

   

   평일미사

    
    
   

온라인 봉헌

온라인 봉헌[클릭]

   성당문의

성당문의 안내[클릭]

   신자등록 및 성사안내

신자등록 및 성사안내[클릭]

   성당주소

    3031 Holland Road,
    Apex, NC 27502
    전화: (919)414-9256
    이메일: hellospjcc@gmail.com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사목회장: 김귀옥 (테오도라)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414-9256      Fax: (919) 363-0409

제1독서  창세  2,18-24

화답송

◎ 주님은 한평생 모든 날에 복을 내리시리라.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 네 아들의 아들들을 보리라. 이스라엘에 평화가 있기를! ◎

제2독서  히브  2,9-11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리라. ◎

복음  마르 10,2-16

영성체송   

당신을 바라는 이에게, 당신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은 좋으신 분.

 

생명의 말씀  

       혼자가 아닙니다                     

                                                                             

                   박기훈 비오 신부 | 군종교구 명성대성당 주임

 

810251_1.0_titleImage_1.jpg

 

 

 

 

 

 

 

 

 

 

 

 

 

 

 

 

 

 

 

 

 

병사 시절, 당시 군종 신부님에게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던 저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군종 사제가 되어 병사들에게 힘이 되어 주겠다는 기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저도 잊고 있던 그 기도를 잊지 않으셨고 저를 군종 사제로 불러 주셨습니다.

 

훈련소에서의 생활은 걱정과는 달리 참 행복했습니다. 

물론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새로 만나게 된 다른 교구 동기 신부들이

있었기에 잘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했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저는 부산에 있는 해성대성당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오는 군대라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군 생활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늘 옆에서 함께해 주셨던 군 가족들이 있었기에 잘 적응하며

2년 동안의 사목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본당인 지성대성당은 부대 규모가 작다 보니 군 가족들의 숫자도 적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어려움으로 종교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과 이후에 누군가를 만날 수도 없었기에 다들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사들이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성당에 더 열심히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더 자주 모이게 되었고, 종교 행사는 물론

친교 시간도 가지며 힘든 시간들을 함께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군종 신부로서의 5년을 뒤돌아보면 힘든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제 옆에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훈련소에서는 동기 신부들이, 첫 본당에서는 군 가족들이, 코로나 시기로

힘들 때는 병사들이 옆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걱정이 앞섰던 군종 생활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때마다 저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저 또한 전역하는 친구들이 주는 편지나 감사 인사를 보면서 작은 힘이지만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협력자가 되어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여러분도 어렵고 힘든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협력자가 되어 주시기를 청해 봅니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후방 각지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해 기억하며

봉헌해 주시는 기도와 후원은 그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 모두와 함께 있음을,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과 함께 있음을 느끼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고해성사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되찾은 아들의 비유’.

 

고해성사에서 죄의 고백은 가장 핵심이다.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자기 죄를 인정하고 고백함은 교만에서 벗어나 죄의 용서를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드러낸다.

신앙인들은 고해성사를 생각하면 보통 부끄러운 잘못을 사제 앞에서 상세히 고백해야 하는 두려움을 떠올립니다.

죄는 숨기고 싶은 게 본성인데 한 인간 앞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어렵고 두려운 게 당연합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내 죄를 다 알고 계시는데 굳이 상세하게 다 밝힐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고해성사는 크게 ‘통회’(1451~1454), ‘고백’(1455~1458), ‘보속’(1459~1460)으로 나뉩니다.

이 중에서도 죄의 고백이 가장 핵심입니다. 따라서 “사는 게 죄지요”라는 식의

모호한 고백은 통회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요, 올바른 보속을 받을 수도 없게 만듭니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공동 고해’라는 형식의 고해성사 방법도 접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해 방법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꼭 필요하기는 하나, 개별 고백의

의미를 퇴색시킬 위험성도 있습니다.

자칫 전화나 SNS로 고해하면 안 되냐는 말까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굳이 사제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고 하느님께서 다

아시는 죄를 왜 상세하게 고백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죄는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하와도 하느님처럼 된다는 뱀의 꼬임에 빠져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교만과 반대 방향인 ‘겸손’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은 진실을 가리게 합니다.

거짓말을 하게 합니다.

진실이 밝혀져 자신의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그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무화과 잎으로

‘두렁이’를 만들어 몸을 가렸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하느님 앞에 설 용기가 없었습니다.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그때 죄를 고백할 용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하느님은 그들을 위해 준비한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가죽옷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주기 위해 준비하신 것입니다.

가죽옷을 준비하고 서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여전히 자신이 만든 두렁이를

걷어내기를 두려워한다면 가죽옷을 입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무화과 잎으로 만들어 나를 가리던 그 거짓의 잎사귀들을 먼저 뜯어내야 합니다.

부끄러운 맨살을 드러냈을 때 가죽옷을 받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중고로 산 김치냉장고 안에 현금다발이 1억 원 넘게 들어있어서

신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냉장고의 판매자는 그 냉장고를 판 사람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그 돈이 깨끗한 돈이었다면 주인이 반드시 나타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주인이라고 밝히면 그 돈이 어떻게 생긴 것이고 왜 김치냉장고에

보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추궁이 들어갈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이때 대답할 수 있다면 그 돈을 되돌려 받는 것이고 아니면 그냥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무리 죄의 용서를 위해 가죽옷을 준비하셔도 내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할 용기가 없다면 그것을 입을 자격을 잃습니다.

입고서도 쫓겨납니다. 주실 수 없습니다. 내가 만든 두렁이는 내가 뜯어내야 합니다.

제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체나콜로’라는 공동체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3년을 넘게 사는 페데리코라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는 음악을 하다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노숙 생활까지 했습니다.

어머니의 강요로 체나콜로에 들어온 것입니다.

체나콜로 공동체는 그러한 사람들이 들어와 중독을 끊게 만듭니다.

하지만 페데리코는 3개월만 버티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미사 때도 팔짱을 끼고 절대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가는 날을 며칠 남기고 그도 천천히 무릎을 꿇어보았습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는 그때 느낀 ‘평화’ 때문에 3년이 넘었는데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자기 죄를 인정하고 고백함은 교만에서 벗어나

죄의 용서를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드러냅니다.

성당에서 장궤틀이 사라지고 고해성사의 이런 전통들도 간소화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전례는 죄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을 위해 겸손함을 표현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msn008.gif  [말씀묵상]
          내 곁의 반려자는 또 다른 하느님… 내 영혼 구원하시네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

 

혼인, 또 다른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일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연구하던 한 학자가 기막힌 내용의 글귀를 발견했답니다.

“요즘 아이들, 정말 버릇도 없고 문제가 심각하다.” 참 재미있습니다.

‘청소년 문제’, 오늘 우리 시대만 심각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미 수천 년 전

어른들도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문제가 청소년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혼문제도 마찬가지임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가 쓰인 후 벌써 200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즘 우리 시대만 이혼문제가 심각한 줄 알았는데, 예수님 시대 당시뿐만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서 모세 시대 역시 이혼문제는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완화시키고, 이혼을 합리화시키려는

경향이 모세 시대뿐만 아니라 예수님 시대에도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모세가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해줬는데, 그렇다면 살다가 마음에 안 들면 이혼해도 큰 문제없지 않겠느냐?’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데, 괜히 모세가 앞장서서 이혼을 허락했겠습니까?

또 별 이유도 아닌데 이혼을 허락했겠습니까?

사람들이 당시 백성들의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갖은 협박을 가하고 괴롭히니,

할 수 없이 특별한 케이스에 한해서 선별적으로 허락을 해준 것을 가지고

바리사이들은 이토록 물고 늘어진 것입니다.

이혼하는 부부들,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을 들어보면 참으로 ‘기막힌’ 케이스들이 많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것이 서로가 사는 길인 부부도 있습니다.

속아서 결혼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혼 사유로 ‘성격 차이’를 내세우는 분들도 있는데, 이것만큼은 재고되어야 합니다.

30년 40년 서로 다른 가정환경, 문화, 분위기, 가족관계 안에서 살아오던

두 사람이 결혼을 통해서 한배를 타게 됩니다.

‘성격 차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성격이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결혼은 어쩌면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은 어쩌면 또 다른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은 어쩌면 스승 한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 부부는 긴 항해를 시작합니다.

결혼을 통해 부부는 공부를 시작합니다.

어쩌면 배우자는 새 하늘 새 땅입니다.

갖은 다양한 탐구거리로 가득 찬 새로운 대양이 배우자입니다.

결혼생활을 영위하시는 분들, 상대방을 내 소유물로 설정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을 내 성취의 도구로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을 내 욕구충족의 대상으로도 여기지 마십시오.

그는 멀고먼 은하계에서 오직 나만을 찾아 정확하게 내 안에 떨어진 하나의 별입니다.

그는 나의 성장을 위해, 나의 구원을 위해 다가오신 또 다른 하느님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결혼은 현실입니다.

사람은 이슬만 먹고 살지 않습니다.

결혼은 사랑에 밥 말아서 먹고 사는 것일 거라는 환상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결혼은 때로 쓰디쓴 현실입니다.

길고 험난한 자신과의 투쟁입니다.

결혼은 수도생활 못지않은 오랜 자기 수련과 고행의 길입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동정녀의 결혼’(1670년).


■ 혼인은 성사(聖事)입니다

오늘 바리사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확대해석해서 너무나도 당연히

이혼장 운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고하고 독선적이며 아전인수의 대가인 바리사이들 앞에 예수님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아주 강경하게 결혼과 관련된 불변의 원칙을 재천명하십니다.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코 복음 10장 8~9절)

예수님 시대 당시 ‘이혼장’이 악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신명기 24장 1-4절에 근거한 것이지요. 거기 제시된 율법에 따르면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한 남편은 그 여인을 쫓아내기 전에 이혼장을 써야만 했습니다.

이 이혼장을 손에 쥔 여인은 전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혼장은 또한 재혼을 위해 필요한 서류였습니다.

모세는 너무도 문란한 결혼생활, 또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이혼장을 사용할 것을 당부했지만, 유다인들은 이 관습을 남용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이 관습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혼장은 점점 더 남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에게 수치스런 일’이란 원래 아내의 불륜만을 지칭했지만, 후에는 그에 대한 적용이 더 확대됐습니다.

결혼 후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는 아내, 남편과 말다툼 하는 아내,

친척 앞에서 불손한 태도를 취하는 아내, 베일을 쓰지 않고 외출한 아내,

다른 남자와 말을 하는 아내, 고기를 지나치게 바싹 구운 아내, 국을 끓였는데

간을 제대로 못 맞춘 아내, 가정사를 남에게 퍼트린 아내 등, 별의 별 이유를 들어 아내를 내쫓게 되었습니다.

이혼장은 유다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유다인들의 고집 센 기질, 굳어진 마음, 문란한 생활, 끝도 없는 타락 때문에

겨우 예외를 허락해 준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입법자로서의 모세는 당연히 이혼을 금하는 법령을 제정하고

일관되게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 히브리 민족의 윤리적 타락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을 돌아봅니다.

숱한 이혼들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합니다.

물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결혼생활보다는 이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예외적인 규정을 정해 이혼한 사람들을 구제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혼인은 성사(聖事)라는 점입니다.

하느님 안에 이루어진 거룩한 계약입니다.

이혼 앞에서 더욱 심사숙고를 거듭해야 마땅합니다.

 

 

msn036.gif교리·영성 퀴즈

■ 교리·영성 지면을 잘 읽고, 다음 퀴즈를 풀어보세요


문제 1-1.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죄로 찔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구원에

유익한 고통과 슬픔을 안고, 고해성사를 통해 믿음과 희망과 용기를 얻어

다시 죄와 싸울 새 마음을 갖는다.

따라서 고해소의 사제는 고해 신자에게 무한한 OO을/를 지닌 아버지의 표상이어야 한다.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말은?

문제 1-2. 가톨릭교회는 사회문제에 대해 “참 평화는 오로지 OO와 OO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고 가르친다.

빈 곳에 들어갈 알맞은 말은?

 

 

~~~~~~~~~~~~~~~~~~~~~~~~~~~~~~~~~~~~~~~~~~~~~~~~~~~~~~~~~~~~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께서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 올리십니다.

▣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이며 ‘전교의 달’입니다

묵주기도 성월은 개인과 가정 성화, 인류구원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치는 달로, ‘묵주기도 성월 기도문’을 바쳐주시기 바랍니다. 

    본당 묵주기도성월에 성모동산앞에서 9시45분에 실시할 묵주기도 일정입니다

        10/3(주일) - 하늘의 문- 환희의 신비

        10/10(주일) - 자비의모후-빛의 신비

        10/17(주일) - 상지의좌 -고통의 신비

        10/23(토요일) - 은총의샘 - 영광의신비

        10/24 (주일) - 레지오 간부- 환희의신비

        10/31(주일) - 순교자의모후 - 빛의신비

     직접 참여 못 하시더라도 함께 묵주기도 바쳐주셔도 좋겠습니다.

▣  지미경 데레사자매님께서 매실판매 하신 수익금을 주일학교와 한국학교에 도네이션 해 주셨고,

성탄 대림초를 만드셔서 성당에 봉헌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점차 심해지고 있는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고백성사 - 매 미사 30분전 고백성사 있습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금지 합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10월 매일미사책이 도착했습니다.

     성당입구에 있으며 각 권구입은 $5 입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Zarama 주교님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받았습니다.  

     미사 참례 하고자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미사에 신자분들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하시기 바랍니다.

     성체를 영하실때는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혹시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교황님의 10월 기도 지향}  

복음화 지향: 선교 제자들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복음의 향기를 풍기는 삶의 증거를 통하여 선교에 나서고 복음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T666Epd2k_Q - 10. 3. 2021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N7Wt0Qszf9Y - 10. 3. 2021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6-fkLCjfPUM - 10. 3. 2021 

 

 

4. VATICAN MEDIA LIVE 

     https://youtu.be/AuumDuU6PLE - Live

     https://youtu.be/ks29CijHNJQ - 2021년 9월 29일 교황 프란치스코 수요 가르침 말씀."의로움"

 

                               

언제나 주님을 제 앞에 모시어 당신께서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시편(16장 8절)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392 (자)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2021년 12월 5일 AdelaKim Adela 2021.11.30 81
391 (자) 대림 제1주일 2021년 11월 28일 AdelaKim Adela 2021.11.24 50
390 (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2021년 11월 21일 AdelaKim Adela 2021.11.16 58
389 (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2021년 11월 14일 AdelaKim Adela 2021.11.10 70
388 (녹)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2021년 11월 7일 AdelaKim Adela 2021.11.03 64
387 (녹) 연중 제31주일 2021년 10월 31일 AdelaKim Adela 2021.10.27 52
386 (녹) 연중 제30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2021년 10월 24일 AdelaKim Adela 2021.10.20 69
385 (녹) 연중 제29주일 2021년 10월 17일 AdelaKim Adela 2021.10.12 103
384 (녹) 연중 제28주일 2021년 10월 10일 AdelaKim Adela 2021.10.06 47
» (녹) 연중 제27주일 2021년 10월 3일 AdelaKim Adela 2021.09.30 67
382 (녹) 연중 제26주일 2021년 9월 26일 AdelaKim Adela 2021.09.23 55
381 (녹) 연중 제25주일 2021년 9월 19일 AdelaKim Adela 2021.09.15 62
380 (녹) 연중 제24주일 2021년 9월 12일 AdelaKim Adela 2021.09.08 80
379 (녹) 연중 제23주일 2021년 9월 5일 AdelaKim Adela 2021.09.01 86
378 (녹) 연중 제22주일 2021년 8월 29일 AdelaKim Adela 2021.08.26 84
377 (녹) 연중 제21주일 2021년 8월 22일 AdelaKim Adela 2021.08.19 3328
376 (백) 성모 승천 대축일 2021년 8월 15일 AdelaKim Adela 2021.08.11 71
375 (녹) 연중 제19주일 2021년 8월 8일 AdelaKim Adela 2021.08.05 66
374 (녹) 연중 제18주일 2021년 8월 1일 AdelaKim Adela 2021.07.29 78
373 (녹) 연중 제17주일 2021년 7월 25일(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AdelaKim Adela 2021.07.22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