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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주보입니다.

(자) 사순 제1주일 2022년 3월 6일

AdelaKim Adela 2022.03.01 23:33 조회 수 : 135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363-0408      Fax: (919) 363-0409

입당송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 오래오래 살도록 그에게 복을 내리리라.

제1독서  신명  26,4-10

화답송

◎ 주님, 환난 가운데 저와 함께 계시옵소서.
○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아래 사는 이,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안에 머무는 이,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 나의 산성, 나의 하느님, 나 그분께 의지하네.” ◎
○ 너에게는 불행이 다가오지 않고, 네 천막에는 재앙이 얼씬도 못하리라. 그분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가 가는 모든 길을 지켜 주시리라. ◎
○ 행여 네 발이 돌부리에 차일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너는 독사와 살모사 위를 거닐고, 힘센 사자와 이무기를 짓밟으리라. ◎
○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 내 이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 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환난 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며,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 ◎

제2독서  로마  10,8-13

복음 환호송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복음  루카  4,1-13

영성체송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생명의 말씀  

    광야에서도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 서울대교구 총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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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유다 광야 전경.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면서 인류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는데,

악마가 다가와 방해 공작을 편 것입니다.
먼저 악마는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바꿔보라고 요구합니다.

물질로 백성의 마음을 얻으라는 유혹입니다. 

 

‘하느님은 모세의 백성에게 빵을 내려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지 않았던가?

메시아라면 백성에게 먹을 빵과 살 땅을 보장해 줘야 하지 않는가?’ 

의식주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빵이 절대화되고 물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생각, 경제 제일주의의

유혹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 8,3)
이어서 악마는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막강한 세상 권력과 눈부신 영화로 백성의 마음을 휘어잡으라는 유혹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적 번영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지 않았던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라면 마땅히 그런 권세와 영화를 갖춰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세속 권력과 영화를 절대시하면 반드시 큰 폐해를 낳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응대하십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 6,13 참조)

 

마지막으로 악마는 성경까지 유혹의 도구로 삼습니다.

시편 91편 11절-12절에서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의인을 보호해 주신다고

했으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빌려 메시아임을 공개적으로 입증하여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라는 유혹입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함으로써 참된 하느님을 드러냈듯이

(1열왕 18,20-40), 메시아도 그래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내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느님께 기적을 요구하는 것은 신앙을 거스르는 짓입니다.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하느님을 나의 일꾼으로

삼아 내 뜻과 욕망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유혹도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마라.”(신명 6,16 참조)
우리 인생 여정에는 광야처럼 힘든 시간이 종종 있습니다.

그때마다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느님보다는 재물과 권력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 나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하느님까지 이용하고자 하는 욕심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유혹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광야에서도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몸소 유혹을 당하고 극복하셨던 그분은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유혹의

목소리를 떨쳐버리도록 도와주고 격려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제2독서)

 

 

 

msn035.gif     [2022년 교구장 사순 메시지        

 “하느 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 운 때입니다.”(2코린 5,20; 6,2)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3년째 이어지면서 모두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겪으면서 신앙생활을 마음껏 하지

못하고 많은 분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여의거나 혹은 경제적 궁핍함을 겪거나,

혹은 소중한 꿈들을 접어야 하는 절절한 아픔과 상실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은 여러가지를 새롭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전 지구적 환경이 하나의 공동체임을 더 느끼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2년여 전에 지구상 어딘가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수억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수백만명이 코로나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상황을

겪으면서, 어느 한 나라만 잘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라 온 세상이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함을 우리 모두는 단단히 배우고 있습니다.

 

全 지구 공동체적 대응과 병행해서 함께 가야 할 사실 하나는, ‘모두’와 ‘각자’는 사실

다른 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두’가 있기에, 우리 ‘각자’가 존립할 수 있고, 우리 ‘각자’가 있어 ‘모두’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모두’를 새롭게 하기 위해, ‘각자’ 하느님앞에 진실되이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하느님께서 초대 해 주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아픔과 상실들 속에 하느님은 우리를 저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 고통속에 말없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방향 잃고 헤매는 청춘들만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를 향해 많은 것을 이루어왔던 지난

시간들이 우리 손을 떠나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 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말없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사순 시기, 이제는 “하느 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 5,20)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당신 아드님을 대신 피 흘리게 하시고 죽음에 부치시어 우리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덧붙여 3월 9일은 우리가 20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입니다.

 

‘정치가는 사랑의 장인’이 되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모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는 분을 새 대통령으로 보내주시기를 주님께 청합시다.

이 사순 시기, 십자가 위의 아드님 예수를 통해 하느님의 변함없는 그 사랑을 다시 느껴보십시오.

성체 안에서 예수님을 깊이 만나십시오.

이웃 안에서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보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 운 때입니다.”(2코린 6,2)

 

msn036.gif [말씀묵상]  

    사랑을 알 만큼 아는 그리스도인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사순 시기, 사제는 보라색 제의를 입고 참회의 미사를 거행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온 인류가 순결한 영혼으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은총이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요원하기만 하니 교회의 청원이 더욱 간절하고 간곡하고 깊습니다. 제발 주님의 극심한 고통을 보라색 제의로 기리는 교회의 모습이 주님께 사랑스럽기를 청하며 “초록에 핏물이 들어야 보라가 될 수가 있다. 고통의 단련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보라. 보라는 삶을 알 만큼 아는 사랑의 색, 사랑을 알 만큼 아는 자의 색이다”(장석주, 「색채의 향연」)라는 글로 세상에 위로를 건네봅니다.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지 말고 순명하여 살아갈 것을 당부하는 모세의 길고 긴 이별사의 일부분입니다. 그때 모세의 이별사를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찌 이런 일이…!” 싶었을 것도 같고 눈앞이 캄캄해졌을 것도 같은데요. 모세야말로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 말입니다. 이제 더 이상은 모세와 함께하지 못하는 현실이 혼란스럽고 막막했을 것이 뻔하니 말입니다.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그들이 눈에 밟혀서 모세의 이별사가 이리도 길고 섬세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이별이라는 단어를 적고 보니 불현듯 신학원장의 소임을 맡아 예상보다 빨리 본당을 떠나오던 날이 기억납니다. 매서운 ‘대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에도 따뜻이 제 길을 배웅해주셨던 월평성당 신자분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지막 열흘, 작별 인사를 겸해서 매일 신자분들을 뵈었는데요. 마지막 주일 강론을 하다가 목이 메었습니다.
새 본당에서의 새 생활을 기대하며 희망에 부풀어 세웠던 많은 계획들이 무산되었고 서로 약속하고 함께 다짐했던 일들을 맥없이 놓아 버리며 허탈했던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저는 팬데믹을 핑계 삼아서 마냥 ‘먹고 놀다가’ 떠나는 꼴이었습니다.

수고도 사랑도 한참 미진했다는 생각에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으로 품어주신 본당 가족분들께 감사가 차올랐습니다.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해 올리며 사순 제1주일에 선포되는 입당송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는 축복이 그곳에 고스란하기를 손 모아 기도드려봅니다.

 

산드로 보티첼리 ‘그리스도의 세 가지 유혹’ (1481~1482년).


더러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너무 직설적이고 솔직하며 담백하다는 점에 놀랄 때가 있는데요. 오늘 복음이 더욱 그렇습니다. 사탄이 감히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마저도 유혹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사탄의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비는 뻔뻔함을 폭로하고 있기에 그러합니다.

상대가 누구든지 가리지도 않고 갖은 수를 써서 유혹하려 드는 건방지고 돼먹지 않은 사탄의 술수에 걸려들지 않는 방법은 오직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뿐임을 콕 짚어주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백번천번 아니 일평생 한결같이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는 권고를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사순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은혜를 예사로 여기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적지는 ‘아버지 집’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곳에 도착하는 그날까지 예수님 사랑을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온 삶과 온몸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내는 참믿음을 채워 지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가 아무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일까요? 전혀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짜로 그저 쏟아주셨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세상의 방법처럼 자신의 역량으로 쟁취한 성취물이 아닌 까닭일까요? 말할 수 없이 큰 하느님의 은총을 가벼이 여기고 허투루 받아들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도대체 주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을 지켜 따를 생각이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그분의 명령을 ‘따로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작정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모두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본이 되기는커녕 세상을 쫓아가느라고 숨이 가쁜 이유일 것입니다. 세상에 덕을 끼치기는커녕 외려 세상 덕을 보려 하는 못난 삶을 살아가는 까닭일 것입니다. 슬프고 슬픈 일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이러하니, 낯뜨겁습니다.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라는 성경 말씀이 얼마나 무색할지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은혜는 공짜가 아닙니다. 인간의 언어로 감히 표현될 수 없을 만큼 벅찬 사랑의 결실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삶을 고민해야 합니다. 아주 사소한 만남에서도 주님의 복음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으로부터 생성되어
영혼을 채우는 축복을 놓치지도 잃지도 않아야 옳습니다.

복된 사순 내내, 그분 사랑과 접속하여 사랑의 은혜에 감전되어 지내면 좋겠습니다. 주님 사랑을 ‘알 만큼 아는’ 지혜자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하여 초록색 마음에 희생의 핏물을 들인 사랑의 진수를 살아내시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사순의 시작, 온 세상을 위하여 기쁨과 감사로 고통당하시는 주님께 힘을 보태드리기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며 헌신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길 바라고 원하며 청합니다.

 

 

 

msn008.gif          하느님의 집, 야곱의 사다리

                  김광현 안드레아 |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야곱은 어떤 곳에서 돌을 베고 누워 자다가 꿈에, 하늘에 닿아 있고 하느님의

천사가 오르내리는 층계를 보았습니다.

깨어나 보니 그곳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 말씀하시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또 그곳은 자신이 서있는 곳임도 깨달았습니다.

그가 꿈꾼 ‘이곳’은 하늘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는 계단, 이 땅과

하늘을 결합하는 문이자 세계축(axis mundi)이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에 싸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domus Dei)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porta coeli)이로구나.”(창세 28,17) 

성당을 ‘하느님의 집’, ‘하늘의 문’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이처럼 성당의 원상을 처음으로 깨달은 이는 야곱이었고, 그것을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처음 말한 이도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엄청난 꿈을 층계, 집, 문, 기둥, 돌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모두 집을 만드는 요소입니다.

기둥을 세우고 벽을 두르지도 않았는데 하느님께서 계신 그곳을 하느님의 집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참 이상합니다.

인간에게 집이 무엇이기에 야곱은 하느님께서 계신 곳을 감히 사람이 사는 집,

드나드는 문으로 말했을까요?

집이란 그만큼 인간에게 근원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베고 잤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워 기름을 붓고 주변과 격리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둥이 거룩한 하느님의 집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창세 28,22) 

이것이 인류 최초의 성당이니 최초의 성당 건축가는 야곱입니다.

영어 성경에 기둥을 ‘a pillar’라 했는데, 이는 지붕을 받치는 똑바로 선 둥근 기둥을 말합니다. 

기둥을 세우면 지붕을 세운 것과 똑같습니다. 따라서 수직으로 기둥을 세우는 것

만으로 그 자체가 집을 짓는 건축 행위입니다.

꿈속에 야곱의 사다리로 나타난 하느님의 집이, 벽과 지붕으로 구축된 하느님의

집으로 이 땅 위에 지어진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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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벽은 사람들을 에워싸는 땅, 꼭대기의 돔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하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기념 기둥을 세운 야곱처럼, 건축가들은 야곱의

사다리를 돌로 구축한 표현물인 성당을 무던히도 애써 지어왔습니다.

제대 위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빛은 다시 제대를 환하게 밝혀 줍니다.

이렇게 돌로 지어진 수많은 빛의 성당이 바로 오늘날의 야곱의 사다리입니다.

더구나 야곱은 기념 기둥을 세우고 그 고장의 이름을 루즈에서 ‘베텔(Bethel, beth El, house of God)’,

곧 ‘하느님의 집’으로 바꾸었습니다.

기념 기둥을 세우니 고장도 하느님의 집이 되고 맙니다.

기념 기둥이 미치는 힘이 그토록 넓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당이 세워지면 주변의 땅 전체가 하느님의 집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성당은 이렇게 지역까지 하느님의 집으로 바꾸는 야곱의 사다리입니다.

 

 

msn036.gif 교황님 말씀 -  ‘전쟁’을 생각하는 신앙인,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청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우리에게 주시며 기뻐하실까요?

사랑할 수 있는 힘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물건이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성령이십니다.

예수님의 영을 통해 우리는 선으로 악에 대응할 수 있고,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행동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자부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전쟁을

하려고 생각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릅니다! 몹시 슬픈 일입니다.

 

2022년 2월 20일

연중 제7주일 삼종기도 훈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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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 주중.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서 보실 수 있으십니다.

 

 사순 시기

사순은 본래 ‘40일’이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중대한 사건 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야 예언자도 호렙산에 갈 때 40일을 걸었습니다.

이 시기동안 신자들은 참회와 희생, 극기, 회개와 기도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합니다.

또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부활 대축일을 준비합니다.

▣ 본당 신부님의 일정관계로 3월 9일(수)과 23일(수)에 10시 미사가 없습니다

착오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 3월은 성 요셉성월로 미사 시작전 기도로 성 요셉께 드리는 기도를 바치겠습니다.

▣ ‘재의 수요일’ 예식을 3월5일(토) 저녁미사와 3월6일(주일) 미사에도 재의 예식을 거행합니다. 

▣ 부활 판공성사가 재의 수요일(3월2일) 이후 부터 있겠습니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미사 전, 주일은 미사 후에 있습니다.

▣ '십자가의 길'이 사순 첫주 3월6일(주일)부터 시작됩니다. 

올해는 신자분들의 많은 참여하기를 바라며 '십자가의 길'을 주일미사 전에 진행합니다.

각 구역 '십자가의 길' 스케줄 - 매 주일미사 시작 전 오전 9시45분

  • 3월6일 - 요한 구역
  • 3월13일 - 베드로 구역 (참고: 썸머타임 시작)
  • 3월 20일 - 안드레아,토마 구역
  • 3월 27일 - 야고보 ,필립보 구역
  • 4월3일 - 시몬구역
  • 4월 10일 - 타데오 구역
  • 성 금요일 미사 시작 전 오후 7시15분 -  전신자

▣ 교구청에서 2차헌금 요청이 아래와 같이 있습니다.

  • 3월2일 (재의 수요일) - 중동부 유럽 교회를 위하여   
  • 3월5일, 6일 (사순 첫째 주) - 흑인과 인디언 선교를 위해
  • 3월 26일, 27일 (사순 넷째 주) - 가톨릭 구호단체를 위하여
  • 4월15일 (성 금요일) - 성지(Holyland)를 위하여
  • 4월24일 (하느님의 자비주일) - 가톨릭 가정선교 관심을 위해

▣  2022년 3월 매일미사책이 도착했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매월 각권은 $7 이며, 각 권 구입시 4월미사책은 $10 입니다.

정기 구독료는  신청 개웙 x $7 하시면 됩니다.

신청하시는 방법은 아래 봉헌금내시듯 여러방법으로 신청하시면 되겠습니다.    

▣ 2022년도 BAA(Bishop's Annual Appeal)   

1. 교구청에서 우편으로 BAA를 받으신 분은 용지에 기재하셔서 직접 우편발송 하셔고 되고

2. 성당에 나오시는 분은 BAA 봉투를 봉헌함에 봉헌 (빈 봉투 성당에 비치)

3. 체크로 보내시고자 하시는 분은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우편발송

4. 또는 온라인으로 직접봉헌 - GivetoBAA.org (저희 본당 고유번호는 614 입니다)

 * BAA Tax 공제는 저희 본당과는 무관하고 교구청에서 직접 발송됩니다.

▣ 2021년 텍스보고 안내

2021년 Tax Form은 예년처럼 e-mail로 (전자우편) 보내드릴 예정이오니

필요하신분들께서는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이나 각 구역장님께 

세대주 이름과 영문이름을 함께 신청 해 주시기 바라며, 신청하시는분들께만 발송 할 예정입니다.

이메일 신청은giving.spjcc@gmail.com  

▣  "공현스티커" 배포

성당 입구에 "공현스티커" 를 배치 해 두었으니 미사 때 오셔서 필요하신 만큼 

가져가십시요. 

※ 사용법: 주로 드나드는 현관 위 문틀이나 문 자체에 스티커를 붙입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려 붙이기, 나중에 페인트 벗겨짐에 주의)

▣  전세계적으로 오미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CDC에서는 오미크론에 천 마스크나 덴탈용 마스크는 면역력이 떨어지므로, KF 94

등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성체를 영하실때에도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사 참례 하고자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  점차 심해지는 변형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Zarama 주교님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받았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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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의 2월 기도 지향}  

일반: 여자 수도자들과 축성 생활자들

여자 수도자들과 축성 생활자들의 사명과 용기에 감사하며, 우리 시대의 도전들에

대한 새로운 응답들을 끊임없이 찾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교황님의 3월 기도 지향}  

일반: 생명 윤리의 도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

생명 윤리의 새로운 도전에 맞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실천으로 언제나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을 수호하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a54xk3boEK0 - 3.6. 2022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Nk_17w5L_g4 - 3.6. 2022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69Rj0Wc7z50​ - 3.6. 2022 

     

 

4. VATICAN MEDIA LIVE 

     https://youtu.be/JuRrQgW5J4Y​​​ - Live

     https://youtu.be/H8KxEBlBRp0 - 2022년 3월2일 프란치스코 교황님 수요 가르침 말씀​ "기회와 상징인 장수"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들아,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여라. 시편(103장 1절)​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473 2023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일  file DongsooBang Clare 2023.07.27 50
472 2023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일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file DongsooBang Clare 2023.07.20 61
471 2023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일 (농민 주일)   file DongsooBang Clare 2023.07.12 64
470 2023년 7월 9일 연중 제14주일   file DongsooBang Clare 2023.07.06 67
469 2023년 7월 2일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file DongsooBang Clare 2023.06.29 54
468 2023년 6월 25일 연중 제12주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file DongsooBang Clare 2023.06.23 56
467 2023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일 file DongsooBang Clare 2023.06.16 57
466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3년 6월 11일) file DongsooBang Clare 2023.06.08 63
465 2023년6월4일(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6.02 106
464 2023년5월28일 성령 강림 대축일(청소년 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5.26 136
463 2023년 5월 21일 주님 승천 대축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5.21 64
462 2023년5월14일 부활제6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5.12 92
461 5월07일2023년 부활 제4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5.06 63
460 2023년4월23일 부활 제3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4.21 106
459 2023년4월8일 파스카 성야미사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4.07 111
458 2023년 4월9일 주님 부활 대축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4.07 151
457 2023년4월7일 주님수난 성금요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3.31 126
456 2023년4월6일 주님만찬 성목요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3.31 77
455 2023년4월2일 주님수난성지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3.31 114
454 2023년3월26일 사순 제 5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3.24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