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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주보입니다.

(녹) 연중 제21주일 2021년 8월 22일

AdelaKim Adela 2021.08.19 03:42 조회 수 : 4304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사목회장: 김귀옥 (테오도라)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414-9256      Fax: (919) 363-0409

제1독서  여호  24,1-2ㄱ.15-17.18ㄴㄷ

화답송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 부르짖음 들으신다.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
○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
○ 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 그의 뼈를 고스란히 지켜 주시니, 뼈마디 하나도 꺾이지 않으리라. ◎
○ 악인은 악행으로 죽음을 맞고, 의인을 미워하는 자 죗값을 받으리라. 주님이 당신 종들의 목숨 건져 주시니, 그분께 피신하는 이 모두 죗값을 벗으리라. ◎

제2독서  에페  5,21-32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복음  요한  6,60ㄴ-69

영성체송   

주님, 땅은 당신이 내신 열매로 가득하옵니다. 당신은 땅에서 양식을 거두게 하시고, 인간의 마음 흥겹게 하는 술을 주시나이다.

 

생명의 말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요한 6,68)

                         이광휘 베드로 신부 | 사회사목국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예전에 일본에서 선교 사목을 하시는 신부님의 본당 신자분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신자 비율은 극히 적어 가톨릭은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제가 한 신자분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세요?” 이 물음에 자매님은

 “하느님은 목발과도 같은 분이십니다.

예전에 성지순례를 준비하던 중 발목에 문제가 생겼는데, 목발의 도움으로

포기하지 않고 순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생에서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느님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래아 복음 선포 활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으로,

외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는 매우 초라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초기에 병자들을 고치시고 마귀들을 추방하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또 남자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군중을 먹이시자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까지 하는 인기 절정의 시기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체성사에 대한 설교를 시작하시고 결단을 요구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되돌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주위에는 겨우 베드로를 위시한 열두 제자만 남았다는 내용이 오늘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제자들이 떠나갔을까요?

복음은 성체성사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사실, 동물의 피까지도 엄격히 금하는 유다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평하며 떠나갑니다.
 

인간의 사고방식과 생각, 개인의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결코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주시는 상황과 뜻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눈으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길을 받아들이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끝부분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이를 통해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베드로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베드로는 그동안 주님과 함께 머문 세월과 체험을 통해 믿고 있었고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그 길은 분명 그분께서 함께하시며, 도움을 주시고 살리시는

 ‘생명의 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당장 세상의 눈과 세속적인 가치로 볼 때는 불합리해 보이고

손해 보는 길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참된 기쁨과 행복, 생명을 가져다줄 것임을

믿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택합니다.

그리고 후일에 그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을 통해 영광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여호 24,15)

 

 

 

 

[생활속의 복음] - 한눈 팔지 않겠다는 결단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아이유, 임슬옹이 부른 노래 ‘잔소리’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이야기, 니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

부모님이 자식에게 하는 말이든, 친구 혹은 연인 사이에 하는 말이든 우리가

‘잔소리’라고 부르는 그 말은 ‘뻔한’ 내용이라 듣기 싫고, 어떨 때에는 아픈 부분을

찌르기에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 나 잘되라고 하는 말입니다.

어차피 안 들을 거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상대방이 잘못된 선택을 해 상처받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마음 아파서 그것이 ‘잔소리’가 될지라도 안 할 수가 없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그분 말씀이 ‘잔소리’로 들렸나 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많은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에 ‘듣기 거북하다’는 반응을 보이지요.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아닙니다.

자기들이 예수님께 기대하고 바라던 바와 다르고 양심에 찔리기에 불편함을 느끼고 밀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듣기 좋고 달콤하면 좋겠지만 듣기 거북하거나 귀에 거슬릴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돈을 더 벌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은 외면하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직역하면 ‘이것이 너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느냐?’ 입니다.

우리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돌의 잘못이 아닙니다.

앞을 살피지 않은 탓이지요.

우리가 예수님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그분 말씀이 잘못되어서가 아닙니다.

욕심과 고집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보지 않고 다른 곳에 한눈을 파는 우리 탓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듣기 불편하다는 것은 그것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하다는 반증입니다.

그 말씀은 내 마음의 해로운 생각들을 쳐내기에 아프지만, 그만큼 나에게

꼭 필요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줍니다.

그러니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말씀일수록 그것을 내 삶과 연결해 깊이 묵상하고

성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듯’, 귀에 거슬리는 그 말씀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영약’이 될 거라고 믿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도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결단하라고 하십니다.

그들도 예수님 말씀에서 불편함을 느낀 것은 마찬가지임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마당에 이제 와 그분을 떠나봐야 딱히 뾰족한 수도 없어

떠나지도 못하고 뭉그적대고 있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모호한 태도로는 구원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없기에, 단호한 결단으로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하시는 것이지요.

지금 제자들이 마음으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그것을 택할 만큼, 예수님과 함께 누릴 기쁨과 영광을 포기할 만큼 중요한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는 오직 예수님께만 있고, 예수님이 아니면 다른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온전한 ‘투신’을 의미하며, 예수님 외에 다른 것들에 한눈팔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비롯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만 믿고 따르기로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믿음이란 ‘보장된 미래’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불확실한 현재’ 상황에서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위험과 어려움, 고통과 불편 속으로 뛰어드는 일입니다.

 

승천을 지향하는 삶을 살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게 될 것입니다.              

 

msn008.gif [말씀묵상]  믿음, 그것은 거룩한 고집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바람이 분다. 어쨌든 살아내야겠다.”(폴 발레리)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 숲에 들어갈 때 한 가지씩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기후위기에서 기후재앙으로 바뀌면서 숲도 진통을 겪습니다.

나뭇잎들이 마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살라버린 것처럼 말라버리고

쓰러지는 나무 기둥들도 보입니다.

그러나 마른 잎과 죽은 나무는 살아있는 나무들의 거름이 되면서 숲을 유지시킵니다.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숲을 보면서 믿음을 살아내기

위해 매일 어떤 노력을 하는지 마음을 여며 봅니다.

■ 복음의 맥락
복음(요한 6,61-69)은 연중 제17주일부터 시작된 빵의 담화를 마무리합니다.

요한은 본문에서 믿음의 부정적인 모델과 긍정적인 모델을 나란히 소개하는데 모두가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예수님의 계시 앞에서 믿지 않은 사람과 믿는 사람, 떠나는 사람과 남은

사람이 명확하게 갈라집니다. 중간에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서는 믿음의 책으로, 이 책의 모든 내용은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로 요약됩니다.

요한 자신은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을 “예수님을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20,31 참조)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믿음과 영원한 생명이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서 영원한 생명을 갖습니다.

■ 믿음과 선택
제1독서의 여호수아 이야기에 비추어 복음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한 뒤에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며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는 것임을 모범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여호수아의 모습은 열 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라고 질문하는

예수님 모습과 비슷합니다.

열 두 제자와 구별되는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그분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없어 제자직을 포기합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열 두 제자에게는 살아있는 교육이 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고 싶으냐?”라고 묻는 것은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삶의 근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평생 예수님을 따라다닌다는 것은 큰 불행이요 슬픔, 의미없는 소모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 옆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베드로는 예수님 어조에서 스승이

자신들을 격려한다고 느낀 듯합니다.

그래서 열 두 제자를 대표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자체를 가리키는데 그분이 생명을

주는 빵, 생명을 주는 빛처럼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분이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목자로서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이들에게 현세의 축복과 성공, 건강, 부, 미래가 보장되는 안전한

직업이 아니라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직접 받은 하느님의 생명, 인간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하느님 자녀의 풍요로운 삶을 약속합니다.

믿는 이는 내세가 아니라 살아서 이런 삶을 살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후서에서 사도란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요한의 용어로 바꾸자면 생명의 원천으로 선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생명이 자신 안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룻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7)

믿는 이는 모두 바오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열두 사도 (이콘).


■ 믿다와 알다
베드로는 이어서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시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믿다’라는 동사가 ‘알다’라는 동사로 명시되는데 요한의 다른 구절에서는 ‘보다’와도 연결됩니다.

믿음은 추상적이고 비이성적인 것, 애매모호한 것,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안다’는 것은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메마른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 내면화와 관련됩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그가 100%의 믿음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간청이자

“제 믿음과 지식을 더욱 깊이 있게 해주십시오. 제가 믿음을 살아내기 위해 더

노력할 수 있도록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오만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쉽게 살아있는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생생한 믿음은 육신이 쇠락하는 과정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육신은 세월이 흐르면 약해지고 죽습니다.

그러나 믿음, 영적 실재는 우리가 그것을 살아내기를 원하는 정도에 따라 성장합니다.

어떤 거친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쉽게 스러지지 않으며, 끝없이 싹을 띄우고 꽃을 피웁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를 우리 생명의 원천인 살아있는 하느님과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코로나19 시기를 연대하며 함께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하느님의 영은 우리 안에 부드러운 마음. 경청하는 마음을 창조합니다.

그런 마음은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하느님을 믿고 그분을 알도록,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닫게”(화답송) 인도합니다.

이 시기에 믿음을 잃지 않는 태도, 믿음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는 거룩한 고집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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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께서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말씀 살기'에 올리십니다.

 

▣  토요 특전미사 각 구역별 스케줄은 아래와 같습니다.

      8월 21일 - 필립보구역

      8월 28일 - 안드레아구역

     9월부터 모두가 참여 하실 수 있는 토요 특전미사로 돌아갑니다. 

▣  점차 심해지고 있는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고백성사 - 매 미사 30분전 신부님께서 고백성사를 주십니다. 

▣  미사 해설자가 필요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김 용태 바오로형제님께( 305-772-2729)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학교와 주일학교 2021 - 2022 학년도 개강 안내

     이번 학기 부터 SPJCC 주일학교와 한국학교는 하나의 학교로 운영됩니다.

     개강일 : 9월4일 토요일 오후 3시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

     학사일정: 9월4일 부터 12월 9일까지 (11월 27일 Thanksgiving week 후강)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 5시까지

     온라인을 통해 주일 복음말씀을 함께 음미하고 한국어 교육을 심화하고자 합니다.

     등록문의:  주일학교 - 나부덕 율리안나 교감선생님  chakhanori@gmail.com 

                     한국학교 - 김유미 마더 데레사 교감선생님 yoomi5717@gmail.com.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금지 합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Zarama 주교님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받았습니다.  

     미사 참례 하고자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미사에 신자분들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하시기 바랍니다.

     성체를 영하실때는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  9월 매일미사책이 성당입구에 있으며 각 권구입은 $5 입니다.

     정기 구독 신청하실 분은 편영준 미카엘 형제님 혹은 성당 (SPJCC)  ( 정기구독은 신청개월 수 x $5 )  

     성당 주소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Pay to the order of : SPJCC  

    체크 메모칸에 " 매일미사" 라고 꼭 표시 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혹시 원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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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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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의 8월 기도 지향}  

복음화 지향: 교회

성령께서 교회에 은총과 힘을 베풀어 주시어 교회가 복음의 빛으로 쇄신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YZOzne3S_LA - 8.22. 2021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mW3ARwpWc8E​ - 8.22. 2021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V0QR9TCxvGI​ - 8.22. 2021

 

4. VATICAN MEDIA LIVE 

     https://youtu.be/FMlHS5f27PU - Live

     https://youtu.be/r0KEmT2jA88 2021년 8월18일 프란치스코 교황님 수요 가르침 말씀 

                                                                            "율법의 기초적 가치"

 

 

 

 

                               

악인에게는 고통이 많으나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자애가 에워싸리라. 시편(32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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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 2023년6월4일(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6.02 106
464 2023년5월28일 성령 강림 대축일(청소년 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5.26 136
463 2023년 5월 21일 주님 승천 대축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5.21 64
462 2023년5월14일 부활제6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5.12 92
461 5월07일2023년 부활 제4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5.06 63
460 2023년4월23일 부활 제3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4.21 106
459 2023년4월8일 파스카 성야미사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4.07 111
458 2023년 4월9일 주님 부활 대축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4.07 151
457 2023년4월7일 주님수난 성금요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3.31 126
456 2023년4월6일 주님만찬 성목요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3.31 77
455 2023년4월2일 주님수난성지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3.31 114
454 2023년3월26일 사순 제 5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3.24 125
453 2023년 3월 19일 사순 제 4주일 인정맥브라이드 바라 2023.03.17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