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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사목회장: 김귀옥 (테오도라)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414-9256      Fax: (919) 363-0409 

입당송ㅣ루카 2,16

목자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보았네.<대영광송>

제1독서  집회 3,2-6.12-14

화답송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제2독서  콜로 3,12-21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의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게 하여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여라.

복음  루카  2,41-52

영성체송   

우리 하느님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사람들과 함께 사셨네.

 

 

   생명의 말씀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시편 128, 1)

                          

                   

                                     이광휘 베드로 신부 | 해외선교(프랑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녀의 이른 죽음은 부모가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아파하며 살아간다는

말이겠습니다.

 얼마 전 저희 본당 자매님 한 분의 아기(가브리엘)가 태어나자마자 하느님 품에

안기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본당의 모든 신부들과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며 아픔을 함께했고, 남은 가족들은

서로 안아 주고 위로해 주며 아픔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가정, 공동체가 있기에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나가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교회는 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을 성가정 축일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나자렛 성가정을 특별히 기억하고 그 모범을 본받아 신앙 안에서

화목하게 가정생활을 이루어나가기를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성가정이라 일컫는 예수님의 가정을 살펴봅니다.

 

이 가정은 좋은 것으로만 가득하다는 식으로 세상이 말하는 행복한 상상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가정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촌 동네의 목수 집안이었기에

가난한 가정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 예수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집트의

머나먼 타향살이로 힘겨운 생활을 해야 했던 난민 가정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의 치욕적인 십자가상의 죽음 때문에 어머니 마리아는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당해야 했고,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아버지 요셉 성인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그 생활이 어렵고 힘겨웠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성가정은 가난과 어려움, 고통 등 불행의 요소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다지도 세속적으로 불행해 보이는 가정을 왜 성가정이라

부르면서 이 가정의 모범을 따르라 권고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성가정이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길을 걸으며 순종한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요셉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가정의 가장이 되셨고, 어머니 마리아는

천사를 통한 아들의 잉태 소식에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합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강생(하느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심)과

십자가상의 죽음을 순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성가정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소명의 길을 충실히 걸었던 가정이었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이 세상의 모든 가정이 이 성가정을

본받아 가정 공동체 안에서 동정과 호의,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옷을 입고,

서로 참아주고 용서하고 위로해 주고 사랑하며, 평화 안에서 그분의 길을 걷는 이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msn008.gif  [생활속의 복음]         

     지극한 사랑으로 오신 주님! 기뻐하여라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프랑스 북부의 한 거점에서 독일군과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서로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피 말리는

접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차가운 전장에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채 성탄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먼저 연합군 진영에서 백파이프로 캐럴을 연주하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러자 독일군은 그 음악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릅니다.

 

각자의 진영에서 성탄을 기념하던 그 마음이 서로에게 전해져 ‘공명’을 일으킨 것입니다.

소통의 자리를 마련한 그들은 이 기쁜 날, 단 하루만이라도 이 참혹한 전쟁을 멈추자며

일시적인 ‘휴전협정’을 맺습니다.

한목소리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함께 모여 성탄을 보냅니다.

그렇게 짧은 휴전이 끝나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간 군인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총을

겨눌 수 없었습니다.

같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을 함께 기뻐한 그들은

이미 적이 아닌 친구, 형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 유명한 이 ‘크리스마스 정전’ 이야기는 신앙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신앙은 복을 받기 위한 ‘처세’도 아니고, 죽음 이후를 대비한 ‘보험’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내 삶 안에 들어오셨다는 데에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기쁨을

통해 이 세상에서 그분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제자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그런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비춰주시는 진리의 빛, 희망의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고통과 시련, 슬픔과 두려움의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실체도, 존재도 없는 어둠은 빛이 우리를 비추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입니다.

일 년 가운데 밤이 가장 긴 이 시기에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밝게 빛남을 기억하며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함인 것이지요.

주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빛, 사랑의 빛을 비춰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금세 흘러가버릴 물이 아니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당신의 의지를 곧 현실로 만드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말씀’께서 우리와

똑같은 존재가 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원문은 본래 ‘육신’ 즉, 물질적인 ‘몸’을 가리킵니다.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이신 분께서 굳이 물리적인 한계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사람이 지닌 약함과 부족함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이셨다는 뜻입니다.

세상과 동떨어진 ‘구경꾼’으로 남지 않고, ‘방관자’로 계시지 않고, 적극적으로 세상

속으로, 우리네 고된 삶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더 직접적으로 사랑하고, 더 잘 이해하며, 더 깊이 공감하시기 위해

기꺼이 당신 자신을 내려놓고 낮아지십니다.

그런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사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살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원문은 직역하면 ‘천막을 치고

함께 거주하다’는 뜻입니다.

즉, 주님은 우리와 같은 시공간에 있으면서도 ‘딴 세상’을 사는 부자나 권력자들처럼

되지 않으시고,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와 ‘같은 처지’로 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 높고 화려하며 안락한 자리에는 주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 필요할 때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겪는 슬픔과 괴로움을 함께 겪으시면서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시며 함께 걸으십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형제자매들 안에 계신 ‘임마누엘’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뜻을 헤아리며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실천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또다시 태어나시고 현존하십니다.

                             

 

 [말씀묵상]  성탄 구유 앞에서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

 

한적한 어촌 마을 작은 언덕 위, 아담한 저희 공동체 경당 안에 꾸며진

성탄 구유 앞에서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우주의 창조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인 한 인간의 팔에 안겨있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삼라만상을 다스리시는 왕 중의 왕이신 하느님께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포대기 위에 누워계신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틈만 나면 올라가려고 기를 쓰는 저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애쓰지 말고 내려서거라.” 어떻게 해서라도 커지려고 발버둥 치는 저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커져 봐야 느는 건 스트레스뿐이니 어떻게든 작아지거라.” 무엇이든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으려는 저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무거우니 이제 그만 내려놓거라.”

하느님께서 당신 피조물의 품에 고이 안겨 계신다는 것,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 의해 양육되셨다는 것,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순종하셨다는 것,

참으로 놀라운 자기 낮춤의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타오르던 하느님께서 아무리 그 사랑을

외쳐봐도 소용이 없었기에, 드디어 극단적 처방, 초비상 수단을 선택하신

마지막 수단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 14) 놀랍게도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처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한 연약한 인간 존재로 태어나셨습니다.

영원하신 분이 인간의 시간에 자청해서 얽매이셨습니다.

훨훨 날아다니며 시공을 초월하실 분이 인간 세상이라는 협소한 공간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귀에 대고 아무리 크게 외쳐봐도 알아듣지 못했기에,

참으로 무지몽매한 우리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깨달음을

주시려고 극적인 변신을 꾀하신 육화 사건이 바로 성탄이 아닐까요?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요 과분한 은총인지 모르겠습니다.

구약의 그 어떤 위대한 인물들도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뵙는 사람은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모세조차도 그분 얼굴 뵙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롭게도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당신 얼굴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지를 명명백백히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당신의 구원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뚜렷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오늘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통해서 말입니다.

놀라운 육화강생의 신비를 깊이 묵상합시다!
참으로 경이롭고 은혜로운 육화 강생의 신비입니다.

성탄 시기 내내 왜 하느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는지

묵상하고 또 묵상할 일입니다.

신비가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예화는 제게 성탄의 신비에 대한 큰 깨우침을 선물했습니다.

한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큰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잃고 크게 슬퍼했습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이제 그만 슬퍼하라고 해도 왜 계속

그렇게 슬퍼하오?”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여보, 내가 슬퍼하는 것은 눈 하나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당신이

나를 덜 사랑할 것 같기 때문이랍니다.”

 

남편이 정말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아무렇지도 않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그리고는 잠시 외출을 나간 남편이 몇 시간 뒤에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 모습을 본 아내는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눈 하나를 뽑아버리고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나도 당신과 같이 되었소. 나도 이제 외눈이라오.”

우리 인간에 대한 극진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애틋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예화입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느님, 그냥 그 자리에 계셔도 아무 문제없는 하느님께서,

굳이 당신을 극도로 낮추셔서 인간이 되신 이유는, 우리 인간이 너무나

측은하고 가련해서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우리와 나란히 키를 맞추고 눈을 맞춘 상태에서 우리와 편안하게 대화하시려고 육화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당신 손수 닦아주시려고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육화강생의 놀랍고 은혜로운 신비를 묵상하는 성탄 시기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분명합니다.

우리도 한없이 자신을 낮추신 하느님을 따라 자세를 낮추는 것입니다.

뻣뻣한 목에 힘을 빼는 일입니다. 남 위에 서려 하지 말고 밑으로 내려서는 일입니다.
 

안토니오 다 코레지오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마리아’ (1524~1526년).

 

충만하신 하느님께로 나아갑시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요한 1, 16)

‘충만(充滿)함’이란 표현이 제 마음을 크게 요동치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본성 중에 우세한 측면이 충만함입니다.

충만함이란? 풍성함, 넉넉함, 완전함, 너그러움…. 참 다양한 함의(含意)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옹색한 존재인지요? 얼마나 빈약하고 비천한지요?

얼마나 약하고 불완전한지요?

이런 우리의 불완전함을 메꿔주기 위해서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언제나 부족해서 허덕이는 우리이기에 너무나도 당연히, 완전하고 충만하신

그분께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충만하신 그분께로 나아가서 풍요로우신 그분으로부터 에너지를 충전시켜야겠습니다.

백만 볼트 에너지로 가득 충전시킨 후에, 세상과 가난한 이웃들을 향해 나아가야겠습니다.

가끔 완전히 방전된 배터리 상태의 내 영혼을 확인하곤 합니다.

내 한 몸 서 있기에도 벅찬 순간에는 영적 생활이고 이웃사랑의 실천이고

무의미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틈만 나면 충만하신 하느님께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방전된 우리의 플러그를 초강력 에너지원이신 하느님이란 전원에 연결시켜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 생활이요 영적 생활입니다.

우리가 매일 스마트폰 충전 상태를 확인하듯이, 매일 우리의 영적 충전 상태를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충전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매일 스마트폰 바라보듯이, 매일 영적 충전을 위해 그분께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충만 그 자체이신 하느님, 부유하고 풍성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충만함을 빈약한 우리를 위해 무모할 정도로 헤프게 사용하시는,

아니 남김없이 모두 써 버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msn035.gif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2005년 감독_크리스티앙 카리옹

                        이대현 요나 | 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해마다 성탄절이면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경배합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는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며

이 땅에 자비와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평화는 믿음과 사랑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이 주시는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주님의 섭리를 따르려는 인간의 의지이며 실천입니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는 그것을 보여줍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프랑스 북부 전선. 불과 100m 거리를 두고

독일 군대와 프랑스, 스코틀랜드 군대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는 전투로 젊은 생명들이 무참히 쓰러집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와 불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절망과 고통의

신음 소리가 이어지는 그곳에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옵니다.

 

20211220162855.jpg

 
독일군에 성탄 트리가 전달되고, 성악가인 장교 슈프링크는 황제의 특혜로 면회를 와서,

후방으로 가자는 아내 안나에게 “오늘 밤만은 동지들을 위해 노래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때마침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고향을 꿈꾸네>를 합창하고, 그 노래가 끝나자 슈프링크가

어느 병사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면서 전쟁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크리스마스이브 하루 동안만 휴전합시다.”
 

독창은 합창이 되고, 독일군의 성탄 트리가 참호 밖에 세워지자, 병사들은 총을 놓고

걸어 나와 한자리에 모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의무병으로 참전한 팔머 신부의 백파이프 연주에 독일 병사들이

<어서 가 경배하세>를 부르고, 안나의 <아베마리아> 열창에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언어가 달라도 샴페인과 포도주를 나눠 마시고, 초콜릿과 담배를 건네주고,

지갑에 간직한 아내의 사진을 서로 보여주고, 카드놀이를 하면서 그들은 적이 아닌

 ‘서로 마음을 함께 하는 이웃’이 됩니다.

미사를 집전한 팔머 신부는 강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밤 우리는 한겨울에 불가로 끌리듯 제단으로 왔습니다.

어쩌면 함께 있기 위해, 어쩌면 전쟁을 잊기 위해.”
 

그들의 성탄절 기적은 하루 더 이어집니다.

세 나라 병사들은 들판에 버려두었던 동료들의 시신을 모두 거두어 묻어주고,

후방에서의 포격을 서로 알려주고는 함께 참호로 피해 목숨을 지켜줍니다.

각자 자리로 돌아갈 때 <올드 랭 사인>을 부르고 서로가 살아남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니 더 이상 총부리를 겨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증오와 적대감을 부추기며 그들을 전쟁터로 내몬 자들은 그 ‘평화’를 적군과

놀아난 반역으로 규정해 팔머 신부를 쫓아내고, 독일군 부대는 해산됩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팔머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생애 가장 중요한 미사로 인도하셨다.’고 믿고,

독일 병사들은 참혹한 러시아 전선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애잔하게 스코틀랜드의

<고향을 꿈꾸네>를 콧노래로 부릅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1914년 겨울, 독일 점령하의 벨기에 이프레스 지역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그날의 ‘기적’을 만든 군인들은 계속된 전쟁에서 대부분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려는 평화는 성탄절 하루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이 땅에 어떤 전쟁도 영원히 사라져, 인간, 나아가 모든 생명체가 언제나 공존의

기쁨을 누리는 평화를 빕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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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 주중.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서 보실 수 있으십니다.

 

▣  오늘(12월 26일)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 일’이며 이날부터

‘가정 성화 주간(12월 26일~2022 년 1월 1일)’이 시작됩니다

▣  1월 1일(토)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성탄,송년 및 신년 대축일 미사시간 안내

주님 성탄 대축일 - 전야 미사     12월 24일 (금요일)             오후 8시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 12월 25일 (토요일)             오전 10시30분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 12월 25일 (토요일)             오후 5시
주일 미사 12월 26일 (주일)                 오전 10시30분
송년 미사 12월 31일 (금요일)               오후 8시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 1월 1일 2022년 (토요일)      오전 10시30분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 1월 1일 2022년 (토요일)      오후 5시    
주님 공현 대축일 1월 2일 2022년 (주일)         오전 10시30분

 

▣  지난 중부지역 토네이도로 인한 자연재해에 랄리 주교청의 협조요청으로 본당에서는

12월 25일 저녁미사, 12월26일 주일미사 

1월 1일 저녁미사,  1월 2일 주일미사 등 4차례에 걸쳐 2차헌금이 있습니다. 

관심과  협조 부탁드립니다.

 매일미사책 공지 사항 - 2022년도 구독신청 받습니다.

매일미사책 값이 두배로 올랐습니다.

미리 공지를 못 하여 현재 1월미사책 부터 1년 정기구독 신청자는 1년 $60, 6개월 $35 이며,

2월 미사책부터 신청하시면 11개월 $70,  매월 각권은 $7 입니다.

신청하시는 방법은 아래 봉헌금내시듯 여러방법으로 신청하시면 되겠습니다.

▣  전례부에서 제대꽃과 제대초 도네이션 받습니다. 협조 부탁 드립니다.

▣  점차 심해지는 변형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금지 합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2022년 1월 매일미사책이 도착했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당입구에 있으며 각 권구입은 $7 입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Zarama 주교님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받았습니다.  

미사 참례 하고자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미사에 신자분들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하시기 바랍니다.

성체를 영하실때는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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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의 12월 기도 지향}  

복음화 지향: 교리 교사들

하느님 말씀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교리 교사들이 성령의 권능 안에서

담대하고 창의적으로 하느님 말씀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KQA9vZIFcLM - 12.26. 2021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1xP2FzFRr5U​ - 12.26. 2021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HuAQAyM7-k​ - 12.26. 2021

 

 

4. VATICAN MEDIA LIVE 

     https://youtu.be/HdO_5QRyYdw​​ - Live

       https://youtu.be/Umccr5_PXig - 12.21. 21 프란치스코 교황님 수요 가르침 말씀 '예수님의탄생​'

 

 

 

 

 당신의 선하신 영이 저를 바른길로 인도하게 하소서. 시편(143장 10절)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510 (녹) 연중 제21주일 2021년 8월 22일 AdelaKim Adela 2021.08.19 4304
509 연중 제21주일 2019년 8월 25일 AdelaKim Adela 2019.08.24 1902
508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미사 대체와 미사 시청 웹사이트 AdelaKim Adela 2020.03.15 1778
507 2013년 3월24일 전례봉사자 이호철 2013.03.22 1313
506 2013년 2월17일 전례봉사자 이호철 2013.02.15 1313
505 2013년 4월14일 전례봉사자 이호철 2013.04.13 1232
504 2013년 3월17일 전례봉사자 이호철 2013.03.15 1198
503 2013년 3월10일 전례봉사자 이호철 2013.03.08 1158
502 2014년 11월 30일 주보계시판 황요한 2014.12.03 751
501 2015년 11월1일 주보계시판 황요한 2015.11.02 678
500 2014년 10월5일 신부님말씀 황요한 2014.10.06 663
499 대림 제 3 주일 2019년 12월 15일 AdelaKim Adela 2019.12.20 657
498 연중 제6주일 2018년 2월11일 AdelaKim Adela 2018.02.10 651
497 11월 19일 전례 봉사자 편영준 미카엘 2011.11.17 635
496 2014년 10월26일 주보게시판 황요한 2014.10.27 629
495 2016년 1월 3일 주보 계시판 황요한 2016.01.02 610
494 2014년 11월 30일 신부님말씀 황요한 2014.12.03 592
493 성주간 미사 전례봉사자 이호철 2012.03.30 579
492 2014년 10월26일 신부님말씀 황요한 2014.10.27 573
491 2016년 1월 3일 신부님말씀 (주보) 황요한 2016.01.02 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