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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사목회장: 김귀옥 (테오도라)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414-9256      Fax: (919) 363-0409

제1독서  신명  6,2-6

화답송

◎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시옵니다. ◎
○ 주님은 저의 하느님, 이 몸 숨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시옵니다. 찬양하올 주님 불렀을 때, 저는 원수에게서 구원되었나이다. ◎
○ 주님은 살아 계시다! 나의 반석 찬미받으시리니, 내 구원의 하느님 드높으시다. 주님은 당신 임금에게 큰 구원 베푸시고, 당신의 메시아에게 자애를 베푸신다. ◎

제2독서  히브  7,23-28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복음  마르  12,28ㄱㄷ-34

영성체송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

 

생명의 말씀  

              첫째가는 계명

                               유환민 마르첼리노 신부 | 문화홍보국장

 

노랑아저씨. 명동밥집을 연 첫날부터 지금껏 찾아주시는 단골입니다.

아직 밥을 지을 수 없어 도시락을 드리던 초기에는 하나 더 받으려는 분들로 실랑이가 일기도 했습니다.

노랑아저씨도 가끔 그러셨죠.

하지만 당일 한정된 수량 탓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주 3회, 따뜻한 밥을 지어드리는 요즘은 정해진 시간에 오시는 모든 손님들께

몇 번이고 원하시는 만큼 식사를 제공합니다.
 

어느 날, 식사 중인 노랑아저씨를 보았습니다.

수북이 담은 따뜻한 밥을 천천히 오래도록 정성껏 드시는 모습이 경건해 보였습니다.

배식 텐트를 가득 메운 손님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서로에게 밥이 되어 주십시오.”(김수환 추기경)
 

얼마 전 신문에서 본 설문조사에 따르면 ‘요즘 종교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가’라는 항목에 62%의 응답자가 부정적으로 답했습니다.

특히, 비종교인의 82%가 종교의 사회적 기여를 낮게 평했습니다.

(참고로, 그 조사에서 종교인 대 비종교인의 비율은 4 대 6이었습니다.) 

 

사회에 기여하자고 신앙을 가진 건 아니지만, 2년째 이어지는 팬데믹에 교회가,

또 신앙인이자 사제로서 어떻게 응답하면 좋을지 무거운 마음이었는데

결국 우려하던 바를 마주한 것 같았습니다.
 

큰물이 닥치는 위기의 순간에 인간은 살기 위해 높이 오르려 애쓰지만,

하느님은 낮은 곳, 인간의 곁으로 내려오신답니다.

그것이 강생육화의 신비입니다.

그럼, 하느님의 섭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우리는 오늘 저 강생육화의

신비를 살고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오늘, 여기 살아계심을 증언하고

그분의 뜻을 선포할 사명이 주어졌는데 말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마르 12,33)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 흘러간 가요 중에 

“오직 사랑뿐”이란 대목이 떠오릅니다.

 

역시 사랑 말고는 이 팬데믹 시대를 견딜 재간이 없는 거겠죠. 재난의 시대,

고통과 절망을 체험하는 이웃들에게 하느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이 엄청난 소식을 전할 방법은 오직 그들 곁으로 다가가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특히 역사의 여러 기로에서마다 교회가 ‘교회의 보화인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길을 찾고 본 모습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교회가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통해 선조들의 하느님을 만났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가난한 이들의 얼굴을 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 만남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첫째가는 계명’이지 않을까요.

 

 

 

 

msn008.gif  [생활속의 복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것은 기호에 따라서,시간이 지나면서,여건이 달라지면 변합니다.

예전에는 고기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생선을 더 좋아합니다.

기호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달고 짠 음식을 잘 먹었지만 지금은 싱겁고 담백한 음식을 더 잘 먹습니다.

입맛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볼거리가 풍성한 액션이나 SF영화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주제의식 있는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들이 바뀌는 와중에도 사랑만큼은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열정이 예전 같지 않아도, 양상이 달라졌어도, 변치 않는 사랑이 내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모든 계명의 본질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계명, 세상 모든 게 바뀌어도

변치 않을 최후의 계명이 무엇인지를 물은 겁니다.

예수님은 답하십니다.

그건 오직 사랑뿐이라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상처 때문에 부모를 미워하고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프러포즈를 한다면,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은 자기 고백이 진심이라고 말하겠지만, 그 사람의 사랑은 신뢰하기 쉽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그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존재를 제대로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도 믿기 어렵습니다.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분께 감사와 사랑을 드릴 줄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이웃을 사랑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을 ‘으뜸’으로 제시하십니다.

그 사랑이 으뜸이 되려면 ‘양다리’를 걸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말로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행동으로는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 하고 힘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그에 ‘버금’가는 것으로 이웃 사랑을 제시하십니다.

이 사랑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웃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이웃은 나와 분명히 구분되고 단절된 ‘남’이 아닙니다.

저 멀리 떨어져 나와 상관없이 사는 사람을 ‘이웃’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나와 물리적, 정서적, 영적으로 ‘함께’ 살아가며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이웃이라고 부르지요.

이와 같은 상태를 두고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많은 지체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이웃을 사랑한다는 건 결국 나와 연결된 또 다른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내가 더 열심히 한다고 생색내거나 억울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신앙으로 연결된 또 다른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니 기꺼이 기쁘게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랑의 효과가 우리 모두를 관통하시는 주님께 미칠 것입니다.

결국 이웃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하나’인 것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의 진리를 깨달은 그 율법학자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지만,

사랑이 머리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그 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머리로 깨달은 사랑을 가슴으로 함께 느끼고, 내가 느낀 사랑의 기쁨이 나의

손과 발을 통해 세상에 전해져야만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사랑의 신비가 완성됩니다.

 

 

 [말씀묵상]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 최종 목표는 ‘사랑’입니다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

 

그 모든 것이 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수도자로 양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형제들에게 요구하는 몇 가지 작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영적자서전’입니다.

지금까지의 내 삶 안에서 펼쳐져왔던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서술하는 것입니다.

영적자서전을 다 쓰고 난 한 형제가 이런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길이었지만, 돌아보니 굽이굽이 어느 한곳 하느님 사랑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나 혼자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크게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로지 그분 사랑 때문에 지금 내가 여기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 형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저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내 인생은 오로지 나의 역사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 인생은 가만히 분석해보니 ‘하느님 사랑의 역사’였습니다.

철저하게도 부족한 나, 정말 보잘 것 없는 나, 쥐뿔도 내세울 것이 없는 나,

너무도 부당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인내와 사랑으로 참아주신

하느님 사랑의 역사가 제 지난 삶이었습니다.

그분 자비가 아니었더라면, 그분 연민의 눈길이 아니었더라면, 그분 사랑의

손길이 아니었더라면 단 한 순간도 서있을 수 없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일생일대의 과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우리를 향한 그분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를 가늠해보는 일입니다.

그분을 좀 더 알고 이해한 만큼 우리는 그분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정체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순간,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더 한층 깊어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하느님 사랑을 파악한 사람만이 ‘제대로 된’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콥 요르단스 ‘바리사이들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17세기)

 

하느님 사랑은 참으로 다양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때로 그 사랑이 용광로보다 더 뜨겁고 강렬합니다.

때로 너무나 절절합니다. 때로 눈물겹습니다.

그러나 때로 필요한 순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차가운 사랑, 냉정한 사랑도 보내십니다.

때로 우리가 교만의 늪에 빠져있을 때, 때로 우리가 착각 속에 기고만장해있을 때,

때로 우리가 나태해져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고통이라는 사랑의 매를 드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이 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돌아보면 참으로 다양한 순간들이 우리 삶을 스쳐지나갑니다.

성공의 순간, 기쁨의 순간, 환희의 순간….

그러나 때로 실패의 순간, 슬픔의 순간, 절망의 순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 필요했었습니다.

그 모든 국면들은 다 하느님 사랑의 발로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결국 사랑이 전부입니다.

나이를 조금 먹고 나서야 사랑에 대해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사랑은 이팔청춘 때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서른 안팎까지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사랑을 알고 난 후 그것은 너무나도 큰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병세가 위중해도, 아무리 인생의 막장 앞에

설지라도, 그럴수록 사랑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은 목숨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필요한 것이더군요.

이 세상에 사랑이 필요치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만사가 잘 풀릴 때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진정한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꼬이고 꼬인 인생길을 걸어갈 때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은 사사건건 내 발목을 잡는 지긋지긋한 그 ‘존재’와의 관계 안에서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하면 만사가 ‘OK’인줄 알았습니다.

사랑에는 늘 기쁨과 감미로움만 따르는 줄 알았습니다.

사랑을 시작하면 향기로운 장미꽃 길만 계속되는 줄 알았습니다.

사랑에는 괴로움이 뒤따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됐습니다.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고통의 길을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희생을 각오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코 12,29-31)

결국 사랑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부입니다.

사랑만이 그리스도인 인생의 전부입니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인생문제의 해답입니다.

사랑은 우리 삶의 최종 기착지입니다.

결론적으로 산다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시절입니다.

참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늘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시라도 내 그릇된 언행, 부족한 사고,

빈약한 가치관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좀 더 사랑스런 존재, 이웃들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로 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msn036.gif 교리·영성 퀴즈

10월 퀴즈 정답
1-1. 자비
1-2. 용서, 화해
2-1. 용기
2-2. 축복

3-1. 자비로운

3-2. 사랑

4-1. 발설

4-2. 복음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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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께서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 올리십니다.

▣ 다음 주일인 11월7일은 Daylight Saving Time이 끝나는 첫날입니다.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이며 ‘전교의 달’입니다

묵주기도 성월은 개인과 가정 성화, 인류구원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치는 달로, ‘묵주기도 성월 기도문’을 바쳐주시기 바랍니다. 

본당 묵주기도성월에 성모동산앞에서 9시45분에 마지막 묵주기도 일정입니다

        10/31(주일) - 순교자의모후 - 빛의신비

직접 참여 못 하시더라도 함께 묵주기도 바쳐주셔도 좋겠습니다.

▣  10월31일(주일)에 할로윈 행사로 유아부터 미혼 청년까지 작은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히 주위에 쉬는 가정의 자녀분들에게도 알려주십시요. 

▣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위령성월’은 세상을 떠난 모든 형제자매를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입니다. 

11월 1일부터 11월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고해성사와 미사참례(성체성사), 교황님의 지향기도 또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영광송 등 기도하는 교우들은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11월2일은 '위령의날' 입니다.

▣  지난 10월 23일(토) 미사 중 세 가족의 '태중의 아기 축복 식'이 있었습니다.

안드레아 구역: 정명화 토마스 아퀴나스, 함솔 아가페 부부

안드레아 구역: 이방현 라파엘라, 김상훈 프란체스코 부부

요한 구역: 김연수 안젤로 신현민 안젤라 부부

축하드립니다. 하느님의 귀한 선물, 우리가 모두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할 가족입니다.

▣  전례부에서 대림꽃과 제대초 도네이션 받습니다. 협조 부탁 드립니다.

▣  점차 심해지고 있는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고백성사 - 매 미사 30분전 고백성사 있습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금지 합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11월 매일미사책이 도착했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당입구에 있으며 각 권구입은 $5 입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Zarama 주교님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받았습니다.  

미사 참례 하고자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미사에 신자분들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하시기 바랍니다.

성체를 영하실때는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혹시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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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의 10월 기도 지향}  

복음화 지향: 선교 제자들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복음의 향기를 풍기는 삶의 증거를 통하여 선교에 나서고 복음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교황님의 11월 기도 지향}  

보편 지향: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우울증이나 과로로 지쳐 고통받는 사람들이 새 삶을 열어 가는 데에 필요한 도움과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r3i_y8DJZC0 - 10.31. 2021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UUgOfIQ3fmg - 10.31. 2021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FFMAUV-FDoM - 10.31. 2021

 

 

 

4. VATICAN MEDIA LIVE 

     https://youtu.be/qwyilpjbsMc - Live

     https://youtu.be/4GeE7KVentI - 10월27일 프란치스코 교황님 수요 가르침말씀 '성령의 열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에페(5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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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녹) 연중 제21주일 2021년 8월 22일 AdelaKim Adela 2021.08.19 4304
376 (백) 성모 승천 대축일 2021년 8월 15일 AdelaKim Adela 2021.08.11 128
375 (녹) 연중 제19주일 2021년 8월 8일 AdelaKim Adela 2021.08.05 108
374 (녹) 연중 제18주일 2021년 8월 1일 AdelaKim Adela 2021.07.29 130
373 (녹) 연중 제17주일 2021년 7월 25일(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AdelaKim Adela 2021.07.22 135
372 (녹)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2021년 7월 18일 AdelaKim Adela 2021.07.15 151
371 (녹) 연중 제15주일 2021년 7월 11일 AdelaKim Adela 2021.07.07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