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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사목회장: 김귀옥 (테오도라)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414-9256      Fax: (919) 363-0409

제1독서  이사  53,10-11

화답송

◎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자애를 베푸소서.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

제2독서  히브  4,14-16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복음  마르  10,35-45

영성체송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주님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신다.

 

생명의 말씀  

         공감(共感)                                                                             ​

                김상우 바오로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대학로를 걷다 보면 뮤지컬 배우와 길 위에서 대화를 나누려 줄 서 있는 팬들을 봅니다.

유명 연예인과 달리 뮤지컬 배우는 SNS나 공연 후 짧은 대화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비교적 많기 때문입니다.

상대방과 소통·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커지면 그만큼 관계성이 깊어지는 이유입니다.

 

공감이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을 뜻합니다. 

이번 주일 하느님 말씀을 관통하는 주제는 ‘공감’입니다.
 

제1독서(이사 53,10-11)는 ‘고통받는 주님의 종’에 관한 예언입니다.

바빌론 타향에서 고통스럽게 포로 생활을 하던 하느님 백성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이사야서 속 주님의 종은 우리의 죄와 잘못 때문에 고통받으며 그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메시아로 묘사됩니다.

이 구약의 메시아는 고통받는 우리와 공감하는 메시아, 즉 신약의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한편 제2독서(히브 4,14-16)에서 ‘대사제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히브 4,15) 

그분이 바로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신 대사제, 우리와 하느님을 화해시켜주시는 대사제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고통받는 우리에게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 우리와 공감하며

사랑과 은총을 베푸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마르 10,35-45)은 스승 예수님과 제자들이 나누는 대화로 구성됩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마르 10,37)라고 청하는 야고보와 요한은 ‘낙수 효과’를 기대했던 것일까요?

한편 옆에 있던 다른 열 제자는 야고보와 요한의 이야기를 듣고 불쾌해합니다.

그들 또한 야고보와 요한에게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다른 이와 공감하지 못하는 제자들과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3-45)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공감의 아이콘’이 되어 주십니다.


오랜 시간 계속되는 고통의 일상을 살다 보니 우리의 축처진 어깨와 공허한

마음에 공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비록 우리가 무관심할 때에도, 우리와 공감해 주며 말 걸어오는 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분과 어떻게 소통하며, 얼마만큼 공감하고 계십니까?

 

 

 

msn008.gif [생활 속 영성 이야기]

              사랑, 그대로의 사랑

                        한준(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최근에 누군가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한 적이 있었다.

내가 진행했던 일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를 했는데, 조언보다는 비판을 위한 비판 같이 느껴졌다.

게다가 그는 천주교 신자이고 교회 안에서 이런저런 활동도 하는 사람이어서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 봉사 활동도 많이 하면서 어쩜 저렇게 남을 깎아내리고

자신의 잘났음을 드러내려 하는 것일까.

저러고도 신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저렇지는 않은데….

그에 대한 분노와 경멸감이 올라왔다.

그러다가 묵상 기도를 하면서 다음 구절에 머물게 되었다.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셨다.

베드로가 뭐라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큰 권한을 주신 것일까. 하늘나라를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일인가.

그런데 그런 일을 베드로에게 맡기신다니, 예수님은 정말 그가 그런 일을 할

자격이 된다고 믿으셨던 것일까.

예수님만이 볼 수 있는 그의 빛이 있었던 것일까? 그게 뭘까,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베드로에게 알려 주셨다는 말씀이 다가왔다.

베드로가 능력이 있거나 똑똑해서, 착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느님이 그를

선택하셨고, 그래서 예수님도 그에게 그런 권한을 주신 것으로 느껴졌다.

베드로가 한 것은 그냥 예수님 부르심에 응답한 것뿐이었다.

오늘날 채용 면접처럼 이것저것 묻거나 따지지 않고, 그냥 하느님이 불러서 베드로가 답한 것이다.

베드로만의 특별한 빛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큰일을 맡기신 것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또한 비슷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세례받기로 선택했거나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 아닌 것 같다.

혹은 우리가 최소한의 선함이 있거나 기본적인 인품을 갖춰서도 아닌 것 같다.

그냥 하느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리는 그저 응답한 것이고, 그게 다다.

그렇게 마음이 흘러가자 나의 착각과 겸손하지 못한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래도 이 정도면 착실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게 아닐까,

만약 그러지 못하면 좀 덜 사랑받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착각과 오만함이다.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 때문이다.

그분이 나를 선택하시고 부르셨다는 것, 그것 때문이다.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는 곧이어 예수님께 엄청 욕을 먹었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당신께 걸림돌이 된다고, 하느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혼이 났다.(마태 16,23) 베드로가 뭔가 특별하고 더 거룩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하늘나라에 대해 알려 주시고, 이 땅에

하늘나라를 만들자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느님. 때로 인간적인 것만 생각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사탄 같은 짓을 하더라도 하느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놀랍도록 큰 사랑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받은 그대로의 사랑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닮도록 애쓰는 것,

그것이 하느님 사랑에 응답해 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말씀묵상] 갈망의 교육학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바라는 것, 갈망은 그 사람 자체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봅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으면 정말 행복했을까요?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바라는 것, 갈망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

무언가 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도 하느님 말씀으로 계속 교육받아야 합니다.

■ 복음의 맥락
이번주 복음은 제자직을 주제로 구성된 마르코 복음 중앙 부분(8,22-10,52)에 속합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수난 이야기는 8장 27절부터 시작됐는데, 지금 제자들은

수난과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세 번째 수난과 죽음 예고 직후 두 제자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예수님께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들어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는 제자들 자신이 어떤 것을 그분께 청해야

하는지에 대한 무지와 연결됩니다.

‘바라다’라는 동사가 본문의 처음과 끝(마르 10,43-44: 높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이,

첫째가 되기를 바라는 이)에 등장하여 수미상관을 이루는데, 제자들이 바라는 것과

예수님이 바라는 것이 다른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갈망을 교육합니다.

■ 바라다
예수님이 선택한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설명한 것처럼 말씀을 듣자마자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마르 4,15)

두 번째 수난 예고에서는 예수님 뒤에서 높은 자리로 다투던 제자들이,

세 번째 수난 예고 후에는 예수님 앞에 정면으로 등장해 자신이 원하는 출세를 담대하게 표현합니다.

“저희에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갈망을 교육하는 기회가 됩니다.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지만 이런 대화라도 존재할 때 배움의 공간에는

‘교정’과 ‘성장’의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는 선생님이기에 모든 환경을 가르치는 배움의 공간으로 삼습니다.

‘바라다’(셀로)라는 동사는 성경 안에서 단순한 갈망만이 아니라 목적, 선호도, 좋아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바라다’에는 항상 목적어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바라는 것은 높은 자리고 예수님이 바라는 것은 섬기는 자리,

모든 이의 종이 되는 자리입니다.

인간의 갈망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 일어나는 유혹과 긴장을 예수님도

체험했다는 것을 제2독서인 히브리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사막 교부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내가 한 번 하느님에게 청한 것을 들어주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그분의 뜻만을 행하는 것을 그분에게 청했습니다.”

복음서 전체는 ‘갈망들의 교육학’입니다. 인간의 갈망을 하느님의 갈망과

비교하며 하느님 뜻에 따라 원하고 청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권고처럼, 연약한 우리처럼 유혹을 겪으며 하느님 뜻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대사제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간다면 그리고 그분에게

우리의 은밀한 사연을 솔직하게 아뢴다면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할 것이고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를 바라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명확한 금지 규정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이 ‘금지’를 따르는 정도에 따라 제자가 되어갈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여러 가지 긍정적인 말, 좋은 말을 많이 하지만

“~하지 말라. 그래서는 안 된다”며 금지하는 것도 많습니다.

좋은 말씀은 마음에 새기지만 금지는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자율과 자기 선택권을 강조하며 모든 것이 본인 중심인 우리 시대에

외부로부터의 어떤 ‘금지’는 개인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금지는 정말 우리 시대에 인기 있는 단어는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한 첫 말은 선악과 열매를 따 먹지

말라는 금지 명령이었습니다.(창세 2,15)

제자들은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스승의 금지명령을 마음에 새길

때에만 제자로서 자신의 본분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금지 명령에 이어서 제자들이 따라야 할 모델로 그분 자신을 소개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제자들이 높은 자리를 바란 것은 자신들이 따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 사명이 무엇인지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또 조금 알아들었다 하더라도 그 길을 자신의 운명으로 선택하는 것이

부끄럽고 두렵고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제자들 모습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기원후 64~69년 경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이후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핍박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던 마르코 공동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노레 도미에 ‘예수님과 제자들’ (19세기).

 

■ 성찰
“도서관은 죽은 이들이 산 이들의 눈을 열어주는 장소입니다.”

성경도 도서관이라고 하는데, 오늘 제자들의 모습도 우리에게 모델이 됩니다.

제자들의 세속적인 갈망을 잘못된 것이라 바로 비난하지 않고 주의 깊게 경청하는

예수님 모습에서도 섬긴다는 것, ‘종’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웁니다.

예수님처럼 많은 이들의 죄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겠지만 예수님의 섬김을 본받을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봉사했습니까?

그분과 만나는 사람들은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온갖 굴레에서 자유롭게 하는데 삶을 바쳤습니다.

사람들을 돌보면서, 치유하면서, 가르치면서! 그런 방식으로 그분은

“많은 이들의 몸값”(마르 10,45)이 되었습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주님의 종을 으스러뜨리고 병고를 시달리게 하여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어놓게 한 것은 주님의 뜻이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영광은 하느님의 겸손한 종으로 살아가며 섬기는 모습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바람이 되도록 매일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합니다.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자애를 베푸소서.”(화답송) 아멘!

 

 msn036.gif 교리·영성 퀴즈

 

문제 3-1. 사제는 죄인에 대한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표지이며 도구이다.

고해 사제는 신자들에게 항상 탕자를 기다리는 OOOO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빈 곳에 들어갈 알맞은 말은?

문제 3-2. 사회교리는 좌절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은총이 필요하다고 한다.

힘든 현실 속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과 은총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OO이다. 빈 곳에 들어갈 알맞은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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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께서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 올리십니다.

 

▣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이며 ‘전교의 달’입니다

묵주기도 성월은 개인과 가정 성화, 인류구원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치는 달로, ‘묵주기도 성월 기도문’을 바쳐주시기 바랍니다. 

본당 묵주기도성월에 성모동산앞에서 9시45분에 실시할 묵주기도 일정입니다

        10/17(주일) - 상지의좌 -고통의 신비

        10/23(토요일) 오후 4시 - 은총의샘 - 영광의신비

        10/24 (주일) - 레지오 간부- 환희의신비

        10/31(주일) - 순교자의모후 - 빛의신비

직접 참여 못 하시더라도 함께 묵주기도 바쳐주셔도 좋겠습니다.

▣  오는 10월 23일(토) 미사 중 '태중의 아기 축복 식'이 있겠습니다.

원하시는 분은 10월 22일(금) 까지 각 구역장님께 신청 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중의 아기 축복 식'이란 태아가 하느님의 귀한 선물이며, 우리가 모두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할 존엄한 인류 가족임을 드러내고 축복하고자 마련 된 식 입니다.

▣  점차 심해지고 있는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고백성사 - 매 미사 30분전 고백성사 있습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금지 합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10월 매일미사책이 도착했습니다.

성당입구에 있으며 각 권구입은 $5 입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Zarama 주교님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받았습니다.  

미사 참례 하고자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미사에 신자분들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하시기 바랍니다.

성체를 영하실때는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혹시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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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의 10월 기도 지향}  

복음화 지향: 선교 제자들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복음의 향기를 풍기는 삶의 증거를 통하여 선교에 나서고 복음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toHzX70dsgI - 10.17. 2021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cDjEYb4PPmk - 10.17. 2021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rHSqxM-dmJc - 10.17. 2021

 

 

4. VATICAN MEDIA LIVE 

     https://youtu.be/AuumDuU6PLE - Live

     https://youtu.be/_caVFkPxn7Y - 10.13. 2021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수요가르침

 

 

 

                               

정녕 의인들은 당신 이름을 찬송하고 올곧은 이들은 당신 앞에서 살리이다. 시편(140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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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녹) 연중 제22주일 2021년 8월 29일 AdelaKim Adela 2021.08.26 132
377 (녹) 연중 제21주일 2021년 8월 22일 AdelaKim Adela 2021.08.19 4304
376 (백) 성모 승천 대축일 2021년 8월 15일 AdelaKim Adela 2021.08.11 128
375 (녹) 연중 제19주일 2021년 8월 8일 AdelaKim Adela 2021.08.05 108
374 (녹) 연중 제18주일 2021년 8월 1일 AdelaKim Adela 2021.07.29 130
373 (녹) 연중 제17주일 2021년 7월 25일(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AdelaKim Adela 2021.07.22 135
372 (녹)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2021년 7월 18일 AdelaKim Adela 2021.07.15 151
371 (녹) 연중 제15주일 2021년 7월 11일 AdelaKim Adela 2021.07.07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