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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대림 제1주일 C Lk 21,25-28.34-36 대림초 회개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부족한 강론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미사 시작, “대림절” 도입 멘트............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갖는가? 지긋지긋한 일상, 보기 싫은, 만나기 싫은 사람을 떠올리며, 아침부터 기분 잡칠 때는 없는가? 삶에서 맺고 푸는 기술이 서툴면 그렇다. 덜어 놓아도 될 것을, 내려놓아도 될 것을 짊어지고 사는 인생은, 그래서 버겁다. 희망찬 아침, 새 마음, 새 기분 가득한 아침을, 어떻게 하면, 맞이할 수 있을까? (여러분 스스로 그 방법을 찾아보길 권한다. 오늘은 제 방법을 소개하겠다)

 

여러분에게 오늘은 새로운 날인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날인가? 오늘은, 세상 달력과는 달리, 교회 달력, 전례력에서는, 새로운 첫날이라 한다. 왜 갑자기? 생뚱맞게? 오늘을 새로운 날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단 하나만 필요하다. 익숙한 세계, 습관된 생활을 단절하는 자세, 회개밖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기도도, 저녁에 저녁기도도, 다 회개를 위한 것이다)

 

이전에는, 나의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나에게 속한 것, 나와 상관없는 것 등등으로 나누며 살았다면. 이제부터, 오늘부터, 하느님과 관련하여, 하느님을 넣어, 바라보기, 그게 회개이다. (내 배우자에게, 내 자녀에게서, 하느님을 바라보기) 회개는 결코 우울한 자세가 아니다. 다시 시작하는 자세, 재생, 탄생의 자세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 세상의 회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한다. 우리도 새로이 탄생하라고 부추긴다.

 

대림과 성탄 기간 내내, 나아가 새로운 전례력 C해, 혹은 다해 내내, 회개하는 은총을 청하며, 이 미사를 드렸으면 한다.

 

 

강론...............

   

대림절(待臨節), 기대+임재: 가까이 오심을 기대, 기다리다.

대강절(待降節), 강림: 내려오심을 기대, 기다리다.

 

대림절은, 늘 3중의 기다림을 함의한다.

1. 과거 유다인들에게,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한 일,

2. BC 3년 혹은 4년에, 실제로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일

ㅡ 지금도 늘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심, 새로 태어나심.

3. 나중에, 종말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일

 

대림 시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보내는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은, 이 세상에 찾아오신 구원을, 구원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구원을 제거하려 했다. 그 실수, 그 잘못, 그 죄를, 우리가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 대림 기간을, /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시는 과정을, 잘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찾아와도, 보지 못하는, 항상 장님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늘상 반항자였다. 구원을 스스로 차버리는 자였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제대 앞에, 지난 주에는 없던 것이 생겨났다. 대림초, 대림환이다, 이제껏, 누군가 잘 차려준 밥상처럼, 우리는 대림초, 대림환을, 살아온 나날만큼 보아왔을 것이다. 오늘은 다르게, 그리고 새롭게 바라보기를 빌며, 특별히, 대림초, 대림환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실제로, 우리는 이 밥상을 잘 음미하지 않았다. 마치 의례 있는 기성품, 혹은, 상품 진열, 시즌 데코레이션처럼, 그렇게 눈으로 보아왔고, 뻔한 양, 쉽게 눈을 돌렸다. (먼저 제작에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

 

대림절에 대림초, 대림환을 사용한 건, 아쉽게도, 가톨릭이 먼저가 아니다. 독일 루터교 신학교 교수 Johann Hinrich Wichern으로, 1839년 겨울, Hamburg 근교 Horn 지역에서 처음 착안하여 걸었다. 산업혁명 시기,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거리의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성탄절을 너무나 좋아했고, 너무나 기다렸기에, 조금이라도 기쁜 마음에 그 시간을 보내라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숫자 읽는 법을 가르쳐 줄 의도도 포함).

 

첫 대림환은, 바퀴와 같은 둥그런 링, 고리를, 평평하게 눕혀 놓고, 그 위에, 하얀색 큰 초 4개, 그 사이에, 각각 6개씩 빨간색 작은 초를 배치하였고, 가운데 나무 기둥을 두고, 그 환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왜 6개의 빨간 초냐? 평일을 상징, 성탄절 날짜에 따라, 18개에서 24개, 유동적) 1860년부터는, 그 둥근 환을, 전나무 가지로 장식을 하기 시작. 가톨릭에 도입된 때는, 1925년, 독일 쾰른에서, 1930년에는 독일 남부 뮌헨에도 제작되었고, 제2차 대전 내내, 전쟁 끝까지, 가톨릭 교회와 가정에 퍼져나갔다. (교회 파괴, 가정 신심 수단)

 

대림환, 동그라미는, 관을 상징, (성인들의 후광) 세상을 통치하는 임금의 왕관 상징, 또한 영원을 상징한다. (이교도 상징에서는,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으로 표현) 나중에,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완성될 영원, 곧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대림환에, 전나무 가지로 장식한 이유는, 그 나뭇가지가 흔해서... (성탄 트리도, 마르틴 루터) 겨울에도, 눈 속에서도, 푸르름, 싱싱함 유지, 곧 생명력의 상징. 또한 늘 푸르른 희망도 상징한다.

 

그럼, 왜 초를 사용했을까? 미사 때, 초를 밝히는 이유와 연관된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 그분이 우리에게 서서히 가까이 다가오심, 세상과 우리의 어둠을 몰아내시는 분이라고, 믿었다. 초는, 벌들이 만든 벌집, 그 밀랍을 주재료로 삼는다. 초는 하나의 집이자, 나아가 빛으로 오시는 분을 모실 집, 성전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벌들처럼, 우리 인간이 마련한 모든 것도, 하느님을 모시기 위한 재료가 된다. 그런데, 내가 소출, 소득으로 얻은 것을, 과연 하느님을 모시고 섬기고, 감사드리기 위한 성전 재료로 삼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시길....

 

4개의 초, 4라는 숫자는, 동서남북, 남녀노소, 4가지로 짝찌워지는 단어처럼, 모두, 전부를 상징한다. 가톨릭에서는 회개의 색, 자색 초 3개에, 장미색 초 하나를 추가하였다. (자색은, 원래 임금과 귀족의 색, 부자의 색, 영광과 권위의 색, 예수님의 색이 되었고, 그리스도교가 죄인의 색, 회개의 색으로 바꾸었다) 장미색은, "기쁨 주일"(Sonntag Gaudate, 사순절에는 사순 제4주일) 표현.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을 열렬한 마음을 상징.

 

아일랜드에서는, 자색 초 3개, 장미초 1개, 그 가운데에, 예수님을 상징하는, 커다란 흰색 초 하나를 추가했다. (성탄절 이브와 당일에 붙이려고 마련) (그리고, 각각의 초에 이름을 붙였다. 다윗의 아버지, 이사이의 초, 세례자 요한의 초, 요셉의 초, 마리아의 초 Isaiaskerze, Johanneskerze, Josefskerze und Marienkerze.)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내용)

 

저 뒤 창고와 성당 다락에서 그러모은 것으로, 표현. 광주리, 우리의 만나요 양식,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담을 광주리. / 새집, 주인을 잃은 둥지, 다시 오실 주인을 기다리는 빈집, 우리 세상, 우리 자신을 상징.

 

모세의 떨기나무와 비슷한 인상, 사막의 잡초이나, 하느님이 머무는 나무. 이 세상 별 볼 일 없는 존재의 한 사람이나, 하느님을 모시고 섬기는 사람으로, 하느님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표지.

 

소철나무 잎, 혹은 palm 가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했던 가지이자, 이 세상 강림을 환영하는 의미, 그리고 그분의 피의 희생, (보통 순교자들의 순교를 상징) 그리고 피의 승리를 상징한다.

 

만다라(불교 문양), 서방에서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지배하시는 임금으로서, Pantocrator, "all-powerful, 전능"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 아마도, 고대인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모든 만물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하느님의 성품, 자비와 사랑, 하느님을 섬기는 자세, 충실과 겸손 등등을 발견하며, 세상 모든 만물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불행하다. 세상 것들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찾지도 않고, 읽어내려 하지도 않는다.

 

저 대림초, 대림환이, 나 자신이라고, 여길 줄 모른다. 내가 섬기는 하느님의 모습, 내가 하느님을 섬기는 자세, 그 모든 것을, 저기서 읽어내려 하지 않는다. 그저 눈요기, 장식으로만 바라보려 한다. 자기 눈에 들어오는 건, 온통 욕심의 것이나, 자기 돈벌이를 위한 것만 바라보려 한다. 하느님을 볼 줄 모르는, 장님으로 산다.

 

이 대림초, 대림환은,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새롭게 바라보라고, 새롭게 살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이 제대 곁에 머무는 대림초, 대림환이 되라고, 안내한다. 나는 대림초인가? 나도 대림환인가? 이번 대림절에는, 여러분 스스로, 대림절의 상징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신앙인 모두는, 하느님을 기다리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상징이다.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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