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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연중 제14주일 B Mk 6,1-6 바보 지혜

오늘 제2 독서는, 지난 주 강론을 요약해 준다. 바오로는, 자기 몸 안에 교만의 가시, / 사탄의 가시가 있다고 들려준다. 자신이 약한 자임을 알려주는 가시요, 자신을 약한 자로 머물게 하는 가시라고 말한다. (오늘 강론과 결합시키면, 내가 교만해지지 않게, 바보임을 알려주는 가시)

하느님을 몰라 보고 잊는 그 순간, 하느님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가시요, 늘 하느님을 찾게 만드는 가시인 것이다. 나를 귀찮게 하고 불편하게 하고 아프게 하지만, 늘 하느님을 의식하게, 각성하게 하는, 고마운 가시인 것이다. 그 지옥의 가시 덕분에, 바오로는 하느님 앞에 올바른 자가 되었다. 가시가 없어야 행복이 아니라, 가시가 축복이 되었다.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불편한 신앙 가시들을 떠올려 보시기를 빈다. 미사 가시, 아침/저녁기도 가시, 고해성사 가시 등등.

 


강론


요약: 지혜는 어디서 올까? 오늘 복음의 핵심. 하느님 앞에 기쁘게 바보인 자는, 사람들 앞에서도 기쁘게 바보가 된다. 하느님을 섬기고, 자기 안에 모시는 바보는, 지혜를 품은 바보이다. 그런 바보는, 하느님 덕분에, 바보에서 구원받는다. 하느님이 바보의 지혜가 되어주신다.

누가 과연 바보일까? 먼저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 줄 모른다. 죽을 때까지 몰라, 주변을 바보화, 황폐화시킨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게 전부이면서, 자기가 전부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바보는, 죽어도, 자기는 바보가 아니라고, 남만 바보라고 여긴다. 남들만 바보라서, 바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줄 안다. 자신은 가끔 바보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자신에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자신한다. 바보는, 자기에게 향한, ‘바보’라는 말에, 매번 화를 낸다. (‘나 바보’로 일 시작하는 사람은, "나 참 바보 맞지", "아이고, 또 바보네" 한다. 그러나, 바보는 다르다, 극구 화낸다. 구태어, 바보 아님을 애써 증명하려고 든다)

이 세상, 최고의 바보는,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자기에게 찾아올 것처럼, 고대하는 자, 그리 믿는 자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별 볼일 없는 현실에, 항상 아쉬워하고, 미워하고, 한탄하며, 그런 세상이, 왜 나한테 오지 않나, 불평한다. 바보는, 온갖 좋은 것들이 지금 나에게 없기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한숨쉰다. 또한, 온갖 좋은 것들이 내 것만 된다면, 나는 분명, 행복할꺼라 기대한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 하나하나 구매/구비하며, 오늘을 보낸다. (오늘도, 피똥 싸게 일하며, 돈 벌며, 불만족으로 보낸다는 말)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바보가 있다. 매일매일 내 마음에 드는 사람 없나, 주위를 찾아 헤메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내 눈 앞에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은, 이제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사람, / 나를 인정해주고, 나를 위로해주고, 나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찾다가(x2), 혹은 기다리다가(x2), 하루를 보낸다. 내가 만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왜 맨날, 못난 사람, 미운 사람, 부족한 사람 천지인지, 매일 분노하고 억울해 하는 바보이다.

그런 바보는 늘 미움을 달고 산다. 미움 말고, 다른 걸 찾기 보다, 그냥 손쉽게 미워해버린다. 내 마음 속, 미움의 출처는, 저 미운 사람 때문이라고 확신하고는, 저 사람이 나에게 이런 감정과 기분을 던졌다고, 늘상 분해하고 억울해 한다. 다른 더 좋은 것을 찾기보다는, 그냥 미움 하나만으로, 하루를 통채로 날려 보내는 바보이다. 나에게 맞는 사람만 애타게 그리워만 하고, 또한 나에게 안맞는 사람 때문에, 늘상 울상짓는 바보이다. (Tip! 성경 읽기. 하느님은, 예수님은, 미운 사람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연구해 보라.)

또 다른 바보가 있다. 우리는, 마치 농부와 같아, 항상 뿌린 대로 거둔다. 내가 뿌리지도 않았는데, 자녀가 저절로 천재가 되어 주지 않는다. 내가 책을 멀리하면, 자녀도 책을 안본다. 내 자식이, 내 머리보다 더 좋기를, 헛되이 바라지 말기를..., 자녀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대개는 내 머리만 하거나, 나보다 더 못난 머리가 될 뿐이다. 그리고, 나도 대충 하느님을 믿으면서, 자녀가 착실히 하느님 믿는 신자가 될 리 없다. 나도 미사 귀찮고, 고해성사 미루는 데, 자녀는 아마 더 업그레이드된, 게으름뱅이가 될 것이다.

결국, 내가, 오늘 하루동안, 뿌리지 않은 것을,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 바보는, 뿌리지도 않은 것을, 간절함으로 기대한다. 하느님이 다 들어주실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으려 한다. 그걸 믿음이라고 착각한다. 오늘, 사랑을 뿌리지 않으면, 내일, 사랑은 없다. 오늘 평화를 뿌리지 않았다면, 내일 평화를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 어제 뿌린 사랑, 어제 뿌린 평화가, 오늘의 사랑과 평화이다. 그리고 오늘도 더 큰 사랑, 더 새로운 평화를 뿌리지 않으면, 내일은 아마 사랑도, 평화도 없을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어제랑 같은 믿음으로 산다면, / 오늘도, 새로운 하느님, 낯선 하느님을 찾지 않고 더 배우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고루해지고, 진부해지며, 금방 폐물이 된다. 하느님을 바보처럼 섬기는 자는, 하느님을 바보로 여기고, 바보처럼, 맨날 똑같이 믿으려 든다. 바보는,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나를 무조건 사랑해 주시는, 바보 하느님만 찾는다. 바보는, 자기가 바라는 것은, 무조건, 알아서 축복 주시는, 눈먼 하느님, 멍청이 하느님만 찾는다.

과연 누가 바보인가? 바보는 자기가 아는 세상, 자기가 이해한 세계가 전부라고, 쉽게 착각한다. 그 너머를, /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모르는 것이 있음을, 늘 겸손되이 열어 두지도 않는다. 맨날, 엉뚱한 기대나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한다. 나나 너나, 사람들 알고 있는 것이, 고만고만,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자기가 아는 것은, 남이 모를 꺼라고, 혹은, 남이 알고 있는 것은, 나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몰라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내가, 세계에 대해 아는 정도가, 내 세계관이 된다. 내가 인간에 대해 아는 그 정도가, 내 인간관이 되고, 내 인간됨이 된다. 내가 하느님에 대해 아는 그 정도가, 나의 신앙 정도, 신앙심이 된다. 우리는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정도에 갇혀 산다. 그걸 넘어서지 않으면, / 늘 넘어서려 애쓰지 않으면, 나의 한계가, 굳어지고, 그게 족쇄가 되며, 내 똥고집이 되고, 내 무지/무식이 된다.

우리 인간은, 하루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인, 그것도 노년의 건망증과 기억력 감퇴로, 늘 퇴보하는 사람만 될 뿐이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성경을 읽지 않고, 곁들여 성찰과 회개를 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있는 하느님이 전부인 신자, 하느님 영역까지, 잘 안다고 확신하는, 위험한 신자가 된다. 자기가 하느님처럼 심판하거나, 자기가 하느님인냥, 사람 무시하는 괴물이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아는 고향사람들이 말한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Mk 6,2) 예수님을 알고 있는 이들은, 예수님이 갖고 있는, 지혜의 출처가 궁금하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고, 그의 출신과 배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만, 예수님만 알고 있는 지혜만큼은, 자기들이 모르는 것이다. 자기들보다 뛰어난 식견을 갖고 있다 여겨,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저는 고향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르는 자, 하느님의 능력을 모르는 불신자로 본다)

예수님은, 엘리트도 아니고, 엘리트 가문도 아니며, 엘리트 코스/과정을 밟은 것도 아니다. 자신들의 평가와 기대치로는, 절대 저런 사람에게서, 저런 지혜가 나오면 안된다. 안 나와야 정상이다. 그들은, 제1 독서에서 나오는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저 자손들"이다. 사람을 헤아린다 자신하고, 신까지 안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자기들 가운데, 예언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을, 쉽게 박해하고 마는 불신자인 것이다.

세상이 보기에는, 하느님을 아는 자가, 바보처럼 보인다. 미사도 와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하며, 봉사와 희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 낭비, 노력 낭비, 인생 낭비하는, 바보같다. 그러나 반대로, 하느님을 믿는 자가 보기에, 이 세상 하느님 모르고, 하느님 없이 사는 사람이 더 바보같다. 자기가 아는 세계가 전부인양, 그 곳에서 경쟁과 다툼만 벌이고, 그밖의 것, 그밖의 일은 하나도 모르며, 지 멋대로 사는, 바보천치 같다.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세상에서도, 세상 엘리트에게서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나온다. (이 믿음이 참 믿음이다!) 더 구체적으로, 하느님을 알려고,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느님 길을 묻는 이들에게서, 지혜가 샘솓는다. 하느님이 곧 지혜다. 미움밖에 모르는 이는, 그저 미움 바보로 살다 죽듯이, 미움 말고, 다른 하느님 것, 하느님 닮은, 좋은 것을 찾는 사람은, 그 지혜로 산다. 예수님처럼, 지혜의 사람이 된다.



..... 영성체 후 기도 후


루이스 라파엘 주교님과 총대리 몬시뇰께 드릴 선물을 전시 및 봉헌하였다. 이 세상에서, 한국 당고개 순교성지에만 있는, 유일한 성물이다. 구유십자가, 성모자십자가(‘어머니성지’, 제2대 신부 최양업 토마스와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 복자를 기리는 성지), 매듭묵주(교황님이 사랑하시는 “매듭을 푸는 성모님” 그림에서 착안하여, 우리나라 전통 매듭으로 묵주를 만들었다. 장인도 매듭 묵주 하나 만드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삼종세트이다.

2018년 겨울에, 교황님 알현 기회가 있어, 지인인 이창우 교수가 제작하여, 교황님께 헌정했던 성물이다. 이전 본당이라, 저도 직접 구매하여, 미국으로 택배받은 성물이다. 이 성당에 제가 봉헌하고, 또한 주교님께 봉헌할 것이다. 이런 예술 성물도 있구나, 관람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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