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길 땅의 길’
“…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간 길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한다. ‘슬픔의 길’이란 뜻이다. 매주 금요일만 되면 순례자와 수도자들은 십자가를 지고, 더러는 무릎걸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버림으로써 얻고, 죽음으로써 살며, 패배함으로써 승리하는 사람, 십자가에 매달려 고난을 당함으로써 오히려 영원한 소망을 안겨 줄 수 있었던 사람, 그가 누구이기에 지금 이 길에는 고통을 마다 않는 이런 행렬이 끊이지 않는가.”
1982년 12월, 당시 한국일보 문화부장이었던 정달영 프란치스코 형제의 「세계의 성지를 찾아서」 취재기 중 이스라엘편 ‘십자가의 길’ 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정달영 부장은 그 때 이스라엘 곳곳의 성지를 현장 취재해 <하늘의 길 땅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15회에 걸쳐 한국일보에 연재했다.
성경에 보면 베들레헴의 중요성은 예루살렘에 버금 간다. 아기예수의 베들레헴 탄생은 그래서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본다. 양치기들의 천막을 본떠서 설계된 ‘목자의 교회’안 벽화를 보며 정달영 부장은 “너무나 가난하고 춥고 더러운 마구간을 택해서 비천하게 태어난 예수를, 가장 먼저 달려가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 역시 가장 가난하고 따돌림받고 무지하고 소외된 계층이었음을 곰곰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정달영 프란치스코 형제는 1962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4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다. 편집국장, 상무이사까지 역임했지만 본인은 늘 ‘기자’였다. 기획 취재 기사는 물론 수많은 칼럼을 지상(紙上)에 남겼다. 그 중에는 가톨릭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있다. 「어떤 사랑의 이야기」(1992년 6월30일자)는 김수환 추기경이 3명의 사형수에게 세례와 견진성사를 주는 이야기인데 ‘사형폐지’가 요점이다. 「그가 걸어간 꽃길」(1997년 9월14일자)은 꽃동네 안의 수도원 서원식에서 의사가 수사로 서원하는 이야기와 마더 데레사를 소개하고 있다.
또 1985년 5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월간지 『마당』에 연재했던 <정달영의 인간발견>에서는 천주교 신자로서의 ‘안중근 토마스’의 이야기, 「공동번역성서」 중 구약 부분을 맡았던 문익환 목사와 선종완 신부의 일화 등을 소개했다. 당시 선종완 신부는 “이제야 하느님도 한국말을 제대로 하시게 되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한국 가톨릭신문출판인회(UCIP) 회장, 한국 가톨릭언론인협회 회장 등으로도 활동했던 정달영 형제는 2006년 8월21일,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일보 선배인 ‘정 국장’은, 나에게 죽음의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정달영 프란치스코 형제는 땅의 길에서 ‘하늘의 길’을 함께 살았다. 지금은 하늘의 길에서 ‘땅의 길’도 함께 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좀처럼 떠나지 못하고 있다.
- 홍의 마티아·출판인
- 2007년 11월 25일 TKCC 주보 말씀의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