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력 10년이 된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새내기 교사 시절 제게 아이들은 버거웠습니다. 숱한 시행착오 속에서 ‘내가 정녕 교사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곱씹으며 첫 해를 보내고, 이듬해 또다시 6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그 중 저를 교사로 살게 해 준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입성부터 말이 아니었어요. 옷은 늘 꼬질꼬질했고, 잘 씻지도 못하는 것 같은 그 녀석. 그래도 눈웃음이 예뻤고 제게 와서 이야기도 도란도란 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점점 지각과 결석이 잦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부모님은 매일 새벽에 나가 한밤중에 들어오는 노동 일을 하셨고, 아이의 등하교를 챙겨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4학년 때부터 가출을 시작했고 그 때문에 시골로 전학을 보내기까지 했다 하더군요. 다행히 저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 중이어서 매일 아침 아이의 집에 들러 함께 등교하고 퇴근 시간까지 함께 있다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이사와 함께 아이의 결석은 다시 시작됐고 급기야 가출로 이어졌습니다. 밤이 되면 시내 오락실과 거리를 뒤지며 아이를 찾아다녔습니다. 노숙과 좀도둑질로 버티던 아이는 제가 찾거나 경찰에 붙잡혀 제게 연락이 와야만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나가서 들어오지 말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새어머니와 말없이 술만 마시는 늙은 아버지 곁에 아이는 단 며칠도 붙어 있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자판기를 털어 얻은 동전 몇 개, 홑겹의 상의 한 벌, 땟물이 흐르는 면바지, 양말도 신지 못한 맨발을 하고서도 길 위의 삶이 더 편안해져 있었습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저의 마음은 조급해져만 갔습니다. 마지막 희망으로 이곳 저곳 쉼터들을 알아보고 경찰에게도 도움을 구해 보았지만 하나같이 친권을 포기해야만 시설에 들어갈 수 있다는 답뿐이었습니다. 지켜 주지도 못하면서 친권도 포기할 수 없다는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아이를 찾아 데려다 주었던 겨울 밤. 침묵하는 부모에게서 물러 나와 아이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이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제발 오늘 밤만이라도 따뜻한 방에서 자거라. 선생님이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해 너무나 미안하구나…’ 돌아오는 길, 세찬 눈보라 속에서 하염없이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교사라는 제가 이렇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나요? 제 힘은 너무나 미약하고, 저의 지혜는 보잘것없습니다. 눈물로 당부했지만, 아이가 오늘 밤으로 또 길에 나설 것만 같습니다. 주님, 어른들이 지켜 주지 못한 이 아이를 주님께서 지켜 주세요.’ 무력한 눈물과 간절한 기도로 그 밤을 보냈지요.
결국 아이는 졸업식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졸업장은 아직 제 책장에서 주인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졸업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저는 기도합니다. 지금은 청년이 되었을 그 아이, 대영이…. 주님, 대영이를 지켜보고 계시지요? 그 녀석,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희망을 갖고 힘차게 살고 있지요? 녀석의 눈웃음은 여전히 예쁘지요?
- 김현정 마르가리타│초등학교 교사
- 2008년 7월 6일 TKCC 주보 말씀의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