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소비자가 바뀌고 있다. 환경과 윤리를 생각하며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물건의 상표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심각한 인권문제는 없었는지, 이 물건 때문에 어느 가난한 나라의 숲이 파괴되고 그래서 착한 생명들이 멸종의 길로 내몰리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한다. 만약 우리가 아동 노동을 착취하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착한 물건에 우리의 돈을 양심적으로 쓸 수만 있다면 이는 보다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일종의 경제적 투표행위가 될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선택을 ‘윤리적 소비’ 또는 ‘착한 소비’라 부른다.
이러한 착한 소비를 실천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공정무역(Fair Trade)이다. 공정무역이란 가난한 생산자들이 만든 착한 물건을 제값 주고 사서 직거래로 소비자에게 연결하는 무역을 말한다. 공정무역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세계 빈곤 문제의 해법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에서 찾는다. 생산의 대가가 공정하게 지불되는 일자리를 통해서만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무역은 또한 이야기가 있는 물건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소통시킨다. 생산자는 자신이 만든 물건이 얼마의 가격에 누구에게 가는지 알고 있으며 소비자는 물건과 함께 전달되는 생산자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지지하게 된다. 이미 6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에서는 바나나, 초콜릿, 커피 같은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의류, 수공예품, 문구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정무역 생활용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정무역 사업체가 만들어져 커피, 설탕, 초콜릿, 옷, 수공예품이 조금씩 소개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 반 세기,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위해 앞만 보고 내달려왔다. 세계 11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지만 지구촌의 다른 불우한 이웃을 품어안는 데는 인색하기만 했다. 우리는 과연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12억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일까? 우리의 일상이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부와 소비가 지구 반쪽의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하는 세계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찰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막 한국에서 첫발을 내딛은 공정무역이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내 삶의 동반자로 끌어안는 윤리적 소비운동으로,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희망의 숲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 이미영 레지나│(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
- 2008년 6월1일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