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 센터 노 수녀입니다.”
“수녀님, 제 남편이 암 말기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받다 집에서 요양 중인데 많이 힘들어해서요. 수녀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이 전화를 받고 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 팀인 의사, 간호사와 함께 다음 날 그 가정을 방문했다. 부인은 남편의 암 발생에서부터 그 동안 치료과정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현재 병원에서는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해 통증과 증상조절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육체적인 아픔보다 심리적·영적인 고통으로 더 힘들어하고 음식도 거부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계속해 가족들이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하다고 울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환자의 손을 잡고 성령께 도움을 청하며 우리들을 소개하고 환자가 말문을 열도록 했다. 환자는 아주 천천히 몇 개의 단어들을 이어갔다. “왜 살아야 하는지, 가족에게 너무나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것 같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하느님은 그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왜 이렇게 큰 고통을 주는지, 정말 하느님은 살아 계신지….”
이런 경우 수도자인 나도 인간적인 한계를 느끼기에 이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성령이 함께하기를 청하면서 기도를 했다. 이 때 갑자기 환자가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하느님 용서해 주세요.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기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당신을 원망만 했습니다”라고 하며 힘들어했다. 같이 있던 부인도 “사랑합니다. 당신이 함께 있어서 행복했어요. 그 동안 잘못하고 섭섭했던 것을 털어 버리세요. 우리 가족이 당신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또 하느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시죠?” 하며 남편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 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크게 느껴 다만 정성을 다해 그 형제님의 손을 잡고 성령께 기도했다. 고향낙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주님께서 주셨던 처음의 그 마음을 고스란히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내 몸 안에서 무언가 알지 못할 기운이 형제님에게로 옮겨 가는 느낌이 들었다.
성령은 볼 수는 없지만 진실로 갈망하며, 평상시에 성령의 움직임에 민감하려는 마음으로 산다면 누구나 감지할 수 있다. 나는 또 성령께서 특별히 마지막 가는 분들에게 하늘 길을 열어 동행해 주심을 느낄 때가 많다.
공기와 같이 늘 곁에 계시면서 오늘도 우리를 살려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 아니실까?
- 노유자 쟌 드 마리 수녀│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 센터
- 2008년 5월 11일 TKCC 주보 말씀의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