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년은 되었을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 어느 해 겨울 방학에 서울역 앞 양동에서 봉사체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양동에는 몇 분의 수녀님들이 그 지역에 거주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녀님들도 처음에는 그곳 사람들의 텃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자취조차 없어졌지만 당시 서울역 앞 양동에는 해방이후 형성된 유곽이 즐비했고 판자를 세워 지은 집들이 가득했습니다. 윤락 여성, 걸인, 고아, 장애인들도 많이 살았습니다. 양동을 처음 찾았을 때 ‘서울에 이런 곳도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받고 버림받았으며 가난과 병에 지친 사람들 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작은 희망조차 없이 살고 있다는 사실 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수녀님들이 이들의 벗이 되어 함께 살고 계셨던 것입니다. 나는 양동에서 만난 맹인 할아버지가 한 말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나는 하느님이 누군지, 정말 계신지도 몰라. 그런데 수녀님들이 우리들 곁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해 사시는 것을 보면 하느님이 계신 것 같아. 수녀님들이 믿는 하느님이니까.” 그 당시 양동 사람들에게 수녀님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분의 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현재도 우주의 끝이 밝혀지지 않아서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숫자를 정확히 모른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 많은 별 중에서 그분의 별을 발견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 년 역사동안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핍박과 고통의 삶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메시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구세주인 예수님께서 태어난 것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머나먼 동방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라는 동방 박사의 말을 듣고 비로소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법석을 떱니다. 동방박사들은 아주 먼 곳에 있었지만 그분의 별을 보았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나요? 오히려 지척에 있던 유다인들은 그분의 별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왜 별을 못 보았을까요? 혹시 너무 가까이 있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욕심에 눈이 어두워졌거나 별을 찾는데 게을러지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분의 별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쩌면 손이 닿을 곳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태어나실 곳, 베들레헴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입니다. 우리는 무수한 별들 중에 그분의 별을 찾아야합니다. 물론 저절로 찾을 수는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처럼 많은 수고와 노력이 따를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예수님께서 당신을 진리요 길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을 보고 그분을 따라간다면 생명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다른 이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분의 별이 되어야 합니다.
올 한해 나와 이웃 안에서 그분의 별을 자주 발견하기를 소원합니다.
-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