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아름답게 물든 나뭇잎과 밝고 맑은 볕을 즐기며 산길을 걷다가 문득 애처롭게 죽어가거나 이미 주검이 되어버린 작은 동물이나 곤충들을 보면 발걸음이 멈칫해진다. 숲을 이룬 나무들은 무성히 푸르렀던 잎과 열매를 떨어뜨리고 빈 몸이 되고 삶의 소임에 충실했던 생명들은 그들이 남긴 씨앗과 알로 다음 해의 부활을 약속하며 이렇듯 숨져간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나 또한 예외가 아님을 알면서도 죽음은 언제나 충격적이고 낯설고 새삼스럽다. 각별한 사이가 아니었더라도 부음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 탄식을 내뱉으며 일상성의 견고한 막을 찢고 드러나는 삶의 깊은 심연과 보이지 않는 저 너머 세계에 대한 전율이나 외경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지상에서 떠나간 사람들은 비록 육신은 사라질지라도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리운 추억으로, 따뜻한 불빛으로, 가슴 저미는 회한으로….
누구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그네 됨에 지나지 않는다는 숙연함을 일깨워 주는 11월은 세상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평화와 안식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이다.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굳이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이지 않아도 떠나가는 모든 것 앞에서, 그러한 운명 앞에서 겸허해지는 마음이 바로 기도하는 마음이 아닐 것인가.
스무 살의 나는 미국의 소설가 토마스 울프의 장편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가리" 의 마지막 구절을 비망록에 적어 넣었었다.
"… 밤중에, 누구인지 무엇인지 모를 어떤 존재가,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의 촛불을 태우면서 나에게 말을 했는데 그것은 내가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소…."
때로 반항과 거부의 몸짓을 부추기게도 했고 때로 삶의 치솟는 열정을 일깨우기도 했으며 때로 고고한 자존과 고독을 지켜주는 기치이기도 했던 이 문장을 절대자를 향한 순명과 겸허함으로 받아들이기까지, 내 헐벗은 영혼과 가난한 언어의 남루함을 깨닫기까지의 세월이 스무 살 이후 내 삶의 여정이었던가.
깊은 밤, 이런저런 상념으로 잠 못 이루는 내 귓가에, 집 앞을 지나가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변성기를 채 벗어나지 못한 소년의 목소리는 "목숨과도 바꿀 사랑, 죽어서라도 너를 사랑하리라" 부르짖고 있었다. 실연의 아픔을 토로하는 노래일 수도, 순정한 사랑의 연가일 수도 있을 그 노래에 가만히 미소 지으며 나는 그에게 속엣 말을 건넨다.
"누구라도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맹세하지 마라. 주시는 이도 거두시는 이도 하느님이시니."
- 오정희 실비아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