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놀러 가자." "어디로?" "어디 가고 싶은데?" "롯데월드 아니면 서울랜드! 오랜만에 몸 풀러가자. 고모!" 신나는 놀이기구 타는 걸 좋아해 없는 애교까지 부리며 조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사람 구경만 실컷 하다 오는 데가 뭐가 좋아?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 놀러 가는 데 제격이지."
조용한 데는 무서워서 싫다고 우겨대는 조카들에게 "강아지랑 병아리 키우고 싶다며… 강아지랑 병아리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아야 키울 수 있지!" 하며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더니 단번에 넘어왔습니다. 강아지랑, 토끼랑, 닭들이 동물왕국을 이루며 사는 곳이라는 말에 솔깃했지만, 대중교통을 몇 번씩 갈아타고 간다는 말과 도시락을 준비해 가지고 간다는 말에 다시 한 번 안 가겠다고 심통을 부렸습니다.
자기들끼리 놀러 갈 때는 걸어서도 잘 가고 자전거도 잘 타고 다니지만 어른들과 나들이를 할라치면 가까운 거리도 꼭 차를 타고 가자고 합니다. 우리가 에너지를 다 써 버리면 후손들에게 남겨 줄 에너지가 고갈된다고 했더니 다른 행성을 발견하면 된다고 우기거나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하실 거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죠. 다른 집보다 친환경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분리수거나 물 아껴 쓰기 같은 것은 제법 잘 하는데도 불편한 나들이를 질색하거나 소란스럽고 인위적인 놀이동산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친환경적으로 산다는 것은 가정에서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것뿐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존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합니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걸어서 서너 시간을 소요하며 귀농한 친구 집을 방문했습니다. 아이들 키만 한 누렁이가 어슬렁거리며 아이들 주변을 빙빙 돌았습니다.
"엄마야!" 여섯 살 루치아가 외마디를 지르며 누렁이를 피해 마루 위로 폴짝 오르자 누렁이보다 더 덩치가 큰 요한과 바오로도 덩달아 숨었습니다.
"어이없다. 요한아, 바오로야. 6학년 맞아? 누렁이보다 더 큰 녀석들이 등치 값도 못하네. 뭐가 무서워? 니들이 호들갑을 떠니 누렁이 황당해 하잖아. 하하."
집주인 파비아노 형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마당을 다 차지한 오리와 닭, 햇볕 아래서 게슴츠레 졸고 있는 토실토실한 고양이, 어슬렁거리는 누렁이 일가족, 우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란 눈을 하고 있는 토끼들을 보며 아이들은 놀이동산도 놀이기구도, 컴퓨터 게임도 잊은 채 그들 속에 묻혀 하루를 보냈습니다.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 다른 피조물을 존중하라는 것, 자연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돌아온 우리에게 불편한 나들이는 삶의 축복이었습니다.
걸어서, 손수 만들어서, 자연 속에서, 다른 種들 안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 한 자락은 우리들의 왜곡된 삶을 바로 잡아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 김현옥 미리암․환경활동가,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