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컬크우드 호스피스에서 만난 말기 식도암 환자의 질문을 받고 당황해했던 아찔한 순간이 생각난다. 이 환자는 어느 때는 말이 없어지고, 사람을 회피하고 의미와 의욕상실 등 우울한 상태를 보여오고 있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수녀님, 천당이 있다는 것을 정말 믿어요? 어떻게요?”라고 질문을 한 것이다. 질문 자체도 어려운 것이지만 한국말로도 답하기가 난해한 질문이었다. 더구나 짧은 영어, 그 무엇보다 가장 어렵게 한 것은 나의 믿음의 부족이 아니었을까? 각고의 노력 끝에 나는 여러 가지의 지식과 체험을 총동원해 천당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더니 그는 만족한 모습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그 후 그가 밝은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고 호스피스 팀원들은 나에게 그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해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어떤 말을 했다는 것보다는 아마도 나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그것도 수도복을 입은 자로서 하느님에 대해 최선을 다해 전하려는 그 곳에 예수님께서 조용히 함께하셨던 것 같다.
말씀과 성체의 선물은 우리를 항상 새롭게 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한다. 진통제에 의존하는 말기환자가 눈을 뜰 기력조차도 없는 상황에서 성체를 모시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성체를 모실 때, 갑자기 얼굴과 눈에서 광채가 나고 밝아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성령의 현존을 느끼게 된다. 물 한 모금을 넘기기가 힘들어도 성체를 모시고 싶은 그 갈망, 평소에는 어쩌면 습관적으로 모셨을지도 모를 그가 예수님을 만나 뵙고 싶은 열망에 성체 모시는 시간들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기다린다. 진정제, 약 등으로 몽롱한 정신 속에 눈을 뜨고 떠보려 노력하며 기다리다가 성체를 모시고 그를 찾아오는 신부님과 수녀님을 보면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뵙듯이 눈동자가 밝아진다. 온 정성으로 몸, 마음, 영혼을 다 일깨워 좀 더 맑은 정성으로 모시려는 그 몸짓이 한없이 부럽다.
큰사랑으로 많은 이가 돌봐도 역시 홀로 떠나야 하는 하늘 길은 어느 곳까지만 동행하게 된다. 아니 동행자가 많아 보여도 역시 홀로 주님만이 참 위로자요 동반자임을 느끼고 보며 체험하곤 한다. 이러한 사랑 체험 잔치에 가톨릭 신자는 물론 뜻을 같이하는 모든 분을 초대하고 싶다.
살아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여섯 가지 삶의 기준이 아닐까?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고 /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를 맞아 주고 /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 돌봐 주고 /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 주는 것.
우리나라 호스피스가 더 활짝 꽃피기를 꿈꾸어 본다. 호스피스는 삶의 아름다운 마침표를 실제로 가능하게 하니까!
노유자 쟌 드 마리 수녀│성 바오로 가정호스피스 센터
2008년 5월 25일 TKCC 주보 말씀의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