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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연중 제22주일 B Mk 7,1-23 위선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종종 남의 죄가, 나의 구원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제발 오해하지 마시길 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 잘못 들으면, 제가 사제로서, 고해의 비밀을 어기고, 누설하는 것처럼, 또한 남 뒷담화하는 듯이, 들릴 수 있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다. 오늘 강론은, 수도자, 특히 수녀님들에 관한 것이다. (이 중에 수도자를 가족이나 친척, 지인으로 두신 분께, 죄송하다. 그분들은 우리 교회, 우리 신앙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보여주는 모델, 선구자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망하는 지, 어떻게 쉽게 죄짓는 지, 보여주는, 대표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과연 수녀님들의 죄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수도자들의 죄는, 저와, 우리와, 다를 바 하나 없다. 그러나, 좀 더 사소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을 악은 다 있다. 바로, “위선”에서 그렇다. 먼저, “수녀님들의 죄는, 어디서 나오나”, 저 나름대로의 분석이다.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수녀님의 죄는, 기도에서 나온다. 기도? 그거 좋은 것 아닌가? 그분들은, 기도 많이 하시는 분들 아닌가? 맞다. 저보다, 우리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시는 분들 많다.

 

 

그러나, 기도를, 수도원 공동체 안에서 하는, 공동 기도에 익숙해지면, 거기서, 악이 흘러나온다. 수도자들은, 공동체라는 시스템에 적응하기만 하면, 다 해결된다. 아침-점심-저녁, 하루 온 종일, 수도원에서 지정한 시간에, 지정된 장소에, 늦지 않게 머물기만 하면, 자연히 기도가 되고, 그게 수도생활이 된다. (마치 저의 신학생 때와 같다. 종치는 데로 살면 된다. 종치면, 소등하고, 종치면 성당가면 된다) 헌데, 그런 시스템에 무작정, 생각 없이 따르는 데, 익숙해지면, 그때 문제가 생긴다.

 

 

물론 시스템은 편하다. 그 안에 있으면, 다 해결된다. 마치 열차에 가만히 타고 있기만 해도, 목적지까지 쉽게, 편하게 도달할 수 있듯이, 공동체 안에 편승하기만 하면, 수도 생활이 되는 것이다. 공동체가 하라는 대로, 공동체가 정한 대로 살기만 하면, 쉽게, 훌륭한 수도자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수도생활하기 참 쉽죠?) 그러나, 그렇게 남 따라, 덩달아, 남들과 함께, 남들 속에서,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생활이, 수도 생활에 독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기도를 기쁨으로 여겨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기쁨 없이, 기도를 해치우듯, 떼우듯, 하기 쉽다. 기도를 대하는 그 자세에서, 죄가 시작된다.

 

 

수도자는 어떤 죄를 짓는가? 실제로, 수녀님들 죄고백을 들으면, 재미없다. ("재미없다"라는 표현이 이상할 것이다. 대개가 아이들과 비슷한 죄 고백이다. 생활반경이 작아서.. 그러나, 그런 고백이 가장 좋다. 헌데, 듣고 배운 것이 많아, 아는 게 많아서, 죄 말고, 죄만큼의 군더더기 말을 가미한다. 뭐가 문제인지, 알아서 셀프 분석하고, 무엇을 놓쳤는지, 알아서 셀프 처방하고, 정말 수려한 신학 지식, 성경 구절 동원한 말솜씨로, (정말 쓸데 없는 말로) 치장한다.

 

 

마치 "나 유식해요, 나 많이 알아요, 나 신심 깊어요, 나 말 잘해요, 나 열심히 살려고 애써요"를 뒤섞어, 회칠한 무덤처럼, 회칠한 죄를 고백한다. 예컨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자비의 하느님, 용서의 하느님이신데, (나는 그걸 너무나 잘아는데,) 가끔, 간혹, 어쩌다, 형제/자매를 미워했어요." 이런 식으로 고백한다. 스스로 뭐가 선인지, 어떻게 하는 게 선행인지, 다 알고 있기는 한데, 아는 건 많은데, 그게 잘 안된다고 한다.

 

 

(신앙 깊다 자신하는 신자들도, 이와 똑같은 형식으로, 고백한다) 하느님 말씀과 계명, 수도원 규칙과 지침을, 다 알고 있다. 근데, 그걸 지키는 데, 매번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악이 나쁜 지, 다 안다. 남들한테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스스로는 극복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다, 남들한테는 하지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아는 대로 살지 못한다. 이런 모순을 넘지 못하면, 수도생활, 신앙생활, 다 망가지는 것이다.

 

 

오늘 제2독서에서,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1-22) (성경 공부 많이 하는 사람들도, 이 위선에 빠진다. 성당에서 고고한 역할만 맡으려 한다. 성당 청소, 주방 봉사,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선은, 아는 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좋아하는 문장,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물론, 모르는 것보다는, 한참 더 낫다. 하지만, 많이 알고 있기만 하고, 써먹지 않는 것은, 악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죄가 될 수 있다. 거기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려는, 욕심도, 교만도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자는, 본당에서, 신자들에게, 가르치는 역할을 주로 맡다보니, 선생질이, 몸에 밴 것이다. 자기도 늘 학생이어야 하고, 남을 위한 것 이전에, 자기 성화, 자기 회개를 위해, 애써야 하는데, 편하게, 그리고 남에게 우러름 받기 좋아해서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수녀님들도 참으로 많다. 물론 성직자도 똑같다. 저도 늘 회개한다)

 

 

오늘 복음에서, 몇몇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그 중에, Mk 7,10-13 대목이, 전체 해석에 도움주는 열쇠이다.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결국,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전통과 관습은, 생색내기용이었던 것이다. 그것만 지키면, 쉽게, 신앙있는 척,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을, 다 했다고, 안심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고, 나아가, 자랑할 수도 있고, 그렇게 살지 않는 이를 심판할 수도 있다. 손을 씻는 건 중요하다. 위생상, 청결을 위해, 그런데 이상하다. 한 움큼의 물로, 얼마나 깨끗하게 씻을 수 있을까? 간장 한 종지만큼의 물에 손을 조물조물 하며 씻는 것만으로... 그게 위선이다. 선한 척하는 것이다.

 

 

고인 물은 왜 썩을까? 고인 상태는, 평화롭고 안정된 상태인데, 왜? 흘러야, 움직여야, 비로소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는 법니다. 가만히 멈춘 상태는, 변질되고, 부패하게 되고, 죽게 된다. 우리 인간도 그렇다. 몸을 씻는 이유도, 내 방, 내가 사는 곳을 환기시키고 청소하는 이유도, 내 머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죽을 때까지 배우고 익히고 공부하는 이유도, 내가 썩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선함을 늘 찾아야 하는 이유도, 썩지 않기 위해, 악에 쪄들지 않기 위해서 이다.

 

 

오늘 미사 초반, 사제가 드리는 본기도로 마칠까 한다.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으시어, 생생한 믿음으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한 번의 믿음으로 끝나는 우리네 신앙이 아니다. 생생한 믿음, 매번 매순간, 살아있는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 늘 살아 움직이는 믿음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씨앗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된다.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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