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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연중 제18주일 B Joh 6,24-35 불평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감사가 없어지면, 불평이 생긴다.” 하느님께 기도가 멈춰지면, 곧 감사 기도가 사라지면, 불평 불만할 것이 날로 늘어난다. 여러분은 무엇에 불평 불만이 있는가? 불평 불만은, 가장 가까운데서부터 먼 데로, 처음엔 큰 것부터 시작하여,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든 것에로 퍼져나간다. 오늘 강론은, 이 불평에 대한 것이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에서, 공통 소재는, 만나이다. ‘만나’라는 단어의 뜻은, "이게 무엇이냐?" "영어로, "What is this?"이다. 신기한 건, 의문형의 문장이, 하나의 단어로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만나를 하느님이 내려주신 양식, 하느님이 우리를 살리려고, 구원하려고 내려주신 빵으로 알아보고, 믿고, 감사로 먹은 이에게, 만나는, "하느님의 양식입니다" 감사 고백으로 곧바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빼버리고, 배 고프니까, 자기 배 채울, 먹을 것 중 하나로 보는 사람에게, 만나는, (농담을 좀 섞어) "이건 또 뭐야?" 의심의 것이 되고, "에게, 이게 뭐야?" 불평 불만 거리만 될 뿐이다. 만나는, 하느님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빵 이름이지만, 만나 그 자체는, 하느님의 시험이다. 그들이 과연, 하느님을 믿고 있나, 아닌가, 당신 지시를 잘 따르나 따르지 않나(Ex 16,4) 판가름 하는, 일종의 시험인 것이다.

 

시험, 이 말은, 별로 좋은 말은 아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떠보다니, 하느님이 마치 악마와 같다. 악마는 늘 인간을 떠보고, 유혹하고, 죄에 빠트린다. 예수님도, 공생활 초기에, 악마에게 세 번 시험당했다. ‘시험’이란 말이 갖고 있는 느낌은, 물론 부정적이다. 하지만, 만약 시험을, 하나의 기회로 본다면?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정도, 믿음 상태를 시험해 보고 있다. 그들에게 알맞은 구원을 주기 위해서이다. 악한 이들에게 은총은 오히려 독이 되고, 타락이 되고, 멸망/죽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들의 신앙을 체크/점검하는 것도 되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들의 신앙심을 업그레이드, 높일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들이 더 큰 은혜를 받을 그릇, 준비가 되어있는지, 가늠해 보시려는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감사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지시, 그분 명령을 온전히, 성실히, 기꺼이 따랐다면, 그들의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못되먹었다. 제1독서 이후 성경을 보면, 곧바로 그들의 비행이 이어진다. 하느님이 먹을만큼만 거두어들이고, 아침까지 남기지 말라고, 모세를 통해 전했으나,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따르지 않는다. (몇몇밖에 안되는데... 아니다, 그 몇몇이,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을 대변한다) 그들이 욕심을 부려, 내것처럼 아침까지 남겨 둔 만나는, 구더기가 꾀고, 고약한 냄새가 진동한다. 모세가 화를 낸다. 하느님도 화를 낸다.

 

만나를 통해,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시험하신다. 만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갖고 있는 신앙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신앙은 없고, 불평은 많고, 그래서 달라는 요구 사항이 거세지는 것이다.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구출한 구원자 하느님은, 이미 잊어버렸다. 오로지, 고기냄비만 기억하고, 이집트에서 먹던 빵만 그리워한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시험하려 든다. 인간이 하느님을 시험한다는 건, 이미 오만방자, 불신앙, 이미 악마가 되버린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 불평 불만이다.

 

여러분은 언제 불평하는가? 만일 제가 새 임지에 발령받고,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한다면? "하느님, 이렇게 무식하고, 무개념이고, 신앙조차 없는, 이런 신자를, 왜 저에게 주셨나요?"라고, 사제가 하느님께 불평한다면? (이거, 진짜 아닙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 것만 찾고, 자기 좋을 것만 달라고 하는 신자를, 왜 저에게 시련으로 주셨나요?" 투덜대며, 다른 신자, 다른 성당으로 바꿔 달라고 한다면, 이런 사제는, 신앙 없는 사제이다.

 

반대로, 신앙 있는 사제라면, 달리 생각할 것이다. "하느님이 나에게, 이런 신자를 주신 이유가 있을 것이야! 이런 신자에게, 나를 파견하셨다는 건, 비록 지금은 별로지만, 하느님이 이 신자를 특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 하느님은 당신 대신, 사제가, 그들을 바른 길로, 바른 신앙으로 인도해 주기를 바라시기 때문이야!" 그런 하느님 뜻을 발견하고 고백하며, 그 뜻대로 살 것이다.

 

하느님은 사제에게, 더 큰 신앙, 더 큰 사랑을 수련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은 신자에게, 신앙 배울 기회, 회개할 기회, 새로이 하느님을 제대로 섬길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제와 신자, 그 둘을 만나게 하여, 그 둘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서로 하느님을 믿고, 서로 하느님께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기꺼이 하느님 것으로 여기며, 서로 하느님 선물로 대한다면, 그 성당은 구원을 얻는다. 불평은 사라지고, 다른 신자, 다른 신부 달라고, 조르지도 않아도 된다.

 

우리의 인생은, 한 마디로, 신앙 시험의 나날이며, 신앙 기회의 나날이다. 그것도 죽을 때까지... 오늘 하루도, 하느님을 믿고 사는 지, 심판의 날이다. 하느님 믿는 사람은, 하느님께 거래하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 것들로 가득한데, 마치 자기 것인양, 혹은 자기가 하느님께 선심 쓰는 양, "뭘 해줄태니, 뭘 주세요" 거래 기도하지 않는다.

 

하느님 믿는 사람은, 하느님께 구걸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알아서,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실텐데, 내가 내 마음에 드는 것을 탐내서, "그것만 주세요, 그것 아니면 안돼요", 하지 않는다. 하느님 믿는 사람은, 하느님께 협박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늘 언제나, 혹은 언제든 가장 좋은 것을 주실꺼라 믿는다. 더 달라고 하지 않는다. 부족하다고 투덜대지 않고, 더 많이 있어야 한다고 조르지도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 대신에,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더욱 더 찾으려 한다. 내것 찾기보다, 하느님 것을 늘 발견하며, 그것에 감사하며 산다.

 

오늘 복음에서, 저에게 특이한 구절이 있다. 군중이 예수님께 묻는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신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하느님의 일, 곧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저, 고작,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일, 간추려, 하느님을 믿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미사를 드리는 일도, 기도드리는 일도, 고해성사 드리는 일도, 믿음이 없으면,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헛일만 된다. 하느님을 믿지 않고, 그것이 하느님 것임을, 그 하느님 것이 나에게 구원임을 믿지 않으면, 미사도 지옥, 기도도 지옥, 봉사도 지옥, 성당 일이 다 지옥만 된다. 불평불만 거리만 된다.

 

여러분은 어떤 불평을 하는가? 자기 부모에 대해 불평하는가? 자신의 가정환경, 신세에 불평하는가? 자기 배우자, 자기 자녀에 대해 불평하는가? 저 미운 사람, 날 불편하게 만드는 저 인간에 대해 불평하는가? 불평은, 하느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고 보지 못하고, 그리 믿지 못하니, 불평만 생기는 것이다. 믿음이 없어, 감사가 없어, 불평만 느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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