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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Mk 14,12-16.22-26 미사 성체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지난 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에, 저는 기도의 유익이 무엇인지, 강론하였다. 우리는 왜 기도하는가? 왜냐하면, 기도해야, 우리는, 겨우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 덕분에, 그제야 내가 하느님 것 되어, 살아갈 수 있다. 우리 신앙인은, 기도해야, 비로서 생각 없이 막 살지 않게 된다. 늘 하느님을 의식하고 염두에 두며,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분 말씀에 충실히 따르며, 하느님 자녀로 살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기도가 은총이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게, 구원이다. (내가 기도를 해주어, 은총을 얻는 게 아니라, 나는 기도로 산 것밖에 없는데, 그 기도가 은총의 통로가 되어, 내 삶이 은혜의 삶이 된다. 내 애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 덕분에.) 기도가 나를 살린다. 

 

하나의 예시로, 식사 전후 기도를 언급했다. 여러분은 식사 전에, 그리고 식사 후에, 기도하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먹기 전에는 감사, 먹은 후에는, 입 싹 닦기" 일 것이다. (이 모습이, 우리의 신앙 모습이다) 만일, 기도 없이, 막바로 먹는 데 익숙한 사람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는 내 입에 맞는 것만 찾고, 내 배 채울 것만 찾는다. 하느님께 감사할 것 없고, 상대의 배고픔도 못 본다. 하느님도, 사람도 안중에 없다. 하느님도, 이웃도, 가볍게 여긴다. 가족도, 쉽게 무시한다. 오직 내 허기와 갈증만 중요할 뿐이다.

 

왜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쳐야 하는지, 이제 알겠는가? 하느님을 몰라보는 얘들이, 과연 부모님을 알아볼까? 하느님 은혜도 쉽게 잊어버리는데, 과연 부모님께는, 감사할까? 아닐 것이라 자신하는가? 우리는 기도하듯이, 살아간다. 기도하듯이, 하느님 섬기고, 기도 자세 그대로, 부모님을 섬긴다. 기도가, 우리 사는 습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욕심기도하는 이는, 언제나 욕심 내며 살고, 감사기도하는 이는, 늘, 받은 감사, 뿌리고 나누며 산다. 

 

우리는, 하루에 세 번, 혹은 그 이상, 식사 때에 십자성호를 긋는다. 그때,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는 욕심을 먹고, 악을 섭취해 악에 물들고, 그래서 점차 악인이 되어간다. 내 생명을 살리는 에너지를,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나 사는 데만 사용하려 할 것이다. 내것을 더 많이 얻으려고, 탐욕 채우려고, / 더 편하려고, 더 게으르려고, 먹고 마시려 할 것이다. 내가 선물로 받은 생명 에너지를, 낭비하고, 남용하며, 그 좋은 생명을, 죽음과 쓰레기 만드는 데, / 뻘짓하는데, 사용하고 말 것이다. 

 

기도 덕분에, 우리는, 자기 욕심을 털어 내려놓고, 앞에 놓인 음식을, 하느님이 주신 양식으로 알아보게 된다. 내가 먹은 생명, 그 생명을 통해 얻은 내 안에 생명 에너지를, 이 세상 또 다른 생명 살릴 일에 쓰게 된다. 지금 하느님이 내게 나눠주시듯, 나 또한, 일용할 양식 되어, 누군가와 나눌 양식으로 살아 간다. 먹고 마시는 일은, 이렇듯, 참으로 중요하다. 

 

음식을 앞에 두고, 여러분은 감사를 느끼는가? 애써, 감사를 기억해내는가? 양식을 주신 하느님께, / 그 양식을 장보고 요리하고 마련해 주신 이들에게, 대개 엄마/아내에게, 그리고 나와 함께 모인 식구들에게서, 감사함을, 다시금 발견하는가? 아니면, 감사를 잊으니, 기도가 없고, 기도를 멀리하니, 탐식만 있지 않은가? 

 

갈증과 허기로, 폭음과 폭식으로, 음식을 대하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적당히 떼우듯이, 아무거나 절제 없이 먹고 마시는 것도 삼가는 게 좋다. 내 몸 사랑하듯, 하느님 주신 이 몸을 소중히 다루듯, 먹고 마실 줄 알아야 한다. 먹고 마시는 일은, 우리 생존에 중요하다. 그렇듯,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똑같이 중요하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만찬 식사가, 지금의 미사가 되었을까? 천주교에서, 이 전례가, 은총이요, 하느님 섬기는, 최고의 예식일까?  

 

(오늘날 "혼밥혼술", 혼자 밥먹고 혼자 술먹는 분위기가 유행이다. 헌데, 그 모습이 오늘날 사회의 단면과 그림자, 미래 모습을 반영한다. 우리 인생의 저녁, 노년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내가 만나러 찾아갈 이 없고, 나를 만나러 찾아 올 이 없는 노년, 마치 유다의 말처럼, "저는 아니겠지요?" 말하지 말라! 그게, 내 말년의 모습이고, 그렇게 고독사할 수 있다.)

 

우리 인생에서, 먹고 마시는 일은, 누구에게나, 축제요 잔치이다. 그 잔치의 주인은, 항상 하느님이다. 그래서 기도로 식사한다. 내가 하느님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잔치상에 초대받음에, 내가 기도로, 감사로 화답한다. 기도가 없으면, 감사를 잃어 버린다. 그래서 하느님이 없는 자리, / 하느님을 몰아낸 자리는, 사랑도 없다. 나눔도 없다. 기도 없는 자리는, 나와 하느님 사이의 잔치도 없고, 나와 이웃 함께 축제도 없다. 그냥 나와 내것 음식만 있다. 늘 부족과 불만이 있고, 더 좋은 음식 탐냄만 있다. 

 

마지막으로, 나와 미사의 관계는 어떠한가, 점검하길 빈다. 여러분이 이 미사를 어떻게 대하는지, 곰곰히 성찰해 보기를 빈다. 이 미사를 대하는 자세 그대로, 나는 하느님을 믿고 있고, 그렇게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 나아가, 이웃도 그런 식으로 만나고 있다. 이 미사 태도 안에, 내 신앙, /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그 정도가, 고스란히, 다 드러난다. 미사에 집중하기 힘든가? 미사가 따분한가? 주일 미사가 귀찮은가? 미사 말고, 다른 걸 떠올리기 좋아 하고, 더 재미난, 다른 것에 끌리는가? 

 

미사가 귀찮다면, 하느님도 귀찮게 여기는 사람이다. 십계명도 귀찮고, 사랑도 귀찮고, 선함도 귀찮을 것이다.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인, 이 주일미사 말고, 다른 것에 마음 뺏기듯, 일주일 내내, 딴 생각만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하느님보다, 세상 다른 것을 더 탐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바라고 탐내는 것이, 하느님 것보다 더 소중할 것이다. 나를 즐겁게 해주고, 신나게 해줄 무언가를 찾아, 하느님 주신 에너지를 쏟고 있을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 중에 피의 계약을 맺으며,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Ex 24,7)하고 선언한다. 이 미사 때, 우리가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내 일주일을 위한, 일용할 양식인, 성체를 모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느님이 주신 이 몸을, / 성체 모신 이 몸을, 하느님 것으로 다루기 위해서이다. 하느님이 주신 이 생명을, 이 세상 살리시는 하느님 뜻 따라, 세상 살리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이다. 

 

이 미사는, 나를 살리고, 나의 일주일을 살린다. 미사 덕분에, 나의 삶이 감사가 되고, 축제가 된다. 나의 세상 삶은, 받은 은혜 누리며 사는 감사 잔치요, 나와 가족, 주변 이웃과 나누는, 사랑 잔치이다. 미사가 여전히, 하찮아 보이는가? 이 미사가, 나에게 은총이고, 나의 구원이다. 이 세상에서, 다른 은총을 찾아 헤매기 보다, 이 미사 은총을 놓치지 말기를 빈다. 이 미사에 등돌리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께 등돌린 사람이다. 이 미사를 놓치는 사람, 결국 하느님 길을 벗어난다. 구원을 놓친다.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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