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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성령강림대축일 Joh 20,19-23 은사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믿어야 할 교리, 외어야 할 것들이 천주교에서는 많다. 그 중에, 무엇보다 믿어야 할 것 하나! 하느님이 주시는 것, 하느님 것은, 나에게, 우리에게, 우리 모든 인간에게, 다 좋다는 사실! (이 세상 만물, 자연, 내 부모, 가족 등등) 이것을 근거로 보면, 우리가 얼마나 무심했고, 얼마나 소홀했는지,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예컨대, 그중에도, 기도, 이 미사, 고해성사, 다, 좋은 것이 된다. 나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느낌을 갖는가? 만일, 내가 귀찮게 여기고, 지겹게 여기고, 가볍게 여긴다면, 그건, 내 책임이 된다. 내 어리석음, 무지요, 내 게으름 탓이 된다. “하느님 것은 다 좋다”는 그 믿음에서, 나의 신앙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

 

오늘은, 우리가, 성령을 선물받고, 교회의 시작, 교회를 선물받고, 어떻게 해야 믿음이 생기는지, 그 믿는 방법을 선물받은 날, 성령강림대축일이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는, 사목회의와 구역장님을 통해, 전달했다. 잘 받으셨나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곧 사순시기와 부활시기, 그 맨 끝날에, 우리는 서있다. 오늘 성령 강림은, 그 절정을 의미한다. (오늘은 부활시기의 끝, 내일부터 연중시기 시작. 유럽교회는 내일까지 성령강림 연휴) 하느님은, 우리에게 크나큰 구원의 선물을 안겨주셨다. 우리와 같은 살과 피, 육신을 지닌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실상 우리는 그분을 제대로 몰라 보고,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 자의든 타의든...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우리는 그분을 하느님 선물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또 다른 뜻, 새로운 계획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신다. 살과 피, 육의 단점은, 유한하고, 썩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예수님 다음으로, 거룩한 영,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제 성령이, 우리와 늘 함께, 끝까지 함께 일하신다. 이것이 성령강림의 참뜻이다. 우리는 한 때 그분을 버렸지만, 그분과 성령은,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이제 성령이 베푸시는 은사/선물을 보자! 한편으로, 우리는, 하느님이 나에게 베푸실 선물/은총에, 참 관심 많다. 그것도, 커다란 것, 여러가지 많은 것, 값진 것, 혹은 돈 되는 것, 남들 부러워 하는 것, 남들 넘보지 못하는 것을 바랄 때가 많다.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이지만, 내것이 되었으면 좋을 것, 나에게만 있다면, 행복이 될 것을 바란다. 헌데, 문제는, 내가 바라는 것과, 하느님이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완전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어떤 능력과 재능을 청하는가? (만일 그 둘이 겹친다면, 행복하다! 하느님과 함께 산다)

 

성령은, 예수님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우리 믿는 이들을, 이 세상 고아로 내버려 두지 않게 하시는 분이다. (cf. Joh 14,18f) 성령이 주시는 선물은 모두,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더 돈독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뽑았나? 아니, 여러분은 무엇을 선물로 받았나? 이 두 차이를, 잘 알아야 한다.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다. 내가 노력해서, 내가 착하고 선해서, 내 신앙이 깊어서, 내 힘으로 쟁취하여 얻어낸, 포상/전리품이, 절대 아니다.

 

142. 오소서 성령이여

후렴 : 오소서 성령이여 우리 맘에 오소서 위로자신 이여

 

1) 주님 찾는 슬기를 우리에게 주소서. 맘의 위로자여

2) 주의 말씀 통달할 맑은 지력 주소서. 맘의 위로자여

 

3) 옳은 길로 나아갈 바른 의견 주소서. 맘의 위로자여

4) 모든 고난 인내할 굳센 의지 주소서. 맘의 위로자여

 

5) 믿음의 길 따라갈 깊은 지식 주소서. 맘의 위로자여

6) 주 하느님 섬기올 타는 효성 주소서. 맘의 위로자여

 

7) 두려움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맘의 위로자여

 

7가지 성령은사를 보면, 모든 것이 다, 하느님과 관련이 있다. 하느님을 찾는 슬기, /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통달할 지력, / 하느님 길, 그 올바른 길을, 늘 묻고 찾아갈 의견, / 하느님 섬기는 것을 방해하는 유혹과 고통을 견뎌낼 인내, / 하느님 믿는 길/방법을 깨닫고, 또한 가르치는 지식, / 하느님을 부모처럼 섬기는 효성, / 하느님을, 좋은 의미로, 두려워 하는 경외심. 그 모두 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고 섬기는 데, 꼭 필요한 능력, 곧 신앙을 뜻한다.

 

그 은사는, 내가 바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그건, 하느님이 내게 원하시고, 내가 갖추기를 바라는 신앙, 내 구원에 꼭 필요한 신앙이다. 여기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 강요하지 말고, 하느님이 바라시는 걸, 늘 찾고, 나 또한 그걸 원할 줄 알아야 한다. 안 그러면, 나는 맨날, 내 욕심 채워줄 선물, /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 선물, / 내 아픈 곳, 근지러운 곳, 불편한 곳을 해결할 묘법을, 하느님께 기도인양 요청하고, 협박하다가, 쉽게 하느님마저 등돌려 버린다. 내가 얼마나 못되먹었는지, 늘 회개해야 한다.

 

(혹은, 프란치스코 교황님 표현처럼, 우리는 발코니/테라스에서, 안락 의자 위에 느긋하게 앉아,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시원한 음료를 곁에 두고, 마치 세상을, 방관자, 관망자처럼, 구경하듯, 편안히 살기를 바라는 사람, 그렇게 신앙생활하려는 사람 아닌가? 행복을 바라지만, 거저, 손쉽게, 편하게, 행복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게으름뱅이 욕심보 아닌가?)

 

성경, 특별히 사도행전에는, 성령을 받는 조건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승천하여 떠난 후, 마치 지금 우리 시대처럼, 예수님 부재의 때에, 성모님과 제자들이 함께 모여,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 기도가 조건! 기도하는 사람에게, 은사가 내린다. 하느님께 늘 기도할 줄 알고, 늘 기도하듯 살아 갈 때, 하느님은, 그리고 그분의 은총/선물은, 나와 함께 한다. 내가 기도할 때, 나는 그분 은총 담을 그릇이 되고, 그 결과, 하느님이, 내 안에 깃들고 머물고 살며, 나와 함께 활동하신다. (그렇다면, 기도가 이미 은총이요 은사이다.)

 

이 세상 신앙인은, 둘로 나뉜다. 1) 기도하는 사람과, 2) 기도 없이 사는데 익숙한 사람. 좀 더 세분화해서, 나눈다면, 1) 기도를 기쁘게 하는 사람, 기도를 기쁨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과, 2) 기도를 귀찮아 하는 사람, 3) 기도할 필요를 아예 모르고, 기도 없이, 그냥 사는 사람, 이렇게 셋으로 나뉜다.

 

1) 첫번째, 기도하며 사는 사람은, 하루를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는 사람을 말한다. 기도가 기쁨이다. 기도할 때, 삶이 기쁨이 됨을, 깨달은 사람이다. (아침-저녁 기도로, 하루를 성전으로 만드는 사람. 주일과 주일을 미사로 보내며, 일주일을 성전으로 만드는 사람. 내가 서있는 시간과 공간을 성전으로 만들고, 내 몸까지 성전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

 

2) 두 번째, 기도를 귀찮아 하고, 그것도 가끔 기도하는 사람. 교회에서, 혹은 누군가, 기도 하라니까, 기도가 좋다고 하니까, 억지로, 혹은 욕심내며, 혹은 건성건성, 그냥 기도하는 사람, 그러다가 기도 때문에, 주일 미사 때문에, 맨날 넘어지는 사람, (기도를 하느님 것, 좋은 것으로 보기 보다, 기도를, 지옥/환난으로만 여기는 사람)

 

이들은, 평소에는 기도할 필요를 못느끼다가, 뭔가 부족해서, 뭔가 탐나서, 기도하는 사람. 어떤 환난이 닥칠 때, 그때서야 하느님 찾고, 하느님께 하소연하고, 하느님께 불평불만 말하듯 기도하며, 그거만 해결해 달라고, 그러면 성당 열심히 다니겠다고 조르듯, 거래하듯, 기도하는 사람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습이 대개 이렇다.

 

3) 세 번째, 기도 없이 사는 사람. 그들은, 매번 내 멋대로, 내 맘대로, 되는 대로, 자기 욕망과 욕정에 이끌려 사는 사람일 때가 많다. 자기는 자유인이이라 자신하겠지만, 철없고 불쌍한, 욕심의 노예일 뿐이다.

 

여기서 반전 하나 더! 여러분이 모르고 지나간 기도가 하나 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여러분께 "성령강림 전 9일 기도문"을 보내 드렸다. 여러분은 기도했는가? 기도는 없고, 마냥 선물만 관심있지 않았나? (나는 기도를 어떻게 여기나, 반성하길... 기도가 기쁨이 아니라면, 나는 아직 하느님을 제대로 믿고 있지 못함을 깨닫길, 그리고 회개하길... 이제 저와의 여행 시작이다. 저와 함께, 기도를 기쁨으로 여기는 여행을, 떠났으면 한다. 기도 힘으로 하루를 기쁘게 사는 여정에로, 함께 떠났으면 한다)

 

나는 기도하고 있는가? 나는 기도 없이, 은사를 탐내고 있고, 뽑은 은사가 맘에 안든다고, 투덜대며, 혹은 “은사, 그딴 거...” 무시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다시 기억할 대전제! 하느님 것은 다 좋다. 그분이 주시는 것은 모두 다, 나에게 구원이고, 내 가족에게도 구원이다. 이걸 믿기를 빈다. 기도하는 자는, 그 좋은 하느님 것을 늘 발견하며, 기도하고 기뻐하며, 그 하느님 것을 잘 관리하며 산다. 절대 다른 것에 욕심내지 않는다. 지금과 다른 하느님 것을 탐내지 않는다. 오직 하느님이 주시는 것, 그것만으로 충만하고 충분함을 잘 안다.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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