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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색이를 아시나요

김명화 스텔라 2013.09.28 13:43 조회 수 : 392

뉴스나 시사프로 외엔 T V를  거의 안 보는 나는 요즘 <이 만 갑> 이란 프로는 자주 본다.
처음엔 이 만 갑이 어떤 사람의 이름인줄 알았는데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줄임말이란다.
알고보니 탈북미녀들이 이북에 있을때 겪었던 생활상 전반에 대해 그때그때 주제를 달리해
이야기하는 프로였다.
 이북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내가 태어난 곳이고 부모와 그 웃대들이 살았던 본향 이니  고향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에 남다른 관심이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할 수밖에.......
그 프로를 보며 가장 가슴 아펐던 것은 아무래도 먹을 것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굶을 수 밖에 없는 비참하고 참담한 현실인 것 같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탈북한 것도 첫째는 배고픔이였으 것이고 그 다음이 자유일 것이다.
그 프로를 처음 알려준 아들과 함께 보다가 
 "엄마 이북에서 안 내려왔으면 어떵게 할뻔 했어 .." .한다.
가끔  대충 차린 밥상에서도 밥 잘 먹는 내가 신기해서인지
 "엄마   오늘 무슨 시합나가?" 하며 나를 놀리곤 하니 먹을 것 없는 이북에 있었다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나는 정말 내가 이북에 있었다면  ......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유난히 식탐이 많은 나는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할 것같다.
아주 오래 전 이북에 식량난에 대해 함께 뉴스를 보던 언니가
 "너 그때 해주서 영영 잃어 버렸다면 어쩔 뻔했니? " 저렇게 밥도 못 먹고 사는데..... 
 엄마  그런데 재가 주걱갖고 잃어버렸다 찾은 걸 보면 먹을 복은 있었나봐."
하며 또 월남 하기위해 잠간 머무른 해주에서의 일을 얘기하며 재미있어 한다.
어렸을 때 부터 귀에 딱지가 않을 정도로 들은 얘기라서 전혀 기억이 없을 나이인데도 내가
주걱을 메고 울며 골목을 누볐던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했다
 8.15 해방 전 공산당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끼신 큰아버지께서 먼저 남한에 가셔서 자리를 잡았다. 그후 이북에 남은 부모 형제는 물론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배를 빌려 남하하기로했다.   
평양을 출발해 배를 타기위해 일단 해주에서 짐을 풀었는데 잠간 사이에 내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어두워지면 안내원을 따라 배 타러 나가야 하는데 아이가 없어졌으니 모두 동원되어 찾어 나섰다. 골목골목 흩어져 찾아다닌 끝에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주걱을 들러메고 울고있는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할 일이다....
그때 함께 왔던 어른들은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까지
"네가 먹색이가? 해주서 주걱 메고 잃어버렸던 아지?...:"
하며 먹색이와 주걱메고 잃어버렀던 아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곤 한다. 언젠가 아마 초등학교
4ㅡ5학년 쯤이였나 나는 엄마에게 :"내 이름이 왜 먹색이야 내 진짜이름은 안 부르고 할머니들은 날 보고 먹색이래 " 하며 물은 적이  있었다.  먹색이는 딸 그만 이라는 뜻이란다.
위로 오빠에 내리 딸만 셋을 낳으니 이제 딸은 그만이란 뜻을 이북에서는 먹색이라고 불렸나보다.
나는 가끔 내가 잃어버렸을때 장난감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소용되는 것도 아닌 주걱을 왜 메고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곤한다.
언니 말대로 주걱메고 나간 것은 순전히 밥을 굶지 않으려는 무의식 중의 내 본능 이였을까...? 그래서 일까 나는 밥 이외에는 별로 땡기는 음식이 없었다,
6, 25떄 피난 다니며 질리게 먹던 하지 감자의 아릿한 맛은 목으로 넘어 가기도 전에 밥을 먹을 수 없는 설움에 가슴부터 아려왔다.
대전에서 정착해 살며서 저녁은 늘 국수나 수제비였는데 찬 밥 한덩어리라도 없으면 내 볼은 국수보다 더 팅팅부어 있곤 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60년 대엔 책가방외엔 보조 가방은 생각지도 못했고 수업이 많은 날은 교과서에 도시락까지 넣으면 가방이  안 닫칠 떄가 많었다.
나는 공부에 대한 갈등이나 미련도 없이 책은 제처두고 도시락 부터 챙겼다.
 공부하러 가는 건지 김매러 가는 건지......우리집에서는 그것도 내 놀림감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대목이다.
늘 고양이 밥 먹 듯 하는 딸애는 내가 밥 먹을때마다 물끄러미 처다보다가
"엄마 밥이 그렇게 맛있어.... ..?" 하며 신기해 한다. 세상이 물렁하다보니 제 에미에게
붙이는 별호가 ㅡㅡ밥순이라나ㅡㅡ 내가 저 밥 맛없는것  이해 못 하듯이 그애 역시 내 밥 맛있음을 이해 못 하기는 피장 파장이다. 아명인 먹색이도 엄마는 딸 그만이란 뜻이라지만 나는 조금 달리 생각했다.
무엇이든 유독 밝히는 것을 색 쓴다는 말로 표현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나는 먹는 것에 특히 밥, 식탐이 많은 것은 부인 할 수가 없다.
나는 요즘 늙으막에  이세상에 나와 먹는 것  외엔 뜨렷이 한 일이 없지 않은가.....오직 내 한 몸을 위해 한일이지 누굴위해 무엇을 하고 살었나 ....자괴감에 빠질때가 많다.
밥에 서러움이 많었던 우리 세대에서 이제 밥의 소중함을 모르는 지금 먹걸이의 홍수속에 생명같은 밥을 너무 하잖게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느니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니 숫가락 놓는다는 표현등은 모두 목숨 내지는 생명과 연관지어지는 말이다.
우리 동포인 이북주민은 물론 지구 저편 여기저기에서 하루 한끼의 식량이 없어 수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고한다. 이제 우리도 먹고 사는 데는 그다지 퍽퍽하지 않은 지금 어려운 이웃을 돌아 보는 것이 배 불리 밥 먹을 수 있는 이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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