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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B Joh 18,33ㄴ-37 고해소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부족한 강론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오늘 미사에서, 예수님은 왕, 임금이라고 칭한다. 이 세상 통치와 권력의 왕일까? 아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분은, 사제요, 용서의 왕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해 오신 분이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를 숨기려 했고, 마치 죄가 없는 양, 되려 그분이 죄있다고 고발하여, 그분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아, 우리 죄로 그분을 죽였다. 그런데도, 그분을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 (이게 하느님과 인간의 역사이다)
다시 한 번, 그분은 용서의 임금이다. 전에 제가 자주 언급했던 말 기억하는가? "하느님은 참 좋으신 분, 그래서, 하느님 것은 다 좋다." 예수님이, 가장 먼저, 이걸 믿고, 실천하신 분이다. 우리 불쌍한 죄인을, 여전히 하느님 자녀로 봐주신 분이다. 우리가 약해도, 우리가 악해도, 여전히 하느님의 좋은 것으로 여겨주신, 좋으신 분이다. 그분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포기하지 않으셨다. 끝까지 사랑해 주셨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하느님은, 참 좋으신 분, 그래서, 하느님 것은 다 좋다." 이 말을 믿기를 빈다. 제 모든 강론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어쩌면, 그 말이 핵심이고, 결론이다. 이걸 믿기만 하면 된다. 당연한 소리 같죠? 헌데, 이 기본 믿음에서, 우리는 쉽게 흔들린다. 맨날, 헛되이 쓸데없이, 고민하고, 매번 다시 갈등한다. 그리고, 너무나 무력하게 무릎 꿇고 만다. 망각하고 만다.
이제 곧, 판공 시기가 돌아온다. (판공성사는, 한국에만 있다. 교회법적으로, 아마도, 미국 교회법에도, 신자라면, 고해성사를, 일 년에 초소 한 번, / 되도록 부활을 준비하며 하라고, 신자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이에 좀 더 앞서간다. 아마도 박해시대에, 늘 순교/치명을 각오하고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교회의 큰 절기마다, 몇 분 안 되는 사제가 사목 방문할 때, 그때를, 마지막 기회, 종부성사 삼아, 죽음을 준비하듯, 고해성사를 했을 것이다. 순교냐 배교냐, 그 공을 판가름하는 성사였을 것이다.)
이제, 내 자신이, "고해성사"를 어떻게 대하는지, 한 번, 마음속으로 느껴 보셨으면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고해소를 어떻게 여기나, 살펴보았으면 한다. 고해소를, / 고해성사를, 나는 과연, 하느님 것으로 여기고, 그리 대하고 있는가? 하느님 것이라도 여기면, 어떻게 대하는 게, 마땅하고 옳을까? 고해소가, 고해성사가, 나에게 좋은 것이라고, 믿는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겠는가? 억지로 마지 못해 할 것도 아니다. 미루고 미룰 것도 아니다. 하느님이 맡겨주신 이 심장, 이 몸과 마음을, 온전히 깨끗하게 관리하듯이, 고해성사보시길 빈다.
그냥, 기도하듯이 성사보세요. 평소 기도 자세와 습관이, 고해소에서 다 드러난다. 그냥, 매일 아침-저녁기도하듯이, 달리 말하면, 세수하듯, 양치질하듯, 샤워하듯 하셔요. 물론 기본적인 죄는, 미사 초반, 참회예절, "내 탓이요", "주님 자비를 배푸소서"할 때, 죄를 봉헌하면, 소죄는 다 사라진다. 그렇지만, 습관/버릇이 된 죄, 의무를 소홀히 한 죄, 선에 늘 소홀히 하는 죄는, 고해소에서 애써 고백해야, 겨우 벗어나기 시작한다.
간단히, 고해소는, 기도소다. 고해소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기도 표현과 자세와 비슷하다. 세상 생활하면서, 군더더기 말 많이 하는 사람은, 고해소에서도, 안 해도 될 말을, 습관적으로 한다. (“미사 빠진 거 말고는, 특별히 죄진 건 없어요!” 이 말 하나로, 죄인이다. 자기 진짜 죄를 모르는 무지에, 죄를 찾지 않는 게으름에, 착한 척하는 교만까지...)
사람과 만남에서, 진심보다는, 겉치레 빈말, 격식말 즐겨하는 사람은, 죄보다는 이상한 높임을 한다. 쉽게 자기 자랑질을 한다. 자기는 나름, 열심한 사람이라고, 사제가 알아달라고, 제게 구태여 설명한다. "자기가 원래는, 성당에 잘 다니는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 때문에, 부모 생신 때문에 등등.) 어쩌다, 미사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송이라도 했냐고 묻자, 그건 못했다고 답한다. 대상을 버리는 마음이, 하느님 버리는 건 줄 모른다. 하느님 섬기기 위해, 미사를 드리는 건데, 미사는 이제껏 잘 들렸는지 모르지만, 하느님 없이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원래 기도는 꼬박꼬박 하는데... 묵주기도를 잘 하는데, 그것도 많이 하는데... 혹은, 아침저녁 기도를 해야 하는 건 알지만, 미사도 잘 해야 하는 거 알지만, 기도 빼먹고, 미사 궐했고, 바빠서 봉사 못 했다고 말한다. 자기 선함을 미리 깔고, 자기 좀 잘 봐달라고, 어쩌다, 피치 못하게 죄를 지은 것이니, 죄가 그리 무거운 건 아니라고, 제가 연막작전에,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고해소에서, 애써 선을 말하는 자는, 이미 위선자이다.)
그리고, 대화 중에, 남에 대한 험담과 비난, 뒷담화 좋아했던 사람에겐, 뻔한 공식이 있다. "나는 잘하려고 했는데...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나는 아무 의도가 없었는데... 저 사람이 나를 막 대했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나를 가분 나쁘게 하고, 불편하게 하고, 나를 분노케 했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먼저 미운 짓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미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얼마나 악한 지, 한 번 들어보라고...”, 사건/상황을 처음부터 장황히, 억울하다고, 혹은 분이 삭히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며, 사제에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늘 습관적으로 험담해왔듯이, 고해소에서도, 남의 죄를 사제에게 고발하려고 든다. ‘그만 그만, 거기까지...’ 사제가 말해도, 성이 차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잘근잘근 씹어 주어야 하는데, 사제가 가로막으니, 기가 막혀 한다. 왜 내 죄를 들어주지 않느냐고, 끝까지 들어달라고 닦달한다. "‘그냥 미워했어요!’라고 고백하셔도 돼요!” 라고 말해줘도, 자기 속상한 게 풀리지 않은 지, "저 사람이, 나에게, 그런 죄를 지었다구요!" 말 끊지 말라고 한다. 자기 입을, 회개 입으로 수련하지 않아, 그렇다. 자기 죄 담기보다, 남의 죄 씹어야 맛을 느끼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 고해소는, 하느님 것,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좋은 것, 구원의 것이다. 나의 기본 신앙 자세와 모습이, 고해소에서 다 드러난다. (그렇다고 무서워 마시길) 고해소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죄를, 정성껏, 그럼에도 기쁘게 봉헌할 줄 아는 사람은, 그 나머지, 고해소 밖 생활에서는, 죄 대신, 선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산다. 이 세상 어디에도, 신에게, 죄를 봉헌하는 종교는 없다. 돈이나 재물을 죄이신 바치거나, 목숨을 봉헌하는 종교가 태반이다. 자신의 치부인 죄로도, 하느님과 소통하고, 기도할 수 있는 종교는, 천주교뿐이다.
(그리고 고해성사 볼 때, 마지막 멘트,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소서!" 이 말 꼭, 잊지 않고 하시기를... 마무리 기도이다. 이거 잘 못 하는 사람, 식사 전 기도는 잘 바쳐도, 늘 식사 후 기도 빼먹는 사람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하느님을 놓치지 않는 자가, 진짜 신앙인이다. 내 볼 일 다 끝났다고, 돌아서는 자는, 필요할 때만 이용해 먹는 사람이다. 많은 분들이, 세상 말로, "이상합니다" 한다. 그 말보다는, 어느 고해소에나 그 문구가 붙여 있으니, 꼭 그 말 놓치지 않고, 마침 기도하시길... 여기까지...)
제발 하느님 것은 다 좋다고, 믿어 주시길... 하느님 것만이, 나를 살리고,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고, 나를 제대로 살도록 이끌어 준다고, 제발 믿으시길 빈다. 이 믿음이 없으니까... 맨날, "고해성사 보기 싫어, 귀찮아, 쪽팔려, 체통 무너져, 새파란 사제한테, 체면 구겨져." 고해성사를 넘지도 못하고 고꾸라져 버리기 일쑤이다. 죄를 누적/방치하여, 악습에 쩔은 사람이 될 뿐이다. (사제가 안 잡아 먹는다. 저 기억력, 정말 나쁘다) 좋은 것에 가까이 가지 않고, 거리를 두는 사람은, 이미 악한 사람이다. 악은 거기서 생겨난다. 하느님을 멀리하고, 선을 소홀히 하는 모든 잘못은, 이미 악하다.
오늘은, 교회 전례력의 마지막 날,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그분은, 세상 임금과는 다르다. 사제로서 임금이시다. (이건 요한묵시록의 신학이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황제를 무서워하기보다, 자신이 섬기는 분은, 바로 용서의 임금이라고 고백한, 놀라운 신앙이 담겨 있다.) 세상이 보기에는, 예수님은, 무력한 통치자다. 자기 백성을 지배하려 들지도 않는다. 되려, 백성에게 대접받지도 못하는 분이다. 백성에게 도리어 죽음까지 당하는 분이다.
자기 백성이 악하다고, 저주하거나, 처벌하거나, 파멸을 안기지도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우리가 그리 악독해도, 그런 우리 인간을 되려 사랑하려, 용서하려, 우리에게 구원을 주려고, 우리에게 봉사하려고 오신 분이다. 우리 구제불능 죄인을, 다시 기회를 주어 하느님을 섬기도록, / 회개하여, 다시 원래 하느님 모습 찾도록 인도해 주신 분이다. 용서의 하느님 닮아, 용서의 임금이시다.
....... 영성체 후 멘트
매일 아침, 그리고 저녁, 기도하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기도할 때도, 내려놓음을 계속 수련해야 한다. 잡다한 생각과 욕망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려놓는 자는, 예수님처럼, 용서하려고, 하루를 산다. 하느님께 용서 청하듯, 사람에게 용서 청하며 산다. 그걸 모욕/굴욕이라 여기지 않는다. 내 죄를 털듯, 남의 죄도 털어 주려고 한다.
세상은 죄로 잔치를 벌인다. 서로 다투고 싸우고 죽이며, 피의 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죄로, 회개의 잔치, 용서의 잔치를 벌인다. 죄는 나쁘지만, 그걸로 하느님과의 관계,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새로이 맺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얘기 나눌 때, 제발 죄를 갖고, 잘못을 지적하려, 만나거나 얘기 나누지 말고, 죄를 내려놓으려, 용서를 나누려, 만나시길 빈다. 그게, 용서의 임금을 섬기는, 신앙인의 자세이다.
요한 묵시록에서 하느님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이시다. 이 세상의 시작이요 마침이시다. 그분이 우리의 처음이요 마침이시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관련된 모든 것, 특히, 저 고해소도, 우리 신앙인에게는, 시작이요 마침이다. 새로 태어나는 구유요, 다시 태어나는 부활의 장소이다. 다시 세례의 장소요, 마침 종부성사 받는 곳이다. 그곳은 하느님을 쉽게 만날 수 있는, 한 평도 안 되는 성전이다. 나는 고해소를, 하느님의 것, 좋은 것, 구원 장소로 삼고 있는가?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당일 녹음한 강론의 오디오 화일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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