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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연중 제28주일 B Mk 10,17-30 지혜 욕심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부족한 강론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어릴 때는, 마치 구약성서의 솔로몬왕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게, 소원이었다. 어떻게 지혜를 선물로 받을 수 있을까? 하느님께 기도 많이 하면, / 하느님 마음에 들면, / 하느님 보시기에 착한 사람이 되기만 하면, 지혜를 거저, 꽁짜로,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혜만 얻으면, 공부 잘 할 수 있으니까, / 지혜만 챙기면, 반장도 되고, 전교 1등하고, 학생회장 되고, 모든 이들의 관심과 기대를 얻을 수 있으니까, / 그 지혜를 통해,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앞날을 보장받으니까...

 

그런데, 하느님은 저에게, 지혜를 주지 않으셨다. 어떻게 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 그 방법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내가 헛기도를 했구나,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지혜 달라, 빌었는데, 실상, 어릴 때부터 지혜에 욕심내며 살았다. 욕심이 습관이 되버렸다. 지혜를 얻어내려, 하느님을 믿어 주고, 하느님께 기도해주고, 미사에 잘 나가줬던 것이다. 좀 더 책을 읽기보다, / 내 머리를, 지혜롭게 일구고 가꾸기보다, / 좋은 스승의 말을 듣고 새기며 살기보다, 간편하고 편하게, 욕심으로 지혜를, 구걸했고, 하느님께 졸랐던 것이다.

 

제가 지혜롭지 못한 이유는, 제가 욕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혜는 참 좋은 것이지만, 지혜에 욕심내는 건, 어리석음이 되어 버린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를 얻어, 부자가 되려 한다. 지혜를 이용하면, 부자가 되는 줄 안다. 지혜만 있으면, 호의호식, 호강, 행복해지는 줄 안다. 지혜를 탐냈기 때문에, 저는 어리석은 자가 되었고, 늘 어리석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만 했다.

 

원래 하느님, 당신 자체가, 지혜이시다. 물론 하느님이 지혜의 원천이요, 그래서, 그분만이 지혜를 주시는 분이지만, 당신 스스로가 이미 지혜이시다. 하느님이 지혜라고 믿는다면, 절대, 지혜를 탐내지 않는다. 오히려, 지혜이신 하느님 곁에 머물러, 그분을 찾고, 그분을 섬기고, 그분께 그 모든 것을 두려고 한다. 왜? 하느님 것인 지혜가, 나에게 내려오기를 기대하지 않고, 내가 그분께 더 다가가기를 택하기 때문에... 그래서, 지혜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불경이고, 불신앙, 신앙없음이 되는 것이다. 지혜를 얻으려, 하느님을 이용해먹고, 하느님을 종부리듯 하고, 하느님 것을 빼먹으려는 생각은, 이미 신앙일 리가 없다.

 

진짜 신앙인은, 지혜를 달라고 청하는 대신에, 하느님께 지혜를 묻는다. 곧 기도한다. 늘 그분 곁에 머물러, 그분 말씀을 청해 듣고 읽고 묵상하며, 그분이라면 선택했을 법한, 생각과 말과 행위를, 그분 뜻에 맞춰, 헤아리려 한다. 하느님 것을 욕심내어, 내 것으로 삼기보다, 기도하며, 내가 하느님 것이 되려 한다. 욕심을 버리니, 그것이 지혜가 된다. 내 욕심을 멈추고 비워, 대신 하느님으로 채우기, 내 마음 속에, 내 몸속에, 내 생활 속에, 하느님 자리 마련하기, 그게 지혜가 된다.

 

결국, 기도가, 이미 지혜이다. 기도가, 나에게 신중함이 되고, 하느님 것과 하느님 아닌 것을 가리는 식별력이 되며, 배우는 자세, 회개의 자세가 된다. 지금껏 욕심내기를 기도로 착각하며 해온 사람은, 이 지혜를 모른다. 욕심 버리기가 기도인 줄 모른다. 욕심 대신 하느님 채움이 기도인 줄 모른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하느님보다, 하느님 것을 더 탐내어, 연신 구걸 기도, 욕심 기도, 투정 기도만 해오지 않았나?

 

오늘 복음 말씀은, 전혀 다른 상황 같으나, 근본 맥락에서 비슷하다. 부자 하나가, 구원을 탐낸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구원을, 갈망하고 있다. 욕심 없는 부자가 과연 있을까? 재물을 모으는데 욕심은 필수다. 욕심이 곧 생존법이다. 요즈음 Netflix의 오징어 게임이 유행이라지요? 거기에 나오는 대사 하나,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재미를 찾지 못하는데, 돈이 많아도, 삶의 재미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은, 없어서 욕심내며 살고, 부자는 있어도 욕심내며 산다. 다들 욕심내며 사는 데 익숙하다. 욕심이 세상 속 생존법이다.

 

부자가, 예수님께 묻는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는, 지금껏 지켜왔던 계명 말고, 내가 모르는 계명, / 좀 더 어려운 특별한 계명을 알고, 그걸 지키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던 것이다. 그는 마치 계명이란 알약 하나 처방으로, 영원한 생명, 구원받을 법을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이다. (루카 복음에서는 부자 청년으로 나온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신다. 왜? 그가 어리기 때문에, 세상을 온실과 같은 곳으로 아는 풋내기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구원을 찾는 대견함 때문에, 예수님은 그렇게 바라보신 것이다.)

 

결론. 그냥 욕심을 멈추고 욕심을 내려놓고 살면 된다. 물론, 다 버려도, 하느님만큼은 절대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유치하게, 하느님께 감사로 살면 된다. 그분이 나를 지금 살려 주셨으니, 생명을 지금고 선물로 주시고 있으니, 지금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생명은, 가장 첫 번째, 감사의 재료이다. 내 만남들, 내 부모와, 배우자와, 내 가족과의 만남도, 생명을 주신 분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불행한 사람은, 그저 욕심내며 살기만 한다. 자기 주변에 뿌리는 것 하나 없이, 줄곧 챙기기에 바쁘다. 자기가 더 얻어야, 더 가져야, 더 있어야 행복해지는 줄 안다. 욕심으로 살아왔듯, 죽을 때까지, 욕심내며 살려고만 한다. 내가 얻고자 하는 욕심 거리를, 기쁨 거리라고 확신하며, 기쁨을 모으려고만 한다. 기쁨은 선에서 나오는데, 그들은, 남이 나에게 주는 선에 배고파하며 산다. 그러면서, 늘 선에 소홀히 하고, 늘 선에 게을리하고, 늘 선을 멀리 하며...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기도하듯 산다. 욕심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감사함으로,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하느님 일에 쓰며 산다, 기쁨을 내 것으로 만들기보다, 하느님 것 기쁨을 뿌리며 산다. 자신의 주변을, 기도 장소로 삼아, 기도하며, 미리 선을 뿌리고, 행복을 뿌려 놓는다. 나만의 행복에, 욕심내지 않는다. 대신 내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자신의 기쁨, 자기 행복으로 여긴다.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걸로, 충분하다. 행복에 욕심내지 않고, 다른 사람과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 그래서 행복하다.

 

오늘 복음 환호송,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그가 가진 행복은 없을 수 있다. 그는 자기 행복을, 늘 주변에 나눠주며 산다.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도 행복해진다. 자기 주변을 천국으로 일군다.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 하나 없이, 온통 하느님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 그 모든 것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외쳐대며, 그 모든 것을 하느님 것으로 다루며 사는 사람은, 그래서 행복하다.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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