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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연중 제26주일 B Mk 9,38-48 식별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부족한 강론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기억하시죠? 신앙의 대전제? "하느님 것은, 다 좋다." 이제 그 다음 단계, "그럼, 하느님 것은, 무엇?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 주제이다. 2018년에 선포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Rejoice and Be Glad), 그 작은 책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기쁘고 즐겁게, 곧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준다. 하느님의 부르심, 곧 너희도 나처럼 거룩하게 살라는 부르심에, 늘 응답함으로써...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날에 절실한 성인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웃집 성인이 되라)

 

요약하자면, 거룩함 안에 머무르기, (내 자신을, 내 몸을, 내 주변, 성전으로 만들기) 거룩함 안에서 자신을 기르고 성장시키기, (거룩한 것들, 미사, 기도, 전례, 그걸 통해 자기 성숙) 자신을, 거룩하신 하느님의 것임을 알고, 거룩하게 다루며, 거룩한 일을 해내기, 저 멀리에서 거룩함을 찾지 말고, 나와 내 생명, 내가 있는 자리를, 거룩하게 대하고 다룰 때, 우리 평범한 인생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권고의 마지막 부분에서, 교황님은, 성령이 주시는 능력, 식별을 말씀하신다. <식별> 166. 어떤 것이 성령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세속의 영이나, 악마의 영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유일한 길은 식별입니다. 식별은, 지성이나 상식, 이상의 자질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간청해야 하는 은총입니다. (신자라면, 미사만 드리면, 그냥, 거저, 다, 주어지는 은총이 아나라, 기도해야, 기도하듯 살아야, 얻는 은총, 기도해야 식별이 생긴다,)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성령께 이러한 은사를 내려 주십사 간청하고, 기도, 묵상, 독서, 좋은 상담을 통하여, 식별을 증진하고자 노력한다면, 분명 우리는 이러한 영적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식별, 영어로 discerment, “둘로 가르다, 자르다”는 뜻의 말이다. 원칙 하나! 식별 없이 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는 위험하다. 무엇이든 선과 악으로 쪼개봐야 한다. 겉은 선해보일 지 몰라도, 그 속에 악이 그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순금처럼 온전한 덩어리 선도, 악도 없다. 가려 내야 된다. 정제해야 한다. 발라내야 한다.

 

아무리 괜찮아 보이는 신앙도, 쉽게 위선과 가식이 되고, 삶에 무용지물이 되버리기도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님 것과, 하느님 없는 것,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가? 습관적으로, 맨먼저, 내 지력, 내 판단과 느낌, 내 힘과 실력에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들 수록, 섭섭한 거 많아지고, 미워하는 사람, 많아지고, 기분 쉽게 잡치고, 쉽게 상하는 이유는, 내 판단, 내 촉만을 믿기 때문이다. 나를 믿지 말고, 하느님을 믿으며, 기도부터 해야, 식별의 은총/은사를 선물로 얻게 된다.)

 

(계속 읽자면) 167. 식별의 은사는, 오늘날 더욱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삶은, 폭넓은 활동과 여가를 가능하게 해 주고, 세상은, 이 모든 것을, 가치 있고 좋은 것인 양,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특히 젊은 이들은, 재핑(zapping) 문화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둘 이상의 화면을, 동시에 검색하며, 둘 또는 셋의 가상 현실 속에서, 동시에 교류하고 있습니다. 식별의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모두, 지나가는 유행에 좌우되는, 꼭두각시가 되기 쉽습니다.

 

꼭두각시, 그게 “식별 없이 사는 사람”의 모습이다. 자신이, 자신을 움직인다고 착각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나는 무언가에 조종당한다. 매번 나를 자극하고, 흥분시키고, 나를 현혹시키는 것을 찾아 헤매고, 그것에 늘 사로잡혀 이끌리고 마는 사람을 가리킨다. 제2독서에서, 부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얽매여 살아간다. 남이 상처입든, 남이 죽어가든, 남의 것이 나의 것만 되면 된다. 자신은 부유해지지만, 타인의 가난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좋은 것에 빠져 살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혐오하며, 그 외에는 관심 하나 주지 않는, 그런 세상이 되버리지 않았나?

 

여기서 재핑(zapping) 문화는, (교황님에 따르면) 식별 없이 사는 문화, 이것저것 다 허용하는 문화를 말한다. 마치, TV 화면 앞에서 앉아, 리모컨을 계속 눌러대며, TV 프로를 연신 바꾸듯 사는 문화, / 마치 배고픈 사람처럼, 나를 재미있게 만들어 줄 프로그램을 찾아,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그저 젊은이들 사이의 문화이기만 할까? 아니, 이미 기성세대, 어른들이 만들고, 자기들도 즐기는 문화의 모습이다.

 

오늘날 정치가 보여주는 막말 쇼에, 늘상 화내고 미워하고 욕설하거나, 혹은 아무 관심도 주지 않는, 불신의 시대이다. (프레임, 물타기 등으로, 대부분 쉽게, 정치와 언론에 놀아난나는 시대) TV 막장 드라마가 보여주는 충격에,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놀랐다가, 그 다음, "저게 가능해, 요즘엔 저렇게 사네?" 그러다가 "어? 나도 한 번 해볼까?"로, 탈선을 조장하는 시대이다. 예능 혹은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웃고 떠들고, 울고 울리고, 누군가 바보로 만들고, 자신도 바보가 되는, 서로 왕따, 이지매, 불링(Bullying)하기 쉬운 시대이다. (TV 안에서, 속된 것이, 되려 정상이 되고, 유행이 되고, 인생 목표가 되버린다)

 

(교황님은 계속 말한다) 169. 식별은 또한, 우리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와 같이, 특별한 시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식별은, 우리가 주님을 더욱 충실히 따르도록 도와주는, 영적 투쟁의 도구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식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때와 그분의 은총을 깨달을 수 있으려면, / 주님의 감도를 놓치지 않으면, / 또한 성장하라는 주님의 초대를 흘려버리지 않으려면, 식별이 필요합니다.

 

식별은 흔히, 중요해 보이지 않는 미소한 것들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위대한 것은, 단순한 일상 현실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식별은, 위대한 것, 가장 좋은 것, 가장 아름다운 것에, 한계를 정하지 않으면서도, 이와 동시에, 작은 것, 오늘의 일에 온 정성을 쏟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날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과 대화하면서, 진실한 "양심 성찰"을 거르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교황님은 양심 성찰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게, 기도이고, 기도의 주기능이라고 본다.  (마치 극장 영화보듯) 늘 양심 성찰듯, 기도하며, 일상의 작은 일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기! (허망하죠? 헌데, 이게 식별의 삶, 거룩한 사람의 모습이다.) 어떤 일에서든, 어떤 자리에서든, 기도로, 내 안, 내 마음 안에, 먼저 하느님 모시는 게 시작이다. 그래야, 내 입에, / 내 몸에, / 내 일상에, / 내 학교에, / 내 일터에, / 내 가정에, 하느님 모시기로 확장될 수 있다.

 

오늘 복음은, 잔인하다. “손이 죄를 짓게 하면, 손을 잘라버려라! 발이 죄를 짓게하면, 발을 잘라버려라! 눈이 죄를 짓게 하면, 눈을 빼 건져버려라!” 헌데, 이는 말이 안된다. 손과 발, 눈이, 죄를 짓는 게, / 죄를 짓게 하는게 아니다. 바로 내가, 죄를 짓는 것이다. 내가 내 생각과 말과 행위로, 내 몸으로, 내가 남에게 죄를 짓는 것이고, 더욱이 내가 남까지 죄짓게 만드는 것이다.

 

죄를 생산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누구에게 탓을 돌릴 것이 없다. 내가 식별하지 못해서, 내가 어리석고 게을러서, 내가 욕심 많고 욕망에 타올라, 내 몸을, 내가 죄에 빠트리는 것이다. 특별히, 내 오관, 오감을 잘못다룬 게 큰 요인이다. 내 몸에 뚫린 곳, 노출된 곳으로, 오만가지가 다 들어 온다. 오관, 오감이, 식별의 필터이다. 그것은 기도가 필요한 자리, 기도하며 사용할 자리이다. (눈을 감아야 할 것에는 눈을 감아야 하고, 안 좋은 것, 위험한 것에 몸을 피하고, 항상 몸을 적절히 삼가해야 한다)

 

이번 주, 식별의 은총을 청하며, 식별하며 살기를 빈다. (어릴 때는, 젊었을 때는, 더 많이 가져야 좋다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먹고 해야,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 안봐도 될 것, 없어도 될 것, 안해도 될 것, 그것만 줄여도, 그것만 빼도, 그것만 없애도, 안해도, 꽤 괜찮은 삶이 되더군요.) 그런데, 기도를 해야, ‘없애야 할 것’이 보인다. (이게 기도의 신비.) 아침기도-저녁기도, 식사 전후기도 등, 모든 기도가, 나에게 식별을 선물한다. 기도하며 살기를 빈다.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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