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성당활동

   주일미사

   

   평일미사

    
    
   

온라인 봉헌

온라인 봉헌[클릭]

   성당문의

성당문의 안내[클릭]

   신자등록 및 성사안내

신자등록 및 성사안내[클릭]

   성당주소

    3031 Holland Road,
    Apex, NC 27502
    전화: (919)414-9256
    이메일: hellospjcc@gmail.com

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0815 한가위 Lk 12,15-21 신앙의 씨앗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부족한 강론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어제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기념하여 봉헌하였다. 오늘은 한가위로 지내고 있다. 두 미사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하나가 똑같다. 어제의 화답송이랑, 오늘의 복음환호송이, 같은 시편 구절이다. (놀랍지 않은가? 두 미사가 통하는 지점이다) 시편 126편,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Ps 126,6) 어제는, 이 구절과, 바로 앞 구절도 포함한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Ps 126,5)

 

옛날에 농부는,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종자 씨앗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종자를 먹는다는 건, 죽을려고 먹는 것이다. 배고프다고, 종자를 먹어치우는 순간, 시간 차이만 있을 뿐, 이미 죽은 목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년에 더 비참하게 죽을 지도 모른다. 비록 배고프지만, 악착같이, 나무 껍질, 풀뿌리로 연명하며, 봄날까지 버티어내면, 분명 희망은 있다. 종자 씨앗이, 이미 희망인 것이고, 그 자체로 생명이다. 농부는, 어떻해서든, 봄날까지 종자를 지켜내고, 고대하던 봄날, 목숨처럼 지킨 종자를, 밭에 뿌린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도, 마치 종자 씨앗과 같다. 우리 신앙선조들은, 죽을 각오를 하면서, / 실제로 죽어가면서, 신앙의 씨앗을, 지켜내었다. 지금 우리가 맛보고 누리고 지내는 신앙은, 그들이 눈물로, / 피로 지켜낸 신앙의 씨앗이고, 그 열매이다. 그분들은, 지금의 우리가, 그 씨앗으로 풍성하게 수확하기를 빌었다. 우리와 우리 자손, 우리의 아이들도, 그 신앙 씨앗을 품고, 굳건히 지켜내며, 신앙을 계속 이어나가길, 바랬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오늘, 올해 수확한 신앙의 열매를 살펴보기를 빈다. 올해 우리는, 랄리 한인성당이란 밭을, 잘 일구고 가꾸고, 신앙의 씨앗을 뿌렸던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신앙을 잘 지켜내고, 신앙을 배우고 익혀, 받은 신앙을, 자신들의 열매로 키워내고 있는가?  고해소 찾는 사람, 2명 중 1명은,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 때문에" 그래요, 코로나 때문에, 종자 씨앗, 다 먹어치우지는 않았나? 과연 코로나 중에도, 신앙의 불씨만큼은, 여전히 지켜내고 있는가?

 

몇몇 분들을 통해, 이곳 성당의 설립 역사 이야기를 접했다. 한때, 일부는 새로 성전 건축하지 말고, 샌 마이클 성당에 그냥 남자, 아니다, 우리의 독자적인 성당을 짓자, 의견이 분분했다고 들었다. 그때 뿌린 씨앗이, 지금의 이 성전이 되었다. 많은 분들이 성전 건립에 애써 주었고, 그 가운데는 우리곁을 떠나 선종하신 분들도 있다. 오늘은, 눈물로 씨앗을 지켜내고, 뿌릴 씨를 들고 울며 간 이들을 위한 날이다. 그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다. 아울러 우리의 할 일 역시, 다시금 잊지 않으려는 날이기도 하다,

 

이 성당은, 밭이다. 한 번 뿌리고 마는 일용밭이 아니다. 매년 새롭게 신앙을 뿌려야 한다. 매년, 새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에게, 신앙의 씨앗을 전수해 주어야 한다. 그저 성당의 일, 사제의 일, 사목회의의 일, 남의 일처럼 바라보지 않기를 빈다. 여러분 각자의 일이다. 여러분 스스로,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처럼, 믿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며, 신앙의 씨앗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먼저. "과연 나부터, 나의 신앙을, 눈물로 지키고 있는가"부터 점검해 보시길 빈다.

 

눈물로, 피로 지켜온, 우리 한국 순교 성인이, 무색해지지 않는가? 박해시대와, 코로나 시대가, 똑같단 말인가? 하나는 창칼로, 목이 날아갈 위협 속에 겨울이라면, 지금 코로나는 셀프 환난 아닌가? 코로나로 미사 멈춘 것을 넘어, 스스로 기도조차 멈추고, 신앙까지 멈춘 건 아닌가? (아울러, 코로나로, 자녀의 신앙까지, 올스톱 아닌가? 부모인 나도 멈추고, 내 자녀도 멈추고, 모두 함께, 이미, 신앙 없이 사는데 익숙하지 않는가?) 코로나 2년째이다. 그냥 풍요로운 추석 명절에 만족하지 말기를... 올 추석, 우리가 뿌리고 수확한 신앙도, 과연 풍년인가?

 

어제 복음 구절에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Lk 9,23) 저는 이 구절을, 제 방식대로 해석한다. 여기서, 십자가는, 추상적이거나, 거창한 신앙의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내 몸이다. (여러분 각자의 몸이, 여러분 자신의 십자가인 것이다)

 

어리고 젊었을 때는, 내 머리가 십자가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머리가 나쁜지, 왜 그리 생각할 줄 모르는지, 왜 그리 철없이 욕심부리고, 투정부리고 사는지... 이제 나이가 들면서는, 내 몸이, 지금의 내 십자가라고 여긴다. 나이 먹고 살아왔어도, 왜 이리 몸이, 말을 안듣는지, 내 생각, 내 계획대로 사는 법 없고, 맨날 욕심 따라, 게으름 따라, 이 몸은 쉽고 편한 것만 쫓아 다니는지, 한탄하게 된다.

 

이 몸에 이끌려, 몸에 좋은 것만 찾으며 살면, 나는 언제나, 몸이 가는 대로, 멋대로, 맘대로 질질 끌려 다녀, 만신창이, 망난이로 살기만 한다. 원래, 하느님 섬기라고, 하느님이 주신 몸인데, / 이 땅에서 하느님 일 하라고, 하느님이 생명 불어넣어 주어, 태어난 몸인데, 하느님 대신, 내 것,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빠져 산다. 그래서, 내 몸이야말로, 구제불능, 애물단지, 이 세상에 백해무익 짐짝이 따로 없다.

 

이 몸을, 내것이라 여기면, 내 인생 말로가 뻔해 보인다. 온통 욕심과 욕망에 허덕이며 살 뿐 아닌가? 그러나, 이 몸을, 하느님 것, 하느님이 나에게만 주신 신앙의 도구이자 구원의 도구, 그래서 십자가로 본다면, 그나마, 좀 더 괜찮은 인생을 살아갈 것 같다. 내 몸은 내가 짊어지고 살아야 할, 나만의 십자가인 것이다. 나아가 이 몸은,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씨앗도 된다. 신앙으로 일구고 키워낼 씨앗이다.

 

그 길은 힘들다. 눈물로 지켜내야 하는 길이다. 내가 뿌려, 내가 수확할 수 있을까? 아니다. 나 대신에, 내 자녀들이 더 배워 알아, 더 키우고 가꿔, 나보도 더 큰 신앙의 열매로 맺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신앙은, 위대한 유산이다. 자녀에게, 하느님을 물려주는 것,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이다. 내 몸에, 신앙의 씨앗을 담아, 잘 지켜내고, 잘 키워내야 한다. 내 가정, 내 자녀 안에도, 마찬가지로, 그 씨앗을 잘 뿌려야 한다. 내 몸은, 그래서, 눈물로 지켜야 하고, 눈물로 일구고 가꾸어야 할, 십자가이다.

 

오늘은 수확의 날이며, 점검의 날이다. 한국순교성인들이, 내 안에 눈물로 뿌리신, 그 신앙의 씨앗을, 나는 과연, 잘 간직하고 지켜내고 있는지, 그 씨앗을, 이곳 랄리 성당에, 내 가족/가정에, 눈물로, 피와 땀으로, 잘 뿌려 왔는지, 점검하는 날이다. 눈물로 씨앗을 뿌려온 이들은, 지금 기쁨으로 거두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그동안, 눈물로 섬겨온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날이다. 또한, 이곳 성당에, 눈물로 봉사한 이들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그리고 나에게 신앙을 뿌려준, 신앙을 물려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날이다. 이날은, 눈물로 신앙을 지켜온 이들이, 기쁨으로 감사드리는 날이다.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75F36840-6D04-4314-8338-E3A88FD39730.jpeg

 

F8141297-BADF-4666-A76E-94CD120EB00E.jpeg

 

DF82940D-5BEE-4DC5-B587-0198D6AEDC77.jpeg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4385 [토막 강론] 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Joh 1,47-51 부끄러움 file 이동욱 도마 2021.09.29 17
4384 [토막 강론] 연중 제26주일 B Mk 9,38-48 식별 [1] 이동욱 도마 2021.09.26 27
4383 [토막 강론] 연중 제25주 수 Lk 9,1-6 선과 악 file 이동욱 도마 2021.09.26 4
» [토막 강론] 0815 한가위 Lk 12,15-21 신앙의 씨앗 [1] file 이동욱 도마 2021.09.19 29
4381 [토막 강론] 0915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Lk 2,33-35 타인의 고통 file 이동욱 도마 2021.09.15 17
4380 [토막 강론] 연중 제24주일 B Mk 8,27-35 십자가 고통 [1] 이동욱 도마 2021.09.12 21
4379 [토막 강론]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Mt 1,1-16.18-23 협조 file 이동욱 도마 2021.09.09 14
4378 [토막 강론] 연중 제23주일 B Mk 7,31-37 에파타 [1] 이동욱 도마 2021.09.05 33
4377 [토막 강론] 연중 제22주간 수 Lk 4,38-44 평화 file 이동욱 도마 2021.09.01 13
4376 [토막 강론] 연중 제21주간 수 Mt 23,27-32 임마누엘 file 이동욱 도마 2021.09.01 6
4375 [토막 강론] 연중 제20주간 수 Mt 20,1-16 편애 무자비 file 이동욱 도마 2021.09.01 8
4374 [토막 강론] 연중 제18주간 수 Mt 15,21-28 부스러기 file 이동욱 도마 2021.09.01 5
4373 [토막 강론] 연중 제17주간 수 Mt 13,44-46 하늘나라 file 이동욱 도마 2021.09.01 5
4372 [토막 강론] 연중 제16주간 수 Mt 13,1-9 만나 file 이동욱 도마 2021.09.01 7
4371 [토막 강론] 연중 제22주일 B Mk 7,1-23 위선 [1] 이동욱 도마 2021.08.29 39
4370 [토막 강론] 연중 제21주일 B Joh 6,60ㄴ-69 아침-저녁기도 [1] 이동욱 도마 2021.08.22 39
4369 [토막 강론] 0815 성모승천대축일 Lk 1,39-56 믿음과 순종 [1] 이동욱 도마 2021.08.15 39
4368 [토막 강론] 연중 제19주일 B Joh 6,41-51 성체 [1] 이동욱 도마 2021.08.08 40
4367 [토막 강론] 연중 제18주일 B Joh 6,24-35 불평 [1] 이동욱 도마 2021.08.01 39
4366 [토막 강론] 연중 제17주일 B Joh 6,1-15 풍족함 부족함 [1] 이동욱 도마 2021.07.25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