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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연중 제23주일 B Mk 7,31-37 에파타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 비장애인들이 놓치기 쉬운, 특별한 부분이 하나 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 이게 평범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귀먹은 이는, 절대 말을 할 수 없다. 소리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입으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게 가능해진 것은, 헬렌 켈러 Helen Adams Keller 때부터이다. 앤 설리번 Anne Sullivan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장애를 극복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목에 손을 대고, 입 모양, 혀의 위치, 숨 바람의 강도, 소리가 목 어디에서 시작되는 지 등등, 손으로 느끼고, 그걸 따라 하니, 어설프지만, 더듬듯,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제가 볼 때,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데려온 사람들은, 모두다, 설리번 선생님과 같은, 위대한 스승이다. 인간이지만, 장애인 한명에게 베풀 수 있는, 모든 치유와 기적을 선물한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은, 합심하여, 예수님께, 더 온전한 치유를 해주십사고 청하고 있다.

 

(이제 본론) 오늘은, 우리 본당에 4명의 어린이들이 첫영성체 하는 날이다. 처음으로, 성체,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는 날이다. 우리, 이미 어른이 된 우리, 성숙했다 자신하는 우리에게는, 오늘이, 다시금 회개의 날이다. 우리는 과연, 어릴 때 첫영성체 받았을 때처럼, 늘 그 자세로 살고 있는가? 그때 외웠던 기도문을 잘 활용하고 있는가? 첫영성체 받은 기억은 나는가? 이제는 너무 익숙해지고, 더이상 느낌 없이 하는 습관된 영성체를, 반성하기를 빈다.

 

가끔 어떤 부모는, 대개 외짝 교우들은, 아이에게 세례를 주는 것도, / 혹은 아이가 첫영성체 받는 것도, 극구 마다하는 이들이 있다. 소위 말해, 자신의 아이가, 스스로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주겠다는 명분이다. 자신의 아이에게, 종교를 강제/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자기는 옛관습을 곧이곧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겠다는 자유선언이다. 그러면서, 구세대와는 달리, 자신은, 자녀의 자유까지 존중하고 챙겨주는 신식 사람, 자유의 사람이라고 짐짓, 자랑하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루카 복음의 한 구절, 아이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요청하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제자들이 가로막고 그들을 꾸짖는다. 그때, 예수님의 말.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Lk 18,16)제발 아이들에게, 축복을 가로막는 부모가 되지 말기를 빈다.

 

무릇 부모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매일매일,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유산으로 주려고 한다. (부모가 되면, 매일 ‘나는 무얼 원하는가? 무얼 하고 싶은가?’ 자기 욕구 충족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내 자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줄 것인가?’고민하는 게 정상이다.) 사람이 되는 법, 사람답게 사는 길, 그걸 가장 먼저,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을 상속할 줄 알아야 한다.

 

만일, 하느님 말고, 다른 것을 유산으로 물려주려는 부모가 있다면,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유산이란, 부모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무엇을 위해, 온 몸 바쳐 살아왔는지,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돈? 성적? 대학? 학위? 직장? 그저 잠시의 것, 썩어 없어질 것을 물려 주려 애쓴다면, 이제, 부모의 삶도, 그 자녀의 삶도, 뻔하지 않는가?

 

결국 나처럼, 지 멋대로 사는 자녀 때문에, 부모는 속앓이할테고, 내가 욕심부리 듯, 자녀도 부모에게 욕심부리고, 부모 재산 탐낼 것이며, 언능 부모 썩어 없어지기를 바라는 자녀도 있지 않을까? 부모님께 감사와 효도를 해야지... 하느님께도 감사하지 않는데, 과연 부모에게 감사할까? 자기 생명도 감사할 줄 모르는데, 부모가 키워준 걸, 감사해 할까? 하느님을 버린 부모와 하느님을 물론 부모조차 버릴 자녀, 그 둘이 함께, 참 잘 살 것이다.

 

(여기서 조금 다른 얘기) 앞의 부모보다는 낫겠지만, 역시나 이상한 부모가 또 있다. 여러분, 과거에 첫영성체 통과할 때 받은, 찰고 기억하는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신부님/수녀님과 혼자 마주하고, 주요기도문을 외워, 찰고받았을 것이다. 천년이 지난다 해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 참 많은 기도문을 외워야 했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 기도 입, 기도 몸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기도문 때문에, 어떤 부모들은, 저에게 찾아와, 기도문 줄여달라고 사정한다. 아이들이 너무 스트레스받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 공부도, 학원 학습도 너무 바쁘고, 아직 어려, 외우는 것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답시고, 아이들 편에 서서, 마치 기도문이 불합리하다는 듯이, 아이를 대변해주는 부모, 그들 또한 아이의 신앙을, 직간접적으로 가로막는 것 아닌가? 기도문 줄여, 거져 첫영성체 달라는 것 아닌가? 어떤 부모는, 저의 사랑과 자비를 시험하려고, 아이의 기도문 점검도 안하고, 저에게 들이밀기도 한다. 자신이 아이 신앙을 방임, 방치한 건 모르고, ‘왜 너그러이 봐주지 않느냐’고 저에게 따진다.

 

아이보다 먼저, 부모 자신이 기도 바치지 않고 사는 데 익숙하니, 기도문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다. 부모 자신이, 기도를 귀찮게 여기니, 자녀 핑게대며, 자녀보다 더, 투덜대는 것이다. 기도 없는 게 일상이라, 기도가 불편하고 싫은 것이다. 만일 신앙이 유산이라면, 그중에, 성경, 미사, 기도가, 가장 큰 유산이다. 아이가, 스스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섬길 수 있도록, 성경, 미사, 기도가, 우리가 줄 수 있는 신앙의 전부이다. 오늘 하루, 나는 내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며 살고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가, 저에게는, 여기 앞에 있는 첫영성체 어린이와 똑같은 처지라고 여긴다. 지금껏 하느님을 몰라왔고, 기도도 할 줄 몰랐던 이 어린이들이, 첫영성체를 준비하며, 이제야 하느님 말씀 듣기 시작했고, 혼자 기도문 외워, 홀로 겨우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경쓰기와 기도문 암송 덕분에, 그리고 이제 모시게 될 성체 덕분에, 이들은 새로운 신앙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성경, 성체, 기도문이, 이 어린이에게는, 예수님의 손가락인 것이다. 성경, 성체, 기도문이, 이 어린이들의 귀와 입을 건드려,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런 의미로, 새로이 입교한 예비신자들에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에파타" 예식을 행하였다. 그들의 귀와 입에, 사제는 손을 대어, 이제 새로이, 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입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었음을, 축하하였던 것이다.

 

오늘 미사 처음, 본기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 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이, 무엇일 것 같은가? 세상 속에서 세상 것들의 풍족을, 행복이요 구원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사실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바로, 하느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게, 이 기도에서는 구원이란다. 정말 놀랍다. 하느님 자녀가 된 것만으로, 구원받았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기도는 계속 이어나간다.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소서."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은,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받게 된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 자유, 영원하신 분, 하느님을 영원한 유산으로 얻게 되고, 물려 주게 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는, 자유이고, 유산이다.

 

우리는, 내가 선택해서, 세례받고, 내가 원해서 첫영성체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 덕분에, 더 구체적으로는, 다른 하느님의 자녀들 덕분에, 나 또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이 하느님을 유산으로 물려 주셨다. 나의 부모일 수도 있고, 조부모일 수도 있고, 나의 친구, 형제 자매, 하느님을 먼저 믿고 섬긴 모든 이들 덕분에, 나도 믿을 수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며, 간병하며 깨달은 바이다.)

 

우리는 하느님 덕분에 만났고, 하느님 덕분에 망나니로 살 수 있던 길 대신에, 기도하며, 그나마 하느님 섬기는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는 시간은 달리 태어났을 뿐이지, 우리 모두는, 서로 하느님을 알려주고, 하느님을 섬기도록 인도해주는, 하느님의 자녀이다. 오늘 제2독서처럼, 하느님 자녀는, 하느님 자녀를 알아보고 차별하지 않는다. 하느님 자녀는, 하느님 자녀를 돌보고 사랑한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는 모든 이들은, 한 식구이다. 서로, 하느님 자녀로 대하고, 함께 하느님을 섬기는 게, 바로 신앙이요, 사랑인 것이다.

 

오늘 첫영성체 날,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구원을 선물하고 있다. 여러분 모두가 그들에게,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성경, 미사, 기도문을 선물하고 있다. 이전에 내가 받았던 구원, 이제껏 하느님 자녀로 살아온 구원을, 이들에게 유산으로 상속하고 있다.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무럭무럭 성장해 나가도록, 먼저 하느님의 자녀된 여러분들이, 끊임없이 돌봐주기를 빈다. 함께 내 자신의 첫영성체를 기억하며, 굳건히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기를, 서로 축하하고, 함께 응원해 주었으면 한다.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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