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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연중 제21주일 B Joh 6,60ㄴ-69 아침-저녁기도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며칠 전, 한국 뉴스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들었다. 백신접종은, 사랑이라고... 그래서 바티칸 뉴스를 뒤져봤다. 지난 18일, 교황님은, 중남미 신자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국의 승인을 받은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백신 기부)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 가족과 친구를 위한 사랑, 모든 이를 위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또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입니다. 사회적 사랑과 정치적 사랑입니다. 이는 보편적입니다. 작은 몸짓으로 넘치는 사랑은, 언제나 사회를 변화시키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백신접종은 공동선을 증진하고 서로를, 특히 가장 취약한 이를 돌보기 위한 간단하지만, 심오한 방법입니다. 모든 이가, 작은 모래알, 곧 각자의 작은 사랑의 몸짓을 보탤 수 있길,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아무리 작은 몸짓이라도 사랑은 언제나 위대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 작은 사랑의 몸짓을 보탭시다.”

 

 

혹시나 여전히 백신 꺼리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맞으시길 권합니다. 백신을 거부하며, 자유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지, 남을 위한 사랑의 마음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자유가 나만을 위할 때, 그건 욕심인 자유밖에 안된다. 그 자유가, 남에게도 향할 때, 그건 사랑인 자유, 다른 말로, 타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불편을 감수하고, 내 아픔과 부자유를 감내하며, 함께 나누는, 사랑을 위한 자유가 되는 것이다. 멀리, 플로리다 주를 보건데, 12세 미만의 아이들이 최대 피해자이다. 그네들은 백신도 맞지 못하고, 백신 기피하는 어른들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되기 쉬운, 최대 희생자이다.

 

 

 

(여기까지. 여기서 조금 다른 얘기) 제가 본당사목 중에 의기소침, 실의에 빠질 때가 있다. 신자들이 저에게 악을 권할 때이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고, 인간은 다 그런 거 아니냐고, 어쩔 수 없는 일 있지 않냐고, 저에게, 못 본 척, 아무 것도 아닌듯 봐달라고, 대신 언능 축복이나 주고, 사죄나 해달라고 할 때이다. 그래서, 저는, 고해소에 성수를 비치한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악이 제 안으로 순식간에 들어온다, 악을 내버려 두라고, 꼬시고 유혹한다. (고해소 얘기는 다른 기회에...) 그 중에 하나가, 기도에 관한 것이다. 기도가 왜 있느냐고, 기도 없어도 신앙 아니냐고, 기도하지 않을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

 

 

여러분은 아침-저녁기도를 하시는가? 만일 이미 기도하고 있다면, 자만하지 않기를... 기도는 절대 자랑하면 안된다. 기도 자랑하는 사람 곁에, 절대 가지 말기를... 악마다. 여러분도 그렇듯이, 저도, 기도 할까 말까, 하루내내, 기도와 싸운다. 오늘 독서와 복음 표현 처럼, "이 얼마나 거슬리고, 거북한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침-저녁 기도를 앞에 두고, 매번 내 마음 속 엄청난 요동을 느낀다, 매일 투덜대고, 핑게대고, 귀찮아하는 나를 발견한다.

 

 

기도가 나쁜가? 아니다. 기도는 좋은 것이다. 그건 원래 좋은 것, 하느님 것이다. (베네딕토 성인은, 기도를 Opus dei, 하느님의 일이라고 명명한다. 참, 이상하다. 내가 하는 일인데, 그걸 하느님이 하시는 일로 정의하는 것이다. 내가 그 무엇보다 하느님을 택하니, 하느님이 기도할 힘을 주시고, 내가 하느님 덕분에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기도는 귀찮은 것인가? 맞다. 정말 짜증나고 버겁고 귀찮다. 그렇다면, 원래 기도가 귀찮음 덩어리라 그런가? 아니다. 내가 기도를, 습관적으로, 귀찮게 여기는 것이다. 내가 기도 대신 다른 걸 좋아하고, 다른 데 정신 팔려 있길 좋아해서, (더 근본적으로), 내 몸을 하느님 것으로 못 보고, 하느님 것으로 다루지 못해서, 내가 내 몸에 못된 습관으로 가득 채워서, 하느님 것 기도를 밀어낸 것이다. 내 몸 악습이, 기도를 싫어하는 거다. 내가 키운 악이, 하느님을 내차는 거다.

 

 

물론 가끔 기도할 때도 있다. 성당에 있을 때, 레지오나 기도 모임, 성서 모임할 때, 다들 하니까, 나도 덩달아 기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일생 생활이나 직장생활, 남들 모르는 내 사생활에서라면? 아마도, 기도는, 내가 안 하던 짓이라, 제 정신엔 못 할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을, 하느님 것이라 고백하지 못하고, 하느님께 돌려 드릴 마음도 없으니, 하루 종일, 온통 내 몸, 내 자유, 내 것, 내 삶으로 가득 채우며, 기도할 틈이 없는 것이다.

 

 

아침-저녁기도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신앙 없다. (단언컨데, 신앙없다. 너무 야박하다구요? 제발, 이 말로 상처입지 말기를 빈다. 여기서, 아침-저녁기도, 하는 사람, 안 하는 사람, 손들라고 하지 않겠다. 인민재판하지 않겠다. 대신 회개하기를 빈다. 다시 기도하며 살기를 빈다. 기도 없이, 신앙 있는 척하며 살지 않기를 빈다.) ‘그래도 주일미사는 드리는데요?’ 기도 없이 사는 사람이, 미사가 즐거울까? 언젠가, 기도 안하듯, 미사도 안할 것이다.

 

 

혹시나 '저는 묵주기도하는데요?' 둘 사이에, 급이 다르다. (물론 형태와 내용은 달랐지만) 아침-저녁기도는, 구약-신약 시대 내내 있던 기도이고, 형제 이슬람 교인은 전통대로 하루 5번이나 양탄자 깔고 기도한다. 묵주기도는 13세기 도미니코 성인으로부터 시작된 기도이다. 식사에 비유하자면, 아침-저녁기도는 주식이고, 묵주기도는 간식이다. (성모님, 죄송)

 

 

아침-저녁기도 하나로, 신자인지 아닌지가 드러난다. 아침-저녁 기도를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드리느냐, 거기서부터 신앙의 깊이가 달라진다. 아침-저녁 기도로 시작하고 마치는 하루, 하느님으로 시작해서, 하느님으로 마치는 하루가, 신앙인의 하루이다. 기도도 쉽게 까먹는데, 과연 하느님 말씀과 계명을 기억해내며 살겠는가? 기도 없이, 과연 하느님을 안다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하느님 사랑하듯, 이웃사랑한다고? 웃기는 소리다.

 

 

기도 없이 시작하고 마치는 하루는, 그저 텅 빈, 쭉정이 하루밖에 안 된다. 기도 대신, 기도 물리치고, 우리는 무엇 찾으며 하루를 살까? 곰곰이 따져보면, 오늘은 기쁜 게 뭐 없을까? 어제보다 짜릿하고, 좀 더 흥분되는 것은 뭐 없을까?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줄 것은 뭐 없을까? 저거 가지면, 저거 구매하면, 저거 우리 집에 두면, 내가 건강해지지 않을까? 행복해 지지 않을까? 뽀대 나지는 않을까? 세상 기웃, 남 두리번 거리고, 온통 허기로 허덕이며, 하루를 보낼 뿐이다. 기도 대신, 허망한 기대로만 하루를 가득 채운다.

 

 

(다시 한 번) 제발 아침-저녁기도, 꼭 하시기를 빈다. 되도록, 가족 모두 모여... 그 기도부터 사랑하기를 빈다. 그 기도 사랑이, 하느님 사랑으로 바뀔 것이다. 하루를, 그 두 기도로 시작하고 마치는 사람이, 자신의 하루, 아니, 하느님이 나에게 선물로 베푸신 하루를, 성전으로 가꾸는 사람이다. 그 두 기도가, 하루라는 성전의 두 기둥이 될 것이다. 절대, 아침-저녁기도, 억지로, 마지못해, 대충 드릴 기도가 아니다.

 

 

 

(여기서 조금 다른 얘기) 저는 첫영성체 아이들과, 기도문 찰고를 하면서, 악마를 보았다. 한글 기도문, 영어 기도문, 이 두 가지 중, 어느 걸 외워야 할까? 저의 원칙은, 부모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그 언어의 기도문을 외우라고 권한다. 아이들에게도, 기도는 귀찮음이 될 수 있다. 헌데, 부모가, 특히 엄마가, 기도를 기쁨으로 여기고 한다면, 그들도, 부모 따라, (물론 중간에 쉴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언젠가, 기쁨으로 기도할 것이다. (저는 그렇게 믿는다)

 

 

헌데, 한글 기도문과 영어 기도문 사이에, 미묘한 차이를 발견했다. 예컨대, 식사 후 기도는, 영어 버젼이 조금 더 짧다. (어, 이상하네?) 주님의 기도랑 성모송은 한글로 외우고 서는, 식사 후 기도는, 짧은 영어로 하네? 또한 아침-저녁 기도는, 압도적인 길이로, 영어 기도문이 짧다. (야, 이거 잘못하면, 엄마들이 악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겠군. 자기 애를 위한답시고, 긴 한글 기도문은 대신, 짧은 영어 기도문을 얘들한데 외우라고 알려주겠네..)

 

 

저는 아이들에게서, 엄마의 악을 봤다. 과연 그 엄마 아빠는 아침-기도를 할까? 첫영성체는 받아야 하니, 기도문 찰고는 통과 해야 하니, 자기들도 안하는 영어 가도문을 외우라고 한 건 아닌가? 물론 아이들이 영어를 잘해서, 어차피 영어하며 살 테니까, 영어로 외우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정당한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그 아이들이, 나중에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엄마 아빠도 안하는 기도를, 자신이 억지로 외웠다면, 나중에 엄마 아빠 안 하듯, 쉽게, 기도문, 내다버릴 것이다.

 

 

결국, 엄마 아빠를 위선자로 여기며, 하느님까지 버릴 것이다. 냉담하는 자녀들이 왜 생길까? 물론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교회 잘못도 있다) 가정기도에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냉담 자녀는, 부모의 위선을 본 것이다. (그럼 냉담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부터라도 기도하며, 보속하며 사시길... 혹시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냉담 자녀들이, 부모의 항구한 기도 덕분에, 다시 하느님을 찾기를, 빈다) 기도의 위대함이면서, 무서움을 본다. 제1독서에서처럼, 여러분은 하느님 택하고, 기도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 멋대로 하느님 믿고, 자기 맘대로 기도 하지 않고 살텐가?

 

 

마지막으로, 오늘 본기도에서 감명받았다. 이러한 기도문이다.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하느님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하느님 것을, 참기쁨으로 여기게 하소서! 나의 삶 속에서 참된 것을 식별하려면,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기도부터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기도도 선택하지 못하는 이가, 과연 하느님과 하느님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 기도도 안 하며 하느님을 믿는다고 자신하지 말기를.., 제발 아침-저녁기도부터 먼저 선택하기를 빈다.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조:

Antonella Palermo, <교황 “백신접종은 사랑의 몸짓입니다”>, 이재협 신부 번역, 라디오 바티칸 2021.08.18.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1-08/videomessaggio-sulle-vaccinazion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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