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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신부님 교중 미사의 짧은 강론 버전 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Mt 28,16-20 십자성호

 

코로나 상황에 미사를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강론을 함께 나눕니다.

당일 강론과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첨삭을 했고, 또한 추후 보완했습니다. 

 

성호경 안에 삼위일체의 호칭이 다 담겨 있다. 기도하기 귀찮아질 때, 성호경이라도 그어 보길.... 구마의 효과가 있다. 오늘은 성호경을 중심으로, 기도의 유익에 대해 나눌까 한다.

 

“살다보니, 기도를 하나 안하나, 세상은 똑같이 돌아가는 같아요!” 어느 신자가 제게 하소연한다. “기도한다고, 세상 일이 바뀌기나 할까요?”. “기도하면, 오히려 더 걱정과 고민에 휩싸이고, 더 골치 썩으며, 하느님 믿는 신앙 때문에, 세상 일이 더 힘겹기만 합니다”, 불평불만. 여러분은 어떤가? 여러분에게도, 기도가 버겁고, 기도하는 게, 쓸모없어 보이는가?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그 방법에 더 신경 쓰려 한다. 많이, 길게, 독특한 기도문으로... 저는 다르게 본다. ‘기도하듯, 살기’, 신앙인은, 사는 게 기도여야 한다.)

 

자! 우리 앞에, 세상 것이 있다. 우리는 그걸 어떻게 대하는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혹은 관심을 두거나, 무관심하거나 등등,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반응할 것이다. 만약 기도 없이, 세상, 세상 것, 세상 일, 세상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때, 나를 좌지우지 하는 제일 요소는, 내 감정과 기분, 내 필요와 욕구일 것이다. 나에게 좋은 것, 내게 좋지 않은 것,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미워하는 것, 내가 맛있어 하는 것, 맛 없는 것 등등, 나를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골라내고 갈라낸다.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만 추리려 한다.

 

기도 없이 사는 사람은, 그래서 뻔하다. 오직 내 자신을 위하여, 오로지 내 욕망과 욕심을 채우려고, 하루를 산다. 내 자신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온통 내것으로, 하루를 채우려 한다. 나와 내것이, 내 모든 활동/생활의 원동력이다. 나를 위해서만, 움직이려 하고, 내것을 얻어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는다. 그게 사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세속인이 그러하다. 그게 과연, 좋아 보이는가?

 

헌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되려, 나를 망치게 한다면, 그래도 좋아하겠는가? 어느 순간, 나를 위한다고, 내 욕심 채워려는 것이, 도리어 내게 해로운 것이 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꽤 많다. 늘 맛난 것 찾고, 늘 편한 것 찾고, 늘 짜릿한 것만 찾으면, 어느 순간 막장 인생이 되버린다.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 섹스 중독, 세상 것 즐기다, 그리 된 것이다. 하느님 없이, 기도 없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나를 망가트리고, 내 가족을 망가트린다. 

 

만일, 내가 세상 것을 사랑하듯이, 내 배우자가, 내 자녀가, 나처럼, 그렇게 세상 것을 좋아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겠는가? “나는 욕심내며 살테니, 나는 이것저것 즐기며, 세상 것 다 누리며 살테니, (혹은 나는 한껏 바람피며 살테니) 너는, 너희는 절대로 그러지마!” 이 얼마나 욕심보인가? 각자 다, 자기 욕심에 빠져 사는 가정, 행복할까? 각자 자기 좋은 것만 달라고, 서로에게 요구하고 불평하는 가정, 평화로울까? 세상 것만 아는 가족은, 이미 지옥이다. 

 

그와 반대로, 기도하며 세상, 세상 것, 세상 일,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게 산다. 먼저, '이 세상 만물은 하느님 것!' (하느님 것은 다 좋은 것, 구원의 것) 그렇게 고백하며, “혹시나, 나는 지금 저것을, 마치 내것인양 대하거나, 내것이 되기를 바라는, 탐욕으로 상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저것을, 내 맘대로, 내 멋대로, 내 뜻대로, 함부로 다루고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나는 저것을 하느님 것으로 보려 하는가?” 

 

이것이 기도의 유익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 것을, 분명히 하느님 것으로 알아보고, 그것을 하느님 것으로 대하며, 하느님 뜻 안에서 다루려 한다. 기도가, 그 가정을 천국이 되게 하고, 천국으로 이끈다. 기도가, 이미 은총이다. 기도가 이미 구원이다. 기도하는 이들은, 한 걸음을 걸어도, 늘 하느님과 발맞춰, 하느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간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삼위일체를 고백하며, 기도한다. 대표적으로, 십자성호/성호경! 여러분은, 성호경을 잘 긋고 있는가? 기도의 처음과 끝에,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긋고 있는가? 십자성호를 긋는 행위는, 그 자체가, “나는 하느님 것입니다!” 선언이다. (예컨대, 소에 찍힌 인장. 그 인장으로, 다른 소들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내 스스로, 나에게, / 내 가슴에, 십자가를 그으며, 나는, 내가 누구인지, 다시금 확인한다. "내 소속은 어디며, 나는 누구의 자녀인지, 나를 지금도 살리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새롭게 고백한다. "내 몸과 마음, 이 생명은, 모두 다, 하느님 것,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신앙고백하는 것이다. 십자성호를 그을 때마다, 나는, 다시금 하느님 것으로 reset, 초기화된다. 

 

첫번째 예로, 아침-저녁기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리고 저녁/밤에 자기 전에, 기도로 내 자신을 점검한다. 깨어나면서, '나란 무엇인가', ‘오늘 하루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나는 하느님의 것이었고, 하느님 것으로 살았던가? 아니면, 하느님 없는 것, 내 욕심의 것들만, 기도 앖이, 찾지 않았던가?” 이제야 훌훌 털어버리고, 마치 죽음의 때처럼, ‘다시 하느님 품 안에 쉬기를 바라는가’ 되물어본다.

 

두 번째 예로, 자동차에 올라 탈 때! 물론 무사고 안전도 기원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성호경을 그으며, "이곳 자동차가, 내 욕심과 경쟁심, 분노와 짜증의 현장이 되지 않게 하소서. 대신, 하느님을 섬기는 성전,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이웃 사랑하는 성전이 되게 하소서”, 또한, "순간순간 불출되는 내 감정과 기분으로 전쟁터 되게 마시고,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닮아가고, 하느님을 따르는 신앙의 현장이 되게 하소서", 하고 기도 드린다.

 

세 번째 예로, 식사 전후 기도! 우리는, 하루에 세 번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식사 때에 십자성호를 긋는다. 그때, 기도로 먹지 않으면, 욕심을 먹고, 악을 끌어들이고, 내가 악이 되어간다. 그저 욕심 내고, 탐욕 채우는 자리밖에 되지 않는다. 기도 덕분에, 우리는, 내 앞에 놓인 음식이, 하느님이 주시는 양식임을 알아보게 된다. 지금 하느님이 내게 나눠주시듯, 나 또한, 누군가와 나눌 양식이 되게 한다. 맛난 음식을 먹고, '배부르다', 포만감에 빠지기보다는, 하느님께 감사, 함께 이들, 음식 장만한 이들에게 감사, 감사로 삶을 채우게 된다.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 성호경을 긋고, 기도하고 있는가? 어떠한 상황에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가? 기도하는 이는, 늘 사랑을 찾아내려 한다. 사랑 없는 자리, 미움의 자리에서조차,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랑을, 애써, 기쁘게 찾아내려 한다. 사랑이 없다고, 절대 불평하거나 등돌리지 않는다. 그곳에도 하느님과 하느님 것을 식별해 내고, 하느님 바라시는 것을 뿌려 대고, 심고, 가꾼다.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기도 없는 자는, 자기 좋은 것밖에 모르지만, 기도하는 이는, 하느님 것에 기쁨을 두고, 결국, 세상 모든 하느님 것, 그 만물 안에서, 기쁨을 찾아낸다. 여러분은 기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여전히 세상 것 기웃거리며, 세상 것에 연연하고 그리워하며, 그래서, 기도하기 귀찮아하는데 익숙한가?

 

"죄송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서툴러 실수가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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