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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 동욱 (도마)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414-9256     

WWW.SPJCC.ORG

제1독서 이사 66,18-21

 

화답송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
○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 

 

제2독서  히브 12,5-7.11-13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복음  루카 13,22-30

 

영성체송    

주님, 땅은 당신이 내신 열매로 가득하옵니다. 당신은 땅에서 양식을 거두게 하시고, 인간의 마음 흥겹게 하는 술을 주시나이다.

 

 

생명의 말씀 

     

             하느님의 초대장

        

                      김한수 토마스 신부 | 종로성당 주임

 

하느님 자비에 관한 논의는 초기 교회가 마르키온(Marcion of Sinope, 85-160)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마르키온은 구약성경에서 묘사되는 정의와 심판의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과는 다르다고 여겼습니다.

 

전쟁에 거침이 없고, 질투하고, 심판하고, 분노와 죽음을 선포하는 분으로

이해되는 구약의 하느님이 죄인을 용서하고, 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그들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자기 목숨까지 내놓으신 신약의 하느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 논쟁은 하느님에 관한 이해의 차원을 넘어 구원 역사의 단일성, 옛 계약과

새 계약의 연속성,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동질성에 관한 깊은 논의로 이어져 왔습니다.

이제는 신학적으로 정리되어 종결된 논의이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는 여전히 묻게 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느님이신가 아니면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신가.

착한 이들에게 상을 주시고, 악한 이들에게는 벌을 내리는 하느님이셔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현실을 마주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나 나약한 개인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사건·사고

앞에서 원망의 마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불행한 일들이 연속되어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내가 천벌을 받는 것인가 자책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상선벌악의 하느님을 의식하는 가운데서도 평범한 일상의 비일상성을

깨닫는 순간에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내가 비록 하느님께 죄를 짓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때때로 악행을 범하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새로운 삶을 이어 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과 신앙 안에는 정의로운 하느님과 자비로운 하느님에 관한

이해가 섞여, 혼란스럽고, 모순되고, 충돌하고, 거부되고, 인정되는 다채로운 움직임이 자리합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모든 전승층에는 심판의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느님의 다스림 역시 심판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다스림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는 지난 주일의 말씀과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는 오늘의 말씀 모두

심판과 단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판과 단죄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입니다.

 

그래서 심판과 단죄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호세 11,8).

하느님의 심판과 단죄는 오히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가 드러나는 자리가 됩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로마 5,20).

 

이렇게 히브리서의 ‘훈육’과 ‘책망’은, 많은 이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문’은

주님의 초대장이 됩니다.

경고와 질책의 주님 목소리가 여러분 모두에게 보내는 주님의 진심 어린 초대장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말씀묵상] 

        주님을 ‘더욱’ 신나게 합시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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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만 지나면 처서입니다.

처서가 지나면 바닷물이 차갑다고 수영을 말리시던 할머니는 그즈음엔 방바닥

한기를 염려하며 잠자리에 두꺼운 요를 깔아주셨습니다.

참 유난했던 이 더위가 한풀에 꺾이진 않겠지만 서서히 햇볕의 농도는 묽어질 테고

불어오는 바람도 한층 상쾌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창세 8,22)고 노아와 맺으신 하느님의 약속이니, 틀림이 없는 일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전하신 이사야의 예언도 이루어졌습니다.

그 덕에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우리에게도 주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내 영광을 본 적도 없는”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세상의 어느 이방인 누구든 오직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더러는 사제가 되고

더러는 레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에 멈추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은 세상 끝날까지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온 세상을 “주님께 올리는 제물”로 봉헌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섬처럼 고립되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영광을 알리라는 사명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셨습니다. 

이사야서는 당신의 진심을 헤아리지 않고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 매달려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절규로 시작합니다.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이사 1,2)

 

그런데 오늘 우리가 듣는 이사야의 예언은 전혀 딴판입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시는 주님 음성에 신바람이 묻어있습니다.

무엇이 주님을 이토록 신바람 나게 했을까요? 

하느님의 슬픔은 당신의 뜻을 몰라주는 이스라엘 백성의 청개구리 같은

행동과 삐딱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선택된 선민이었음에도 주님의 뜻을 외면했습니다.

무한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도 우상 바알과 함께 주님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했습니다. 

“너희를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는 되지 않게 하실 것”(신명 28,13)이라는

달콤한 약속을 기억하면서도 “듣고 따르면”이라는 사항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섬기지 않으면”이라는 단서 조항을 묵살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이 딱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싶습니다.

우리 역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주님의 뜻대로 신바람 나게 살지 못하니 말입니다.

지금도 예사로이 주님의 원칙을 알고 있지만 내 생각과 세상의 논리와 버무려내기를

마다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말씀의 요지를 맘대로 해석하고 입맛대로 고치면서도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으니 말입니다.

수도 없이 참회를 위장하고 ‘자비로운 주님 은혜’의 무한함만 강조하며 뻔뻔하게 지내니 말입니다.

결국 매일 매일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잃고 무겁고 힘들게 세상살이를 견디기에만 급급하니 말입니다.

때문일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한껏 부풀어 오른 마음을 쿡 찔러 헛바람을 빼내십니다.

당신의 나라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가르침을 들었다고 해서 무사히

통과할 수 없는 곳이라고 잘라 이르십니다.

한 번 닫힌 문 앞에서 암만 두드려봤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엄포를 들려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살벌한 경고를 내지르십니다.

이렇듯 아주 상세히, 조목조목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실만으로 천국의 좁은 문이

넓어지는 기적은 없다는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어서 ‘착각’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하십니다. 

저는 오늘 주님의 당부에서 세상 모든 부모님의 마음을 봅니다.

우리 부모님들처럼 당신의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잘 새겨듣고 그 말씀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내기를 원하시는 간절함을 만납니다.

자녀들이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듬뿍 지원하고 한껏 응원해 주시는 손길을 느낍니다.

자녀들이 당신의 뜻에 따를 때에 신바람 나시는 부모님의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부모님처럼 자녀의 생각을 뛰어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를

축복하고 싶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는”(에페 4,15)

축복을 얻도록 전부를 쏟아 뒷바라지하고 싶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살아감으로 당신께서 마련하신 은혜를

한껏 베풀어 주실 때에 신바람이 나십니다.

미적대며 주저앉은 우리의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다시 달려갈 수

있도록 부축하시며 이끌어 도우십니다. 

우리는 그날 하느님께서 신바람을 내시며 선포하신 구원 계획에 따라서 신비의 은총을 살고 있습니다.

결코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는 좁은 문으로 들어서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은총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 중에서 뽑힌 고귀한 품격을

지니고 세상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매일의 삶에서 그분께서 주시는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 낙심”

하지 않는 믿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하느님께 선택을 받았지만 결국 천국에서 외면당한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합니다.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1,1)라는

주님의 약속이 꼭 이루어질 것을 알고 또 믿는 지혜인이기에 참으로 그러합니다.
                         

msn008.gif  본조르노 파파  

실패에서 희망과 치유로 - 성모님의 부드러운 모성애

 “부활절 아침 무덤에 있었던 성모님과 여인들을 생각하십시오.

그들은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많은 여성의 부드러운 모성애는 교회가 지녀야 할 품성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수많은 무력함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새롭게 결실을 맺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 교황님의 캐나다 강론 중에서

 

 

 {교황님의 8월 기도 지향}  

일반: 중소기업들

중소기업들이 경제와 사회 위기 가운데에도 사업을 이어나가며 그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봉사하는 길을 찾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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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와 모임안내 

주일미사 

일요일 오전10시30분 

평일미사   

수요일 오전 10시  

토요미사           

토요일 오후 5시 

주일학교, 한국학교 

여름방학 

고백성사 

매 미사시작 30분전 

꾸리아 월례모임

매월 넷째주일 미사 후     

▣ 레지오 모임 

 은총의 샘 

수요일 오전10시45분 

상지의 좌 

zoom 금요일 오후 8:30 

 순교자의 모후 

수요일 오전11시  

자비의 모후           

zoom 주일 오후 7시        

 하늘의 문 

zoom 목요일 오후 9시 

 

 

▣ 전례봉사 

 

  8/21

  연중 제22주일          

8/28

        연중 제23주일       

 제 1 독서          

         이재빈 베르나르도         

      한계근 세실리아           

 제 2독서 

         정익진 율리안나      

    이은주 루시아 

   미사해설      

          김용태 바오로

김예나 레나

 

                   공동체 소식  

▣ 8월의 미사 시작 전 기도로  '성소를 위한 기도'를 바치겠습니다.

▣ 한국(주일)학교 교사 모집

 현재 교사부족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았습니다.

본당 아이들의 신앙과 한글교육을 위해 봉사를 원하시는 분은

나부덕 율리안나 - 919-607-2581

김유미 마더데레사 - 608-233-1995 로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 유아세례 원하시거나 관련하여 궁금하신 분들은 전례부 김연수 안젤로형제님께 

문의 바랍니다. 919-801-0804

▣ 윤종태 마티아형제님께서 재무봉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 9월 미사책이 나왔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께서는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각권 구입 가능하며 책값은 $7 입니다. 

▣ 새로운 코로나 변이로 다시금  세계적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미사 참례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신자분들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하시고, 성체를 영하실때는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

성당 입구에서 접수하며, 인터넷이용 봉헌은 https://spjcc.weshareonline.org

단, 미사예물은 계속 미사 전에 예물봉투를 꼭 봉하셔서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히브(12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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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백)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2022년 5월 1일 AdelaKim Adela 2022.04.27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