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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 동욱 (도마)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414-9256     

WWW.SPJCC.ORG

제1독서 묵시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화답송  

◎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
○ 당신 사랑을 받는 여인들 가운데, 제왕의 딸들이 있고,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 ◎
○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네 백성,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 ◎
○ 임금님이 너의 미모에 사로잡히시리라. 임금님은 너의 주인이시니, 그분 앞에 엎드려라. ◎
○ 기쁨과 즐거움에 이끌려, 임금님 궁전으로 들어가는구나. ◎ 

 

 제2독서  1코린 15,20-27ㄱ​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성모 마리아 하늘로 오르시니 천사들의 무리가 기뻐하네. ◎  

 

 복음  루카  1,39-56​

 

영성체송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생명의 말씀 

     

             불의 몇 가지 특징들

 

                         

                         방종우 야고보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음가짐, 생활양식, 학업의 중요성, 세상을 바라보는 눈 등 알려주고 싶은 것이

많아 때로는 핀잔과 잔소리가 섞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종종 갈등이 되는 것은 ‘사랑, 평화, 자비의 가치’에서 비롯되는 고민입니다.

 

혹시나 나로 인해 상대방 마음의 평화가 깨지지는 않을까 덜컥, 걱정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평화를 거부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말씀을 하시네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나요?

사랑과 일치를 강조하셨던 주님이신데 분열을 선포하시다니. 우리가 알았던

예수님이 아닌 듯합니다.

더욱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여기서 우리는 이 “불”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의 특징은 첫째로, 매우 뜨겁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들지요. 이를 종합하면 불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국 새로운 생명을 위한 갈등과 희생, 분열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불, 즉 새로운 생명과 사랑에는 마땅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유다인들의 문화권에서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기존 사회의 분열을 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모험이며 결단이었고 전통 사회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했지요.

자, 이렇게 예수님의 불이 이 세상에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이 자리에는 부활과 구원이 생겨날 것입니다.

즉, 뜨거웠던 사랑의 자리에는 평화가 넘치게 될 것이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볼까요?

불의 세 번째 특징은 태워질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망, 교만, 신앙에 대한 나태함, 분노, 불신 등 우리가 태워야 할

것들은 참으로 많지요.

 

침묵하는 것이 더 편해 보이고 사랑보다 미움이 더 흥미로우며 그리스도교의

윤리 가치를 실천하는 것은 거추장스럽고 미련해 보입니다.

하지만 만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겪는 어려움과 희생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

안주하며 이 불을 피해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 나의 신앙을 위해 무엇을 태우고 비워낼지 결심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불은 여러 곳으로 퍼져서 더욱 큰 사랑의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공간이 생겨나겠지요.

주변으로 번져나간다는 것, 새로운 자리가 마련된다는 것. 이것이 불의 마지막 특징이랍니다.

 

 

[말씀묵상] 

        식어버린 열정, 주님 사랑의 불꽃으로 다시 뜨겁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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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식어가는 이 세상에 사랑의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

해외에 잠시 머물 때, 따뜻한 남유럽의 한 수도원으로 공동체 피정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피정 집은 달력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호숫가에 위치해 있었는데, 호숫가로는

올리브나무 사이로 호젓한 산책로가 길게 나 있었습니다.

천국이 따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밤이 오면 또 하나의 색다른 체험을 하곤 했습니다.

언덕 위에는 작은 경당이 세워져 있었는데, 하루 한 번 강의는 그 경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경당의 특징은 인위적인 불이 일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촛불과 등불만이 그 경당의 조명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천장으로부터 길게 드리워진 우아한 등잔 위에는 항상 등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기 직전, 제의방지기 수사님은 벽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있는

촛대에 일일이 불을 밝혔습니다.

강의를 하시는 신부님의 손에도, 강의를 듣는 우리 각자의 손에도 작은 촛불이 하나씩 들려졌습니다.

촛불의 자연스러운 빛은 경당을 정녕 아름답고 따뜻한 공간으로 창출해냈습니다.

촛불을 들고 있던 우리 각자의 얼굴도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꽤 험상궂게 생긴 수사님 얼굴도 그 경당 안에서는 예뻐 보였습니다.

미운 짓만 골라 하는 신부님 얼굴도 그 경당 안에서는 더 이상 미운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공기의 순환에 따라 춤추는 불꽃, 그 불꽃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은 늘 새로운

모습을 창조하고 있었습니다.

불이 이렇게 예쁠 때도 있구나, 불의 움직임이 이렇듯 아름다울 때도 있구나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 서두에서 예수님께서는 꽤 섬뜩한 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 방화범이 되러 오셨다는 말인데,

우리의 예수님은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다수의 고통은 조금도 생각지 않는

무자비한 방화범, 자신 안에 쌓여있는 상처와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을 지르는 그런 방화범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방화범입니다.

진실한 사랑이 점점 소멸되어가는 이 시대 뜨거운 사랑의 불을 놓으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꺼져버린 지 오래인 영혼의 불에 다시금 활활 불을 지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대화가 단절된 곳에 소통의 불을, 슬픔으로 가득 찬 곳에 위로의 불을, 무관심과

나태함으로 가득 찬 곳에 열정과 몰입의 불을 지르러 오셨습니다.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해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과

백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분히 복합적이었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 자리에서 회개하는 사람들은

대견스럽게 바라보셨습니다.

오랜 세월 폭군들의 압제에 시달리던 식민지 백성들의 고통 앞에서는 저절로

연민과 측은지심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하느님께 돌아서지 못하고 과거의 악습에 푹 빠져

도무지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가장 중요한 자신의 영혼과 영원한 생명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오늘 하루 희희낙락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아무런 준비도

변화를 위한 노력도 없이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영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시선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고, 강력한 경고 말씀이 뒤따랐습니다.

오늘 엄청 강력하고 섬뜩한 경고 말씀은 이런 분위기를 배경 삼아 나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49;51)

‘세상에 불’, ‘평화가 아니라 분열’ 등의 강력한 표현은 묵시 문학을 배경으로

하신 말씀이라 조금 난해하기에, 잘 새겨들어야만 합니다.

묵시 문학에서는 종말이 다가오면 가정에서부터 우주 전체에 이르기까지

붕괴 현상이 초래될 것을 예언합니다.

따라서 가정의 분열은 종말이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전조라는 것입니다.

한 가족 안에서, 다섯 식구 중 3:2로 갈라져 맞설 것이라는 말씀,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이 맞설 것이라는 말씀, 참으로 듣기에 거북하고 난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종말이 다가오면 하느님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불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즈카르야서에는 더 끔찍한 말씀이 적혀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온 땅에서 삼분의 이가 잘려 죽고 삼분의 일만 살아남으리라.

나는 그 삼분의 일을 불 속에 집어넣어 은을 정제하듯 그들을 정제하고

금을 제련하듯 그들을 제련하리라.”(즈카 13,8-9)

우리 역시 더 이상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결단을 내려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께서 지르신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밤은 낮처럼 밝아졌고 그분께서 드신 횃불이 온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무관심과 타성은 쫓겨나야 하고, 예수님의 불은 세상 방방곡곡으로 번져나가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가장 경계하시는 백성들의 삶은 열정 없는 삶입니다.

살아있어도 이미 죽어버린 삶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삶입니다.

열정이 없는 신앙, 불꽃이 없는 설교, 영혼이 없는 얼굴, 뜨거운 사랑 없는 삶!

이제는 떨쳐버려야 할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짧은 지상 생활은 그야말로 불꽃같은 삶이었습니다.

매일 활활 타올랐습니다.

하루를 천년처럼 그렇게 알차게, 역동적으로 살아가셨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인생인데, 금쪽같은 순간들이었는데, 아무런 영양가 없이, 빈둥빈둥

허송세월한 지난 삶이 참으로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우리네 일상이 비록 구차스럽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삶을 추구해야겠습니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 대상, 존재라 할지라도 지극정성으로 대하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게으름, 나태함, 무기력한 삶을 떨치고 일 분 일 초라도 의미 있게 보내야겠습니다.


 

                         

msn008.gif  본조르노 파파 

당신은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만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초라함을 깨닫게 하고, 부족한 믿음으로 인해 밀려오는 불안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것도 사랑뿐입니다. 

사랑은 공허한 마음을 기쁨과 희망으로 채워주고 증오와 질투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당신은 환영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족들뿐 아니라 매일 만나는 이웃들, 당신이 속한 공동체,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에 충분하고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한 치의 틈도 없이 당신의 영혼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런 하느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황님의 8월 기도 지향}  

일반: 중소기업들

중소기업들이 경제와 사회 위기 가운데에도 사업을 이어나가며 그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봉사하는 길을 찾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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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와 모임안내 

주일미사 

일요일 오전10시30분 

평일미사   

수요일 오전 10시  

토요미사           

토요일 오후 5시 

주일학교, 한국학교 

여름방학 

고백성사 

매 미사시작 30분전 

꾸리아 월례모임

매월 넷째주일 미사 후     

▣ 레지오 모임 

 은총의 샘 

수요일 오전10시45분 

상지의 좌 

zoom 금요일 오후 8:30 

 순교자의 모후 

수요일 오전11시  

자비의 모후           

zoom 주일 오후 7시        

 하늘의 문 

zoom 목요일 오후 9시 

 

 

▣ 전례봉사 

 

  8/14

  성모승천 대 축일        

8/21

        연중 제22주일       

 제 1 독서          

         김안정 엘리사벳             

       이재빈 라우렌시오           

 제 2독서 

        김오숙 말가리다      

    정익진 율리안나   

   미사해설      

        오세훈 라파엘      

김용태 바오로

 

                   공동체 소식  

▣ 8월의 미사 시작 전 기도로  '성소를 위한 기도'를 바치겠습니다.

▣ 8월15일(월요일) 성모승천 대 축일이 8월14일 주일(토요미사 포함)로 경축 이동 합니다.

▣ “2021-2022 회계년도 본당 재정 결산보고서”가 본당 하상홀 계시판에 이번 주까지 공지함을 알려 드립니다.  

▣ 한국(주일)학교 교사 모집

 현재 교사부족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았습니다.

본당 아이들의 신앙과 한글교육을 위해 봉사를 원하시는 분은

나부덕 율리안나 - 919-607-2581

김유미 마더데레사 - 608-233-1995 로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 유아세례 원하시거나 관련하여 궁금하신 분들은 전례부 김연수 안젤로형제님께 

문의 바랍니다. 919-801-0804

▣ 8월 미사책이 나왔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께서는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각권 구입 가능하며 책값은 $7 입니다. 

▣ 새로운 코로나 변이로 다시금  세계적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미사 참례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신자분들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하시고, 성체를 영하실때는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

성당 입구에서 접수하며, 인터넷이용 봉헌은 https://spjcc.weshareonline.org

단, 미사예물은 계속 미사 전에 예물봉투를 꼭 봉하셔서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네가 깨친 바를 굳게 지키고 네 말을 한결같이 하여라. 집회(5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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