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XpressEngine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363-0408      Fax: (919) 363-0409

제1독서  사도  5,27ㄴ-32.40ㄴ-41

화답송

◎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 주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당신은 저를 구하시어, 원수들이 저를 보고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주님, 당신이 제 목숨 저승에서 건지시고, 구렁에 떨어지지 않게 살리셨나이다. ◎
○ 주님께 충실한 이들아,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이니, 울음으로 한밤을 지새워도,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하리라. ◎
○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 되어 주소서.” 당신은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니, 주 하느님, 영원히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

제2독서  묵시 5,11-14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만물을 지으신 그리스도 부활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셨네.

복음  요한 21,1-19

영성체송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와서 먹어라.” 하시며,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셨네. 알렐루야.

   

생명의 말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들을 돌보아라

                    

               박정우 후고 신부 |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기는 했지만, 아직 스승의 부재 상태에서 갈팡질팡하는

제자들은 다시 호숫가에 고기잡이하러 갑니다.

밤새 허탕을 치고 아침이 될 무렵, 지쳐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직접 나타나셔서

기적 같은 도움을 주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 결과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히고, 제자들은 그제야 스승을 알아보고 기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밤새 고기잡이로 지쳐있던 제자들을 위해 직접 숯불을

피워 물고기를 구워주시고 빵도 마련해 주시며 “와서 아침을 먹어라.”라고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이 직접 다정하게 건네주시는 빵과 물고기를 함께 나누는 이 황홀한 식탁에서

제자들은 얼마나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을까요?
 

이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요? 

“밤새 그물을 던지고 애썼는데 아무것도 잡지 못해서 힘들었지? 앞으로 내 제자로

살아가면서 계속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일도 마찬가지일 거야. 처음에는 뜻대로

잘 안되고 박해도 받을 거야. 하지만 오늘 이 시간을 기억하면서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

너희가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먼저 구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내 계명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어려움을 잘 견뎌내면, 오늘처럼 풍성한 결실을 보게 될 날이 올 거야.

내가 늘 너희와 함께할게!” 

 

이런 묵상은 오늘날에도 실패와 좌절이 일상일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며 성체성사의 은총에서 재현됩니다.
식사 후 예수님은 베드로를 따로 불러 당신의 “어린 양”을 돌볼 사명, 즉 교회에서

최고 목자의 권위와 사명을 주십니다.

 

그 사명에 앞서 세 번이나 주어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리는 그 사랑을 바탕으로 양들을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는 당부도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이 충분하다고 여기셨을까요?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도 이런 사랑을 요구하신 것이 아닐까요?

사실 베드로는 “나를 따라라.”라는 말씀대로 마침내 예수님과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5월 첫 주일은 ‘생명 주일’입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라고 하신 착한 목자

예수님의 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예수님의 그 마음으로 이웃을, 특히 스스로 자기를 지킬 힘이

없는 연약한 이들의 생명을 돌볼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과 맺는 깊은 인격적 친교 안에서

사랑의 능력을 키우고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면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하신 주님의 당부를 더 잘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요?

 

msn036.gif [말씀묵상]  

   부활인의 행복, 놓치지 마세요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오늘 요한 사도는 그날 제자들의 명단에서 두 명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함으로

우리 모두를 그 자리에 초대합니다.

주님 곁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제자들의 겸연쩍었던 마음이 눈에 선하고 손수 음식을

건네주시는 주님의 다정함을 느끼게 하는 요한 사도의 이야기가 무척 포근한데요.

티베리아스 호숫가를 비추던 아침햇살, 그날의 햇빛도 1억5000만 킬로미터를 내달려

그 소박한 해변의 식탁을 비추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비추고 있는 눈 시린 봄볕에도

주님의 사랑이 묻어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꽤 오래, 그날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그분께로부터 사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껏 옛 삶으로 회귀하는 못난 모습이 딱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들의 마음을 전폭적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짙어지는 주님을 향한 그리움은 ‘딴짓’에라도 몰두해야만 견뎌낼 수가

있었을 것이라 싶은 연민이 고입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본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탓이라 싶고 이제 더는

주님과 함께할 수 없다는 ‘별리’의 괴리감이 그들의 마음을 허하게 했을 것이라고 편을 들게 됩니다.

때문에 베드로가 불쑥 “고기 잡으러 가네”라며 딴청을 부린 것도 가라앉아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던 의도라 짐작합니다.

서로서로 아리고 쓰린 속을 감춘 채로 ‘괜찮은 양’ 아무렇지도 ‘않은 양’ 허세를 부리던

중이었기에 모두가 주저하지 않고 베드로를 따라나서며 고기잡이에 동행했을 것이라 이해합니다.

그런데 지금 제 마음에는 신학생 시절에 들었던 강론이 맴을 돕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거푸 똑같이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이유는

바로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배신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오래 마음에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그 강론을 들었을 때, 덜컥 마음이 내려앉던 기억도 생생한데요.

세상살이를 고작 스무 해에도 미치지 못했던 그때, 이미 세 번이 아니라 서른 번도 더,

서른 번이 아니라 삼백 번도 더, 주님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마음을 앓았습니다.

그동안 주님께서는 얼마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계셨을지 꼽으며 진심으로 영혼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주님의 질문에 과연 무엇이라고 답을 드릴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떳떳하고

진솔하게 사랑을 고백해 드린 적이 도대체 있기나 한지를 돌아보며 스스로의 허물에 진저리가 났습니다.

얼마나 많이 주님의 호소를 외면했는지, 딴전을 피우며 무시하고 모른 척했는지… 울음이 터질 것도 같았습니다.

어쩌면 ‘믿음의 순수’일 듯도 하고 아직 삶의 때가 덜 묻었던 덕일 듯도 하지만 그 무거움과

자책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신 선물은 아니라는 걸 여러 해를 지내서야 깨달았습니다.
 

마에르텐 반 헴스케르크 ‘티베리아스 호수에 나타나신 그리스도’.

 

솔직히 오늘 주님의 물음은 우리를 매우 곤란하게 합니다.

차라리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코린토1서 13장에의 정확한 답을 베껴서 백 점을

맞을 것도 같은데, 굳이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거푸 하시니 “뻔히 아시면서 무엇이

더 궁금하시냐?”고 되물을 것도 같습니다.

다 아시면서 “왜 자꾸만 물으시냐?”며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을 것도 같고 뚱한 표정으로

주님의 질문을 못 들은 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방법을 깨우친 믿음인이기에 주님의 질문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는 수월하고 편안한 안락을 추구하는 부활이란 천부당만부당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활로 나아가는 길에는 반드시 십자가가 놓여있으며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나아가는 일만이 부활의 영광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친 진리의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고난 없이 부활로 건너뛸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없으며 아픔과 고통을 외면한 상태로는

결코 부활의 열매만 달랑 딸 수가 없다는 걸 입으로 달달달 외울 수 있고 머릿속에 좌르르

꿰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사랑도 용서도 화해도 성경을 통해서 정답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말로 표현하며 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일에 머물러 지난 허물을 탓하며 우울해합니다.

주님 앞에서 쩔쩔매는 것이 참회의 삶인 양 오해합니다.

정녕 주님께서 통탄하실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모두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가 지은 어떤 죄도 깡그리 없애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로 모든 사람이 항상 기쁘고 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그 좋은 축복, 귀하고 복되며 고귀한 은총을 빠짐없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인 까닭입니다.

하여 오늘도 그날의 제자들처럼 그분의 뜻과 동떨어져서 딴짓에 몰두하며 ‘헛수고’를 하는

우리 이름을 간절히 부르십니다.

부디 이제부터는 다시, 또, 새로이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주님의 속내를

헤아려 드리면 좋겠습니다.

그 말씀 안에는 이런 뜻이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네가 나의 눈에 값지고 소중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이사 43,4) 아멘.

 

 

 

  msn040.gif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가톨릭 신학]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까요?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부활은 항상 십자가 죽음과 함께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킨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대사제가 백성 전체를 대표해 짐승의 피와 속죄 예식을

봉헌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은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새로운 성전을 통해 새로운 예배와 참된 속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피를 봉헌하시어, 단 한 번의 희생 제사를 통해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代贖, 남의 죄를 대신해 속죄하거나 대가를 치르고 풀려나게 하는 것)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화해(=속죄)와 구원을 의미하고, 인간의 죄 때문에 어그러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화해시키며, 영원한 삶의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인간의 정화,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십자가 죽음의 대속적 의미 대신 여러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를 들어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하는데, 숙고할 가치는 충분하지만, 대속적

의미보다 더 나은 해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인간에게 올바른 삶의 길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했고, 죽음이라는 절망의 상황에 마주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과 죽음을 이겨내는 길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 말씀을 가슴에 품고, 당신을 따르라 하십니다.

이 길은 힘들고 어렵지만, 갈 수 있는 길이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이 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십자가가 바로 구원의 장소이고, 방법이며,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나에게 십자가란 어떤 것일까요? 

사람마다 다릅니다.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식이 십자가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부모가 그럴 수 있으며,

자신의 현실이나 미래일 수도 있고, 자신의 능력이나 외모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무겁고 피하고 싶은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모든 답은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과 기도하고 일치하고, 하느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절망적인 상황으로 이끌곤 합니다. 

우리 삶이 더는 희망이 없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영어에 ‘nowhere’(더이상 아무것도 없는)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사람들이 느낀 절망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절망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 단어는  ‘now’+‘here’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신앙인들이 바라봐야 할 희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안에서 삶의 의미를 묵상하고 발견하며 부활을 준비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3-24)

 

 

 

msn036.gif 교황님 말씀

 

-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두려움의 무덤에서 나옵시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외에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마라”, “겁내지 마라”라고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주

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신 무덤 옆에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두려움의 무덤에서 나오도록 초대하십니다.

잘 새겨들으십시오.

우리는 두려움의 무덤에서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우리를 파묻어버리는 무덤과 같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두려움이 항상 우리 마음의 문 앞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2022년 4월 18일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삼종기도 훈화 중

 

 

 

~~~~~~~~~~~~~~~~~~~~~~~~~~~~~~~~~~~~~~~~~~~~~~~~~~~~~~~~~~~~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 주중.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서 보실 수 있으십니다.

 

▣  5월은 ‘성모 성월’입니다. 

성모성월을 맞아 전 신자대상 성모님께 드리는 묵주기도가 성모상 앞에서 5월 한달간 주일 미사전 9시45분에 시작합니다. 

▣ 오늘(5월 1일)은 ‘생명 주일’입니다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 폐막에 따른 기도 요청

교구장님께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 반포 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2021년 3 월 19일~2022년 6월 26일) 폐막을 준비하며 가정의 달이

시작되는 5월 1일부터 폐막일(6월 26일)까지 가정 공동체의 성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다음의 ‘가정을 위한 기도’나 가톨릭 기도서의 ‘가정을 위한 기도’를 가급적 가족과 함께

혹은 개인적으로라도 바쳐주길 요청하셨습니다.

* 가정을 위한 기도

하느님 아버지 저희 가정을 사랑으로 보살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가정이 당신께서 주신 참된 기쁨과 평화를 간직하고 인내와 친절로써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게 하소서. 또한 살아계신 주님을 모신 작은 교회로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한국학교와 주일학교가 5월 7일(토)에 종강 수업이 있습니다.

▣ 성모회에서 빈 김치병을 수집합니다. 큰병, 작은병 뚜껑이 없어도 괞찮으시다고 합니다.  

▣ 2022년  5월 매일미사책이 도착했습니다.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매월 각권은 $7 이며, 정기 구독료는  신청 개웙 x $7 하시면 됩니다.

신청하시는 방법은 아래 봉헌금내시듯 여러방법으로 신청하시면 되겠습니다.    

▣ 2022년도 BAA(Bishop's Annual Appeal)   

1. 교구청에서 우편으로 BAA를 받으신 분은 용지에 기재하셔서 직접 우편발송 하셔고 되고

2. 성당에 나오시는 분은 BAA 봉투를 봉헌함에 봉헌 (빈 봉투 성당에 비치)

3. 체크로 보내시고자 하시는 분은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우편발송

4. 또는 온라인으로 직접봉헌 - GivetoBAA.org (저희 본당 고유번호는 614 입니다)

 * BAA Tax 공제는 저희 본당과는 무관하고 교구청에서 직접 발송됩니다.

▣  Zarama 주교님께서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해주시고, 노인이나 기저질환 환자등 케어를 필요로 하는 분들은 

가급적 마스크 착용을 권장 하십니다.

▣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

성당 입구에서 수합 재개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계속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1. 미사 참여시 직접 봉헌

    2.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교황님의 5월 기도 지향}  

일반: 젊은이들의 신앙

충만한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젊은이들이 성모님의 생애에서 경청하는 법,

깊은 식별, 신앙이 싹틔운 용기, 헌신적인 봉사를 배우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4be3qgPzB_A - 2022년 5월 1일 부활 제3주일 (생명주일)​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qw52YV_oas0 - National Shrine 2022년 5월 1일 부활 제3주일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6s2XEsAnATY - 2022년 5월 1일 부활 제3주일

        

 

     

     

 

 

잘못을 덮어 주는 이는 사랑을 키우고 그 일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구를 멀어지게 한다. 잠언(17장 9절)​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433 2022년 9월 11일 (다해) 연중 제 24주일 방정모 요한 2022.09.08 84
432 (녹) 연중 제 23 주일 2022년 9월 4일 방정모 요한 2022.08.31 84
431 (녹) 연중 제22주일 2022년 8월 28일 AdelaKim Adela 2022.08.24 99
430 (녹) 연중 제21주일 2022년 8월 21일 AdelaKim Adela 2022.08.17 84
429 (백) 성모 승천 대축일 2022년 8월 14일 AdelaKim Adela 2022.08.11 123
428 (녹) 연중 제19주일 2022년 8월 7일 AdelaKim Adela 2022.08.03 88
427 (녹) 연중 제18주일 2022년 7월 31일 AdelaKim Adela 2022.07.27 78
426 (녹)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2022년 7월 24일 AdelaKim Adela 2022.07.20 74
425 (녹) 연중 제16주일 2022년 7월 17일 AdelaKim Adela 2022.07.13 82
424 (녹) 연중 제15주일 2022년 7월 10일 AdelaKim Adela 2022.07.07 91
423 (녹) 연중 제14주일 2022년 7월 3일 AdelaKim Adela 2022.06.29 76
422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2022년 6월 26일 AdelaKim Adela 2022.06.20 125
421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2년 6월 19일 AdelaKim Adela 2022.06.16 123
420 (백)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2022년 6월 12일 AdelaKim Adela 2022.06.09 138
419 (홍) 성령 강림 대축일 2022년 6월 5일 AdelaKim Adela 2022.06.01 97
418 (백) 주님 승천 대축일 2022년 5월 29일 AdelaKim Adela 2022.05.25 111
417 (백) 부활 제6주일 2022년 5월 22일 AdelaKim Adela 2022.05.18 139
416 (백) 부활 제5주일 2022년 5월 15일 AdelaKim Adela 2022.05.11 105
415 (백)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2022년 5월 8일 AdelaKim Adela 2022.05.04 102
» (백)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2022년 5월 1일 AdelaKim Adela 2022.04.27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