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XpressEngine


      본당주보입니다.

랄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ST. HA-SANG PAUL JUNG CATHOLIC CHURCH 

주임신부: 이동욱 (도마)  

사목회장: 김귀옥 (테오도라)

3031 Holland Rd Apex, NC 27502      Tel: (919) 414-9256      Fax: (919) 363-0409

제1독서  다니  12,1-3

화답송

◎ 주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
○ 제 마음 기뻐하고 제 영혼 뛰노니, 제 육신도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은 제 영혼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구렁을 보지 않게 하시나이다. ◎
○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

 

제2독서  히브  10,11-14.18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복음  마르  13,24-32

영성체송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

 

생명의 말씀  

  유일한 탈출구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되는 것입니다

                               황경원 안드레아 신부 | 사회사목국 국장

 

작년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아침, 서울역을 지나던 한 사람이 커피값을

청하는 노숙인에게 돈은 물론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까지 벗어서 그에게

걸쳐주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이 장면은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몰두하던 우리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며 회자되었습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 대유행이 2년이 되어가지만, 전 인류는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사태가 앞으로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 있을 것이란 우울한 예측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염병의 위험 속에서도 의료인, 방역인, 미화원, 돌봄 노동자,

배달 노동자 등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노고와 헌신 덕분에 시민들이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삶을 지탱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고 고마움과 응원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마르 13,27)


오늘 복음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선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두셨습니다. 심지어 사회의 약자들을

당신과 동일시 하셨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라고 가르칩니다.(사목헌장, 1항 참조)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에서 초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는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많은 고통과 상처 앞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되는 것입니다.”(모든 형제들, 67항)라며 행동에 나서라고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제5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인 오늘, 인간 존엄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스며들도록 다짐하고 꾸준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실천적이고 더욱 긴급한 결론을 내려서, 공의회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웃을 어떠한 예외도 없이 또 하나의 자신으로

여겨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웃의 생활을 고려하여 그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수단들을 보살펴야 한다.”(사목헌장, 27항)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오늘 담화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복음화 시킵니다.

그들은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참 얼굴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 가난한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마르 14,7).

우리는 그들의 어려움과 소외를 덜어주고 잃어버린 그들의 존엄성을

되찾아주며 그들에게 꼭 필요한 사회 통합을 보장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야 합니다.”

 

 

 

msn008.gif  [생활속의 복음] 

           구원의 날 위해 깨어 준비하여라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오귀스트 로댕’의 유명한 조각 중에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그 작품을 삶에 대해 한가하고 무료하게 사색하는 모습으로 아시지요.

그런데 그 조각은 원래 ‘지옥의 문’이라는 큰 작품의 한 부분입니다.

작품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마치 야수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의 몸을

물어뜯으며 한데 뒤엉켜 지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작품 윗부분에 걸터앉아 그 아비규환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습니다.

그는 한가하게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한 게 아니라,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 저렇게 되지 않을지 심각하게 고민한 것입니다.

이렇듯 평소 죽음 이후의 삶을 생각하며 착실하게 준비한 사람은 종말의 순간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욕심과 본능에 휘둘려 생각 없이 산 사람은 종말의 순간 ‘지옥’을 경험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대해 가르치면서도 사람들을 겁주지 않으셨습니다.

현재의 삶을 하느님 뜻에 맞게 살면 종말은 심판이 아닌 구원의 날이 될 거라고 격려하셨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종말의 순간에 일어날 일들을 꽤 구체적으로

묘사하시기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겁주시려는 게 아닙니다.

종말의 순간에 일어날 구체적인 사건을 예언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유다교에서 유행하던 묵시문학(默示文學)의 언어를 사용해

세상 종말의 순간에 큰 재난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덤덤하게 말씀하실 뿐입니다.

우리가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그다음 내용입니다.

바로 그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영광과 권능을 떨치며 이 세상에

오시리라는 것,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그분의 가르침과 뜻을 충실히 실천한

이들은 구원받을 사람으로 특별히 ‘선택’되어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종말 예언’의 핵심은 무서운 재난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에, 멸망이 아니라 구원에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맞이할 종말은 ‘세상의 멸망’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각자 맞게 될 개인적 종말인 ‘죽음’이 우리에게 더 확실하고 가깝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먼일인 세상의 종말은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대비책을 세워보려고 하면서, 정작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나의 종말’인 죽음은

제대로 대비하질 않습니다.

마치 죽지 않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으려 안간힘을 쓰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름’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테로스’에는 ‘수확’, ‘추수’라는 뜻도 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여름은 날이 더워지는 시기, 가을 겨울 앞에 오는 계절이지만,

작물의 입장에서 여름은 자기 삶의 결실인 수확을 착실히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즉 예수님은 삶의 가지가 크게 뻗어 나가고 잎도 무성하게 돋는, 소위 잘 나가는

그 시기에 더 커질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 삶이 구원이라는 결실을 제대로

맺을 수 있도록 깨어 준비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직접 뵙게 될 ‘그 날과 그 시간’이 언제가 될지는 오직 하느님만 아십니다.

우리는 다만 지금 여기에서 항상 깨어있는 자세로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하면 됩니다.

나의 믿음이 그 최종 목적인 하느님 나라를 향하고 있는지, 하느님과 함께

살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있는지, 그 믿음과 희망이 ‘사랑’의 실천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물으며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삶의 마지막 순간 간절히 원하게 될

그것을 지금 당장 행하면, 삶에 후회가 남지 않습니다.
 

 

 

 [말씀묵상]  

          이야기에 물드는 삶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가까이 오라/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라.”(래미 드 구르몽)

인생을 마무리하는 죽음을 생각하는 위령 성월인 11월,

전례력으로 연중 제33주일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고 다음 주일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자 성서주간을 시작하는 주일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왜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주일 후 성서주간이 이어질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말이나 체험은 기억 안에 저장돼 계속 재해석하면서

삶을 빚어가는데요, 제가 성서사도직을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해석학’입니다.

 

성경에서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만이 아니라 영적인 가난, 곧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경청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는 능력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가난해지고 가난해지기 위해서 성경을 읽습니다.


■ 복음의 맥락

복음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분인 예수님 생애의 마무리에 해당합니다.

마무리이지만 절정이지요. 마르코 복음 13장의 중심 주제는 ‘예수님의 종말론’ 가르침입니다.

원래 이 본문의 의도는 사람들이 종말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었는데 마르코는

이 본문에서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를 지향하는 영성을 보여줍니다.(마르 13,26.29-30)

13장 담화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깨어있으라”입니다.

 

마르코 공동체는 핍박과 박해를 받는 공동체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공동체를

향한 마르코의 메시지는 부활한 예수님이 박해당하는 사도 바오로에게 준 메시지와 거의 일치합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페터 코르넬리우스 ‘최후의 심판’ (1836~1839년).

 

■ 예수님 이야기, 내 이야기

마르코는 가난하고 핍박당하는 마르코 공동체 신자들의 삶을 위해 오늘

본문을 기록했지만 오늘날 우리 삶에도 적용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세례란 “예수님과 함께 고난당하고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것”(로마 6장)이라면

예수님 생애의 신비는 바로 우리 생애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속임수와 희망한 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하게 되는 그릇된

종말론에 대한 흥분을 다시 바로 잡습니다.

이 모든 것은 종말에 대한 기대가 늦춰지고 있다고 여기는 초대 교회 독자만이

아니라 신앙에 반대하는 온갖 것들에 마음이 끌리고 신앙의 의미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고 있는 우리 상황에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 죄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어떤 아름다운 예술, 사상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세상의 끝은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온갖 기대를 넘어서며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충만함 안에서

인간의 온갖 희망이 이어질 것입니다.

“마라타나, 오소서, 주 예수님!”(1코린 16,22) 주님의 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간직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 삶을 제대로 살아가게 하는 방향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해 말하고 무화과 비유를

통해 그분에게 다가올 수난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은 영광에 이르기 전에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중세 영국 독수자인 노르비치의 줄리아나는 「하느님 사랑의 계시」에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우리도 많은 고난을 겪겠지만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시편 화답송에서 고난을 겪는 한 가난한 사람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하느님의 섭리 아래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자세를 유지할 것입니다. 감사는 자기 삶이 온전히 창조주에게

달렸음을 믿는 신앙의 행위이자 자신이 선물로 받는 것을 헤아릴 줄 아는 행위입니다.

셋째,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삶을 해석하는데 있어 성경 이야기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나를 읽는다!’ 옛날에는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했었는데 요즘은

제 삶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성경 이야기를 읽습니다.

스스로에게는 감추어져있지만 하느님에게는 환히 드러나 있는 것!

각자 소명에 따라 빛깔과 모양은 다르지만 하느님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예수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복음서에 예수님 생애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이 나옵니다.

행복선언이나 주님의 기도 같은 놀라운 가르침, 경이로운 병자 치유,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와의 지혜로운 논쟁….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에 다양하게 지속적으로 영감과 영향을 주는 이야기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재림과 고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 신자들도 이미 체험한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이 체험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


■ 성찰

몇 달 전 성경 특강을 마치고 신천지에 몇 년 있다 탈퇴한 젊은이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신천지에서 들은 것과 강의 내용이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질문했더니

이 지혜로운 젊은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경을 역사와 맥락 안에서 해석하라는 점이 달랐어요. 신천지에서 들은

좋은 말과 중첩되는 것들도 있었는데, 저는 왜 이 좋은 이야기를 성당이

아니라 신천지에서 먼저 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에게 정체성과 삶에 대한 해석을 제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을 포함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삶을 비춰주고 해석할 이야기입니다.

바로 하느님 이야기 말입니다. 예수님 이야기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지혜는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게 하고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합니다.

삶을 이끌어가는 이야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아멘!
 

 

 

msn025.gif   음악칼럼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사랑의 마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위령의 날 (Allerseelen)>        

                        임주빈 모니카 | KBS프로듀서, 심의위원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시인 헤르만 폰 길름(Hermann von Gilm)은

그의 시 ‘위령의 날(Allerseelen)’에서 ‘… 모든 무덤에 오늘은 꽃이 피고 향기롭네,

일 년 중 하루는 죽은 영혼이 자유로우리니….’하고 노래합니다.

 

해마다 11월 위령 성월, 특히 11월 2일 위령의 날에는 길름의 이 시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 독일)가 곡을 붙인

독일 가곡 ‘위령의 날’을 찾아 듣게 됩니다.

 

종교적 의미보다는, 먼저 세상을 떠난 이와 함께했던 사랑스러운 시간을 추억하는

내용인데,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념에 젖게 합니다.
예전 음악 해설서를 보면 ‘위령의 날’에 해당하는 독일어 ‘Allerseelen’의 우리말

번역이 독일어만큼이나 낯선 단어, ‘추사이망첨례(追思已亡瞻禮)’ 또는 ‘만령절(萬靈節)’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다가 나중에 이것이 바로 ‘위령의 날’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고는 퀴즈를 푼 것처럼 속 시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211193849.jpg

 지휘자로도 명성이 높았던 슈트라우스는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자신의 음악을

녹음해서 음반으로 남길 수 있었던 20세기의 작곡가입니다.

현대음악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은 ‘난해하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낭만적이라고 할 만큼 선율미 넘치는 작품이 많습니다.

 

그래서 후기 낭만파의 마지막 주자로 일컬어지죠. 

그는 당대 작곡가로서는 독특하게 오페라를 많이 작곡했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장대한 교향 시, 관현악곡을 여러 편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바로 150여 곡에 달하는 ‘가곡’입니다.

피아노나 관현악 반주로 불리는 그의 가곡은 선율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특히 <내일(Morgen)>이라는 가곡은 아름다운 선율 때문에 바이올린이나

첼로로 편곡되어 자주 연주되지요. 

‘독일 가곡(Lied)’이라면 슈베르트, 슈만만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후대에

이런 작곡가가 독일 가곡의 한 축을 든든히 받치고 있었음을 알고 나면

클래식 애호가로서 흡족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슈트라우스의 1885년 작품 <8개의 가곡집> 작품 번호 10번(op.10)에 수록된 

‘위령의 날’을 들으면서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이 기도는 비단 죽은 이들만을 위한 기도는 아닐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올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짐하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다 가고 싶습니다.

낙엽이 지고, 바람이 싸늘해지며 마음이 쓸쓸해지기 쉬운 가을, 우리 안에

고이 접혀 있는 겸손을 꺼내 따뜻한 외투로 걸쳐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리톤의 노래에 이어 같은 곡을 소프라노의 음성으로도 감상해봅니다. 

 

202111931356.jpg

 

 

 

 

 msn036.gif 교리·영성 퀴즈

문제 2-1. 고해성사 형식은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는 유일한

일반적 방식인 OO OO를 따른다. 빈 곳에 들어갈 알맞은 말은?

 

문제 2-2. 교회는 현세적 야심이나 목적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수행한다.

그 핵심은 사랑과 자비이며, OOO이다. 빈 곳에 들어갈 알맞은 말은?

 

지난 주 퀴즈 정답:  1-1. 온전한 책임       1 -2. 가난

~~~~~~~~~~~~~~~~~~~~~~~~~~~~~~~~~~~~~~~~~~~~~~~~~~~~~~~~~~~~

                    공동체 소식        

* 본당 신부님께서 주일미사 강론은 홈페이지 '토막강론'에 올리십니다.

▣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  전례부에서 대림꽃과 제대초 도네이션 받습니다. 협조 부탁 드립니다.

▣  점차 심해지고 있는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며, 성당내의 부엌사용과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고백성사 - 매 미사 30분전 고백성사 있습니다. 
▣  성전안에서 미사 전, 미사 후 잡담을 금지 합니다. 

기도 하시는분들을 위하여 성전밖으로 나가셔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11월 매일미사책 정기구독 하시는 분들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당입구에 있으며 각 권구입은 $5 입니다.        

▣  알림: 본 성당주보에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싶으신 글이나 알리고싶으신 글 있으시면 언제나 보내주십시요. 

보내실곳은 성당 총무부 방정모 요한형제님( johnbang74@gmail.com)께 접수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단, 특정 이슈가 되는 글은 편집 삼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Zarama 주교님 권한으로 COVID-19 동안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제 받았습니다.  

미사 참례 하고자 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은 안전한 환경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미사에 신자분들은 반드시 마스크 착용 하시기 바랍니다.

성체를 영하실때는 차례로 격리거리 유지하여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봉헌금은 미리 준비하셔서 성당 입구에서만 수합 합니다.  

단, 미사예물은 미사 전에 직접 제대에 올려 주십시요.

▣ COVID19으로 본당 미사에 직접 참여를 못 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무금, 건축헌금, 주일헌금 등     

앞으로는 세가지중에 편하신 방법으로 알아서 결정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미사 참여시 직접 전달

    2. 우편이용 봉헌 -  체크를 본당 재무분과장 편영준 미카엘형제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Pay to the order of : SPJCC (주소는 각구역장님께 문의)

    3. 인터넷이용 봉헌 - https://spjcc.weshareonline.org  

      현재 교무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및 주일헌금을 봉헌하실 수 있으며 매달 혹시 원하시는 

       주기로 자동결제되도록 예약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 봉헌하실 때 계좌를 만드시면 그 후로는 간단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봉헌 내역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용 문의사항은 재무분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봉헌하시는 교무금안에는 저희 성당건물 모기지는 포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금혜택은 총 봉헌금으로 받으시기 때문에 건축헌금에 비중을 두시는것도 저희 건물 빚을 갚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렵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봉헌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19 이후로 봉헌하시는 체크는 경우에 따라 디파짓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교황님의 11월 기도 지향}  

보편 지향: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우울증이나 과로로 지쳐 고통받는 사람들이 새 삶을 열어 가는 데에 필요한 도움과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미사 방송 보기    

 

1.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 시청   

    http://www.cpbc.co.kr/TV/178/  

    굿뉴스 가톨릭미디어 매일미사

    https://youtu.be/ZVR8MMPkJws - 11.14. 2021

 

2. 미국 가톨릭 방송(EWTN)에서 매일 미사 시청   

     https://www.youtube.com/channel/UCijDos-LUTh9RQvSCMQqN6Q  

     https://youtu.be/VtJhIEisvGM - 11.14. 2021

 

 

3. 랄리 주교좌성당 미사    

     Holy Name of Jesus You Tube Channel 

     https://youtu.be/f5aJW0x5MBU - 11.14. 2021

 

 

4. VATICAN MEDIA LIVE 

     https://youtu.be/IgkxUquxD9w​ - Live

      https://youtu.be/6GQIg5v621Q - 2021년 11월10일 프란치스코 교황님 수요 가르침 말씀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신 권리에 따라. 시편(119장 132절)​

번호 제목 이름 세례명 날짜 조회 수
393 (자)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2021년 12월 12일 AdelaKim Adela 2021.12.09 126
392 (자)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2021년 12월 5일 AdelaKim Adela 2021.11.30 152
391 (자) 대림 제1주일 2021년 11월 28일 AdelaKim Adela 2021.11.24 124
390 (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2021년 11월 21일 AdelaKim Adela 2021.11.16 140
» (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2021년 11월 14일 AdelaKim Adela 2021.11.10 138
388 (녹)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2021년 11월 7일 AdelaKim Adela 2021.11.03 141
387 (녹) 연중 제31주일 2021년 10월 31일 AdelaKim Adela 2021.10.27 127
386 (녹) 연중 제30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2021년 10월 24일 AdelaKim Adela 2021.10.20 209
385 (녹) 연중 제29주일 2021년 10월 17일 AdelaKim Adela 2021.10.12 152
384 (녹) 연중 제28주일 2021년 10월 10일 AdelaKim Adela 2021.10.06 101
383 (녹) 연중 제27주일 2021년 10월 3일 AdelaKim Adela 2021.09.30 127
382 (녹) 연중 제26주일 2021년 9월 26일 AdelaKim Adela 2021.09.23 113
381 (녹) 연중 제25주일 2021년 9월 19일 AdelaKim Adela 2021.09.15 134
380 (녹) 연중 제24주일 2021년 9월 12일 AdelaKim Adela 2021.09.08 126
379 (녹) 연중 제23주일 2021년 9월 5일 AdelaKim Adela 2021.09.01 133
378 (녹) 연중 제22주일 2021년 8월 29일 AdelaKim Adela 2021.08.26 133
377 (녹) 연중 제21주일 2021년 8월 22일 AdelaKim Adela 2021.08.19 4304
376 (백) 성모 승천 대축일 2021년 8월 15일 AdelaKim Adela 2021.08.11 128
375 (녹) 연중 제19주일 2021년 8월 8일 AdelaKim Adela 2021.08.05 108
374 (녹) 연중 제18주일 2021년 8월 1일 AdelaKim Adela 2021.07.29 130